경주의 도시역사는 내리 2천 년을 넘나든다. 최초의 도시가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우르(Ur)나 우륵(Uruck)을 도시 출현의 시작으로 보는 학자가 많지만 인류의 도시역사는 고든 차일드(V. Gordon Childe, 1892~1957)가 말한 것처럼 도시가 지상에 인류공동체로서 존속한 것으로 치자면 BC 3,500년경부터로 대략 5,500년의 역사를 가진다. 그는 이를 도시혁명이라고 불렀다. 한곳에 정착하여 집합된 모듬살이를 시작하게 된 것을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 정보혁명처럼 새로운 가치체계를 가지고 조직화된 혁명이라 하였다.

 도시는 사람들의 삶을 담는 용기로 기능할 뿐 아니라 변화하고 움직이는 유기체로서의 속성을 가진다. 세계엔 수많은 도시가 있지만 동일한 도시는 존재하지 하지 않는다. 삶의 방식이 다르고, 문화와 지리가 다르며, 가치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서로 다름을 오늘날 정체성이란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반면에 도시는 쓰레기 배출량, 교통량, 도시경제처럼 냉엄한 현실 속에 존재하여 양적으로 다루기도 하고, 쾌적함이나 편리함, 아름다움 등 질적인 것으로 다루기도 한다. 때문에 도시의 정체성이란 질량을 동시에 함유하고 변화하는 속성을 가진 유기체로 평가된다.

 정체성이란 남과 다른 무엇이 존재하는 것으로 정의되기도 하지만 역사도시에서는 차이성뿐 아니라 연속적인 것이 무엇인가로 규정되기도 한다. 도시정체성은 오랫동안 조직화한 문화와 삶의 문맥, 역사적 경관 등 연속적인 가치를 일컫기도 한다. 슐츠(C. N. Schultz)는 도시정체성이란 세계 내 존재(Being in the World)로서 정위(Orientation)를 가진 것들로 설명되는 것이라 하였다. 즉 도시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바르게 알게 해주는 공간적 표상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정체성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거나 심지어 외래인에게도 쉽게 읽히는 도시적 문맥이 드러나는 것이며, 삶의 틀이 잘 조직화하고 바르게 작동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장소가 가진 정신(Genius Loci) 또는 장소성(Sense of Place)이라고도 하며, 개개의 장소가 가진 독특한 공간적 양상이 합하여 그 도시의 보편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잘 정리된 도시나 제대로 작동하는 도시야말로 정체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경주는 BC 57년부터 935년까지 신라의 수도로 존속되었고,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러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역사도시이다. 도시문화사로 볼 때 최초의 계획도시이며, 불교가 융성했던 곳이며,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 최고의 읍성이 있던 곳, 이후 조선에 이르러 양동, 교동 등 동족부락을 형성하여 집합적 모듬살이 방식을 잘 보여준 곳이다. 신라 왕경(王京)을 계획할 때부터 도시의 정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주변의 산악과 하천을 활용하여 방어 요새(동으로 명활산성, 남으로 남산산성, 북으로 소금강, 서로는 서형산성 등)를 결정하였으며, 동서축으로 황룡사와 서악산을 연결하는 축을 설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남산, 황룡사, 월성, 고분군 등이 자리해 오목 볼록한 도시경관을 형성하였다. 남북축은 남산의 해목령과 월성, 주작대로, 북궁, 소금강산을 연결하는 축으로 주요 관청과 궁궐을 남북으로 배치하였다. 왕경의 공간적 범역은 대체로 남북 5.8킬로미터, 동서 5.6킬로미터 범위 안에 많은 방(坊)^{신라 왕경 행정구역의 기본 단위}을 만들어 방명을 정하였고, 도로에 번호를 붙였으며, 칠처가람 즉 7개의 큰 사찰을 두었고 동시, 서시 등 시장과 사절유택(四節遊宅)^{신라 귀족들의 별장}, 35 금입택(金入宅)^{신라 귀족들의 대주택} 등 대저택들이 즐비하였다.

