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의 지위 향상과 복지 증진을 위해 제정된 예술인 복지법이 그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명박 정부 100대 국정 과제”에 포함된 ‘예술인 공제회 설립’ 과제가 기초연구, 수요조사, 심포지엄, 대토론회 등의 사전 정지 작업 끝에 2011년 11월 예술인 복지법 공포로 매듭지어진 후, 법령에서 정한 시행일자가 곧 도래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약속한 공약사업이 법이라는 제도적 기반을 갖춘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동안 지적되었던 선결 과제에 대해 이렇다 할 해법을 마련하지 못한 현재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실효적인 시행방안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연말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각 정당은 문화예술 분야를 포함해 새 정부의 국정 과제를 공약사항으로 국민에게 제시해야만 한다.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복지정책이 주요한 선거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복지국가 상(像)에 대한 정책대결의 선거공간에서 예술인 복지 또한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예술인 복지법의 핵심내용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설립하여 예술인 생활안정 지원, 예술인 복지금고 운영, 예술인 공제사업 등 예술인‘만’을 위한 다양한 사회보장 사업을 전개하라는 것이다. 현 정부가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공인하고, 예술인의 창작, 실연, 기술지원 활동에 대한 공공지원을 천명한 정신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실행의 측면에서 법안 제정의 취지가 오롯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이 요구된다. 요컨대 누가 예술인이며, 예술인 복지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얼핏, 이 질문에 대한 이해 당사자를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자’로 국한해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법의 시행을 위해서는 예술인을 구별하는 합리적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 잣대가 무엇이든 간에 핵심적인 것은 예술 활동가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모든 사람을 예술인 범주에 포함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예술인으로 선별된 사람에게는 국민이 낸 세금을 통한 복지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할 터인데, 이를 위한 예산확보 방안이 현재까지는 요원한 상태다. 예술인 복지법안을 둘러싼 이러한 난제는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뜨겁게 달구었던 무상급식 논쟁을 연상케 한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학생들의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토론이 주를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사회가 곧 직면하게 될 복지국가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었다. 이른바 ‘보편적 복지 vs. 선별적 복지’라는 진영논쟁으로까지 확대된 당시의 뜨거운 열기는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모아냈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하며, 예술인 복지정책과 관련해서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현재의 예술인 복지법은 선별적 복지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무상급식 논쟁에서 불거진 선별적 복지의 문제점이 재현될 조짐이 농후하다. 예상되는 대표적인 문제점은 정부의 시혜적 복지로 둔갑할 우려와 오도된 낙인효과이다. 먼저, 복지란 국민의 정상적인 일상 활동을 위해 교육, 주거, 의료, 노후, 육아 등에 필요한 정부의 지원을 일컫는다. 이는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의무이지 국민에 대한 선심성 혜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상급식 논쟁에서 충분히 지적되었듯이, 특정한 사회계층을 선별하고 그들에게만 선택적으로 복지예산을 지원한다는 발상은 분별과 지원의 주체가 곧 권력의 주인이 되는 위계질서를 형성하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복지는 정부의 의무보다는 시혜로 이해되며, 선택된 복지 대상자는 정부의 지원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경향이 높다. 또한 예술인을 제도적으로 선별하게 되면, 예술 활동을 한다고 스스로 판단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인 그룹에 편입되지 못한 자들이 겪게 될 오도된 낙인효과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무상급식의 선별적 시행이 경제적 약자의 개인정보를 노출하는 부작용을 낳듯이, 예술인 복지는 예술인으로 선택받지 못한 이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예상되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예술인 복지제도가 예술계 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제도적 흐름으로 볼 때, 창작 활동이 활발한 예술가 즉 상대적으로 경제적 형편이 여유로운 예술가 그룹이 예술인 복지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예술 활동의 발표 기회조차 접하기 어려운 예술가는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됨으로써, 공정한 경쟁의 기회마저 박탈당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예술인 복지법은 우리 사회가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예술인 복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예술인의 안정적인 생활여건을 보장하는 국가정책이 기초하는 철학적 준거와 그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더욱 근원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현재까지의 논의처럼 예술인을 특정 계층으로 선별하고 그들만을 위한 복지정책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생활안정을 보장하는 복지시스템 구축 차원에서 예술인 복지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복지사업이나 문화적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복지사업 등 이른바 특정한 계층을 위한 “프로젝트성 복지사업”이 확대일로에 있음에도, 우리 사회의 전반적 복지수준이 향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뼈아프기 때문이다. 2012년 복지예산 규모가 92조에 이른다는 현 정부의 발표가 있었듯이,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기존의 사랑티켓사업과 소외지역 문화순회사업 그리고 최근의 문화바우처사업 등 문화복지 예산이 꾸준히 확대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바우처사업의 경우에는 문화, 여행, 스포츠 바우처사업이 동일한 정책수요자를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사회복지 영역까지 포괄하면 ‘바우처’란 타이틀을 단 사업 개수가 10여 개가 넘는 실정이다. 이러한 바우처사업의 “난무”는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의 사업편재이지, 수요자를 배려한 복지사업으로 보기 어렵다. 바우처의 종류에 따라 별개의 카드를 발급받아야 하는 번거로움과 카드별로 사업 주관처가 달라 현장 수요자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취약계층의 복지 확대를 위한 예산 증액은 환영할 만하지만, 동일 규모의 예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중앙 및 지방정부 단위에서 집행되는 복지예산의 내용과 규모를 재구성하여, 이른바 보편적 복지 실현에 필요한 재원으로 충당할 수 있다. 보편적 복지에 소요되는 예산은 증세에 따른 추가 세수와 4대강 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에 수반되는 예산의 전용으로 확보한다는 주장이 대세이다. 이와 더불어 기존 복지예산의 재편성, 요컨대 프로젝트성 복지예산의 보편적 복지예산으로의 전환도 신중히 고려해 봄직하다. 이러한 방향에서 접근하면, 예술인의 창작과 발표활동을 지원하는 문화예술 지원체계의 획기적인 개선 또한 기대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문화예술지원사업의 효용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예술창작활동 지원금이 예술인의 생계보조비로 변용되는 관행 때문에 행정과 예술 현장의 마찰이 끊이지 않으며, 예술인도 창작에 몰입하기보다는 지원금의 적정한 집행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예술인의 생활안정 지원을 보편적 복지 시스템으로 구현하고, 예술창작에 따른 지원은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예술지원 패러다임을 기획해 보자는 것이다. 복지 선진국이라는 유럽의 모델에서 실현된 선행 사례가 있기에,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과 연계하여 예술인 복지를 새롭게 구상하는 것도 담론수준에서만 그칠 일은 아니다.
#저자 약력
許恩光 1972년 서울생. 인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최근 글로 「보이지 않는 진실의 창」, 「참여 다큐멘터리 장르 연구」 등. ekhuh@ifa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