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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같이 빛나는 5월, 산골짜기에서 진주를 발견했다
통권 : 34 / 년월 : 2012년 5,6월 / 조회수 : 1706
<감자꽃 봄소풍_평창동부오리마을축제>(감자꽃스튜디오, 2012.5.27)

 5월은 1년 중 가장 매력적인 달이 아닌가 싶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3월은 어수선한 기분이다. 4월은 이보다는 조금 낫지만 뭔가 애매하다. 날씨도 오락가락이다. 이에 반해 5월은 가장 활력이 넘친다. 생명력이 충만하고 풀과 나무들은 싱그럽다. 젊은 남녀들의 옷차림도 한결 가벼워져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계절을 즐기며 야외활동을 하기에도 제격이다.

 5월에는 이러한 계절의 덕을 보는 페스티벌들이 여럿 있다. 세계적인 DJ들이 총 출동하는 <월드디제이페스티벌(World DJ Festival)>, 출연팀의 수로 아마도 국내 최고일 <그린플러그드페스티벌(Green Plugged Festival)>, 세계적인 뮤지션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 조지 벤슨(George Benson), 알 디 메올라(Al Di Meola) 등과 이병우, 백현진, 박주원과 같은 국내의 실력파 뮤지션들이 대거 출연한 <서울재즈페스티벌> 등 그야말로 축제의 달이라 할 수 있다. 평소 음악에 조금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넉넉지 못한 자신의 주머니 사정만 탓했으리라.

 

 같은 시기에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조금, 아니 많이 특이한 축제가 열렸다. 출연진의 유명세로도 위에 언급한 페스티벌에 비해 손색이 없었고 프로그램의 기획에 있어서도 작지만 내실 있고 아주 알찬 축제였는데, 이름 하여 ‘감자꽃 봄소풍_평창동부오리마을축제’, 평창읍에 위치한 다섯 개의 리(노론리, 이곡리, 조동리, 고길리, 지동리)가 합심하여 만든 축제이다.

    

 

   

 축제장을 가기 위해 서울 압구정역에 오전 8시까지 도착했다. 외지 관광객의 교통편의를 위해 축제팀에서 버스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며 조금 늦은 8시 20분경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 안에서 대략적인 축제의 의미, 개최배경 등에 관한 안내와 당일 식권 두 장을 받았다. 주말 이른 시간에 일어난 때문일까. 그렇게 10분 정도의 안내를 받고, 이어폰을 꽂자 잠이 들었다. 고속도로를 달려 버스는 12시를 조금 넘겨 마을에 들어섰다. 이미 몇 번 방문한 감자꽃스튜디오옛 평창초등학교 노산분교지만 오늘은 축제장으로 바뀐 그곳이 더 반갑게 느껴졌다.

 입구에 자가용들이 즐비했지만 경찰과 마을 어르신들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혼잡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버스에 타고 내리기까지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한 배려심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버스를 이용한 방문객들은 대부분 학생들로 보였고 학생들은 처음 방문한 감자꽃스튜디오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2층 교실로 향했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낯선 공간과 축제에 대한 기대감에 다들 들뜬 표정이었고 그들의 재잘거림과 수다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나는 교실에 잠깐 들른 후 축제장을 죽 돌아보았다. 넓지 않은 운동장에 다양한 부스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지역 관광홍보물, 손수 재배하고 만든 식품들, 이를 판매하는 축제 자원봉사자들과 아주머니들이 참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판매되는 식품들이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것처럼 예쁘고 잘 포장된 것은 아니었지만 주민들의 정성 하나만은 느끼기에 충분했다.

  

 

   