 한편 불교가 공인된 527년 이후에는 왕실불교가 성행하여 왕경 내에는 불사(佛寺)가 많이 건축되었다. 흥륜사를 필두로 하여 황룡사, 인왕사, 사천왕사 등 도성 내 대규모 사찰 등이 왕경 방리를 차지하였다. 황룡사는 왕경 방리(方里) 네 개 정도로 규모가 작았지만 황룡사목탑의 높이를 감안하면 매우 협소한 곳으로 판단된다. 이 시기에 이미 도시가 팽창하여 도시 내에는 대찰들을 수용할 땅이 부족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통일기 전후에 도시를 정비하여 왔음에도 인구에 비해 토지가 부족하여 수도를 달구벌^{대구의 옛 이름}로 옮기려고 하였으나 왕실불교의 주축이었던 승려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도시를 재정비하여 명활산성 터까지 외방을 건설한 것으로 보아 도시는 계속 팽창한 것을 알 수 있다. 신라가 멸망한 77년 후인 1012년에 읍성이 축조되었다. 읍성은 주로 관청을 위한 성곽으로, 16개의 방리를 차지하여 읍성 내에 객관인 동경관 및 주요 관청과 감옥 터, 집경전, 주전소, 우물지 등을 두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문화재 수탈을 목적으로 한 대구-불국사 간 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는 일본인의 관광도로로 사용되었다. 일제는 읍성의 남쪽 성곽을 파괴하여 동서신작로를 만들었고 동해남부선의 개설로 동궁, 월지, 사천왕사를 파괴하였고, 남산 등에 쇠말뚝을 박아 신라왕조의 맥을 끊으려고 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시대엔 보문단지를 유원지로 개발하였고, 경주시가지를 외곽으로 옮겨 신시가지를 만들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경부고속도로 건설 시 경주를 경유하는 노선을 건설하였고, 월성에 원자력국가산업단지를 만들었으며, 고속철도 신경주역을 개통하였고, 주변에 신시가지를 계획하였으나 아직 착공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등 신라 왕경 내부의 도시공간 구조의 변화를 수반하는 대규모 시설들도 입지하게 될 것이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역사지구를 중심으로 황룡사지구, 월성지구, 남산지구 등의 정비를 계속하고 있고, 최근에 양동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근자에 이르러 고도보존법을 제정하여 도시의 대부분이 보호지구로 지정되었으며, 문화재보호법으로 경주시민은 재산권의 행사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주는 이와 같이 세계문화유산이 지정된 곳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역사도시로서의 품격을 지닐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었고, 문화체육관광부 등 국가 전체로서도 문화도시 건설을 위한 노력이 시행되고 있지만, 한편으로 경주시민들이 사는 삶터로서의 일상성을 지켜나가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주다움은 역사도시의 다양한 문화적 가치와 역사적 경관의 안온함, 오목 볼록한 도시경관, 자연과 합일하는 경관의 부드러움을 포괄하는 곳으로서의 정체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최근 일련의 대규모 아파트단지 개발과 도시공공디자인, 역사성을 표방하는 건축물, 전통을 살리려는 가로 환경개선사업과 간판디자인 등에는 지극히 질 낮은 공공디자인이 횡행한다. 눈썹지붕 같은 한옥의 변형된 처마, 비례가 맞지 않은 4~5층의 한옥 호텔 등은 역사경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가로정비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봉황로는 비례가 맞지 않은 가로등과 휘도가 지나친 색색의 야간경관, 교통에 방해가 되는 석조물의 나열 등 마치 역사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변형된 것의 조합이라고 할 정도로 혼란하기 그지없다. 어느 것 하나에도 정온한 형태의 공공디자인은 없다. 연속성의 결여는 현대적 재료의 사용과 장인의 부족, 경제성을 추구하는 시대정신 등 역사적 연계를 위한 노력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또한 국가적 과제로 다루는 역사문화 조성사업 역시 역사의 진정성을 확인하지 않은 채 시대의 장인들에 의해 합의된 형태의 월정교 복원사업, 교동의 한옥복원 등에서 보이는, 세계문화명승지로서의 지위를 십분 발휘하고픈 특정집단의 이기주의는 이곳에서 삶을 가꾸고 정주하며 관리하는 시민들의 의식 수준과는 너무도 괴리가 크다.

 살기 좋은 경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기한 도시정체성을 기반으로 경주만의 문화적 기질을 잘 표현해야 하는데, 역사문화, 사회경제, 환경, 교통, 건축 등이 지속가능하며 긍정적으로 잘 작동해야 한다. 이는 곧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도시가 지닌 원활한 기능에 충실하며 내적으로도 도시민이 잘 합의하여 운영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시는 엄청난 규모로 인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이해되는 성질이 있으므로 더욱 규범적 도시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도시는 무대이지만, 일상이 문화인 그런 곳으로 다듬어가야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라정신에 모두가 긍정하는 곳, 문화재 보호를 위해 어느 정도의 규제에도 익숙해 있지만 도시행정은 무척 힘든 곳, 그러나 지금 보다 나은 문화적 도시를 만들어간다는 소신이 뚜렷한 그런 도시를 만들어간다는 합의된 가치가 현재 경주의 도시정체성이 아닐까 한다.

 이를 위해 신라 왕경의 원형 회복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세계적 가치에 부합하는 역사도시로서의 신라정신의 고양에 더욱 힘쓰며, 도시 내에 산재한 문화재 복원뿐만 아니라, 주민의 생활환경 개선에도 역사도시로서의 품격에 걸맞은 도시디자인이 필요하며, 도시경제, 환경, 교통 방면에서 지속가능한 도시로서의 노력이 매우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