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30일, 한성백제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서울특별시가 송파구 올림픽공원 안에 세운 선사~고대 전문박물관이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도록 건물 높이를 최대한 낮추고 지하공간을 적극 활용했기에 건물 외관은 조금 나지막하지만, 내부는 널찍한 로비와 전시실, 수장고, 교육실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5,900여 평 규모의 대형 박물관이다.

 한성백제박물관은 서울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대변하고 서울시민의 다양한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특히 서울이 고대국가 백제(百濟, BC 18~660)의 수도였으며 고대부터 이미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도시로서 한국의 역사·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관람객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 큰 목표이다. 목표에 도달하는 구체적인 방법 중 전시에 관한 기본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백제를 중심으로 구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서울의 선사~고대 문화를 소개한다. 둘째, 풍납토성·몽촌토성·석촌동고분군 등 박물관 인근의 백제 유적과 연계한다. 셋째, 유물을 평면적으로 나열하지 않으며 역사적 의미를 알기 쉽게 연출한다. 넷째, 모형·그림·영상 등 다양한 전시물로 재미있게 연출한다. 다섯째,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전시 수준과 방법을 다양화한다. 여섯째, 체험전시를 지향한다. 일곱째, 미래지향의 메시지를 담는다.

 이와 같은 기본방향을 한성백제박물관은 7백여 평 크기의 상설전시실에서 실현해야 한다. 전체 전시공간 1천여 평 가운데 기획전시실 등을 뺀 상설전시실 면적이 7백 평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성백제박물관의 존재 이유랄까 정체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상설전시실이므로 박물관 설립 목적 및 목표에 충실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성백제박물관의 상설전시실은 3개이다. 1~3전시실의 전시 내용은 시간과 공간 두 부분으로 나뉜다. 시간적 범위는 서울의 선사와 백제의 여명, 백제 건국과 한성도읍기 문화, 삼국의 각축 등 3부로 구분하였다. 공간적 범위는 서울과 한강이 중심이며, 시대에 따라 주변지역을 포괄하였다.

 제1전시실은 서울의 구석기문화, 신석기문화, 청동기 및 초기 철기문화를 한강유역이라는 공간에 맞춰 이야기로 꾸몄다. 제2전시실은 백제가 서울 송파지역을 중심으로 건국·성장·발전한 한성도읍기 493년 동안(BC 18~475)을 주제별로 다루었다. 제2전시실 ‘더 큰 나라로’ 존의  ‘위례성에서 한성으로’ 부스에서는 풍납토성·몽촌토성 등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백제의 중앙문화를 소개하였고, ‘땅을 잇고 물길을 열다’ 부스에서는 경기·충청·전라지역에서 출토된 백제유물을 통해 백제의 지방문화를 다루었다. ‘글로벌 백제’ 존에서는 중국대륙과 일본열도의 백제관련 문화까지 소개하였다. 제3전시실은 한강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전과 함께 고구려(高句麗, BC 37~668)와 신라(新羅, BC 57~935)가 차례로 서울지역을 점유하던 때의 역사와 문화, 또한 한성 이후 웅진·사비로 이어진 백제 후기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었다.

 이 모든 내용은 한성백제박물관이 서울시가 세우고 운영하는 박물관이라는 사실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시립박물관인 만큼 국립박물관과는 조직구성과 전시주제가 여러모로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서울시의 조선시대 전문박물관인 서울역사박물관과 연계된 조직이므로 서울 강북지역의 고려(高麗, 918~1392), 조선(朝鮮, 1392~1910)시대 중심 역사와 구분되는 강남지역의 선사, 고대 중심 역사라는 시간적 특징을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만 서울 역사의 효율적 전시, 교육, 홍보와 유적 관리라는 설립 목적을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성백제박물관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전시물이 있다. 박물관 로비의 상징전시물인 풍납토성 성벽 단면이다. 성벽 아랫단의 너비 약 43m, 높이 11m 이상으로 추산되는 풍납토성의 성벽 단면을 마치 생선회 뜨듯 얇게 떼어내 전시하고 있다. 풍납토성은 서울이 백제의 도성임을 분명하게 증명하는 유적이며 한성백제박물관의 존재 이유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유적이다. 그러나 지금 남아있는 모습은 그 역사적 위상을 전하기엔 너무 초라해서 현장을 답사하더라도 원래 모습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한성백제박물관 로비의 풍납토성 성벽 단면은 풍납토성의 역사적 위상을 말없이 설명하는 구체적인 증거이다.

 풍납토성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3.5km이다. 이를 아랫변 너비 43m, 윗변 너비 15m, 높이 12m의 사다리꼴 흙 구조물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풍납토성 성벽을 쌓는 데 대략 1,075,200㎥~1,344,000㎥의 흙이 필요하다. 1,075,200㎥은 흙을 정돈하지 않고 마구 쌓아놓을 경우에 필요한 수치이며 1,344,000㎥은 흙을 잘 다지며 쌓을 경우에 필요한 흙의 양이다. 풍납토성은 잘 다져쌓은 토성이므로 체적 1,344,000㎥을 기준으로 삼으면 15톤 덤프트럭(8㎥)의 경우 168,000대를 움직여야 하는 막대한 분량이다.