 부스와 축제장 하나하나에 모든 주민들의 손길이 닿아있는 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영의 미숙함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게 조금은 느리다. 점심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밥을 퍼주는 아주머니들에게서는 밀려있는 줄에 대한 불안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줄을 선 사람들도 불만스러운 표정이 아니다. 오히려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손수 하나하나 담아주는 그 정성이 고마울 따름이다. 아주 더운 날씨는 아니지만 운동장 구석에서 불을 떼어 밥을 짓고 국거리를 만드는 그 정성,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지만 맛있는 산채비빔밥이었는데 아주머니의 밥 양 조절 실패로 인해 고추장이 가득 들어간 굉장히 매운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점심을 대략 마치고 지금은 감자꽃스튜디오가 자리한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사용하던 손때 묻은 물건을 팔기도 하였고, 식당에서는 분식집이 문을 열었다. 역시나 마을 아주머니들이 계셨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중 예전엔 관심 있게 보지 않았던 안내물이 눈에 들어왔다. “문닫은 학교안내문”인데, 간만에 학교에 많은 사람들이 와주어 학교는 기분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없는 학교지만 오랜 세월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 한 그 시간을 추억했을 것이다. 빈 책상과 의자, 교실 뒤편에 걸려있는 옛 학교의 사진이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밖에서 대평소 소리가 들리더니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길놀이가 시작되었다. 길놀이도 참 재미있었는데 한 연령대로만 구성되지 않고 아이, 어른, 노인 등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길놀이였다 인원이 부족하여 아이까지 참여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떠랴. 오히려 노인들로만 구성된 길놀이보다는 아이의 종종걸음과 서툰 솜씨가 오히려 더 생기 있고 화목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축제에 가면 가장 싫어하는 순서가 있는데 바로 정치인들, 공무원들의 인사 시간이다.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고 불편한 시간인데, 평창동부오리마을축제에서만은 달랐다. 시골에서는 외지 사람들이 오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고 한다. 워낙에 농촌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뻔한 멘트가 아닌, 그리고 누가 작성해 준 인사말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축제 방문객들을 환영하고 머리 숙여 인사하는 그들(군수, 면장, 다섯 마을의 이장들까지)을 보며 마을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렇게 마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그 자체가 참 부러웠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감정의 결핍이랄까?

 

 

  

 

 

이어 축제의 메인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평창중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스톤파크 밴드,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실력을 쌓아온 두리밴드(대부분 40대 이상의 형님들로 구성된 밴드) 등 역시 마을 주민들의 무대는 큰 박수를 받았다. 조금 서툰 실력이지만 오늘을 위해 흘린 땀과 노력에 실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마을축제에 나도 한 몫 했다는 경험과 기억은 내년을 위한 원동력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내 친구, 형, 누나, 동생,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어 다소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 친구들이 무대에 올랐다. CJ문화재단이 주최하고 CJ아지트가 주관하는 ‘CJ튠업 우르르음악여행’의 밴드들이 마을축제에 참여한 것이다. 여기서 다른 축제들과의 차이점이 있는데 단순히 대기업에서 후원하는 프로그램만을 끼워 넣는 식이 아니라 지역 마을 주민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선발된 인디밴드들이 지역의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지도하고 기꺼이 그들의 멘토가 돼주었다. 인디밴드들의 무대 그 자체도 좋았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 학생들에게 파이팅을 외쳐 주고 내려 와서는 잘했다고 포옹해주는 모습, 진정한 록커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함께한 학생들이 인디밴드들의 음악을 좋아할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24 아워즈, 아홉 번 째 팀의 노래는 상대적으로 대중적이었지만, 해리빅버튼, 아시안체어샷 팀의 노래는 초보 록마니아들이 감상하기에는 다소 헤비하고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심전심이랄까? 나와는 잘 안 맞는 음악장르라도 대상이 누구냐, 그리고 그 사람이 나와 어떤 관계로 맺어진 사람이냐에 따라 관객들의 호응도도 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야 자기를 지도해 준 밴드의 공연이 당연히 반갑고 최고였겠지만 먹거리 부스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은 음악이야 어떻든 간에 동네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머리 긴 청년들이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 자체가 좋고 재미있었는지 연신 손뼉을 치며 무대 바로 앞에 계셨다. “나이 들었다고 트로트, 뽕짝만 좋아하는 게 아니야!”라는 걸 몸소 보여주었다.

 

 

    

 축제 현장에서 개인적으로 반가운 얼굴을 만났는데, 돌아온 마을 청년 안병근 군이다. 돌아온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고향에서 외지로 나가 생활을 하다 현재는 마을을 위해 지역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다시 고향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래전 감자꽃스튜디오와 인연을 맺어 평창고등학교 대일밴드를 하며 진로를 뮤지션으로 택했던 친구이기도 하다. 반가운 마음에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인사를 건네고 잠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실용음악학과에 진학했다가 군 전역 후 현재는 사이버대학에서 문화예술경영학을 전공하며 마을 중학생들에게 밴드 및 악기를 지도하는 예술강사로도 열심히 활동 중이라고 한다.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결심과 목표가 섰는지 알 수 있었다.

