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처럼 섬이 뜨겁게 주목을 끌었던 때도 없었다. 섬을 둘러싼 분쟁이 동아시아 해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도와[일본명 다케시마(竹島)]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디아오위다오(釣魚島), 타이완명 디아오위타이(釣魚台)]가 분쟁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섬이 주목을 끈 배경에는 해양 영유권을 둘러싼 영토내셔널리즘도 한몫하지만 세계 2차 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두고 가해와 피해가 뒤섞인 불행한 근대사를 공유하고 있는 동아시아가 여전히 문제적인 지역이라는 데 있다. 마치 전후 미봉합되었던 판도라 상자가 일거에 열리듯 복잡하다.

섬을 둘러싼 분쟁으로 뜨거운 동아시아

얼마 전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의미 있는 모임이 있었다. 인천섬연구모임이 발족을 한 것이다. 이 첫 모임에서는 인천 섬들이 갖고 있는 자연생태•인문적 가치가 논의되었다. 발족식 후 가진 뒤풀이 자리에서 대청도(大靑島)에서 왔다는 참가자는 고래며 홍어가 지천으로 잡히던 시절을 얘기하며 흥을 돋웠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한 조류연구자의 전언이었는데, 문갑도(文甲島)에 100여 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뜻밖의 사실에 넋이 나갔다. 한 섬에서만 관찰된 표본 수도 대단하지만, 그 자리에서 불현 우리의 영혼 속에 과연 얼마나 많은 종의 다양성이 있는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무관심의 영역으로 존재해왔던 인천 섬에 대한 참가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열정이 새삼 놀라웠다.

사실 이 모임의 결성배경에는 인천 섬들에 닥친 위기가 있다. 굴업도 핵폐기장(1994)에 이어 골프장 건설 논란은 기존에 가져왔던 섬의 사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충분했다. 98.5%의 섬 사유화가 의미하는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즉 재벌자본이 섬을 멋대로 파헤칠 수 있다는 위험성과 함께 섬의 입도(入島)는 물론이고 그 주변 해역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우리에게 이미 물치섬(勿淄島)으로 불린 작약도(芍藥島)를 보면 섬 사유화가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섬의 공공성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눈을 뜨게 했던 것이다.

육지적 관점에서 보자면 언뜻 소유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사유재산을 침범하는 일로 보여 재산권 논란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섬은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개발로 인하여 영겁의 세월이 빚어낸 된 비경과 자연생태가 일거에 파괴될 수 있는 것도 큰 문제지만 섬과 맞닿아 있는 공유수면과 주변 일대 해양까지 소유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섬에서 대대로 생계를 이어온 주민들의 정주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또한 인근 섬에까지 연쇄적인 파급력을 미칠 것이 명약하다. 뒤늦은 심회는 섬은 일방이건 타방이건 독점적 소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즉 섬을 비사유화(非私有化)의 대상으로 사유하자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만큼 동아시아가 침잠하게 다가온 때도 없다. 태풍처럼 거세게 육박해 오는 영토분쟁은 마치 블랙홀처럼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한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는 단호한 자국 중심의 민족주의 발호는 대안적 사유의 모색을 난망하게 한다. 공존의 삶을 위협하는 핵 원전 위기를 맞아 모처럼 자성의 목소리로 터져 나온 일본 시민들의 합창도 모두 암전될 운명에 놓여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정작 이 양국의 극단적인 영토분쟁은 극악적인 상황으로 치달아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오늘날 동아시아는 여전히 잠복된 문제로 세계적인 발언의 진원지가 되어가고 있다. 영토분쟁이 가속화되면서 동아시아는 지금 불행한 근대사를 재차 복기(復碁)해야 할 판이다. 전후에 미봉책으로 덮어놓은 영토분쟁의 분출이 동아시아의 지혜를 호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혜안은 없는가? 민족주의의 극단적인 목소리도, 실효적인 지배로 인한 영토 주권의 강박도 모두 복잡하게 꼬인 동아시아의 분쟁의 간극을 메울 대안은 아니다. 공해를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비사유화의 길을 모색함으로써 분쟁의 씨앗을 먼 후일로 유보하는 방안도 있다.

날선 공방과 불편한 동거가 지속되고 있는 이때 ‘평화’의 소리가 들린다. 때마침 ‘평화’라는 키워드로 경기도미술관에서 DMZ평화미술책프로젝트 <겨울 겨울 겨울, 봄>(2012.9.19~11.25)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제2회 인천 평화 미술프로젝트 <평화의 바다_물위의 경계>(2012.9.21~11.25)가 열렸다.

