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가까이 자리해 작은 농촌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지역 에치고츠마리(越後妻有). 이 지역에서는 국제적인 미술행사 에치고츠마리트리엔날레가 3년마다 열리고 있다. 그리고 이 트리엔날레 덕분에 아주 오래 전 전설 속에 묻혀 사라져 버렸던 니가타(新潟)현의 옛 지명 에치고츠마리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농촌마을, 희망의 농촌마을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저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한적한 시골로만 알고 있던 에치고츠마리의 중심 도시 도오카마치(十日町)시와 츠난마치(津南町)시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농촌관광마을, 아니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화관광 명소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에치고츠마리트리엔날레가 열리는 니가타현은 옛날부터 물 맑고 자연경관이 수려해 쌀이 찰지고 맛있기로 이름 난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농 현상으로 농촌 인구가 현격하게 감소해 농촌 지역의 발전이 정체되고 낙후되는 현상이 우리나라보다도 더 먼저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에 세대 간의 심각한 공동(空洞)화 현상¹⁾, 고령화 현상, 지역경제의 노쇠화 등 수많은 문제가 얽히고 얽혀 1990년대 초, 농촌 문제는 일본 최대의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 당시 일본 농촌사회가 겪는 여러 문제는 한때 일본 농촌마을과 쌀농사의 대명사로 자리하며 쌀 부자 마을로 떵떵거리며 살던 니가타현에서도 역시나 남의 동네 일이 아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역경제의 침체와 낙후된 환경, 지역주민의 고령화 등과 같은 문제를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해결해 보고자 니가타현 정부와 지역주민이 함께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마련한 대응책이 바로 2000년부터 시작된 에치고츠마리트리엔날레였던 것이다.

 에치고츠마리트리엔날레는 지역의 산과 강은 물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상태로 남겨져 있는 빈집과 폐교, 농장, 농지, 창고 등에다 미술작품을 설치하고 열린다. 특히 트리엔날레가 끝난 뒤에도 전시작품들을 다 철거하지 않고 메인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그대로 남겨두고 계속 전시한다는 점이 에치고츠마리트리엔날레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자 특징으로 손꼽을 수가 있겠는데, 현재 에치고츠마리 지역에는 트리엔날레에 그동안 참가했던 여러 나라 작가들의 미술작품 300여 점이 약 760평방미터에 이르는 에치고츠마리의 광활한 대지 속에 자리해 커다란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대자연 속의 미술관’을 구경하러 일본 국내외로부터 수많은 관광객이 일 년 내내 쉼 없이 작은 농촌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에치고츠마리를 찾아오고 있으며 볼거리가 넘쳐나는 농촌마을,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해 주는 문화예술마을 에치고츠마리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며 되돌아가고 있다.

 대자연 속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들
 에치고츠마리트리엔날레에는 트리엔날레추진위원회와 더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조직이 하나 더 있다.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里山) 협동기구. 지난 2008년 에치고츠마리트리엔날레의 자립적 발전을 위해 지역주민과 지역 외에 거주하는 구성원들로 조직, 설립된 NPO^{Non-Profit Organization}(비영리기구)의 약어이다. 트리엔날레추진위원회는 2009년부터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협동기구와 공동으로 에치고츠마리트리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는데, 트리엔날레추진위원회가 트리엔날레의 사전 작업에 역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는 조직이라고 한다면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협동기구는 트리엔날레가 끝나고 난 뒤의 사업에 더 역점을 두고 지역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는 미술작품과 관련 시설물을 위탁 관리해 가며 트리엔날레추진위원회를 지원해 주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외에도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협동기구는 지역의 빈집과 폐교, 경작을 포기한 토지 등의 현황을 파악하고 재활용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트리엔날레추진위원회에 다음 트리엔날레의 작품설치 장소를 제안하기도 하고 길라잡이 역할을 해 주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협동기구는 트리엔날레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도 트리엔날레 행사를 통해 새롭게 생겨난 에치고츠마리의 문화자원과 더불어 자연환경과 유휴시설 등을 활용해 사계절 내내 자체적으로 개발한 다채로운 문화행사와 농촌 체험 프로그램, 지역 특산품 디자인 대회 등을 개최하는 등 지역사회의 내재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고 지역경제를 재활성화시키고자 하는 문화예술 사업들을 지역주민과 협동하여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도쿄(東京) 등 일본 각지에서 이러한 문화 프로그램을 즐기러 에치고츠마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농가 민박을 안내해 주는 등 지역주민과 방문객 간의 교류를 증진시켜 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담당하며 지역에 