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 차크웨이토우(char kway teow), 로티 프라타(roti prata), 미고랭(mee goreng)은 싱가포르인이라면 누구나 해외에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휴가를 갔을 때 떠올릴 음식들이다. 단지 음식의 맛 때문이 아니라 그 음식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무엇이 우리를 싱가포르인으로 만드는가?What makes us Singaporean?」(<투데이온라인Today Online>, 2012.8.8)

국가적 취미 식도락
싱가포르는 1980년대부터 해외 언론에서 깨끗하고 질서를 잘 지키는 도시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세계에서 다양한 음식을 즐기기에 가장 최적의 장소’ 혹은 ‘세계 최고의 음식 도시’로 소개되었다. 이러한 평판과 함께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미식(gourmet)의 중심지로서 도시 브랜딩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하던 싱가포르는 태국, 홍콩과 더불어 아시아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로 부상했고, 관광청은 싱가포르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의 하나로 음식을 선정한다. 1994년 이후 매년 개최되는 <싱가포르 음식 페스티벌Singapore Food Festival>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며 실제 많은 해외 관광객들이 싱가포르를 방문할 때 쇼핑과 더불어 다양한 음식에 대한 높은 기대가 방문 이유로 뽑히고 있다.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이들이 흔히 듣는 말은 싱가포르가 ‘음식의 천국’이라는 말이다. 지정학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아시아와 서구의 음식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싱가포르인에게 이 말은 흔히 말하듯 ‘살기 위해 먹기보다 먹기 위해 산다’고 할 정도로 식도락에 관심이 많은 그들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먹는 걸 강조하다보니 스스로를 ‘배고픈 귀신’이라는 의미의 “Yeow Kwee”라 부르기도 한다. 주요 일간지의 한 기사는 “만일 먹는 것에 열중하는 것이 싱가포르의 과거였다면, 먹기 위해 긴 줄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이제 새로운 싱가포르적 습관이 되었다”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스트레이트 타임즈The Straits Times>, 1992) 이는 맛있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해서라면 열대의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긴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자신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음식에 대한 ‘애정’은 따라서 단순한 개인적 기호나 취향이 아닌 국민적 정체성으로까지 자리 잡게 되었다. 매년 국경일인 8월 9일을 기념하여 한 싱가포르인이 신문에 기고한 위의 인용문이 보여주듯 다인종으로 구성된 싱가포르인을 단일한 국민성으로 묶어 주는 기제 중 하나로 단일한 언어나 민족성이 아닌 음식이 꼽힐 정도이다. 이러한 싱가포르인의 일상생활에서 음식 문화를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코피티암(Kopitiam)과 호커센터(Hawker Center)이다.

코피티암과 호커센터: 사람, 장소, 그리고 음식
싱가포르에서는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싼 가격에 판매하는 ‘코피티암’이라 불리는 오래된 커피하우스가 있다. 코피티암은 커피하우스를 의미하는 말레이시아어 “kedai kopi”를 중국식으로 발음한 말이다. 코피티암은 오랜 이민의 역사와 문화적 다양성을 담고 있다. 20세기 초까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싱가포르에는 중국 남부 지역과 말레이시아, 인도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간단한 음료와 각자의 고향 음식을 저렴하게 파는 거리의 음식문화가 발달했었다. 이들 중 주로 영국인들에게 고용되어 요리와 가사를 담당했던 중국 하이난(海南)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 식민지배자들이 떠나면서 대거 실업자가 되자 서양식 커피와 베이커리 등을 중국식 음식과 접목한 식당과 카페를 열기 시작했다. 이때 유명해진 야쿤(Yakun)과 킬리니(Killiney)와 같은 코피티암은 상표권을 등록하여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에도 진출하여 한국을 비롯한 여러 아시아 국가들에서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다. 움푹 패인 중국식 냄비인 웍(wok)에서 진하게 볶아낸 커피를 여성들의 스타킹과 유사한 거름망에 걸러낸 진한 커피, 간장으로 간을 맞춰 먹는 반숙 계란, 그리고 과일잼의 일종인 카야(Kaya)잼과 버터를 듬뿍 바른 토스트는 1970년대나 지금이나 코피티암의 전형적인 메뉴로 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커피 체인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호커센터 역시 싱가포르 특유의 공간으로 음식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수십 개의 음식점이 밀집한 호커센터는 싱가포르 특유의 도시 주거 형태에서 발생하였다. 인구의 80% 이상이 거주하는 HDB^{the Housing & Development Board의 준말}는 국가가 계획 조성하여 국민들에게 판매하는 아파트이다. 이러한 HDB는 여러 개의 블록으로 구성되는데 새로운 HDB 단지가 조성될 때에는 대개 레저와 여가 활동을 위한 주민센터와 스포츠시설, 소비공간을 위한 쇼핑몰, 그리고 음식을 파는 호커센터가 함께 조성된다. 호커센터에 입점하게 되는 음식점인 스톨(stall)은 정부의 허가를 받은 개인만이 운영할 수 있다. 호커센터는 HDB 주변의 열린 공간에 기둥과 그 위에 지붕을 얹은 형태로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백화점이나 쇼핑몰의 음식점에 비해 음식값이 매우 저렴한 편이다. 싱가포르에는 대부분의 도시, 특히 아시아 도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점상이 없다. 깨끗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노점상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인데, 역사적으로 본다면 기존의 많은 노점상들이 도시화를 통해 호커센터라는 집단적인 상가형태에 흡수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싱가포르에서는 외식 비율이 높은 편인데, 집을 나서기만 하면 어디에서든 5분 거리에 호커센터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싱가포르인은 적어도 하루 한 끼 정도는 호커센터를 이용하는 편이다. 따라서 호커센터에서 진정한 ‘싱가포르인’의 일상생활을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주류에 높은 관세를 붙이기로 유명한 싱가포르에서 50~60대가 가장 저렴하게 술을 마시는 방법은 호커센터에서 칭다오 맥주와 가장 흔한 닭 날개 튀김이나 그 외 간단한 음식을 안주로 먹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안주로 싱가포르의 집권당인 인민행동당과 전 수상인 리콴유(Lee Kwan Yew) 및 그 가족들과 관련된 정치, 경제 이슈에 대한 뒷담화를 즐기는 것이다. 호커센터에서 시민들이 소소하게 즐기는 이러한 정치적 뒷담화를 전형화하여 ‘토킹칵(talking cock)’이라 한다. 반정부적 정치적 발언에 민감한 싱가포르의 사회분위기에서 이러한 모습이 ‘관용’되는 것은 아마 호커센터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이러한 행위가 발생함으로써 그 정치적 의미가 개인적 담화로 희석되기 때문일 것이다.