평화라는 외침과 ‘사이’의 공유

작년에 이어 개최되는 <평화의 바다_물위의 경계>는 인천 앞바다의 섬과 바다를 통해 침통하게 ‘평화’를 사유한다. 그동안 인천을 인천답게 하는 정체성에 섬과 바다는 빠져 있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럽게 육지 중심의 공간인식을 새롭게 재구축함으로써 접경구역인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는 평화의 바다를 꿈꾸는 서해5도가 여전히 휴전 상태의 분쟁 지역이라는 데 있다. 언제든지 분쟁은 휴전을 깨고 전쟁으로 격화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내장되어 있다. 남북은 NLL를 분쟁 지역화 함으로써 쌍방의 실효적 지배를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 이 지역이 한반도의 분쟁의 화약고가 되는 이유이다.

“서해에는 아직도 선(線)이 있다.” “평화에 대한 거부가 내장된 ‘한 쌍의 분단국가’를 넘어 일체의 적대행위가 종식된 영구평화의 공화국, 그 ‘목적의 나라’로 출범하는 멋진 항해” 1)를 알리는 선언은 그래서 종요롭다. 따라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노래하는 <겨울 겨울 겨울, 봄>과 <평화의 바다_물위의 경계> 전시회의 의미는 남다르다. 현대사의 가장 극단을 경험하고 있는 한반도의 배꼽인 서해5도와 동아시아의 공동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려는 한•중•일 작가들이 뜻을 모아 연 전시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메시지로 연 전시는 분단체제와 동아시아의 비극적 역사에 주목하고 있다. 장소성과 역사성이라는 두 개의 축을 결합시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려 한다.

두 전시는 우리에게 ‘사이’를 생각하게 한다. 남과 북, DMZ,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한•중•일이 맞닿아 있는 동아시아는 공통의 상처를 안고 있다.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대립적 형국에서 평화는 요원하다.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극우적 이념의 확산이 얼마나 많은 민중의 기억 속에 고통을 주는지, 그리고 여전히 현재라는 것을 응변하고 있다.

한•중•일은 끊을 수 없는 ‘사이’로 존재하는 ‘관계’이다. 역사와 역사, 사람과 역사 사이의 다양한 층위의 사이가 존재하는 만큼 이 사이를 좁힐 수 있는 ‘고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서해5도의 섬과 바다, DMZ, 일본군 위안부, 난징(南京) 대학살 등에서 ‘평화’를 발견하겠다는 이 무모한 도전은 요긴하다. 연평도 포격이나 NLL 지역의 긴장 고조 등 분단의 고통이 여전히 진행 중인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걷다보면 평화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 평화를 바라는 요구는 동아시아의 평화이자 전지구적 평화의 보루라는 점에서 작지만 큰 울림을 준다. 평화는 깨기는 쉽지만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더욱 절박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생존을 넘어 인간애의 세계사적인 구현이기에 평화는 곧 생존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동아시아에서 평화의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가와 이어져 있다. 마침 섬을 둘러싼 영토분쟁을 지켜보는 한•일 양국의 양심적 지식인들의 선언은 감동적이다.2) 여기로부터 아시아의 ‘다른 세상’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평화의 바다_물위의 경계>와 ‘과거를 정직하게 기록하고 현재의 아픔을 공유하며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연대하자’는 모토를 내건 한•중•일 작가들의 합창인 <겨울 겨울 겨울, 봄> 개최는 큰 틀로 보자면 동아시아에 봄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이다. 작은 ‘고리’ 하나를 연결하는 것이다. 긴 겨울 끝에 오는 봄처럼 분단과 전쟁을 끝내고 평화의 연대가 씨실과 날실로 직조됨으로써 깨어있는 목소리들의 합창에 뜨거운 혀를 다는 일이다.

2013년은 정전(停戰) 60년을 맞는 해이다. 정전이라는 말에는 늘 분단체제의 냉기가 느껴진다. 한반도는 아직 휴전 상태라는 뜻이다. 언제든지 살생이 가능하다는 것만큼 반인간적인 공포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절실한 것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분쟁 반대, 평화 구축’을 외치는 것이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이’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한•중•일, 남과 북, 육지와 바다의 사이를 잇는 아름다운 연동(連動)을 꿈꾸는 것은 그러므로 시작이다. 아마도 동아시아 연동의 시작은 한반도에서 정전을 평화로, 분쟁에서 화해의 가교로 가는 아시아인들의 연대와도 깊이 관련이 있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동아시아의 아픈 과거를 공유하는 깨어있는 시민들만이 분쟁을 평화의 연동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