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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적 복지의 가치와 이념
통권 : 35 / 년월 : 2012년 7,8월 / 조회수 : 1591
보편적 복지(universal welfare)는 정의가 아주 명확하게 이루어진 용어는 아니다. 대략 스웨덴을 위시한 스칸디나비아의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제도적 복지를 모델로 하여 그 주요한 특징을 묘사하는 용어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대립 개념은 잔여적 복지(residual welfare)로서, 특히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이루어졌던 복지 시스템을 일컫는다. 즉 자유주의적인 영미식 복지 체제와 대립되는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 체제의 한 성격을 일컫는 말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말을 해 놓으면 일반인은 도대체 무얼 말하는 건지 아무런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거친 단순화를 무릅쓰고 쉽게 말해 보겠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자유주의 체제의 복지는, 시장 경제에서 패배하여 힘든 지경에 몰린 이가 벼랑 끝에 몰리는 최악의 사태를 일시적으로라도 막기 위해서 소득을 보전해주는 개념이다. 즉 도저히 자기 힘으로 생활을 하기 힘든 이들에 한하여 적은 양의 소득 재분배를 행하는 것이고,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 경제의 작동을 보조하는 제한적 역할을 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반면, 보편적 복지는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성별이나 종교 그 밖의 어떤 구별도 넘어서서 누구든 마땅히 제공받아야 할 것으로서 복지 프로그램을 내놓게 된다. 즉 복지를 시장 경제에서의 패배자를 일시적으로 보조하는 장치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시민권자라면 경제력이나 그 밖의 어떤 기준과도 독립적으로 누구나 응당 누려야 하는 삶의 최소한의 권리로서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고 그 포괄의 범위도 대단히 넓게 된다.
아마도 1936년 스웨덴 사민당 정권 재창출 이후 시행되어 스웨덴 보편적 복지의 효시처럼 여겨지는 출산 수당 정책이 그 예일 것이다. 당시 저조한 출산율로 인해 인구 위기에 봉착해 있었던 스웨덴 사회는 아이를 낳는 여성이라면 종교나 취직 여부는 물론 심지어 결혼 여부까지 떠나 누구에게나 일정한 양의 수당을 제공하는 정책을 추진해나간다. 이는 심지어 미혼모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으니, 그때까지도 보수적 분위기가 남아있었던 당시로서는 실로 파격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복지 재정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핑계로 “출산 수당을 받아 마땅한 여성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시작한다면 정말 별의별 기준들이 다 등장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굴욕적인 감정 등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반면 스웨덴의 이러한 정책의 배후를 이루는 사상은, 아이를 낳아 잘 기르는 것은 스웨덴이라는 사회가 존속하고 더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면서 스웨덴 사람이라면 누구든 누려야 하는 삶의 기회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재정의 제한을 핑계로 무시할 일이 아니라 거꾸로 재정의 확충이 필요하다면 세금을 올려서라도 재정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을 사임하게 만든 ‘전면 무상급식이냐 선별적 급식이냐’는 질문에서 이 보편적 복지의 문제가 대중적인 관심사가 된 바 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재원은 한정되어 있을 터인데, 가난하고 힘든 집 아이들에게만 점심을 주면 되지 어째서 경제적 능력이 있는 집 아이들까지 다 점심을 주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을 “소득 재분배”라는 경제 문제의 차원으로 보지 말고 대신 우리 사회의 앞날을 짊어질 모든 미래의 시민권자들에 대한 육성과 예우라는 문제로 한번 바라보라. 누구와 누구를 선별할 일이 아니라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의 문제가 된다.
