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원, <아파-트展> <한미사진미술관, 2012.7.21~9.2)

이미지의 범람과 균일화는 대상을 렌즈에 담거나 사진을 읽어내는 데 대한 고충을 시사한다. 최중원 작가의 경우, 그의 작업을 다루는 글마다 사진에 관한 ‘정규 교육 과정을 밟지 않은 프로필’에 초점이 맞춰지거나 소재들에 국한된 에세이 형식으로 점철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작업의 부차적인 영역들을 작업 자체와 관계없이 부각시키는 독법은 특정 작업에 가치를 부여하는 시도의 고충 또는 실패를 회피함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작업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렌즈의 눈이 어떤 피사체를 향하고 있는지, 피사체의 이미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이는 작가의 눈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새삼 작가의 프로필을 강조할 필요는 없으나, 작가가 갖는 삶의 양식을 작품과 비교하는 독법은 종종 통찰력 있는 해석을 제공한다. 이번 최중원의 개인전 <아파-트展>에서 우리는 그가 다루고 있는 아파트와 작가가 오랫동안 활동해온 사진커뮤니티를 ‘단절과 재구성’의 관점으로 연결시켜 읽어낼 수 있다.
단절된 공간의 재구성 1:
소규모 아파트의 공간적 단절과 연속성
이번 전시에서 그가 선보이는 소재는 1세대 소규모 아파트들이다. 그동안 작가의 눈이 더듬어온 장소들이 도심의 변두리, 개발로부터 소외되고 한가로운 일상의 장소들이라는 점에서 오래된 아파트라는 소재는 이전 작업들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사진 속 아파트들은 상당수가 10층 내외의 500여 세대를 넘지 않는 중소형의 공동주거 모델이다. 이들은 전후 복구주거사업의 일환으로 혹은 도시의 주택수요에 발맞춰 관공서와 중소기업들이 주어진 필지에 지어올린 것들이다. 넓은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주변 장소의 파괴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단지형 아파트들이 현재 대부분 재개발로 인해 파괴된 데 비해, 많은 수의 소규모 아파트들은 도심지의 틈새에서 비교적 오랜 세월 제 모습을 지킬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는 전통생활 양식을 서구적으로 전환함으로써 장소성을 파괴하는 탈역사적 공간으로, 기존 지역을 뒤엎고 토착 공동체를 해체하는 도시공간의 대표적 주거모델로 각인되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택지개발로 인한 투자 상품으로 자리매김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온갖 브랜드를 달고 고급화를 꾀하며 중산층의 생활공간으로 표상되기도 한다. 판에 박힌 주거모델은 아파트를 성냥갑, 닭장 등에 비유하도록 하지만, 최근에는 투자 상품으로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에게 위화감과 동경의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소규모 아파트에는 단절과 복제 공간의 관점으로만 일괄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일차적으로 1세대 아파트들은 주변의 장소들을 파괴하지 않은 채 주어진 필지의 모양대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건물의 특수성과 더불어 주변공간과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일련의 연속성은 아파트 내부에도 발견된다. 이들은 시류에 맞는 변화를 수용한다. 중앙난방과 개별화장실을 설치하는가 하면, 주민들에 의해 베란다가 트이고 창이 덧달리기도 하고, 개발에 힘입어 층을 높이거나 곧게 뻗은 차로에 잘려나가는 변형을 겪기도 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개발의 뒤안길에서 특권을 잃은 오브제로서 아파트는 수십 년의 역사를 오롯이 새기며 지금 여기에 있다.

건물의 ‘결’에서 현재를 읽는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가 아파트를 담아내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눈에 띄는 시도는 작가가 이전의 스트레이트 사진작업과 달리 입체적인 피사체를 인화지에 길게 펼쳐놓는 방식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공간구성의 측면에 있어 그간의 작업이 발품을 팔며 시장과 골목을 돌아다닌 흔적이 묻어나는 데 반해, 전시된 작품들 속에서는 대상을 재구성해내기 위한 계산의 면밀함이 엿보인다. 건물의 규격에 따라 작품은 높이 세워지거나 길게 펼쳐져 있으며, 그 길이는 4미터를 훌쩍 넘기도 한다. 중정을 갖는 아파트, 복도가 꺾인 아파트처럼 건물의 면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작가는 벽면의 사진들을 교묘하게 이어 붙여 이음매 없이 매끈하게 하나의 화면으로 만들어낸다. 삼차원 구조물을 평면화하는 작업은 입체공간을 반복적 패턴으로 추상화시킴으로써 공간에서 차지하는 장소의 특수성을 상실케 한다.

풍경을 평면화하는 방식의 작업은 안드레아 구르스키(Andreas Gursky)의 사진에서, 또는 정재호의 동양화 작업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정재호의 경우 오래된 기념비적 건물들을 평면에 펼쳐놓는다는 점에서 최중원의 사진과 비슷한 형식을 갖는다. 하지만 정재호의 작업이 먹의 농담을 통해 시간의 때가 켜켜이 쌓인 건물의 파사드를 화면 전체에 그림으로써 황량함과 기능상실의 성격에 초점을 둔다면, 최중원의 사진은 건물의 반복적인 패턴 속에 일상의 흔적들을 담아냄으로써 오래된 건물의 현재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공간구성 또한 정재호의 작업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사진은 렌즈가 담을 수 있는 시야가 한정되어 있다는 특성상 부분의 공간들을 재조합하는 과정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특히 <충정아파트>와 <삼풍맨션아파트>의 경우처럼 조합된 공간을 다시 4등분으로 분절하는 시도는 평면화를 거치면서 상실된 입체물의 운동감을 재생시킨다.

