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2년 7월의 아주 더운 날
장소 : 후쿠시마 피난자를 위해 마련된 교토(京都) 인근의 맨션
진행 및 정리 : 전은휘_ 오사카시립대학 문학연구과 아시아도시문화학 박사과정
이미지 제공_ 필자 및 우시로 테루히토(宇城輝人)

작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및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태는 작게는 일상의 음식, 크게는 국가의 에너지 정책에 이르기까지 사람들 사이의 수많은 변화와 엇갈림을 가져오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 필자가 한정된 지면에 밝히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원전과 방사능에 관한 정보량과 질이, 공식적인 발표를 정보원으로 하는 기존 매체와 이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을 정보원으로 하는 인터넷 매체, 두 개의 매체 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이 갑자기 내 생활을 덮쳤을지도 모르는데, 국가와 사회는 딴 소리를 하고 있는’ 상황. 자라난 땅에서 쌓아온 생애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재난을 겪고 난 이후, 이러한 의문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겨났다. 이 글은 당시 스스로 후쿠시마를 떠난 한 피난자와 가졌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인터뷰는 7월의 아주 더운 날, 피난자를 위해 마련된 교토 인근의 맨션에서 진행하였으며, 아래는 그 인터뷰 및 6월에 있었던 강연의 내용을 함께 엮어 필자가 편집한 것이다. 인터뷰 대상자의 요청으로 이름은 밝히지 않고 A씨로 표기하며, 필자는 ‘필’로 표기한다.

후쿠시마를 떠나다
  필자(이하 필) 인터뷰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독자들을 위해 3·11 이후에 어떻게 교토로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세요?

  A씨(이하 A) 저는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라는 곳에 살았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후쿠시마가 굉장히 넓어요. 그중에서 후쿠시마시는 현청소재지로 현 안에서는 인구가 많은 곳입니다. 원전에서 60km 떨어져 있죠.