 고대 중국에서 토성을 쌓을 때 한 사람의 하루 작업량이 0.6㎥였다고 한다. 이를 풍납토성 성벽축조에 적용하면, 연인원 약 2,240,000명을 동원한 셈이 된다. 인부 1만 명이 224일을 꼬박 일해야 하는 작업량이다. 4세기 무렵 백제의 전체 인구는 약 70~80만 명이었다. 과연 백제는 풍납토성을 1년 만에 쌓을 수 있었을까?

 풍납토성을 쌓는 일은 전쟁처럼 수개월 만에 끝나는 일이 아닌데다 한정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공동작업해야 했으므로 하루에 1만 명씩 동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하루 2천 명씩 동원했다고 계산할 경우, 풍납토성을 다 쌓으려면 1,120일(3년)이 걸린다. 2천 명이 1년을 꼬박 일하기도 물리적으로 어려울 뿐더러 장마철, 한겨울 등 계절 영향까지 감안하면 풍납토성 성벽을 쌓는 데에만 대략 4~6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백제에서 2천 명을 동원하려면 배후에 약 4만 명의 지원이 필요했다는 연구결과에 따르면, 4만 명이 4~6년 동안 꼬박 희생한 피와 땀의 결과물이 바로 풍납토성 성벽인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거대한 토목공사는 국가의 온 힘을 쏟아 붓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한성백제박물관 로비의 풍납토성 성벽 단면은 백제의 왕도 한성이 이곳 말고 다른 곳일 수 없으며, 1천 6백 년 전 백제의 과학적 토목기술과 국력이 대단했음을 웅변하는 중요한 전시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밴 소중한 문화유산이므로 잘 지키고 잘 활용해야겠다는 메시지를 쉽고 재미있게 전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시간을 분, 초로 나누며 인공적 물질문명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시간을 계절로 구분하며 자연과 호흡하던 고대 문명의 진면목을 잘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한성백제박물관은 2천 년 전의 백제 역사를 빛내기 위한 박물관이 아니다. 그동안 서울시민이 잊고 지낸 서울의 고대 역사문화와 그 의미를 되새기며, 그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박물관이다. 그러므로 한성백제박물관의 메시지는 당연히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만나는 고대국가 백제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까?

 2천 년 전 평야가 많고 땅이 기름지며 강과 바다를 끼고 있어 살기 좋은 한성(서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주민의 다수는 북쪽 만주지역의 부여(夫餘)에서 내려온 예족(濊族), 압록강유역의 고구려에서 내려온 맥족(貊族), 대대로 한강유역에서 터 잡고 살아온 한족(韓族) 등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자꾸 늘어났다. 동해안의 옥저(沃沮), 동예(東濊)지역에서 살다가 더 안전하고 풍요로운 백제로 귀순한 사람들, 대동강유역의 낙랑군(樂浪郡)과 황해도의 대방군(帶方郡)에서 살다가 땅이 고구려에 흡수되자 남쪽으로 피난 온 중국계 백제인, 백제의 고급문화와 선진기술을 배우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왜(倭)계 백제인도 적지 않았다. 그리하여 백제는 출신지역이 서로 다르고 말과 문화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문화사회를 이루었다.

 자칫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 있는 사람들을 근초고왕처럼 위대한 왕들이 하나로 묶어냈다. 중국 출신 인재들을 등용해서 기술, 문예를 발전시키고 외교에 활용하였다. 이웃나라 가야, 신라와 사이좋게 지냄으로써 삼한 계통 주민들의 물리적, 정신적 고통을 없애고 바다 건너 왜로 향하는 길을 안전하게 만들었다. 왜왕에게는 칠지도(七支刀)를 만들어 보내고 학자, 기술자를 파견하는 등 선진문물을 전해주며 우호를 다졌다. 이후 왜국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백제의 요청에 따라 군사를 파견하는 맹방이 되었다.

 백제는 지리적 특징 때문에 해양문화가 발전했다. 서해 바다를 통해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를 오갔다. 바다 건너편 나라들과의 교류는 백제의 개방성과 다문화 성향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그래서 백제의 지배층은 조상이 서로 다르고 문화전통이 다른 사람들, 모여든 사연이 서로 다르고 목적이 다른 사람들, 언제든 바다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던 사람들을 백제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게 할 수 있었다. 그들은 ‘통합의 리더’였다.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남북으로 갈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백제 역사를 제대로 배우려면 먼저 유물에 담긴 속뜻부터 알아야 한다. 한성백제박물관은 우리가 지혜롭게 미래를 준비하도록 받쳐주는 디딤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