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京都)는 일본의 이미지 그 자체이다. 사무라이(侍), 게이샤(藝者), 신사사원으로 대표되는 고도(古都)의 이미지. 그리고 교토의정서^{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관한 의정서}를 채택함으로써 유구한 시간을 붙들고자 하는 지속가능성의 감각. 예전부터 교토의 경제를 지탱해온 것은 니시진오리(西陣織)와 교유젠(京友線)과 같은 방직업이다. 그리고 현재는 닌텐도(Nintendo)와 오무론(オムロン), 교세라(京セラ), 시마즈(島津)제작소와 같은 세계적인 제조사들의 본사가 교토에 있다. 이들 기업은 급성장하고 있는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의 가격경쟁에 고군분투하면서도, 예전부터 함께 해온 회사와의 거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새로운 거래의 성립은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고리타분하면서도 새로운 ‘도시’ 교토.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교토에 살기 시작한 지 어느덧 15년, 나는 그동안 교토의 매력과 마력에 사로잡혔다. 교토의 특징 중 하나는 학생이 중요한 구성 요소라는 사실이다. 도쿄(東京) 천도를 시샘하여, 관료를 육성하는 도쿄대학에 대항하여 만든 교토대학을 중심으로 약 50여 곳의 대학교(전문대 포함)가 학구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시초손(市町村)^{한국의 시읍면동에 해당} 인구당 대학 수는 전국 1위를 자랑한다. 대학시절 내가 본 교토는 학생들이 살기 좋고, 외부에서 온 사람에게 친절한 ‘도시’였다. 관광객이 길을 물으면 정중하게 가르쳐주고, 무지한 학생에게 전통과 작법을 가르쳐주는. 하지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교토의 또 다른 얼굴과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외지 사람에게 엄격한 ‘지역’.

 택시운전사에게 “고코마치도오리(御幸町通)에서 조금 내려가서요.”라고 행선지를 밝히면, “당신, 교토 사람 아인갑네. 교토 사람은 ‘내려서요’라 카는데.”라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교토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오사카 북부 출신이라 말씨는 교토의 말씨와 거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오사카와 교토의 정체성은 확고하게 다르다. 여담이지만, 오사카 사람은 개입하는 것을 좋아한다. 쓸데없는 간섭이라는 얘기도 자주 듣지만, 이웃의 사생활에 개입하기를 좋아하고 이를 애정이라 여긴다. 애정이 강하고 감정표현이 격한 면은 라틴계 사람과 닮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인과도 비슷한 느낌인데, 그래서 오사카에 한국인거리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한편 교토 사람은 기본적으로 쿨뷰티(ク一ルビュ一ティ)^{냉정하고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미녀에 대한 찬사를 뜻함}로, 북유럽인 같은 인상이다. 교토의 1,200년 역사에서 본다면, 오사카는 기껏해야 (오사카성 축성으로부터) 500년 역사의 풋내기일 뿐. “장사만 알지 문화란 게 무엇인지 알겠나” 라는 식이다. 도쿄에 대해서는 “모양이 안 나네”라고 말하면서도 수도를 빼앗긴 분함을 지울 수 없기에 단순한 풋내기 취급을 할 수는 없다. 쿨재팬(ク一ルジャパン)^{1990년대 이후 일본 대중문화의 수출 콘텐츠 및 전략}을 상징하는 곳은 아키하바라(秋葉原)라고들 하지만, 나는 쿨재팬으로 으뜸가는 곳이 사실은 교토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교토의 택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교토의 거리는 고대시기부터 조리제(條里制)^{고대 일본의 율령체제에 따른 토지 구획 제도}에 기반한 격자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종횡의 도로 이름을 알면 교토에 익숙해진 척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익숙해진 척’ 정도이기에, 본질적은 것은, ‘니가 알면 얼마나 알겠노’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이 오가는 ‘도시’로서의 얼굴과 새로운 사람을 거부하는 ‘지역’으로서의 얼굴.