 축제는 주민참여 축제답게 아기자기하고 돌발적인 상황으로 재미를 이끌어 갔다. 공연 도중 전환시간을 틈타 분식코너를 담당하고 있던 마을 교회 집사님의 재치 있는 무대광고가 있었다. 단순히 쟁반에 떡볶이 가격과 남은 양을 안내하는 것이었는데 마을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돌발적이고 장난스러운 상황들이 작은 축제의 재미이다. 스톤파크, 두리밴드, 24 아워즈, 아홉 번째의 멋진 무대는 물론이고 반전의 무대가 있었는데, 고길리부녀회 어머니들이 준비한 생활체조 무대였다. 말 그대로 일상생활의 체조를 조금 업그레이드한 형태인데,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열심히 준비한 무대를 선보이는 어머니들은 그날 가장 큰 호응과 박수를 받았다. 호응과 박수가 어떠한 의미를 뜻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들을 응원이라도 하듯 몸빼바지에 수건을 둘러쓰고 부스에서 열심히 음료와 맥주를 팔던 청년장사꾼 친구들도 합세하여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몰아가 최근 모 방송국 밴드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헤리빅버튼의 헤비한 무대와 산골짜기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반항적인 모습과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들려준 아시안체어샷, 평창의 자랑 대일밴드, 더 이상 수식어가 필요 없는 감자꽃스튜디오의 단골손님 김창완 밴드의 무대가 이어졌다. 공연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7시가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연결고리에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 대표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지만 주민들의 열린 마음과 참여도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사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포함하여 해리빅버튼, 아시안체어샷, 아홉 번 째라는 밴드의 이름을 들어본 이들이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마을축제이기 때문에 축제에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은 지역의 어른과, 가족, 아이들이었다. 물론 프로그램을 보러 온 외지의 젊은 방문객들도 많았다. 젊은이들이야 록음악에 대한 낯설음이 없기 때문에 평소 잘 모르던 밴드의 음악이라도 쉽게 적응을 하지만, 지역, 정확히 말하면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평생을 산 어른들에게 록음악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축제에 가면 사람들의 눈빛으로 그 사람의 대략적인 기분을 읽을 수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겠지만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몇몇 어르신들이 메밀전병에 막걸리를 옆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아마도 전국노래자랑에서 봤음 직한 가수 한 명쯤은 나오겠지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젊은 애들이 나와서 알 수 없는 음악을 하니 말이다. 그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무대 위의 젊은 친구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그리 불만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노인이기 때문에 당연한 너그러운 마음이 아니라 동네를 찾아 준 낯선 이방인들이 그저 반가운 눈치였다. 이는 노인뿐만이 아니다. 마을에서 인기 좋은 젊은 목사님도 마찬가지다.
 

“외지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오는 것이 좋습니다. 마을에 젊은이들이 많지 않고 대부분 노인 분들이라, 이런 행사를 통해 잠시나마 외지 분들이 많아지면 마을에 활력이 돌기도 합니다. ……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축제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더 자주 모이다 보니 서로 간에 결속력도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 노산교회 이등용 목사님과의 짧은 인터뷰 중

 

 최근 소규모 마을축제가 강세이며 이슈임에 분명하다. 왜 그럴까? 기존 지역특산품 축제, 관광형 축제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지는 것도 이유이겠지만 그보다 삭막해지는 생활 속에 음식을 만들어 서로 나눠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자리가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있다가 없어졌을 때 그것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 그리고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무언가를 다시 만들어내려 한다. 하지만 만들어진 그 무언가가 반드시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새롭지 않다고 하여 나쁜 것만도 아니다. 다시금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현상을 복원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의미 있는 행위이다.

 마을축제, 시민참여형 축제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과 자발성이다. 축제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구성원들의 참여의지와 정성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인천에도 이런 축제들이 몇몇 있다. <배다리문화축전>, <끼가번쩍시민축제>, <좋아요 인천 페스티벌>과 같은 축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숨어있는 작은 보석들과 같다. 오히려 음식, 특산품을 주제로 한 대규모 축제 보다 소소한 재미와 감동이 있다. 나와 이웃이 참여하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외지인들이라고 하여 이방인 취급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더 반가운 손님들이다. 내가 만든 잔칫상에 숟가락 하나 얻어 맛있게 먹어주는 것보다 고마운 일이 어디 있을까?

 그 마을의 구성원이 아닌 ‘나’,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활동들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작은 관심을 보여주면 된다. 조금 더 나간다면 행사 사진을 멋지게 찍어 준비한 이들에게 그 자료를 넘겨주는 것도 축제참여의 한 방법이다. 이렇듯 열린 마음과 자발적인 참여, 의지 세 가지가 소규모마을 축제, 시민참여 축제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햇살 좋던 5월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다이아몬드같이 화려하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진주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축제를 만났다.




#저자 약력
太志允 1979년 서울생.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사원, 밴드 파티메이커 멤버. 최근 글로 「록페스티벌의 내실화 방안 연구」 등. tae0924@ifac.or.kr, www.bandpartymaker.com

#주석
이미지 제공_ 필자 및 감자꽃스튜디오
글쓴이 : 태지윤
작성일 : 201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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