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캐나다 공영방송 CBC^{Canadian Broadcasting Corporation의 약어}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확대에 반대하며 석 달가량 총파업을 진행했다. 우연찮게 당시 캐나다에 머물던 내게 CBC의 파업은 여러모로 신기했다. 우선 그렇게 장기간 파업을 하는데도 경찰의 폭력 진압이나 노동자의 구속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게 낯설었고, 시민들 역시 엉망이 되어버린 방송에 대해 불평을 하면서도 파업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놀라웠다.

 당시 CBC 사측은 구멍 난 방송을 메꾸기 위해 재방송을 무한 반복으로 틀어댔고, 대체인력을 멀리 영국에서까지 끌어오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망가진 방송은 파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특히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던 보도 프로그램들은 대체인력만으로도 역부족이었는지 ^{BBC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의 약어} 뉴스를 받아서 시간을 메꾸는 편법을 사용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CBC 노동자들은 방송국 바깥에 피켓 라인을 형성하고 매일 8시간씩 주변을 돌았다. 그리고 노조는 CBC Unplugged>라는 온라인 방송을 개설하고 오디오와 비디오 팟캐스트를 이용해 자신들만의 방송을 이어 나갔다. 그 모든 게 그저 낯설고 신기했다.(당시 는http://web.archive.org/web/20060507143739/http://cbcunplugged.blogware.com/blog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낯설었던 풍경을 한국에서도 보게 될 줄이야. 작년 말부터 시작된 언론노동자들의 파업이 어느새 100일을 훌쩍 넘겼다. 게다가 공영방송 한 곳의 파업도 아니고, 주요 방송국인 KBS(2012. 6. 8 파업중단)와 MBC, 뉴스 채널 YTN, 통신사 <연합뉴스>, 신문사 <국민일보>가 연이어 총파업에 들어간 지 석 달이 넘었다. 그 사건 규모로만 보면 전두환 정권 당시 언론 통폐합 이래로 언론사상 가장 큰 사건이 아닐까 싶다. 세계 언론사로 봐도 유래가 드문 대규모 사건이다.

 하지만 사측과 검경의 대응은 캐나다와 달랐다. 언론사 측은 ^{마타도어근거 없는 음해라는 뜻} 공세를 퍼붓고 대체인력을 투입하여 파업 무력화를 시도하고, 무더기 해고와 징계 위협으로 노조를 압박하며 고소, 고발을 남발했다. 검찰 역시 사측과 호응하며 언론노동자들에 대한 무리한 구속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언론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입 닫은 언론사들의 보도 회피로 파업 현장 밖의 세상은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언론 그 자체의 문제이기에 오히려 언론에서 소외되어 버린 파업 언론노동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언론을 만들었다. 파업의 이유와 진행상황을 제대로 알려줄 언론은 자신들이 만든 언론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투쟁을 시작한 <국민일보> 노동자들이 작년 10월 오디오 팟캐스트 방송 <시사난타 H>로 첫발을 내디뎠다. 뒤이어 2012년 1월 각 언론사의 해고 노동자들이 모여 <뉴스타파>라는 이름의 인터넷 온라인 방송을 시작했고, 이 방송은 지난 4월 비디오 팟캐스트 분야에서 다운로드 세계 1위를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MBC 노동자들은 2월부터 <파업채널 M>이라는 온라인 채널을 개설하고 뉴스 <제대로 뉴스데스크>, 심층보도 프로그램인 <파워업 PD수첩>, 오디오 토크쇼 <서늘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KBS 노동자들은 ‘리셋(Reset) KBS’라는 채널 이름으로 뉴스 프로그램인 <리셋 KBS 뉴스 9>와 심층보도 프로그램 <시사 투나잇 리턴즈>를 내보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언론노동자들이 파업 기간 동안 자체 방송을 만드는 일이 낯설지만, 그동안 다른 나라에서는 시도된 사례가 많았다. 인터넷이 처음 보급될 즈음인 199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주류 언론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과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The San Francisco Examiner>가 임금 협상 문제로 파업에 들어갔는데, 두 신문사의 기자들은 파업 기간 동안 함께 인터넷신문인 <샌프란시스코 자유언론San Francisco Free Press>를 발행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유언론>은 파업이 진행된 11일간 10번 발행되었다.(당시의 온라인 신문은 http://www.well.com/conf/media/SF_Free_Press/에서 볼 수 있다.) 2000년에도 <시애틀 타임즈Seattle Times>와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서Seattle Post-Intelligencer>라는 두 신문사가 파업을 하는 동안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시애틀 유니언 레코드Seattle Union Record>라는 신문을 발간하기도 했다.