 그럼, 슬슬 역사유산의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하다. 나는 교토의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교토에 대해 연구를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조경과 환경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계획적인 녹지의 배치에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도 파리와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유구한 시간의 흐름과 그것을 지켜온 높은 수준의 주민의식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교토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에는 일로 “제3기 교마치야(京町家)^{교토 전통가옥조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교마치야 조사는 199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대규모 조사이다. 이 조사는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재)교토시경관·마을만들기센터가 중심이 되어, 교마치야의 보전·재생에 관여하는 시민활동단체, 다수의 대학연구실과 같은 다양한 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단체가 서로 다른 의도에서 참여하고 있지만,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조사 목적은 교마치야의 현황을 파악하고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를 조사하는 것이다.

 교마치야는 교토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 이름 그대로, 교토에 있는 마치야(町家)상가라는 뜻이다. 영어로 소개하는 경우는 “전통 목조 가옥”이라고 쓴다. “뱀장어의 침상”라고 불리는 좁고 기다란 형태가 특징으로, 목조로 이루어진 단순한 디자인이다. 하지만 그 단순함을 들여다보면, 내부에서는 잘 보이지만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격자모양의 창(무시고마도,  籠窓)에 방부를 겸하는 홍색의 도료(벤가라, 紅殼)를 바르거나, 재이용 가능한 흙벽, 나뭇결을 살린 천장이나 마루 사이의 의장 등 지극히 섬세한 부분까지 고려하여 설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교토스러운 경관이라는 전제를 지키면서도 다양한 기교에 도전해온 대공들의 역사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 또한 교마치야의 특징은 일본적인 건축양식뿐만 아니라, 방직업 등과 같은 상업을 운영하는 노동거주 일체형의 구조인 까닭에 산업과 생활 양면으로 교토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왔다는 점이다. 교토를 이어온 것은 교마치야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단지 관광으로 교토를 찾는다면 궁궐과 신사사원이 그곳의 이미지라 여기기 쉽지만, 관광지를 구경하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교토스러움’은 교마치야와 그곳에 살고 있는 일반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마치야도 근대화와 고도경제성장에 휩쓸려 철근 콘크리트로 대체되고, 목재구조의 노후화로 인해 유지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 더해져 그 수가 매해 감소하고 있다. 제1기 조사 당시(1998)에서 제2기 조사 시기(2003~2004) 동안 전체 약 28,000채 중 4,300채, 약 16%의 교마치야가 없어졌고, 제2기 조사 시기부터 제3기 조사 시기(2008~2010) 동안에는 22,515채 중 2,550채, 약 11.3%가 없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교마치야의 소실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 비율은 줄어들고 있어서, 그간 교토시가 행해온 정책이 효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교토시는 (재)교토시경관·마을만들기센터의 교마치야 마을만들기 펀드(2005), 신경관정책(2007)에서의 경관정비지구 지정과 수리·경관보전에 대한 조성사업, 교마치야 등의 내진수리보조사업(2007) 등 마을만들기와 구획나누기(zoning), 방재라는 다양한 각도의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제1,2기 조사에서는 교마치야가 비교적 밀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교토시 중심부만을 조사대상 지역으로 지정하였지만, 제3기 조사에서는 교토시 전역에 분포하는 약 56,000채의 목조건축을 조사대상으로 삼아 약 48,000채가 전문가에 의해 교마치야로 판정되었다. 이 약 48,000채는 현존하는 교마치야의 전 가옥 수로 추정되고 있다. 