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셈블리>, 정치 혐오주의 세상에 돌직구를 날리다

이정희

7월 15일 첫 선을 보인 KBS2의 미니시리즈 <어셈블리>의 첫 회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국회로 질주하는 일군의 노동자들이다. 한국 수리 조선소에서 부당 해고된 지 3년, 법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는가 싶더니 결국 1심으로 환송해버리는 허무한 결정으로 노동자들의 의지를 꺾는다. 벼랑 끝에 몰리게 된 노동자들, 조직부장 진상필(정재영 분)을 비롯한 몇몇은 국회로 향하지만 하필 그날 경제시 국회의원이 불법 수수로 국회의원직을 잃어 ‘불법’ 농성마저 무색해지고 만다.

‘정치인들 반성하세요! 일갈! ‘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린 사과도 모자라서 맨날 빌고 삽니다! 빚쟁이한테 빌고! 전기, 수도 끊지 말아달라고 빌고! 이혼하자는 마누라한테 빌고! 공납금 달라는 애새끼 앞에서 빈다고요!"

노동자 진상필 여당 국회의원이 되다

여당인 국민당의 텃밭으로 알려져 있는 경제시, 야당 연합은 자신들의 정치적 선명성을 널리 알릴 기회라 여겨 보궐선거에서 한수조 복직투쟁위원장을 야당 국회의원 대표로 추천한다. 한수조 복직투위 입장 역시 ‘법’적으로조차 봉쇄된 자신들의 억울함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여긴다. 그런 상황에서 뜻밖에도 여당 사무총장 백도현(장현성 분)이 복직투위장이 된 진상필에게 여당 국회의원이 되기를 권한다.

애초에 국회의원은 개인의 ‘입신양명’ 아니냐며 냉소적이었던 진상필, 해고 노동자라면 당연히 야당을 선택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깨고, 함께 농성했던 동지들에게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형님처럼 여기던 배달수 위원장의 죽음에 대한 책임까지 뒤집어쓰며 ‘여당’ 국회의원이 되는 길을 택한다.

여기서 드라마 <어셈블리>는 통상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행해지는 국회를 배경으로 한 정당 정치의 첫 번째 파격을 행한다. 어용 노총도 아니고, 복직 투쟁을 하던 노조 대표의 여당 행, 그렇게 <어셈블리>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알릴, 혹은 선명성을 알릴 ‘프로파간다(propaganda)’ 그 이상 ‘결과물로서의 정치 행위’로 포문을 연다.

“정부가 하자는 대로 놔둘 거면 여당 의원은 뭐 하러 뽑습니까! 여당의원은 국회의원 아닙니까?”

초선 국회의원 진상필 국회의원의 존재를 묻다

하지만 막상 여당 국회의원이 된 진상필의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배정된 위원회에서 여당의원으로서 파격적인 발언을 한 이유로 징계위기에 빠진 진상필, 그가 깨닫게 된 것은 법안을 만드는 것도, 표를 던지는 것도, ‘당’의 힘을 빌거나, 다른 국회의원들을 규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국회의원의 존재이다. 국회의원으로 살아남기 위해 백도현에게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당의 살생부, 그리고 백도현의 공공연한 경제시 출마이다.

경제시의 숙원 사업인 항만 건설을 여권 중진으로서의 영향력을 내세워 밀어붙이며 화려하게 입성한 백도현, 그런 백도현에 대항하여 자전거로 경제시 전역을 돌며 바닥 민심을 얻으려 안간힘을 쓰는 진상필. 민심에 아부해도 부족할 판국에 이미 옆 도시에 활발히 물류가 거래되고 있는 항만이 있는데, 또 항만 건설을 하겠다는 것은 선거용 선심 공약이요, 설사 이루어진다 해도 국가 예산의 낭비라며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만다. 경제시 국회의원으로 자질이 없다는 원성에 지역구 숙원 사업이나 따주는 것이 국회의원의 할 일이냐며 반문한다. ‘국회의원은 지역구에서 뽑힐지언정, 지역구가 아니라 전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존재’라고 일갈하며. 야당조차도 선거철이 되면 등장하는 선심성 지역 개발 공약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현실 정치의 딜레마를 단번에 걷어차 버린다. 당원들의 탄핵으로 여당에서 쫒겨날 위기에 오히려 ‘계파 정치를 탈피’한 ‘딴청계’라는 독자적 정치 노선을 선언한다.

위장 전입, 탈세 등 비리의 온상인 총리 후보자를 대통령은 밀어붙이고, ‘친청계’와 ‘반청계’는 계파의 이해에 따라 이에 동조한다. 심지어 반대하던 야당조차 대통령이 손을 내밀자 총리 후보 인선 과정에서 ‘기권’을 하며 ‘인준’을 암묵적으로 돕고, ‘사회당’은 목소리만 높일 뿐이다. 오로지 딴청계 진상필만이 ‘필리버스터’(의회 등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일을 말한다), 25시간의 발언을 통해 총리 인준을 무위로 돌린다. 계파에 속하지 않은 일개 국회의원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국회에서 국민 진상 진상필은 한 사람의 국회의원이라도 할 수 있는 ‘정치’를 실현한다. 일반적으로 ‘탄핵’ 당한 국회의원이 선택할 수 있는 ‘탈당’이라는 길 대신에, ‘공천’과 ‘선거’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한 당의 국회의원으로 자신을 뽑아준 국민의 선택에 위배되지 않는 제 3의 길을 제시한다.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충분히 현재의 국회법의 틀 속에서 국회의원으로서 실행 가능한 ‘환타지’를 열어보인다.

