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2007) 이전에도 세대론은 있었다. 해방 직후 태어난 해방둥이들, 흔히 ‘58년 개띠’라고도 부르는 한국의 베이비부머들, 뒤이어 1990년대에 30대였고,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1960년대에 태어나 ‘386세대’로 불리게 된 이들까지, 세대론의 역사는 현대 한국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세대론은 그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전의 세대론이 역사적으로 가시화된, 즉 굳이 찾지 않아도 눈에 띄는 세대만을 거론하고 있었던 반면, 최근에는 드러나지 않던 세대들을 직접 발굴해내는 일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 세대』는 책이 나온 2007년 당시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대학에 다닐 나이지만 최저임금보다 낮은 돈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발견된 88만원 세대는 몇 년의 담론적 가공 과정을 거치며 일종의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였고, 바로 그만큼 ‘투표에 관심 없는 요즘 젊은이’들의 대명사가 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치평론가 김종배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 40대가 되어있는 386 세대와, 20대 말에서 갓 30대가 된 88만원 세대 사이에 끼어있는 또 다른 젊은 층을 찾아내고자 한다. 20대부터 40대까지의 유권자를 하나로 묶으면, 그들은 그 이후 세대와는 달리 비교적 더 진보적이고 자유분방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중 19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즉 30대 중후반을 이루는 특정한 세대는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30대 정치학』은 바로 그런 세대, 드라마 <응답하라 1997>과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잘 묘사된 것처럼, 19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1970년대생들의 정치적 실루엣을 포착해내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한국 사회가 한창 ‘3저 호황’¹⁾으로 급성장하던 시절에 사춘기를 보냈고, IMF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대학을 졸업했다.

그들은 경제적 풍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첫 번째 세대다. 그래서 그들보다 나이 많은 이들에게 ‘놀새’니 ‘X세대’니 하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지만,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당시 세상은 그들에게 너무도 험난한 곳이었다.

“최근 들어 20대의 극심한 취업난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고, 그 여파로 ‘88만원 세대’라는 호칭까지 생겨났지만 엄밀히 살피면 ‘88만원 세대’는 첫 번째 청년백수 세대가 아니다. 굳게 잠긴 취업 빗장 앞에서 무릎 꿇고 절망한 첫 세대는 ‘그들’이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하던 때에 닥친 외환위기가 청년백수 시대의 서막을 열었고, ‘그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실업대열의 맨 앞자리로 등 떠밀렸다.”(93면)

정치평론가 김종배가 30대, 혹은 1970년대생들을 ‘리모델링 세대’라고 이름붙이고 『30대 정치학』을 쓴 이유는 사실 너무도 명백하다. 한국 사회를 진보와 보수로 나누었을 때, 그들이 진보의 편에 더욱 확실하게 서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는 30대들 스스로가 자신의 성향 및 처지를 이해하기를, 그보다 더 나이 많은 세대들이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봐주기를 기대한다. 그런 기대감을 품고 저자는 수많은 여론조사 및 선거 결과 통계를 뒤지고 30대 젊은이들과의 집중적인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러므로 본인의 성향이 ‘진보’와 거리가 있다면 이 책을 읽는 일이 어느 정도 껄끄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인 색안경을 벗고 보더라도 이 책이 갖는 고유한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너무도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불과 15년 전에 우리가 역사상 유례없는 외환위기를 맞았고, 그리하여 당시의 청춘들이 실업자가 되고 또 신용불량자로 나앉았다는 것마저도 잊고 있다.

30대를 정치적으로 불러내기 위해, 그들이 겪어야 했던 쓰라린 기억을 되새기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1990년대는 <응답하라 1997>이나 <건축학개론>처럼 달콤한 추억만 가득 차있던 시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모든 기억을 온전히 껴안고 성장해나갈 때, 30대 혹은 ‘리모델링 세대’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주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