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변화무쌍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 도시일 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표정을 짓는 도시는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 있다. 바로 여인숙이다. 좁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여인숙은 방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남긴 사연들을 고스란히 담고, 오늘도 그 누군가를 기다린다. 지금은 여인숙이라는 말이 점차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지만 그곳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학생과 그 누군가에게 소중한 보금자리 역할을 했었다. 때로는 주인아주머니 몰래 친구들과 함께 자기도 하고, 단돈 몇천 원으로 잠을 청할 수 있던 곳이었다.

 
이러한 역할을 했던 산호여인숙이 복합문화공간 및 게스트하우스로 변모하였다. 산호여인숙을 변모시켰던 계기와 과정도 “여인숙”스럽다. 대전의 구도심인 대흥동에는 올해로 5회를 맞이하는 <대흥동립만세축제>가 8월이면 벌어진다. 이 축제는 대흥동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과 상가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축제이다. 그래서 8월이 되면 대흥동은 들떠있다. 이 축제에 참여하며 교류했던 문화예술인들이 게스트하우스 및 거점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고 카페에서 작당모의를 하여 산호여인숙을 만나게 되었다. 문화예술인들이 금전적 여유가 어디 있으랴! 10여 년간 방치된 여인숙을 2011년 4월 봄날부터 손수 만들어 갔다. 낡고 부패한 것은 철거하고, 여인숙 그대로를 보전하면서 페인트 칠하고, 도배하고, 장판을 깔면서 점점 모습을 갖추어 갔다.

 
생활소품들은 생활정보지에 기고를 통해 시민들이 소파, 식기세척기, 밥그릇, 숟가락까지 지원해 주었다. 그 외 집기들은 동네를 다니며 주워서 수선하여 다시 사용했다. 이렇게 4개월간 준비하여 8월 말 새로운 산호여인숙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렇듯 산호여인숙은 숟가락을 후원한 사람에서부터 산호여인숙을 매일 같이 출근하여 꾸민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산호여인숙은 2011년 <대흥동립만세축제>에 맞추어 오픈을 하게 되었다. 오픈과 함께 대전시립미술관 주최로 16명의 작가와 함께 <게스트 & 게이트展>을 시작으로 대흥동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산호여인숙은 문화와 예술이 문안(問安)하는 게스트하우스를 표방하고 있다. 단순히 숙박공간이 아닌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품고 있는 공간으로 역할을 하고자 함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혼재되어 있다. 1층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이 벌어지고 있고, 2층은 여행객 및 예술인들의 숙박공간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온전한 문화공간도 아니며, 온전한 숙박공간도 아닌 두 개의 역할이 혼재되어 공존하는 곳이다.
산호여인숙은 크게 네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첫째는 젊은 예술인들의 창작을 지원하며 다양한 문화예술을 행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이다. 2011년에는 <게스트 & 게이트전>을 비롯하여, <대흥동+아트프리마켓 길게 하다>, <빈집여행프로젝트 1+1>, <산호여인숙 기획전시 여관>, <서랍 속  여행이야기展>, <세계그림 책展>, <산호여인숙을 점령하라!> 등 전시 및 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일련의 행했던 전시 및 프로젝트는 복합장르와 탈 장르를 추구하고 있다.
<빈집여행 프로젝트 1+1>은 미술작가, 문화잡지 기자, 만화가, 커피전문가, 시민단체 운동가 등이 모여 진행한 것으로, 대흥동 빈집에서 재활용품을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것을 시도하였다. 더불어 올해 8월부터 대전문화재단 주최로 4명의 작가와 “산호레지던스”를 12월까지 진행한다. 1층 5개의 공간에는 문이 없이 항상 열려 있으며, 작품은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고, 작가들은 오가는 사람들과 언제나 소통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둘째는 게스트하우스 역할로 휴식과 여행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예술가를 비롯하여 배낭을 메고 여행을 다니는 여행객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2층에 자리하고 있다. 9개의 방으로 최대 25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2층은 두 명이 발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예전의 여인숙 그대로의 방부터 6인이 머물 수 있는 온돌방까지 다양하다. 방 이름도 재미있다. 아는 지인이 에어컨을 기증하였다 하여 “키다리 아저씨방”, 4명이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온돌방은 “친목을 위한 고스톱방”, 그리고 벽지가 모자라 남은 벽지를 모두 모아 붙인 방은 “혼돈의 방” 등이 있다. 이렇듯 저마다 이야기를 가진 방이 다양한 게스트들을 맞이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의 여러 가지 묘미 중의 하나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한 방을 쓰면서 여행정보도 나누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밤새 나누는 것이다. 비록 내일은 서로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그래서 오히려 솔직해지는 시간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셋째는 대전의 구도심인 대흥동을 안내하고 아카이브 하는 일이다. 게스트하우스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흥동을 중심으로 게스트에게 구도심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작게는 맛집 소개에서부터, 크게는 구도심 전체 투어를 진행하기도 한다. 대전의 구도심은 근대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 많고, 문화예술의 근원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외부인에 소개하려고 한다. 더불어 시간과 자본에 의해 사라져가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대흥동 트러스트>를 소소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대흥동에서 발생하는 문화예술 관련 리플릿, 포스터 등을 모으고 보관하는 도서관이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다.

 
넷째는 젊은이들의 아지트 역할을 하고 있다. 10대 청소년에서부터 30대 문화활동가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이 모이고 공유하는 곳이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이러한 젊은이들이 모여 서로 한 주간 활동한 것을 공유하는 시간을 정규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들이 모여 있어 뜻밖의 꿍꿍이를 만들고, 대흥동에 그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산호여인숙에는 이외에 산호여인숙의 일상을 기록하는 웹툰과 산호주제가 일명 <산호쏭> 있다. 웹툰은 만화작가가 호기심 어린 시각으로 산호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가고 있으며, <산호쏭>은 산호를 만들어가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노래로 만든 것이다.
이렇듯 산호여인숙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 있고, 여인숙과 복합문화공간이 혼재되고, 예술가와 여행객이 혼재되어 있으며, 작품과 일상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 많은 것이 혼재되어 자칫 어지러울 수 있으나, 혼재 그 자체가 새로운 상상의 출발이며 산호여인숙 그 자체이다. 이러한 산호여인숙의 활동은 구도심에 신선한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갈 길이 먼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 1년 남짓한 동안 산호여인숙의 기반 조성이 된 것이며,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위의 네 가지를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갈 때 구도심에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숙박을 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산호여인숙을 “불편한 행복이 있는 곳”이라고 방명록에 남겼다. 그렇다, 산호여인숙은 다른 여관 및 모텔보다 불편하다. 화장실도 공용이며, 오래된 건물이라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곳이다.
하지만 행복한 이유는 일상에서의 익숙함이 주지 못하는 불편함 속에서의 설렘과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산호여인숙에서 머무는 게스트는 사람, 예술, 그리고 대흥동 문화일 것이다.
그 옛날 선조들이 손님이 오면 제일 먼저 마당을 청소하고 사랑방에 군불을 넣어 온기를 마련하며 정성스레 손님을 맞이하였듯이, 산호여인숙 또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정성스레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