신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협동기구는 자신들의 활동지역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가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지난해 봄과 겨울 대지진이 일어난 일본 동북부지방과 나가노(長野) 북부지방에 달려가 피해를 입은 현지 사람들을 구조하고 도와주는 범사회적인 지원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에치고츠마리에서는 지역주민과 힘을 합쳐 ‘숲 속 학교’라는 문화 프로그램을 마련, 지진 피해로 살 집과 땅을 잃은 동북부지방과 나가노 북부지역의 어린이와 가족들을 에치고츠마리로 데려와 그들에게 빈 농가와 민가를 임시 거처로 제공, 알선하는 동시에 그들을 정신적으로 치유해 주는 힐링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지역재생과 범사회적인 활동을 앞장서 이끌어가며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한적한 농촌마을 에치고츠마리를 희망의 농촌마을로 각인시켜 주고 지역주민에겐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내 고향 내 땅으로 재인식시켜 주고 있는 에치고츠마리의 문화예술 전도사가 바로 NPO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협동기구이다.

 이러한 활동 등을 통해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협동기구는 지역의 문화적 재생과 더불어 지역주민의 수익 창출과 일자리 창출 등 지역 내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안을 지역주민에게 일깨워주고 고령화와 지역경제 침체 등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던 니가타현 지방정부의 21세기 농촌사회 정책개발에 돌파구를 열어주는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협동기구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트리엔날레가 개최되고 있지 않은 지금도 에치고츠마리의 농촌마을에는 수많은 외지 사람들이 방문해 지역주민들과 쉼 없이 교류를 하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협동기구 운영진들은 2012년 7월 29일부터 51일간 열릴 다섯 번째 에치고츠마리트리엔날레를 준비하고 수많은 방문객을 맞이할 막바지 준비에 열을 올리느라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을 따름이라는 소식을 변함없이 알려 왔다.

 사회를 이끄는 문화예술 전도사 일본의 NPO
 최근의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NPO는 2012년 3월 기준 총 45,146개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가운데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협동기구처럼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1만 9천여 개. 의료 관련 사업과 사회교육, 지역만들기 사업에 역점을 두고 활동을 하는 사업군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사업 분야이다. 2011년 12월 말 조사된 결과와 이번에 발표된 자료를 비교해 보니, 지난 3개월 동안 약 200여 개의 의료 관련 단체가 사업을 중단하고 문을 닫은 데 비해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이 짧은 기간에 무려 1천여 개의 단체가 새로 생겨나 사업을 시작한 것을 알 수 있었다. 2011년 봄 동북부지방 대지진 참사사건 이후 온 국민이 힘들어하고 국가경제 전체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일본에서 문화예술 관련 NPO들은 그야말로 때 아닌 최고의 호황을 누리며 전망 밝은 미래 사업(?)으로 촉망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는 NPO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NPO는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영리를 목적으로 한 사업들을 함께 계획하고 추진하는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확고한 사회적 미션과 공동체 의식 아래, 똑같은 문제의식을 품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구성원들로 조직되어 ‘개인’과 ‘특정 집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특정 집단’과 ‘다수’의 이익을 증진하는 공익사업을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비영리기업이 바로 일본의 NPO다. 넓게 보자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의 또 다른 형태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사업의 추진방식이나 내용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조직이라는 점에서는 좀 더 주의가 필요한 단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에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단체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제정되면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증폭되고 있는 데 반해 사실 일본에서는 사회적 기업이 사람들에게 큰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이보다는 시민운동 차원에서 조직화되어 시민들의 입장에 서서 시민과 정부, 시민과 지역사회를 연결해 주는 활동을 범사회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비영리기업 NPO가 일본에서는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995년 한신(阪神)대지진을 계기로 그 이름이 일본사회에 처음으로 알려지면서 정부 차원에서 이들의 활동을 범국가적으로 조직화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특정 비영리 활동 촉진법’이 1998년 제정되고 2002년 일본의 유명 주류회사인 아사히맥주(アサヒビ一ル)를 중심으로 한 ‘메세나-NPO 커뮤니티’가 결성되면서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조직으로 자리매김하며 일본사회를 새롭게 바꿔나가고 있는 비영리기업들. 