 국내 언론노동자들의 파업 방송은 작년부터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어냈던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그 결이 다르다. 파업 방송은 연성화된 정치 토크쇼였던 <나꼼수>와 달리 경성화된 보도 프로그램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언론에서 소외된 파업 소식을 전하는 ‘파업 속보’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이들의 보도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언론사 내부의 문제와 비리 폭로에 맞추어져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기존의 노동자들이 파업 기간에 내던 파업 속보의 온라인 방송판이라고 할 수 있다.

 파업 속보는 일반적으로 노조 내부적으로는 파업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대외적으로는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목적으로 발행되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유인물이나 신문 형태의 인쇄물로 배포하는 게 일반적이다. 방송 형태의 파업 속보는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1989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배포한 <노동자뉴스>가 최초였다. 당시 <노동자뉴스>에는 노동자들의 파업 소식과 그에 대한 해설, 그리고 노동자들에 필요한 교육 강좌 등이 담겨 있었다. 당시 약 1천여 부 정도 복사된 <노동자뉴스> 테이프는 전국으로 배포되어, 언론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었다.(당시의 <노동자뉴스>는 현재도 노동자뉴스제작단(http://www.lnp89.org)에서 구입할 수 있다.)

 영상에 담긴 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은 인터넷을 만나면서 노동조합 외부의 대중들과 직접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배포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구성되었던 ‘총파업통신지원단(이하 지원단)’의 활동이 처음이었다.(당시 홈페이지는 http://strike.nodong.net/strike9697에서 볼 수 있다.) 당시 국내에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인터넷을 통해 펼쳐졌던 지원단 활동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최초의 총파업 인터넷 속보라는 의의를 가진다. 당시는 정부의 홈페이지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고, 언론사도 <중앙일보> 외에는 홈페이지가 없던 시절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그 활동이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영어와 한글로 제공되었던 지원단 홈페이지는 국내외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고, 당시 하이텔, 천리안 등 PC통신과 연계한 활동으로 총파업에 대한 상당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지원단은 1997년 민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했는데, 이러한 활동은 당시 진보진영 내부에 독립미디어와 인터넷을 활용한 독자적인 네트워크 구축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이는 1998년 <민중언론 참세상>과 <진보네트워크센터> 설립으로 이어진다. 그전까지는 노동조합 등 노동자 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영상 제작이 불가능했고 배포도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로 외부의 영상 활동가들의 지원을 받아 영상물을 제작했지만, 저렴한 영상장비 보급, 인터넷의 등장, 그리고 꾸준한 교육활동을 통해 배출된 영상활동 전담 노동자들이 이 역할을 맡게 되면서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에서도 자체적인 영상 속보 등을 제작하게 되었다.

 언론노동자들이 만든 파업 방송은 다른 노동자들이 만든 영상물보다 월등히 매끄럽고 세련되긴 했지만, 초기에는 파업에 들어가게 된 사정을 설명하고, 경영진의 비리를 폭로하는 일에 집중되어 다른 파업 속보와 그 내용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파업 방송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의 언론을 넘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말하던 민중을 대변하는 미디어, 즉 저항적 대안 매체로 발전해갔다.

