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열기로 더운 여름이 한층 더 달아오르던 때였다. 사격의 진종오 선수가 한국대표팀에 첫 번째 금메달을 안기고 나자 「금빛 과녁 맞춘 태극전사 뒤, 재계 총수 있었다」(<아시아경제>, 2012.7.30)라는 기사가 실렸다. 진종오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까지 지난 10년간 한화그룹 회장의 사격 종목에 대한 특별한 지원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전 세계 국가대표팀이 겨루는 예술올림픽이라도 생겨야 기업인들이 예술과 문화에 더 많은 후원과 투자를 하려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츠가 기록이 있고 산술적 결과에 따라 순위가 정해져 열광의 지점이 매우 단순하다면, 문화와 예술활동은 의미의 층이 복잡다단하게 상이하고 사람들마다 정서적 공감대도 달라 수치화, 기록화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래서 예술인의 노동시간과 그에 합당한 보수 책정에도 어려움이 발생하고 말이다. 경제수단이 생존과 직결되는 만큼 예술인들의 생계가 보장되어야 그들이 안정적인 삶을 기반으로 창작활동에 매진할 수 있을 텐데, 적절한 제도 마련을 위해 참고가 될 만한 좋은 예는 어디서 찾으면 좋을까?

 
사회보장의 근간은 연대의식
2011년 제36회 유네스코 정기총회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는 최소임금 보장, 상해 및 장해 보장, 출산 및 육아 휴직과 가족수당 지급, 실업수당 지급, 휴가 보장 등 매우 완결된 사회보장제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 역시 프랑스 유학 시절, 프랑스에서는 예술가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계층 간 차별 없이 의료보험, 가족수당, 각종 보조금 혜택을 누린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다.
소득이 없어 소득세를 내지 않던 나 같은 외국인 유학생도 프랑스인과 동일하게 무상과 다름없는 대학교육을 받았고, 학생 대상의 주택임대료 보조금을 받았으며, 의료보험 혜택을 받았었다. 또 주변의 아이가 있는 유학생 부부들이 산부인과를 무료로 이용하고(출산장려책의 일종), 출산 후에는 분유와 기저귀를 충분히 살 수 있는 육아보조금을 가족수당 명목으로 받는 것을 보았다. 신생아부터 받아주는 어린이집, 유치원도 무료였다. 사회당의 집권 역사가 제법 긴 프랑스 사회의 기저에 ‘연대(solidarite )’와 ‘관용(tolerance )’의 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프랑스 예술인 사회보장 및 창작지원제도
이런 사회에서 예술인을 기본 복지제도에서 소외시킬 리 없다. 프랑스는 오히려 예술인을 정당한 직업군으로 인정하여 임금근로자와 똑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예술가-작가를 위한 특별사회보장제도(Re'gime d'assurance sociale specifique)’를 운영하고 있다. 동 제도의 관리와 운영을 담당하는 기관은 시각, 조형예술가를 위한 ‘예술가의 집(Maison des Artistes)’과 창작물의 무형성으로 인해 주로 저작권 양도 등으로 수익을 얻는 ‘작가를 위한 사회보장운영협회(Association pour la gestion de la securite' sociale des auteurs, 이하 AGESSA)’가 대표적이다.
이 두 기관은 고용주가 없는 독립예술가들을 위해 고용주(회사)들이 일반 임금근로자에게 행하는 역할을 대행한다. 즉, 회사에서 보험금을 급여에서 공제하고 인사관리를 하듯 두 단체도 예술가-작가들의 보험납부금액을 결정하여 징수하고, 예술가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인구조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의료비 환급, 수당 지급 등 실제 서비스는 의료보험관리공단, 고용관리공단, 가족수당관리공단, 퇴직연금관리공단 등 해당기관에서 담당한다. 하지만 예술가의 집 혹은 AGESSA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소득신고라는 납세의 의무 이행이 선행되어야 한다.

1) 소득신고 및 조세혜택
독립예술가-작가들은 여타 임금근로자 및 자영업자들과 마찬가지로 작품 판매, 저작권 양도 등을 통한 수익을 ‘비상업적 수익 항목’으로 매년 세무소에 소득신고를 해야 한다¹⁾.