이들이 바로 일본의 NPO들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자료를 살펴보다 재미있는 결과를 하나 더 찾아볼 수 있었다. 특정 비영리 활동 촉진법에 근거해 NPO를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고 관리하는 일본 내각부에 2011년 한 해 동안 신고, 인증받은 단체가 겨우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설명을 좀 더 하자면, 일본 내각부에 등록된 NPO는 2012년 1월 기준 총 243개. 앞에서 말한 4만 5천여 개의 단체 가운데 아주 극소수만이 정부에 법인으로 등록해 활동을 하고 있다.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제정되어 2011년 12월 기준 총 644개의 사회적 기업(이 가운데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 수는 96개)이 정부에 법인으로 등록해 지원금을 받아가며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NPO들 역시 정부에 등록하고 인증받으면 많은 세제 혜택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자격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수많은 NPO들이 정부에 법인으로 등록하지 않은 채 그냥들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NPO는 비록 비영리를 목적으로 조직되어 회원들의 회비와 기부금, 조성금, 여러 기관과 단체들로부터의 보조금과 지원금, 그리고 무상의 자원봉사자들과 참여자 등에 의해 활동을 유지해 나가는 조직이긴 하나, 오로지 100% 순수한 비영리적인 사업만 하는 단체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이들 역시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들처럼 민간 기업 혹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과 후원을 받으며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직접적인 지원을 받기보다는 사업을 위탁받는 형태로 지원기관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데 더 역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자신들에게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에 전적으로 ‘의존’하거나 그들과 ‘타협’적인 관계를 맺어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가기보다는 재정적 지원과는 상관없이 지원 단체 또는 기관에 자신들의 사업 미션과 활동 및 운영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분명하게 보장해 줄 것을, 그리고 양자의 관계가 종속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협력 내지는 협동’ 체계 속에서 맺어지고 있는 것임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사업을 추진해 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정부의 특정 비영리 활동 촉진법조차 일개의 형식에 불과한 장치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목적의식과 뜻이 분명하고 서로 맞아떨어진다면 최소수의 인원, 적은 운영자금만으로도 충분히 단체를 조직하고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기에 애써 정부에 등록해 정부의 공짜 돈(?)과 혜택을 받아가며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해가려고 들지 않는다. 이들에겐 오직 자신들의 사회적 사명감과 사업을 해야 하는 명확한 목적의식과 미션이 우선이지 사회적 인정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부수적인 요건에 불과할 따름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우리의 사회적 기업과 일본의 NPO가 어떤 점에서 다르고 지향하는 목적과 미션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극단이나 오케스트라 같은 공연 단체 운영과 전시 기획 및 제작 사업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일본의 문화예술 NPO들은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협동기구의 활동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예술단체를 직접적으로 운영하기보다는 이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사업에 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낙후되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지역의 공적 시설을 문화예술 시설로 전환시켜 지역의 역사적 건물을 보존, 관리하고 이를 활용해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사업에 역점을 두고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 환경을 새롭게 조성하고 지역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일본 문화예술계를 새롭게 이끌고 동시에 일본사회가 품고 있는 현안과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고자 하는 실천적인 움직임을 펼쳐 보이며 사회적 변혁의 주체이자 매개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단체들이 바로 일본의 문화예술 NPO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사명감과 이익을 도모하면서도 자립적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업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관련 사회적 기업과 더불어 단기적인 시야가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역 발전을 위한 문화예술 사업을 도모하고 계획하고자 하는 이들 모두가 한번쯤 일본 NPO의 움직임에 주목하며 우리 문화예술계의 미래와 앞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사업들에 대해 고민해 주었으면 하고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