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달이 지났다. 추석 전이라 다소 들뜬 마음으로 현장을 찾았던 기억이 새롭다. 더군다나 토론회 장소가 문정성시사업이 진행되었던 서울의 남문시장 조합사무실이었고, 또한 그 덕분에 시장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날의 토론회는 시장이 나아갈 방향과 시장의 성격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주제였으나 보다 핵심적인 것은 시장 내 예술가의 역할이라 할 것이다. 서울 남문시장은 2011년부터 문전성시사업을 시작했고 지난달까지 지속적으로 사업이 기획되고 펼쳐졌다. 주지하듯 문전성시프로젝트는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선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지역, 시장, 예술의 삼 박을 섞어서 쇠락한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보자는 것이 사업의 취지인 셈이다.

이날 토론의 구체적인 내용은 대부분 시장과 시장지역을 컨텍스트화 한 예술가들의 활동이었는데,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주제는 “문화예술을 통한 시장 활성화는 가능한가?”였다. 그동안 진행된 문전성시프로젝트의 시각적 장면들을 리뷰하면서 시장이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 보여주었다. 사실, 여전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문화와 예술이 전통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이다. 전통시장의 문제는 단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의 문제만이 아니라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얼개들이 꼬여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전통시장의 문제가 그야말로 시장의 기능만이 남았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물건을 사고파는 상업적 행위만을 요구받는 상황에서는 문화와 예술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은 시장이라는 하나의 난장이 펼쳐진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난장의 중심은 휴머니즘적인 가치 즉 ‘인간-관계’의 마당이다. 그러니 인간의 관계망을 형성시킬 수 있는 문화적, 예술적 전략과 실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금까지 전개된 문화예술을 통한 시장 활성화의 방향성은 그런 예술적 전략의 시험대가 아니었나 싶다. 예컨대 예술가는 이때 예술업자인지 예술디자이너인지 예술치유사인지에 대한 예술가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했고, 공공미술인지 커뮤니티아트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부분했으니까. 그런 본질적인 고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시장 활성화’라는 명분은 사업추진의 초기단계에서 주춤거리거나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섹션은 “전통시장 내 예술(가)의 역할”이었다. 이날 토론의 핵심 주제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예술가들의 정체성 문제는 문전성시프로젝트에서 풀어야할 가장 골치 아픈 과제였다. 많은 예술가들의 진정어린 토로와 간증에는 예술사업가로 질타를 받거나 스스로 예술가인가에 대한 혼란을 그들이 정말이지 어떻게 극복해왔는가의 고민들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더 어려운 문제는 그런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한 뒤에 찾아오는 지역과 시장, 시장상인들과의 관계였다. 풀어야 할 숙제들이 갑자기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것이다. 예술가가 자신을 다 잡고 뛰어드는 순간, 시장은 예술의 활기를 실험하는 실험대이기 이전에 그 지역의 그 시장의 완고한 시스템과 아집과 침묵을 설득해야만 하는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예술가의 역할을 우리는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 해결사? 광대? 업자? 아니면 진짜 예술가?

예술과 시장이 지속적으로 공존하기 위한 전략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의 기능을 다변화하면서 문화시장, 예술시장으로서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것. 옛 것을 들춰서 옛 것을 복원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옛 시장들이 가졌던 휴머니즘의 가치를 새롭게 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공동체예술로서의 시장예술은 바로 그 순간부터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