교토시 내에 세계유산이 14곳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교마치야가 가지는 수적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많은 이들(나를 포함)이 완성한 조사데이터를 이용하여 교마치야의 소실 원인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안길이, 건축 상태, 마치야의 상태(의장의 잔존 수), 사용 여부, 근처의 교마치야의 비율이 교마치야의 소실을 좌우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해당 교마치야의 건물 상태가 노후한 경우, 의장이 적고 빈집이면 교마치야의 소실을 초래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근처의’ 교마치야 수가 적고 ‘근처의’ 빈집(교마치야)이 많으면 빨리 없어진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즉, 교마치야는 커뮤니티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커뮤니티가 유지되지 않으면 교마치야도 살아남지 못한다. 이와 동시에 교마치야가 유지되지 않으면 커뮤니티도 살아남지 못한다. 한편, 요식업이 교마치야의 소실을 막는다는 데이터도 얻을 수 있었다. 교마치야를 오랜 시간 지켜온 음식점도 있지만, 교마치야를 개조한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의 수가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조를 통해 교마치야의 구조를 부적절하게 바꾸어 장인들의 한탄을 사는 경우도 있지만, 교마치야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알루미늄 샷시의 격자를 목조로 되돌리는 등과 같은 의장의 부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카페나 레스토랑이 있음으로 젊은이들과 외부인이 모여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이는 교마치야를 무대로 한 파괴이자 창조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일본의 이미지, 교토스러움을 유지해나가기 위해서는 교마치야의 보존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으며, 실제로 전 세계의 역사적 건축물 등의 문화유산 보호·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세계유적기금(World Monuments Fund)이 교마치야를 2010년 세계 유적 주목(The World Monuments Watch) 리스트에 올리기도 했다. 매년 일본문화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며, 이와 함께 교마치야를 구입하는 외국인의 수가 늘고 있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교토시 또한 국외와 연대하며 세계적인 관점에서 교마치야의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며 보존, 재생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0년 <플랫폼>에서는 전은휘 씨가 「쓸모없기에 아름다운 것-교토 라쿠마치라쿠야(樂町樂家)」를 통해 교마치야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전은휘 씨의 글은 교마치야와 관련한 커뮤니티를 한국인의 관점에서 설명한 것으로 매우 재미있었지만, 한 가지 반론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이는 바로, 쓸모없지 않다는 것이다. 기능미라는 말이 있는데, 교토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기능미를 추구하고 있다. 기능미는 단순히 기능이 효율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효율을 철저히 추구한 것에서 비롯한 단순미가 아닐까. 살기 편안함을 추구한 연구와 노력의 결실이 교마치야이며, 그러한 교마치야는 유연함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교토 사람들은 정말 까다롭다. 이는 교마치야의 조사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이로 인해 행정담당자는 언제나 여러 단체와 조정할 때 어려움을 겪곤 한다. 하지만 그들이 까다로운 것은 결코 외부인을 배제하기 위함이 아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도쿄와 다르게, 교토는 고도의 자존심을 걸고, 정말 좋은 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기온(祇園)의 유곽거리에 대해 연구하는 친구에게 배운 바로는, 찻집의 계승은 일반 상점과는 달리 혈연이 아니라, 계통을 중시하여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가업이 존속하는 것이 최우선이며, 후계자는 외부인이어도 관계없다.

 하지만 완전한 외부인은 허용하지 않으며 기온에서 살고 있는 먼 친척 등에서 후계자가 선출된다. 그곳의 규칙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교토에는 교토만의 규칙이 있다. 이는 자신과 집을 남기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교토의 미의식을 이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 교토인은 까다롭게 논의를 거듭한다. 기온을 찾은 관광객들은 기온의 맥도날드 간판이 갈색인 것을 보고 놀라곤 한다. 간판 하나가 붉은색이든 갈색이든 하는 것이 큰 차이가 있을까. 하지만 세계적인 기업을 경관미를 내세워 규제할 정도로, 교토의 미의식은 압도적이다. 문화계승은 창조를 동반해야 한다. 아니, 창조를 동반하지 않으면, 단지 낡고 소멸해갈 뿐이다. 계승에 있어 낡은 것과 새로운 것 가운데 무엇을 고를지에 대한 진지한 의논과 감성의 충돌이 없다면 문화는 이어져 나갈 수 없다.

 뭐, 교토의 사람들이 나의 글을 본다면 풋내기 주제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라며 웃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