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자율주의(Autonomia) 이론은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변혁이론의 새로운 모색이 진행되면서 1990년대 중반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잘 알려진 ‘제국’과 ‘다중’론은 자율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인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와 그의 동료인 마이클 하트(Michal Hardt)의 저작들을 통해 정교하게 이론화되고 대중화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율주의 진영이 다양한 이론가와 실천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도외시된 면이 있었다. 여기 소개하는 『노동하는 영혼』의 저자 프랑코 베라르디도 ‘비포(Bifo)’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자율주의 활동가인데, 이 책의 출간으로 자율주의에 대한 이해가 더욱 두터워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고 하겠다.
비포는 ‘최초의 자유 라디오’라고 불리는 ‘알리체(alice)’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를 개국하고 1977년 3월에 일어난 ‘볼로냐 봉기’에 적극 가담하여 ‘반란의 정신적 교사’라는 죄명으로 수배를 받다가 7월에 경찰에 체포되었던 인물이다.
체포되었을 당시 프랑스에서 그의 석방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인 사람이 바로 그의 평생 친구가 된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 1930~1992)였고, 그는 가타리의 도움으로 프랑스에 망명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세계를 떠돌다가 이탈리아로 귀환, 현재 밀라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소외에서 자율로’라는 부제가 붙은 『노동하는 영혼』은 자율주의의 입장에서 신자유주의라고 칭해져왔던 작금의 자본주의를 분석(소외)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자율)하는 저작이다.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매우 많은 내용이 압축되어 있어서 이 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핵심 내용을 간략하게 스케치할 수 있을 것 같다. 비포는 자율주의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을 구성주의라고 부르는데, 그 이론은 인간 본질을 상정하는 사르트르(Jean Sartre, 1905~1980)의 맑시즘과 헤겔주의적인 맑시즘의 소외론이나 그와는 반대로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포착하는 구조주의와는 달리, “사회 구성이 끊임없는 변형 과정에 있다”(80면)는 입장을 갖는다고 한다.(그래서 구성주의의 소외론은 실존주의나 헤겔-맑시즘의 소외론과 다르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사회 구성(자본과 노동계급)의 변형은 체제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저항에 직면한 자본이 그 저항의 요구를 지렛대 삼아 착취 메커니즘을 변형하면서 이루어진다. 가령 1970년대 이후 ‘인지노동’이 중심이 되는 ‘포스트 포디즘’ 체제의 등장은 ‘68혁명’으로 대표되는 노동자-학생의 저항에 대한 자본의 대응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비포가 말하는 인지노동이란, 이 책 제목이 알려주듯이 영혼이 노동하는 것이다.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이를 이해하기 쉽다.
비포는 물질을 생산하는 육체노동이 현대 자본주의에서 사라졌다거나 중요성이 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의 인지화가 현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며, 이러한 경향이 사회 전반적으로 거대한 변환을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지노동은 기호를 인식하고 조작하며 또 다른 기호를 생산하는 노동이다.
그래서 비포는 현대 자본주의를 ‘기호 자본주의’라고 개념화한다. 이렇게 기호를 조작하고 생산하는 노동 과정을 통한 자본의 축적은 인지 능력이 착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지란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지능력의 착취란 삶의 착취에 다름 아니다. 비포는 맑스(Karl Marx, 1818~1883)의 ‘실질적 포섭론’을 빌어, 현재의 상황은 “노동자들의 삶시간들이 자본 흐름에 포획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영혼들이 기술적-언어적 사슬들에 의해 침해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261면)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 과정의 변형은, 욕망의 해방을 주창했던 68혁명의 열기를 자본이 축적의 동력으로 변형하여 포섭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공장에서의 산업노동이 삶과 욕망과는 무관한,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해야 했던 것이라면, 영혼이 노동하는 인지노동은 노동 과정에 소유와 동일시되는 부에 대한 욕망이 유입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는 ‘피로사회’나 ‘자기개발의 사회’는 비포에 따르면 기호 자본주의로의 변화에 상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혼이 자본에 포섭된 노동자들은 카오스와 같은 기호의 우주에서 길을 잃거나 부의 축적에 대한 욕망이 좌절되면서 우울증에 걸리고 공황 상태에 빠진다.