신고한 소득 수준에 따라 소득세를 납부하면 이를 근거로 예술가의 집 혹은 AGESSA가 보험료를 결정하므로 소득신고는 사회보장보험 가입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전문예술가-작가로 인정받기 위한 소득액은 2009년 기준으로 연 7,893유로 이상으로, 시간당 최소임금의 약 900배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이 소득액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전문예술인군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예술인들의 수입이 기복이 심한 점을 감안하여, 지난 몇 년간의 소득평균치를 신고할 수 있게 하는 등 편의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소득신고 시 예술가-작가들을 위한 각종 조세 혜택을 마련하여, 적정한 소득세를 책정하도록 하고 있다. 예술가-작가들을 위한 조세혜택으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예술작품²⁾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7%로 할인(일반 상품은 19.6%), 전년도 매출액이 41,700유로 이하일 경우에는 동 부가가치세 면제
▷직업상 필요한 경비(재료의 구입 및 설비 취득 비용, 작업실 임대료, 연구비, 이동경비, 교육비 등)의 소득 공제
▷연 32,100유로 이하의 소득에 대해서는 일괄 소득세를 적용하여 절차 간소화
▷아틀리에 등 창작활동에만 사용되는 장소에 대한 거주세 면제, 혹은 작업장과 거주공간이 혼용될 경우 작업장 비율에 따른 거주세 할인
▷예술가-작가가 아틀리에 등 작업장의 소유주일 경우, 해당 작업장의 부동산세와 대출이자 소득 공제 (작업경비로 인정)
▷아틀리에의 세입자일 경우, 임대료, 관리비, 건물 보험료를 작업경비로 인정하여 소득 공제
▷신진작가 지원을 위해 전문 활동 첫 5년간은 소득 금액의 50%만 과세 대상으로 적용
 

2) 사회보장 내용
소득신고가 완료되면 예술가의 집이나 AGESSA를 통해 사회보장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화가, 조각가, 판화가, 섬유디자이너, 그래픽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및 일반적으로 조형·시각예술로 분류될 수 있는 작가들은 예술가의 집에, 저술가(문학가), 사진가, 문학작품 삽화가, 과학자, 프로그램 개발자, 영화, 텔레비전 등의 시청각 분야 종사자와 같이 주로 저작권료로 수익을 얻는 사람들은 AGESSA에 가입한다.
가입조건은 프랑스에 주소지가 있고, 독립적인 창작활동의 결과물을 판매, 배포함으로써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가입신청 당시를 기준으로 전년도에 이러한 수익활동이 있었음을 즉 예술 분야 전문인임을 소득신고(2009년 기준액 7,893유로)로 증명해야 한다. 가입신청자의 소득이 기준액을 넘지 못할 경우, 각 기관 위원회는 신청자가 전년도에 작품 배급처를 찾거나 저작권 양도를 위해 노력했다는 증빙서류 혹은 창작활동을 위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는 등 소득 감소를 설명하는 소견서 등의 서류를 검토하고 가입을 결정하게 된다.
소득 수준이 낮다고 가입이 원천 봉쇄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다만 활동 첫 해의 수입과 이에 따른 소득신고 후에 보험금이 결정되는 관계로 활동 첫 해에는 예술인특별제도가 아니라 학생보험 혹은 일반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가입이 완료되면 예술가-작가들은 질병(의료), 출산 및 육아(부친도 수혜가 가능하며 입양도 해당), 장해, 노후, 사망, 가족수당 부문에서 일반 임금근로자 및 자영업자들과 동일한 혜택을 받게 된다. 노후는 예술인특별제도로 100%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교육 및 창작 분야 퇴직연금공단’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여 부족분을 보충하도록 하고 있다.
실업수당은 따로 없지만 활동을 못하는 이유가 질병 때문이라면 4일째부터는 의료보험을 통해 일일수당(상해기간 중 활동지원비)을 지급받을 수 있다.
또는 활동을 못해 소득이 없을 경우, 고용관리공단에서 지급하는 특별연대보조금(2010년 기준 일일 15.14유로)을 최대 1년간 수령할 수 있으며, 문화통신부(Ministe'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산하의 지방문화사업관리국(Direction regionale des affaires culturelles)이 급작스럽게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예술가에게 지급하는 특별보조금(창작지원이 아닌 순수 경제지원)을 최대 1,000유로까지 받을 수 있다.
한편, 예술가의 집과 AGESSA는 특별 기금을 운용하여 예술가가 개인적인 경제 상황으로 보험금 납입이 힘든 경우 최대 3년까지 보험료를 대납해 주고 있다. 