 
  필 가깝네요.
  A 그때는 멀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오이(大飯) 원전^{후쿠이(福井)현 소재} 재가동을 시작했잖아요? 오이 원전은 교토시에서 60km 떨어져 있어요. 똑같은 거죠. 3·11 당시에 방사능의 흐름은 아무에게도 공개되지가 않았어요. 아무도 모르죠. 모른다기보다는 공개되지 않았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 수가 없었던 거죠. 뭔가 원전이 폭발한 것 같다는 이야기는 라디오에서 들었어요. 지진이 일어나고 3일 동안, 전기, 가스, 수도가 다 지진 때문에 멈춰버렸으니 저 같은 경우엔 라디오밖에 정보를 얻을 데가 없었어요. 그 뒤에 전기가 들어와서 TV를 켰더니, 제1원전의 무참한 모습이 나오더군요.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알 수가 없으니까 계속 TV를 보는데 폭발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면서도 폭발이라고는 확실히 말을 안 하는 거죠. 그래도 방사능이 확산될 위험이 있으니까 당시에는 원전에서 5~10km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피난해 달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 이상의 사람들한테는 옥내에서 대기해 달라고 방송을 하더군요. 그래서 집에 머물면서 식량이나 물, 그리고 그땐 날씨가 추워서 난방용 등유는 급수차나 급유차가 왔을 때 밖에 나가서 줄을 서서 받았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가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누출된 때였어요. 전혀 모르는 상태로 피폭을 당한 거죠. 그런 상태가 이어지다가 나중에 TV에서 후쿠시마 내 방사능 누출 지역이 나오더군요. 한 시간 간격으로 방사능 수치가 나오는데 이게 갑자기 올라갔어요. 원래 후쿠시마시의 방사능 수치가 매 시간 0.04μSv(마이크로시벨트)였던 것이 15일 20시쯤으로 기억하는데 24.24μSv로 급증했어요. 이게 정식 기록이긴 한데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르죠. 굉장히 많이 올랐잖아요. 근데 제가 전문가도 아니고, 수치를 들어도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직접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찾아봤죠. 방사능 단위부터 인체에 미치는 영향, 체르노빌, 도쿄 전력, 해외 보도…….
알아보는 과정에서 역시 24.24라는 수치는 거기 있으면 안 되는 수치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피난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교통이 다 멈춘 거예요. 전차랑 버스가 안 움직이니까 도망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 가족도 실내에만 있었는데 외출을 하면 그때 입은 옷은 비닐에 넣어서 버리거나 세탁하고, 샤워도 해야 한다고 안내를 하더군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물은 안 나오고, 밖에는 나가야 해요. 어쩌란 말인지. 하지만 아무도, 정부도 지자체도 아무런 지침이 없었어요. 전부 TV에서 본 지침이에요. 그때 정부는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러다가 설사가 시작됐어요. 그때는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역시 피폭 증상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원래 설사를 할 때 배가 아파지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그냥 화장실에 가면 설사 상태로 나와서 평소와는 너무나 달랐어요. 몇 번을 생각해봐도 이건 이곳에 계속 살면 안 된다는 내 몸의 신호가 아닌가 싶어서 하루라도 빨리 먼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길이 열리는 대로 떠나기로 했어요. 어디로 갈지가 문젠데 같은 일본이지만 서일본은 친척도, 아는 사람도 없는데다 피난 간 학생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뉴스가 있고 해서 신중하게 골랐죠.
그런데 당시에 피난자들을 받아 주는 곳(주로 지자체 소유 공공주택)은 이재민 증명을 갖고 있는 사람-즉 집이 무너지거나 금이 가서 살 수 없는 사람- 대상이 거의 대부분이었어요. 저는 집이 무너지는 피해를 받은 게 아니니까 해당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다가 오사카 T시에서 이재민 증명 없이도 받아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속버스 운행이 재개된 날 바로 오사카로 갔어요. 수속을 끝내고 후쿠시마로 돌아와서 일주일 동안 이주를 준비했어요. 각종 이전신고랑 가전이랑 가구 정리, 딸아이 학교에 인사…… 그리고 4월 19일, 비가 오던 날 캐리어를 껴안고 고속버스를 탔어요.
11시간 걸려서 이튿날 오사카 시내에 도착했는데, 다들 평범하게 걸어 다니고 있는 거예요. 후쿠시마에서는 피폭 때문에 큰 안경, 마스크, 모자, 장갑을 꼭 하고, 아주 잠깐만 밖에 나갔었는데. 물론 이곳에서 그러고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화장도 하고 멋도 부리고 아이쇼핑을 하고. 그래, 여기는 오사카였지. 안도감과 동시에 그런 모습으로 밖에 외출할 수 없는 후쿠시마 사람들 생각에 눈물이 났어요. 같은 일본인데 왜 이렇게 다른지, 왜 이런 안타까운 일이 생기고 또 누구도 손을 뻗어주지 않는 상황에 방치되어야 하는지, 제 마음을 다스리는 게 힘들고 너무 슬펐어요. 이해해 주는 사람도 이야기할 사람도 없는. 그때는 피난해도 도쿄(東京) 정도지 관서지방까지 오는 사람들이 없었거든요. 외롭고 안타깝고 어떻게 뭘 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매일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우리들을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이 재해와 정부를 원망하면서 원전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전에 대한 스터디 모임에도 참가했죠. 그리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위라는 것에 참여했어요(2011년 5월 7일 오사카에서 열린 원전 반대 사운드 데모). 그러다가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된 모임에서 우연히 교토부에서 후쿠시마에서 오는 피난자들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역시 비슷한 사람들과 있어야겠다 싶어서 한 달 만에 지금 있는 곳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전부 어쩌다가 건너건너죠(웃음).