더불어 작가는 사진의 명도를 높여 낡은 건물벽면을 알록달록한 생활 집기들과 대비시킨다. 이는 정재호의 일관된 회색조 화면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색을 강조하는 시도는 커다란 평면의 건물연출과 맞물려 반복적 패턴 속에 시간에 닳고 덧붙여진 생활의 흔적을 담아냄으로써 반복적 평면 속에서 건물의 균열을, 건물 난간에 널어둔 집기와 세대의 각기 다른 생활흔적들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한다. 흡사 두루마리 그림처럼 관객들은 전체적인 패턴 속에 둘러싸여 한 걸음씩 떼어가며 장면의 부분들을 읽어낸다. 이 경우 입체 오브제를 큰 화면으로 평면화하는 작가의 시도는 생활양식들을 담아내는 공간을 읽어내기 위한 장치로 해석할 여지를 제공한다.

후보정, 사진에 마음을 담는 작업 출사 이후 보정을 가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색조의 효과를 부각시킴으로써 수정된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여기서 후보정은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는 단순히 장식적인 효과를 위한 부차적 과정이기보다 화면에 주관을 개입하는 시도에 가깝다. 하지만 촬영과 편집으로 대상을 자르고 재가공하는 작업은 개발논리 아래 공간을 단절하고 착취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렌즈에 포착된 건물의 패턴들을 재구성하고, 표면뿐인 이미지에 색을 입히는 작업은 흡사 자신이 훼손한 시신에 행하는 염장(殮葬)의식과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절과 재구성으로 점철하는 사진의 피할 수 없는 폭력의 행위 속에서도 풍경을 다시 읽어내고, 파편화된 대상들에 자신을 투사하는 작가의 시도일 것이다. 작가의 눈은 반복적인 패턴 속에 균열을 내고 생활의 결이 구축되어온 흔적들을 더듬는다. 그는 시간의 무게에 부스러져가는 장소, 개발논리로 인해 소외된 공간에 입혀진 알록달록한 일상의 흔적들을 색점으로 재조명한다. 그렇게 작가가 투영한 아파트의 풍경에는 삶의 모습들이 도드라진다. 그가 바라보는 아파트는 단절의 환경들 속에서도 생산되는 삶의 흔적이자 관계이다. 요컨대 그의 사진작업은 구조물의 추상평면에 민족지학을 기입하고, 관조적 풍경에 주관을 녹여내며 평면을 분열시킨다.
단절된 공간의 재구성 2: 소규모 아파트와 온라인 커뮤니티 최중원 작가가 온라인 사진갤러리 <레이소다>를 기반으로 오랜 활동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그가 소재로 선택하는 대상들과 그것을 이미지로 나타내는 방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지 않아 보인다. 단절된 익명의 인터넷 공간 속에서 맺는 경쟁, 협력, 친교의 관계가 혹여 공동주거 공간인 아파트로 가시화된 것은 아닌가 하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문득 그가 오래전 사진커뮤니티에 대해 남긴 한마디가 눈에 띈다. “사진을 찍다보니 예전엔 미처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가까운 곳에 있더라고요. 멋진 풍경도 좋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서 담는 일이 너무나도 즐거웠어요. 웹 갤러리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같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사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갤러리를 가지 않아도 멋지고 좋은 사진을 볼 수 있는 이곳을 왕래하다보니 제 사진이 좋아지더라고요. 보고 느끼는 것들을 통해서 얻어지는 학습이란 게 참 대단하다는 걸 느꼈어요. 인터넷은 너무 좋은 놀이터에요.”

사진-커뮤니티는 단절과 균일화로만 점철될 수 없다. 커뮤니티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며 기술을 견주고 좋은 촬영장소를 공유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들은 풍경을 사냥하거나 채집하며, 사물의 이미지를 가공하고 이야기를 담는다. 마치 서로의 무공을 견주고 노하우를 나누는 무림강호처럼, 저마다 천차만별의 실력을 갖춘 집단의 구성원들은 사물과 풍경을 읽고/자르고/파괴하고/덧씌우기 위한 기술을 나누며 친교를 쌓는다.

만나고 함께 놀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아파트를 집합적 구성물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아파트를 사진에 담는 작업 또한 하나의 놀이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건물의 구조를 파악하고, 흔적들을 더듬으며 풍경과 조응하는 놀이. 낡은 건물 외벽의 흔적을 읽는 작가의 눈에 색색의 현관문들 중 어느 하나가 바깥에 내놓은 집기들 사이로 닫힌 얼굴을 빼꼼 열어두며 응한다. 문지방 너머, 아파트들이 제 숨은 이야기들을 꺼낸다. 그 순간, 놀이는 일방적이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저자 약력
南雄 1984년 서울생. 2011년 제5회 플랫폼 미술비평상 당선. 최근 글로 「동성애자 에이즈 재현에 관련된 논의」 등. tem84@naver.com
#주석
이미지 제공_ 한미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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