특히 인지노동에 따른 가치법칙의 붕괴 경향은 1971년 금-달러 태환 체제의 종말 이후 신자유주의와 연동되면서 사회를 전반적인 불확실성으로 빠뜨리고, 이에 삶의 착취는 생명을 관리하는 정치(푸코)에 따라 이루어진다.
비포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울증과 공황, 불안과 절망이 현대인들이 빠지는 병리 상태(소외)라고 말하면서 현재 이러한 병을 치유하는 것이 코뮤니즘 정치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와 치료는 장차 올 날들에서는 동일한 활동이 될 것”이며 “우리의 임무는 치유적 전염 지대로 의도된, 사회적인 인간 저항 지대를 창출하는 일일 것”(301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치료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여기서 비포는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타리의 후기 저작에 나오는 예술론에 기댄다. 『카오스모제』에서 주창된 가타리의 논의에 따르면 예술은 일시적으로 카오스를 재편하는 ‘카오이드(chaoid)’로서 카오스에 직면하여 창의적인 주체성을 생산하는 장치를 구축하는데, “강박적 응고를 용해하는 것”(190면)인 치료과정은 이 “예술과 유사한 카오이드로 이해”(189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병리와 치료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사회적 투여들에서 일어난 변동”(192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비포는 강조한다.
그렇기에 그러한 ‘예술=치료=정치’는 “저항 지대”의 창출을 통해, “자본주의의 법칙들에서 벗어나는 자율의 가능한 형태들 중의 하나”(301면)인 코뮤니즘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치료가 “끝없는 과정”(프로이트)인 것과 마찬가지로 코뮤니즘의 “자율 역시 끝없는 과정”(303면)이 될 것이라면서 이 책을 끝맺는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이렇게 정리해보았지만, 중요한 부분이 많이 빠져 듬성듬성한 요약이 되었다. 독자가 이 책을 직접 읽어보라고 권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독자에게 ‘보증’할 수 있는 것은 현대 사회 이론에 관심을 가진 독자는 매우 흥미 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특히 저자가 영화를 예로 들면서 논의를 전개하여 이해의 구체성을 꾀하기 때문에, 더욱 재밌고 쉽게 읽힌다. 게다가 ‘시뮬레이션’이 자기 증식하는 현대 사회의 욕망을 보이는 예로 김기덕의 <시간>이 제법 자세하게 논의되고 있는 부분은, 한국 독자에게 놀라움과 함께 어떤 반가움이나 친근감을 줄 것 같다.
또한 이 책은 광범위한 급진 이론들이 저자의 입장 속에서 간명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론들의 난해성에 기가 질린 독자들에겐 길잡이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이론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나열하면서 정리하는 책보다는 선명한 입장에서 그 이론들을 정리 논평하는 책이 독자에게 더 유용할 수 있다. 
여기서 논할 여유가 없어서 아쉽지만, 비포의 기호 자본주의론과 한국의 진보학계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조정환의 인지 자본주의론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싶다. 두 이론 모두 자율주의 이론의 맥락에서 전개되고 있고 인지노동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데서 공통점이 많지만, 차이점도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인지 자본주의론이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을 생산과정에서의 인지노동의 착취에서 찾는다면, 기호자본주의론은 그 핵심을 현대자본주의가 생산하는 생산물이자 생산 환경에서 찾는다는 면에서 짐작할 수 있다.
후자의 시각 때문에 비포는 ‘기호계’의 카오스적인 면을 중시하고 우울증과 공황이라는 병리 증상을 문제시하여 정치를 치료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욕망의 분열적인 힘을 중시하는 들뢰즈/가타리의 『앙띠오이디푸스』나 다중의 역능과 그 표현을 중시하는 ‘스피노자주의’가 보류되고, 시뮬레이션인 디지털 이미지들의 무한 증식과 그 카오스적 측면을 중요시한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채택하면서 들뢰즈/가타리의 후기 입장을 중시하는 저자의 이론적 입장과도 연결된다고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보드리야르의 현대 사회 진단이 지닌 묵시론적이고 암울한 성격이 비포의 이론에도 아른거린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한 그의 이론이 정치를 좀 협소화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허나 이에 대한 논의는 다른 지면이 필요할 것 같고, 여기선 이에 대한 문제 제기만 하는 데 그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