 KBS 새 노조에서 만든 <리셋 KBS뉴스 9>는 민간인 사찰 관련 보도로 특종을 터트렸고, 최근에는 다른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을 자세히 보도하기 시작했다. MBC 노조의 <제대로 뉴스데스크> 역시 4.11 총선 과정에서의 문제점과 기존 언론의 보도 태도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 외에도 4대강 문제, 강정 해군기지 건설 과정의 문제 등 사회적으로는 중요하나 기존의 언론에서 다루지 않던 민감한 문제들을 계속 끄집어내서 사회적 공론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그동안 독립 언론, 민중 언론이라고 불리던 대안 매체는 기존의 주류 대중매체에 비판적인 활동가와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민중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매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앞서 언급한 <참세상>이나 <레디앙>, <레프트21> 등이 대안 매체를 지향하는 매체들이다. 그런데 대중매체에 종사하고 있는 언론노동자들이 주류 대중매체를 비판하며 대안 매체를 만드는 일은 국내에서는 이번 파업 기간에 처음으로 벌어진 일이다.

 이런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대안 매체들을 가능하게 했던 인터넷의 존재와 저렴한 영상 장비의 보급도 바탕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노동집약도가 높은 언론 산업의 특성 덕택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가 높은 산업에서는 그 노동이 공장이나 사업장을 벗어나 존재하기 힘들지만, 언론의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인 ‘보도’는 그 기획, 촬영, 취재, 편집 과정 대부분이 노동집약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드라마는 못 찍더라도 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그래서 언론노동자들은 방송국과 신문사를 벗어나 자기의 노동을 재현할 수 있었다.

 과거 자본을 벗어난 노동의 사례를 살펴보자면, 대표적으로는 1970년대 루카스항공 노동자들의 ‘연합위원회’ 활동이 있다. 회사의 구조조정에 맞서 싸우던 루카스항공의 노동자들은 연합위원회를 구성해, 자신들이 가진 기술을 활용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도구를 생산하려는 계획을 짰다. 노동자들은 지역의 유아 시설, 장애인 단체, 병원 등을 방문해서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파악해서 기술적 대안을 제출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생산 기획을 제안했다. 루카스항공 노동자들이 1970년대 당시에 ‘가능하다’고 제출했던 생산 계획안들은 놀라운 것들로 가득하다. 전동 휠체어, 수소연료전지, 저에너지 주택, 하이브리드 자동차, 도로와 철도 겸용 차량, 가정용 신장 투석기, 원거리에서 사람의 손 역할을 하는 장치 등을 기획했다. 루카스항공에서 일할 때는 회사의 지시에 따라 주로 군사용 무기를 생산하던 노동자들이었지만, 자본의 통제를 벗어나자 그 노동자들의 생산력은 약자와 공익을 위한 기술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이 언론노동자들의 투쟁 중에 파업 방송을 통해 일어날 것을 기대한다.

 자본과 권력을 박차고 나간 언론노동자들이 만든 파업 방송은 많은 상상력을 가능하게 해준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안 매체를 지향하는 순간, 언론노동자들의 파업 방송은 단순히 보도 내용의 문제를 넘어 제작 방식과 형식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 아예 기획 단계부터 노동자들이나 빈민들과 함께 공동 기획을 할 수도 있고, 기존에 노동자들이 촬영한 자료를 재가공해서 내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다른 대안 매체와 연계하여 시리즈물을 기획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의 대안 매체들과 더불어 서로가 가진 노하우와 노웨어를 나누고 취재 협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예전에 보도를 위해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노동의 현장이나 투쟁의 현장을 찾아 오랜 기간 시간을 나누면서 그들이 보는 세상을 함께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나중에 파업이 마무리된 후 언론사에 복귀한 후에도 어떤 언론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고민할 때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 투쟁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부디 현장에 돌아간 후에도 지금 그 파업 기간 동안 느꼈을 많은 고민들과 생각, 그리고 파업 방송을 만들며 세웠던 각오와 결의를 잊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