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정보를 오리지널로 하여 저마다 보고 싶고 듣고 싶어 하는 결론을 만들어 낸다. 다양한 관점과 해석들이 모여 사실이 각색되고 사건과 관계된 여타 의혹들이 곁가지처럼 뻗어 나간다. 이것이 우리가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모습이다. 때로 현실이 연극보다 드라마틱한 건 무료한 세상에서 재미를 찾는 저마다의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의 주인공을 향한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 이해와 관용, 무관심 뒤엔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인간의 본질이 숨겨져 있다.
주인공 제이^{이희영 분}는 연출가로 학력 위조, 권력의 부적절한 비호 등 밝혀진 죄로 인해 기소 상태에 있으며 법원으로부터 정신감정을 명령 받았다. 정신감정이 이뤄지는 두 시간 동안의 풍경을 담은 연극 <울지 말고, 노래해>는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춰낼 준비를 한다. 다른 한편에선 그녀를 두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있는 인물들이 검사실 모니터로 감정실의 장면을 지켜본다. 한가로운 주말에 갑작스런 호출로 불려나온 검사와 변호사, 상담비를 시급으로 계산해 받아야 하는 박사, 자리에 모인 이들은 빤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건에 쓸데없이 시간을 쏟는 것이 귀찮은 듯 보인다. 그 와중에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며 자존심을 꺾지 않는 검사와 변호사는 검사실에서 내내 시시콜콜한 설전을 벌이고 심드렁한 태도를 일관하며 관객이 궁금해 하는 감정실의 대화를 끊는다. 제이는 무당의 딸로 태어나 굿판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담배 한 갑으로 간첩 혐의를 받았던 프랑스 유학 시절 등을 떠올리며 그 회상을 무대에 환상처럼 연출해 보인다. 이 환상의 쇼에 배우이자 관객으로 참여하는 검사와 변호사는 그녀가 들려주는 사실에 주석을 달며 그들끼리 새로운 가십을 만들어낸다.

 
중간에 정전으로 마이크가 꺼져 감정실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 상담실 밖에 있던 사람들의 수다가 절정에 달했을 때 다시 켜진 마이크를 통해 절규에 가까운 제이의 외마디 비명이 들린다. 이어서 박사는 그녀를 타이르듯 사랑에도 종류가 있다는 설명을 한다. 제이는 자신의 혐의를 덤덤히 인정한다. 사람들로부터 사기꾼, 협잡꾼, 어떻게 불린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말할 때 흥분해 마지않는다. 이미 내려진 판단에 끼워 맞춰 그녀를 분석하던 박사는 제이의 환상과 자기변호를 관찰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존재감을 잃어간다. 제이의 진술과 환상, 주변인들의 겉도는 수다에 슬슬 지루해질 때쯤 검사와 변호사는 각각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자리를 뜬다. 상담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누군가의 진술로 제이의 정신감정은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연극은 한동안 세상을 들쑤셨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고 정신감정이라는 설정을 가져왔다. 관객은 그로부터 문제적 인물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실상 연극은 사람들의 인식 그대로 그녀를 방치해둔다. 야욕을 위해 벌였던 그녀의 행각은 정신감정이 필요한 미친 짓으로 결론지어졌고 극단으로 치닫는 그녀에게 ‘모반의 하이파이브’를 한 누군가는 마지막 전화 한 통으로 맨 처음 언급했던 것처럼 사건의 재미를 위해 각색된 의혹으로 머무르게 된다.

 
여기까지는 현실과 흡사하다. <울지 말고, 노래해>는 냉대와 야유와 오해를 안고 살아야 하는 주인공을 따스한 볕과 봄꽃을 좋아하고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싶은 자연인으로 묘사한다. 제이는 비단 실제 인물만을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그녀는 누구라도 그러하듯 원하는 것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을 모두의 야망을 투영하고 있다. ‘울지 말고, 노래해’라는 제목은 잘못된 선택에 뒤따르는 대가와 책임, 그와 따라붙는 잔인한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주인공을 위한 명령이자 위로다. 그러나 연극이 아닌 현실로 돌아와서 우리는 누구에게 ‘울지 말고, 노래해’라 해야 하는 걸까? 그 말을 머뭇거리게 되는 까닭은, 주인공의 자살로 마무리되는 연극을 배반이라도 하듯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무심한 퇴장과 주인공의 죽음으로 연극은 비극으로 끝났으나, 해명과 비방이 난무하는 드라마틱한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연극 전반에 깔린 주인공을 향한 연민의 정서와 주변 인물들에게서 비롯되는 부조리의 감정은 사건의 주인공에 무자비했던 일반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이 다루고 있는 현실의 인물에게만큼은 끝까지 공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