프랑스의 예술인 사회보장제도로 자주 언급되는 것 중에 ‘엥테르미탕(Intermittent)’이라는 것이 있다. 공연, 영화, 방송 분야에 한정된 제도로서, 단속적인 계약으로 인해 고용과 실업상태를 번갈아 겪어야 하는 종사자들에게 계약이 없을 때 임금을 보전해 주는 일종의 실업수당이다.
영화계 종사자들의 요구에 따라 1936년에 설립된 오래된 제도이며, 2003년에 ‘319일간 최소 507시간을 일했다’는 증빙 조건을 요구하는 등 제반 규정들을 정비했다. 프랑스 특유의 연대의식을 잘 보여주는 제도이기는 하지만 역시나 재원 마련이 큰 어려움으로 거론되고 있다. 2009년 수혜자는 105,826명에 달했으며, 이들에게 지급된 수당은 12억 7,600만 유로였다. 그러나 이 중 회원들의 자체 분담금 규모는 2억 2,300만 유로에 불과해 10억 5,400만 유로의 적자가 발생하였으며, 이 금액은 같은 기간에 일반 임금근로자 200만 명에 지급된 실업수당과 거의 맞먹는다. 이러한 수치는 공연 분야 종사자들의 실업 기간이 매우 길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하지만, 제도의 남용과 악용 또한 큰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2012년 회계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총 등록자의 15%가 부당신고를 통해 부당한 혜택을 누린 것으로 드러나 제도 개혁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며, 예술가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3) 창작지원제도
프랑스는 이러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독립예술가-작가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한편, 다양한 창작지원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예술가를 위한 창작지원금 배정과 교부는 지방문화사업관리국에서 주로 관리하고, 국립조형예술센터(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는 작품을 구입하여 프랑스 미술관 및 해외에 대여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예술가-작가에게 최대 1만 5천 유로까지 연구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축물 미술장식제도’의 모델이 되기도 한 1%^{법건축비의 1%를 공공미술품 구입 및 제작, 설치에 사용할 것을 의무화한 법령}의 공모 내용은 문화통신부 사이트에 업데이트된다. 문화통신부는 작업실 확장, 설비구입 및 설치를 위한 보조금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의 196개에 달하는 예술가 레지던스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확보의 용이성을 제고하고 교류와 소통에 기반한 작업 활동의 장려책이 되고 있다. 이외의 여타 공공기관들도 프로젝트 공모나 작품주문 등을 통해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민간기업의 메세나나 지원프로그램, 시상제도도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정보와 관련하여, 국립조형예술센터 등 공공기관에서는 『예술인 사회보장 가이드』, 『레지던스 가이드』 등을 발간하고 민간기업 메세나 리스트, 저작권 관리 방법, 견적서·계약서 작성 방법을 알려주는 등 유용한 정보의 배포와 전달을 위해서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와 한국
유럽은 일찍이 예술을 순수학문으로 인정하며 높은 위상을 부여했다. 중세시기부터 교회의 주문과 귀족들의 컬렉션 관행이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촉진해왔으며, 장인 길드나 국가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 등 예술인 단체가 제도화된 역사도 상당히 길다. 이러한 토대 위에 지금의 프랑스 예술인 복지제도가 형성된 것인 만큼 구조가 탄탄하다.
또한 프랑스에서 예술인 사회보장제도가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은 일반 시민이 예술과 문화가 국가와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예술인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내더라도 궁극의 향유자는 자신이므로 예술가들과 기꺼이 연대하겠다는 의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예술가들은 그들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적법하게 요청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이에 입각한 창작 활동을 수행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술인 복지법이 금년 12월 시행된다니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향후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고, 생각지 못한 소외지점도 발생할 터이고, 재원 마련에도 문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제도가 어떤 모습으로든 발전하고 개선되어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 창작활동을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1) 프랑스에서는 일반 자영업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사업자등록번호(Syste' me de l’Indentification du Re' pectoire des E' tablissments)를 교부하고 하고 있다. 예술가-작가는 작품 판매 시 견적서, 청구서 등에 이 번호를 명시해야하며, 소득신고 시에도 이 번호가 필요하다.
2) 세무법에 따르는 예술품은 조세대상으로서의 작품이기 때문에 산술적인 측면이 부각된다. 예를 들어 판화와 직물디자인(textile) 작품은 8점까지, 사진은 30점까지 작가가 직접 제작하여 사인하고 에디션 넘버를 붙인 것만 예술작품으로 인정되며, 그 이상부터는 상업적 이익을 창출하는 상품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