피난 후 남겨진, 그리고 펼쳐진 세계
  A 그렇게 3·11로부터 4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후쿠시마의 친구들이랑 지인들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딱 한 친구만 답장이 오더군요. 거기에는 제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거라고 쓰여 있었지만, 어차피 국외로 가는 게 아니면 똑같다고 쓰인 문장을 보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왜 쉽게 떠나지 못하는지 예를 들면, 후쿠시마는 주택보유률이 높은 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장기 융자를 통해 주택을 구입하고 살고 있죠. 그런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 두고 집을 버리고 피난을 가게 되면, 지금 같은 불경기에 재취직도 어렵고, 그러니까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요. 또 자녀들이 중고생이면 시험도 있고 친구관계도 있어서 이주하고 싶어도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거의 다 떠나지 않고 남아 있으니까 자기도 남고 싶어지죠. 동일본과 서일본은 환경도 전혀 다르니까요. 누구라도 자기가 몸담고 있는 정부와 지자체가 거짓말을 한다고 믿고 싶지도 않구요1). 
결국 남겨진 사람들은 매일 피폭을 두려워하고 혹은 의심하면서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는 거죠. 바깥의 사람들은 왜 그곳을 떠나지 않는지 이해를 못 하구요. 그렇게 골이 생겨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제가 느끼는 걱정스런 점은 젊은 사람들은 이런 사고가 일어나도-피해가 없었던 서일본에서는 특히- 남의 일처럼 느끼는구나, 관심이 없구나 하는 점이에요. 어떻게 하면 위험성을 전할 수 있을까, 의식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를 지난 1년간 쭉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후쿠시마에 남아 있는 젊은이들은 ‘어차피 피폭 당했을 거니까 할 수 없지’라고 다른 의미로 지금 상황을 극복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극복이 아니고 젊을수록 좀 더 맞설 수 있는 맘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안타깝죠. 일단은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A씨는 여러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체험을 발언하고 있으며, 블로그를 통해 원전 반대 티셔츠 제작 및 판매를 하고 있다).
  필 요즘 도쿄에서는 원전 반대 시위가 아주 활발한데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나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젊은 주부들이나 회사원들이 많이 참가하고 있잖아요2).
  A 기본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위를 할 때는 사람들의 숫자가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는 시위에 나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저도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반응을 확인해 보면 역시 유명한 사람-예를 들면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이 가니까 나도 간다, 이런 측면이 있어서 근본적인 구조를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계기가 뭐든 간에 상관없어요. 아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옛날에는 시위는 무섭다, 왜 저런 걸 할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재해와 방사능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고 나서 이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역시 시위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고 오사카에서 처음으로 사운드 데모에 참가를 하게 된 거죠. 그때 주최자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왜 도쿄 밥보다 오사카 밥이 맛있는 줄 아십니까. 도쿄 사람들은, “아줌마 여기 밥이 맛이 없어요.”라고 대놓고 말을 못하고 마음속으로 덮어버리지만, 오사카 사람들은 “아줌마 오늘 밥이 맛이 없어요”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맛있게 만들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사카 밥이 점점 맛있어 지는 겁니다. 그렇니까 바깥으로 말을 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저는 그때서야 깨달은 거죠. 역시 입 밖으로 말을 내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구나. 그럼 나도 내 말을 듣고 누군가가 변한다면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되도록이면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 일들을 통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와 만나게 되기도 하거든요. 그 자체도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실 이건 좀 여담인데, 원래 트위터를 시작한 계기는 동방신기 때문이에요. 크게 활용을 하지 않고 있다가, 원전 사태 이후로 트위터에서 정보를 알아보게 됐는데 그게, 딱 맞아 떨어진 거죠. 지금은 못 믿을 정보도 많지만 그때는 정말 명쾌하고 정확한 내용을 많은 사람이 올려주었거든요. 오사카 T시 이야기도 트위터에서 본 거구요. 제 주위에는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가 저한테 컸던 것 같아요.

  필 그렇군요. 어쨌든 계기라는 거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실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A 원전 반대!(웃음)

※ 추신
얼토당토않은 이방인의 인터뷰를 허락해준 A씨, 그리고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불평 없이 함께 길을 헤매 준 취재 협력자 Y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