이렇게 보편적 복지는 기본적으로 복지의 문제를 경제의 문제라든가 소득 재분배의 문제로 바라보는 선별적 복지의 관점과 다른 관점에 서 있다. 그렇다면 보편적 복지가 서 있는 사상적, 이념적 관점은 어떠한 것일까? 북유럽 복지 국가 체제의 종주국이라고 할 스웨덴의 수상이었던 엘란데르(Tage Erlander, 1901~1985)가 1962년에 내놓았던 문서에 이것이 잘 설명되어 있다. 우선 “사람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질과 조건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 각각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목표이며, 이렇게 모든 이들이 자기 인생에서의 선택의 기회와 자유를 극대화할 수 있는 물적인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보편적 복지 체제가 지향하는 가치라는 것이다.
이 또한 쉽게 이야기해보자.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리고 그(녀)가 그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하고 스스로의 역량을 개발하며 자기 인생에서 선택의 기회를 최대한으로 누릴 때 사회도 발전하며 또 물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풍요하게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의 인생에서 이러한 가능성이 좌절되는 가장 큰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물적 조건의 미비일 때가 많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제아무리 모차르트(Wolfgang Mozart, 1756~1791)나 세잔(Paul Cezanne, 1839~1906)과 같은 재능이 있다고 한들 지금과 같은 경제 제도와 교육 제도 아래에서 과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위대한 발명과 혁신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제아무리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나 빌 게이츠(Bill Gates)와 같은 에너지와 창의력을 가진 젊은이가 있다고 해도 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환경에서 과감히 대학을 때려 치고 전서(篆書) 쓰는 법을 익히러 다닐 배짱이 쉽게 나올까. 이렇게 시장 경제에서의 소위 “경쟁력”이라는 것으로 우리 젊은이들을 쥐어짜고 윽박지른 끝에 그들이 실제로 행할 수 있는 선택과 기회의 범위가 얼마나 좁아졌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도리 없다. 굶주림과 경제적 불안이라는 시련 앞에서 의연하게 자신의 삶의 가능성을 과감히 개발하면서 인생의 선택을 극대로 누릴 배짱을 가진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엘란데르 수상과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내건 보편적 복지의 이념은 바로 이러한 비극을 막자는 것에 그 중심이 있다. 가난하고 병들었을 때만 제한적으로 주어지는 복지가 아니다. 누구든 어떤 조건에서든 일정한 인생의 상황과 조건에 대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든든하게 보장을 해준다는 장치를 마련하게 되면, 이는 사실 모든 개인에게 “부자 아빠”를 가져다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 개인들은 실제로 부잣집 아이들이 많이 그러하듯 더욱 자신 있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인생과 삶의 가능성을 설계하고 도전하고 실현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진취적 자세 덕분에 그 집안은 갈수록 더 풍요하고 부유해진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스웨덴과 북유럽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를 제도적인 차원에서 상당한 폭과 깊이로 이미 실현한 바 있다. 
특히 이러한 보편적 복지의 이념이 예술인들을 위한 복지제도의 설계에 있어서 중요한 함의점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예술인들의 활동은 말할 것도 없이 대단히 중요하고 독특한 사회적 기여를 이루지만, 그들의 사회적 형태는 스스로의 노동력을 노동 시장에서의 계약으로 판매하는 노동자보다는 스스로의 생산물을 내다파는 소상품 생산자 혹은 자영업자에 훨씬 가까운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의 경우 그 구체적 작업의 내용과 성격은 상당히 표준화되어 있지만 예술인들의 활동과 활동의 산물은 사실상 그러한 노동 시장과 같은 표준화를 거치는 것이 역작용을 낳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을 위한 복지제도의 근간을 이룰만한 이념과 가치는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할까. 방금 우리가 본 엘란데르 수상의 논리 즉 모든 이들이 스스로의 인생의 잠재적 가능성과 선택의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한다는 보편적 복지의 원리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엘란데르 수상은 이렇게 하여 강하고 능력 있는 개인들이 나올 때에 비로소 사회도 “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자신 있고 능력 있는 예술가들이 많은 사회는 그 자체로 “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저자 약력
洪基彬 1968년 서울생.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최근 저서로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등. tentandavia@naver.com
글쓴이 : 홍기빈
작성일 : 201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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