국민 진상 진상필이 보여주는 이기는 정치

2014년에 방영되어 화제를 모았던 <어셈블리>의 정현민 작가의 작품 50부작 <정도전>은 여말선초 격동기의 역사 속에 휘말려 명멸해간 인간적 군상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1년여의 시간이 흐른 2015년 정현민 작가는 마치 정도전이 환생한 듯 역시나 날 것 그대로의 정치 현장을 <어셈블리>를 통해 되살린다. 권신에 똥물을 투척하던 정도전은 이제 국회의원이 되어 현실의 정치권을 뒤엎는다. 세도가 이인임(박영균 분)은 반청계의 거물 박춘섭으로 현현되어 노회함을 드러내고, 이권에 혈안이 된 고려 말 권신은 대의를 운운하지만 다음 선거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백도현(장현성 분)으로 돌아왔다.

<어셈블리>의 강점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직업 보좌관으로 국회 생활을 했던 정현민 작가의 경험이다. 하지만 그저 ‘경험’을 통해 그려내는 날 것 그대로의 정치판만이 <어셈블리>의 미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고려 말 정치 이상주의자라 소외당했던 정도전이 결국 조선 왕조의 기틀을 세웠듯이, 정치권에서 ‘팽’당한 진상필을 통해 정치 혐오주의 세상에서, ‘인간적’이면서도, ‘이길 수 있는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 진짜 <어셈블리>의 미덕이다.

정치란 더럽고 나쁜 것이란 '정치 혐오주의'가 정치에 대한 이 시대 지배적 프레임이다. ‘우리가 원하는 정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정치’를 놓고 보자면, 정치는 행정과 더불어 ‘사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에 불과하다는 공공 선택이론(강준만)이 주장되기도 하지만, 혐오주의의 벽은 높고, 국민이 외면한 혐오주의의 안온한 틀 안에서 정치인들은 ‘유력한 경쟁자의 수’를 줄이고, 젊은이들의 방치를 방조하며, ‘오픈프라이머리(open primary; 완전국민참여경선제)’ 등을 주장하며 자신들만의 리그를 강화해간다.

그렇게 사람들의 외면을 받은 현실 정치 혐오주의에서, 현실적인 ‘사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대신 보좌관 생활 10년의 정현민 작가가 선택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정치'이다. 무기력한 노조 대신 정치를 선택했던 행보, 그리고 다음 공천을 위해 여당 저격수를 마다하지 않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추진력에도 불구하고, 형과 같은 배달수가 바랬던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를 하고자 하는 진상필. 그리고 백도현의 오른팔에서, 정치적 술수에 휘말려 희생양이 되어가는 진상필을 위해, 선배 백도현을 등지기로 결심한 ‘낭만적일만큼 인간적’인 행보의 최인경. 그리고 배달수의 아들이자 이제 진상필의 보좌관이 된, ‘해고’를 당해보고 싶다는 청년 세대의 상징인 김규환(옥택연 분)을 통해 의심하고, 따져보고, 건드려 보며 <어셈블리>의 행보를 지지부진 갈지자로 만든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벼랑 끝에선 순간에도 최인경을 보호하고 싶은 진상필의 진심이 김규환을 돌려 세웠듯, 인간이기를 쉽게 마다하는 '정치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얼굴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정치를 외면한 이 시대의 시청자를 설득한다.

뿐만 아니라 진상필의 정치는 ‘이기는 정치’이다. 철저히 ‘승자 독식’인 정치판에서 진상필은 마치 RPG게임의 전사처럼 단계를 업그레이드해가며 승리를 쟁취한다. 그저 선거를 억울함을 알리는 한풀이의 장으로 활용하는 대신 노동자 진상필은 국회의원이 되었고, 거수기를 넘어, 공천에 연연하지 않고, 지역구민에게 아부하지 않으며,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필리버스터’와 같은 국회의원에게 허락된 정치 행위를 통해 국정을 심판한다. 현실 국회의원들이 목소리만 높이고 실망만을 안겨주었던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진상필은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하나씩 실현해나간다.

물론 정현민 작가가 간곡하게 그려나가는 인간적인, 하지만 이길 수 있는 정치의 가능성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그 목소리를 쉬이 높이지 못한다. 진상필의 롤러코스터 같은 정치 인생처럼 <어셈블리>의 시청률은 4~6%를 오가며 고전 중이다. 공중파를 시청하는 광범위한 대중에게 여전히 ‘정치 혐오’의 벽은 두텁고, 정치는 어렵고 따분하기만 한 이야기인 듯하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무식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다(플라톤)는 격언은 SNS를 통해 회자되지만, 현실은 재벌의 딸을 감옥에 잠시 가두는 것으로 재벌을 징벌한 쾌감을 만끽하듯, 현대판 각시탈 같은 <용팔이>에 열광하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국민 진상 진상필이 언제 누구 눈치를 봤던가. 초선의원 진상필은 무관심과 혐오가 판을 치는 2015년 대한민국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꿋꿋하게 펼쳐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