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는 놀이터를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 내부에 ‘위계와 차별, 주류의 압력과 비주류의 소외, 폭력과 범죄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으로 짚어냈다. 이렇게 산란한 곳에서 불안의 징후를 포착해 낸 9인의 작가 그리고 작가를 선별한 기획자의 매서운 시선이 놀랍다. 이제 필자는 질문을 던져야겠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파스빈더(Rainer Fassbinder, 1946~1982) 감독의 영화 제목} 영혼을 잠식한 것은 불안이다. 놀이터도 잠식했다. 징후는 전시로 드러났다. 그런데 왜? 병원에서처럼 묻고 싶다. 왜 그런가요? 선생님 무엇이 문제인가요? 불안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계몽적 성격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기획자의 변이 있었지만 질문은 가능할 것이다. 전시가, 예술이 답으로 고체화되지 않으며 수로서 즉 가능성의 갈래임을 받아 안을 때 문제적 관객의 몫은 질문 아니겠는가.

물에서 건진 물고기의 아가미가 헐떡거리듯 말하고 듣는 과정에 피가 몰리고 솟구치는데도(최수앙의 <청자>, <화자>) 오늘도 토로하고 듣길 의욕하며 곡해하는, 당장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사태는 지속 반복된다. 내가 저 충혈된 입과 손의 화자인지 피 몰린 귀의 청자인지는 물을 것도 없는 가련하고 용감한 존재일 뿐. 전시를 관람할 때까지만 해도 막연한 불안일 따름이었는데 이 글을 쓰는 시점 함부로 옮기기도 죄스럽다. 이 순간에는 정주하의 <불안, 불-안>이 차라리 사진으로 급속 동결된,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과거의 찰나라는 점이 다행일까.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로 피해를 입은 무고한 시민이 저기가 아닌 여기에 있다. 불안은 이토록 눈뜨면 가까이 다가와 있건만 바라본다는 것은 여전히 거리를 상정한다. 시야로는 포착되기 어려운 거리를 영상으로 담아낸 작업이 김상돈의 <4분간 숨을 참아라>이다. 망자의 식별표를 잡아내는 4분여는 그곳에 발길이 닿지 않는 이들에게 전하는 고발장이다. 현재적 거리감은 공성훈의 작업들에 드러난다. 멀지도 그렇다고 눈앞에 닥치지도 않은 도저한 실상이 근경이 아니라서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게 1층의 전시는 자위와 체증 사이를 오간다. 오인환의 <태극기 그리고 나>는 야릇하게 흥분시키는 신음 소리와 다소 지칠 만큼 바라봐야 하는 삼단 편집 국기로 이루어졌다. 결국 촬영자가 카메라를 놓쳤다고 하는데 역설적으로 태극기가 고꾸라지는 장면으로 끝난다. 알 수 없는 희열과 묘한 열패감이 동시적으로 다가왔다. 아르코미술관의 동선상 2층으로 이어진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아주 잠시 열을 식히게 된다. 전반적으로 2층의 전시는 1층보다 온도를 낮춘 듯하다. 김기철의 <화양>은 미묘한 소리들을 배합하여 감각의 촉수를 자극하고 임선이 작품의 고양이와 선인장은 신경을 쓸 때야 넓어지는 생활 반경에 대한 암시이다. 노충현의 <지하>, <계단>, <복도>, <거울> 등의 작품은 걸음에 따라 이전 작품이 다음 작품 감상에 기단이 되면서 심리적 고양으로 이끈다. 실내 풍경은 공모자로 가책과 지분을 나눠 갖거나 혹은 내부 고발자로서 전면으로 고립된 존재가 먹지도 잠들지도 못한 채 거하는 곳으로 비춰진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어서 사는지 죽은지 모르는 비존재가 이미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던가. <숨>이, <시계>(육태진)가 축복도 재앙도 아니었을 이 비존재가 다시 한번, 저기가 아닌 여기에 있다.

전반적으로 전시는 불안의 징후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다만 과거에 국가, 자본, 제국을 향해 치던 전선이 각개로 산재되고 은폐되어 작동함에 따라 일상을 늘 대항하며 살 수는 없는 현실의 고단함이 크다. 가해자로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는 양심은 작동하지만 피해자만은 될 수 없어 움츠리게 되는 벽 속의 존재들. 의욕과 곡해, 자위와 체증, 희열과 열패감,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면 누가 놀고 있나. 놀던 아이들은 정말 아무 걱정 없이 하나 둘 떠난 걸까. 놀이터는 있었나. 근경이 아니라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이 떠오르는 사이에 모반에 가해진 폭력을 종교적 베일로 교묘하게 가리는 토템이 짐짓 풍경처럼 놓여 있었다. 김상돈의 <불광동 토템(적) 2012>은 문득 불광동에는 무슨 일이, 싶다가도 이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고 마는 벽 속의 존재들이 보낸 평온한 날들의 순진한 믿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