 
호커센터의 또 다른 중요한 특성은 다양한 인종의 식습관에 맞추기 위해 모든 호커센터가 필수적으로 중국계/말레이시아계/인도계/서구식 음식을 파는 스톨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인기가 높아진 한국 음식 스톨도 점점 일반화되는 추세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러한 민족/인종적 특성에 따른 스톨의 필수적 구성이 다인종사회에서 평등권을 보장해준다고 한다. 가령 돼지고기를 즐겨먹는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돼지고기가 금기인 무슬림이 대부분인 말레이시안 싱가포르인 각자가 불편 없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여 인종적/종교적 차별의 요소를 없앤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기계적 구성이 오히려 인종적 차이를 본질화한다고 비판하거나 실질적인 평등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가령, 중국계 인구가 많은 곳의 호커센터에서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타 인종을 위한 스톨이 하나씩 있지만 그 외의 대부분 스톨이 중국계 음식을 팔기 때문에 소수의 인도계나 말레이시아계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호커센터가 인종에 따른 네 가지 스톨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구성 원칙은 정부에 의해 매우 확고하게 지켜지고 있다.

음식, 인종적 평등 혹은 갈등의 매개체: “커리를 허하라”
다문화사회에서 때로 음식은 갈등의 요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2011년 싱가포르의 건국기념일을 기념하여 주요 일간지에 실린 한 기사는 다문화사회인 싱가포르의 조화로운 사회상을 보여주기 위한 사례를 소개했는데 이는 예상과 달린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중국 본토에서 이주해 HDB에 살던 중국인 가족이 이웃에 살던 인도계 싱가포르 가족의 카레(Curry, 커리) 냄새를 참을 수 없다며 정부의 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요청했다. 조정위원회는 중국계 가족이 외출 했을 때만 인도계 가족이 커리를 요리할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 그냥 묻혀버릴 수도 있던 이 사례가 문화적 차이로 인해 발생한 분쟁을 정부의 조정위원회가 원만히 해결한 사례의 하나로 소개되면서 오히려 다수의 싱가포르인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이 사례는 표면적으로는 음식을 둘러싼 중국인 대 인도인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인종적 갈등과 더불어 누가 진정한 ‘싱가포르인’인가에 대한 정체성 갈등으로 인식되었다. 인종적 기준으로만 본다면, 싱가포르 인구의 70% 이상이 중국계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중국 이주자 가족의 이해에 동조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최근 5년 사이 이주노동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싱가포르인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직장을 빼앗기고 더 나아가 이들의 수가 로컬 싱가포르인들의 수를 넘어설 것이라며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때의 정부의 결정은 ‘다문화적 태도가 부족한’ 중국 본토에서 ‘몰려오는’ 비(非)싱가포르인의 편을 들어 준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이들과 달리 원주 싱가포르인들은 다문화사회를 잘 유지해온 ‘문화적 관용을 지닌’ 국민으로 자신들을 재현하면서 커리를 먹을 자유를 박탈당한 인도계 싱가포르 가족을 강하게 옹호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인터넷 매체를 통해 중국 이주민을 비하하거나, 중국인은 중국으로 떠나라며 “나라를 사랑하고, 커리를 사랑한다.(I love my country, I love my curry)”와 같은 강한 구호의 동영상을 올렸고, 어떤 그룹은 다가오는 일요일에 모두 커리 요리를 하자는 캠페인을 벌여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일찍이 싱가포르에서 인종적 갈등이 이렇게 공공연히 표출된 적은 흔치 않을 뿐더러 음식이 그 매개체가 되었다는 것은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문화적, 사회적 함의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싱가포르에서는 타민족/인종의 종교나 문화에 대한 비하 발언이나 폭력 등을 법적으로 강력하게 처벌해왔고, 문화 간 균형을 유지하고자 애써왔다. 이러한 노력은 글의 시작부분에서 인용한 기고문에서도 쉽게 읽힌다. 싱가포르의 향수를 자극하는 대표적 음식을 언급하면서 싱가포르 인구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세 인종과 연결되는 음식들, 즉 중국계가 즐겨 먹는 볶음면 요리인 차크웨이토우, 인도계가 즐기는 로티 프라타, 말레이시아계의 주식인 미고랭을 ‘골고루’ 언급한 것이다. 이러한 의식적 노력에서 보듯, 이주의 역사를 통해 초기에는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음식의 다양성이 후에는 호커센터에서의 사례처럼 정부가 음식의 다양성을 통제/관리함으로써 어떻게 인종적/종교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 왔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