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에도 불구, 명불허전 재미 선사한 무한도전

이대화

이번 영동고속도로가요제의 평창 무대가 본방으로 방송되기 며칠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자 문화평론가인 이동연 교수는 ‘무한도전 가요제는 중단되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올렸다. 평창 행사장에서 발생한 쓰레기 사태를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이었다.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전화번호 사태도 불거졌다. 자이언티와 하하가 전화번호를 공개하자 비슷한 번호를 가진 시민 한 명이 큰 불편을 겪어 글을 올린 것이다. 본방에서는 결국 전화번호 부분이 삭제됐지만 이걸로 무한도전은 방송 전에 상당한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올해 무한도전가요제는 여러모로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여러 잡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방송이 나가자 그 영향력은 엄청났다. 이번 영동고속도로가요제는 시청률 21%를 기록했고 발표된 곡들은 곧장 음원 차트에 줄을 세웠다. 1위부터 6위까지가 모두 무도가요제에서 발표된 곡들이었다. 태풍급 화제를 일으켰던 쇼미더머니도, 깜짝 컴백으로 성공적 1위를 거뒀던 에스지 워너비도 무도가요제의 위력 앞에선 잠시 무력했다. 무려 6곡이 차례로 최상위를 독식한 모습은 올킬과 줄세우기가 일상화된 최근에도 비교적 오랜 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그만한 영향력을 발휘한 이유는 그만큼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관객들 규모가 장관이었다. 헬기로 상공에서 잡은 모습에선 스탠딩석이 조금 비어보이긴 했지만 무대에서 관객석을 보고 찍은 그림은 그동안 방송에서 보지 못한 놀라운 규모의 공개방송이었다. 4만 명에 달하는 규모였다고 하니 웬만한 록페스티벌을 방불케 한다.

무대 뒤의 LED 영상도 엄청났다. 리허설 장면에선 조금 심심해 보였던 무대가 역대급 스펙터클의 영상이 더해지니 완전히 달라졌다. 방송상으로는 크게 도드라지지 않았지만 아마 현장에서 본 분들은 그 영상들의 현란함과 규모만으로도 대단한 환희를 느꼈을 것이다. 특수효과도 멋졌다. 특히 정준하의 무대에 사용된 레이저 연출은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어서 더욱 놀라웠다.

음악도 좋았다. 한국의 손꼽히는 뮤지션들이 공들여 만든 음악들은 역시 그 실력이 대단했다. 예능 프로그램용 음악이기 때문에 재미 위주로 접근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가사 및 의도적인 촌스러움을 조금 논외로 한다면 왜 무도가요제에 참가한 이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들인지 바로 수긍할 수 있었다. 한 예로, 황태지가 발표한 <맙소사>의 드랍 부분은 트랩 장르를 오래 들어온 입장에서 듣기에도 수준급의 퀄리티였다. 댄싱게놈의 는 가요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복고풍의 뿅뿅 대는 신시사이저를 가지고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훅을 가진 대중적 음악을 만들었다. 으뜨거따시의 <스폰서>도 좋았다. 특히 마이클 잭슨의 을 오마주해 만든 드럼 비트 부분은 곡이 시작하자마자 몰입하게 되는 놀라운 마력을 가졌다. <레옹>은 아이유의 귀여운 매력이 잘 녹아난 곡이다. 한동안 포크에 집중하던 아이유의 댄스 곡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재밌었다. 개인적으로 상주나의 와 오대천왕의 <멋진 헛간>은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결코 못 만든 곡들은 아니다. 역시 90년대를 주무르던 중견이자 홍대 씬의 핫한 루키다웠다. <멋진헛간>의 초반 기타 연주는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아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돈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콜라보 뮤지션들 사이의 갈등도 재미있었다. 정형돈이 혁오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는 장면이나 유재석이 박진영의 야심작을 거절 놓는 장면은 음악적인 존중을 떠나 그냥 예능적으로 커다란 웃음을 안겼다. 박명수와 아이유 사이에 벌어진 ‘까까까’ 사태는 특히 재밌었다. 박명수가 방송적 재미를 위해 너무 몰아붙였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이유의 살랑대는 서정적 음악이 괴물 같은 EDM으로 변하는 장면이나 그걸 아이유가 직접 입으로 ‘까까까’라고 라이브로 부르는 장면은 무한도전가요제의 역사에서 손에 꼽을 만한 재밌는 순간이었다. 결국 둘 사이에 화해점이 만들어져 적절히 각자의 분량을 안배한 것도 훈훈한 마무리였다. 올해 가요제의 주인공은 아이유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무도가요제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렇다. 영동고속도로가요제는 그만큼 재미있었다. 물론 개인차에 따라서는 작년보다 못했다는 평가도 하겠지만 시청률이 무려 21%에 달했고 이것이 동시간대 다른 프로그램들과 비교해 3배에 달하는 수치라는 걸 고려하면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미있었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무조건 재미로만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웃음이 빵빵 터졌어도, 아무리 웰-메이드 음악들이 잔뜩 쏟아졌어도, 오로지 ‘재미’라는 기준으로 한 프로그램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과적인 재미뿐만 아니라 과정도 평가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혹시 논란과 문제는 없었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잣대를 들이대자마자 올해 무한도전가요제는 유독 논란과 잡음이 많았던 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일단 쓰레기 문제를 들 수 있다. 사진을 통해 행사장 내부 및 주변의 쓰레기를 봤는데 정말이지 너무했다. 물론 이것은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공개방송을 진행하며 관객들의 질서 유지에 더욱 만전을 기하지 못한 제작진 측의 잘못도 크다. 원래 행사란 어수선한 것이며 따라서 자발적 도덕을 바라기보다는 예방 차원의 시스템을 만들어놓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쓰레기라면 적절한 시스템이 부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쓰레기 때문에 벌어진 무한도전을 향한 비판은 제작진 측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전화번호 문제도 그렇다. 전화번호가 공개되면 비슷한 번호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전화가 빗발칠 것을 예상했어야 했다. 물론 최근 들어 해외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LED 전광판에 전화번호를 공개하는 트롤(장난)이 유행하고 있고 무한도전은 그걸 조금 훈훈한 버전으로 재현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벌어질 혹시 모를 사태에도 대비했어야 했다. 결국 피해자가 나왔고 무한도전은 사과까지 해야만 했다. 조금만 더 신중을 기했더라면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요제만 시작되면 늘 불거지는 가요계 잠식의 문제도 또 불거졌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만큼은 제작진 측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애써 발표한 음악이 방송국의 시청률 프로젝트 때문에 뒤로 밀리는 걸 경험하고 있는 아티스트 및 제작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 논란이 충분히 수긍이 된다. 더군다나 한국은 방송국이 가수들에 대해 갑의 행세를 해온 역사가 있어 이 부분이 더욱 민감하다. 비록 무도 측이 인디 음악을 끌어안는 등 음악계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이 논란은 무도가요제의 인기가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재미는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숱한 논란을 일으킨 이번 무한도전가요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재밌었으니까 다 용서하자고 할 것인가 아니면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결과의 재미도 부정해버릴 것인가. 이동연 교수는 여러 논란과 단점을 이유로 “무한도전 가요제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둘 모두에서 한 발 비켜나라고 하고 싶다. 제일 좋은 해결책은 이번 가요제 동안 발생한 논란들을 잘 참고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완하는 것이다. 무한도전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센스가 뛰어난 프로그램이었으니 이번 비판을 계기로 더 성숙해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