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교를 건너는 차 속의 사람들

도시의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각기 자신이 향하는 곳으로 차를 운전하는 사람과 그와 함께 그 길을 떠난 각각의 이유가 동승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많은 동행은 각기 어떤 이유를 갖고 있겠지요.

요즘 인천 동구 송현동의 한 한옥에 위치한 퍼포먼스 반지하의 앞에는 거의 매일 조합원을 포함한 공공예술작업자들이 모여 작은 섬에서 이뤄지는 공공예술작업에 필요한 재료들과 함께 차를 타고 해안도로와 인천대교를 건너 우리가 살지 않는 섬으로 출근합니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작업자들은 섬의 작업이야기도 하지만, 각자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 지나가는 차에 관한 이야기, 지나쳐가는 공장과 아파트와 바다와 갯벌에 관해 이야기들을 합니다. 때론 전날 나라를 뒤집어 놓은 정치 비리와 성폭력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권력의 폭력성과 피 권력자들의 폭력성이 뒤섞여 가장 연약한 이들이 피해를 입는 일들에 대하여 어떤 정리를 시도하지 못한 채 미디어가 전하는 관점과 닮은 논조로 뉴스 속 죄인에게 이 모든 잘못을 돌리는 이야기들이 오가기도 하지요.

TV와 인터넷의 선정적인 뉴스가 다음날 많은 시민의 일상에서 전파되고 복제되리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이 상황을 스스로부터 극복하지 못하고 종속됩니다. 인천공항으로 가지 않으면서도 인천대교를 건너고 있는 우리의 사연을 다른 차들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다른 차들이 어떤 사연으로 우리와 같은 시간에 같은 도로를 질주하는지 관심을 가질 이유 내지 여유는 이 시간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몇 년간 함께 일하여 온 이웃이자 동료들이 공공예술의 전도를 위해 이동하는 동안 나누는 대화에서 한 사람씩의 생각을 존중해야 하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차안에 갇힌 답답함이 차오를 때가 있습니다. 이 작은 모임에서도 오늘 출발 전에 어떤 준비가 있었는지, 우리는 왜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심화시키는 활동은 빈약합니다.

왜냐면, 우리의 삶은 너무 가난하고 너무 바쁘며 스스로의 삶과 인간의 사회를 통찰하는 방법에 대해 너무 늦게 배워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활협동조합 반지하(가칭)에 모이는 사람들

지난 3월 퍼포먼스 반지하는 5년간의 인천 동구 창영동의 마을활동을 정리하고, 옆 동네인 송현동의 빈 한옥을 보증금 300만원에 월 10만원의 세를 얻어 이사했습니다.

오래되었고 집 뼈대의 일부가 조금 기울기도 한 집이라 지난 5년간 아무도 이 집에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 45일간 조합원들의 힘을 모아 수리한 집은 지금은 나름 한옥의 운치와 골목 안쪽에 위치한 고요를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평일에는 공공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조합원들과 작가들의 사무실로 쓰이고, 일주일에 하루는 모임참가자에서 조합원으로 변신한 엄마들의 모임이 열리고, 가끔은 퍼포먼스 반지하를 추억하는 분들의 방문과 외부의 요청으로 ‘지역공동체 문화운동’에 관한 강의가 이뤄지기도 하지요.

상근자들의 문화운동단체에서 ‘생활문화협동조합’으로 형태와 운영방식의 변화를 겪고 있는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은 단연 ‘엄마조합원’들입니다. 이분들은 지난 반지하의 지역주민학습모임이었던 ‘지구와 마을을 살리는 엄마’ 모임의 구성원들이었고, 최근에는 지난 교육수료자와 인근의 지역문화 활동을 진행 중인 엄마들이 추가로 참여하여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의 엄마들이 올해 진행한 활동은 이사한 동네를 둘러보고, 각자의 생애사에 관한 발표와 대화를 나누고 최근에는 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엄마들은 모임이 있는 날 한옥에 오면 청소부터 시작합니다. 자신이 어질러 놓은 것이 아니라도 폐품을 모으고, 전기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한 후, 각자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과 안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들은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조합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프로젝트들과 앞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조합의 활동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 모임에 참가 중인 조합원들은 매달 조합비를 내고 있고, 이 새롭고 어색한 활동이 앞으로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담은 자발적 활동이자 함께하는 이들과의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모임이 되길 기대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억압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전하는 엄마들의 사유와 철학이 담긴 활동을 만들어 가는 중이지요. 조합원 각각의 협동조합에 대한 기대는 홈페이지의 게시판을 통해 혼자의 말처럼 쓰이고, 댓글을 통해 소통될 때도 있습니다.

조합으로 바뀌고 좋은 점은 더는 젊은 후배들에게 내 생각을 주입하지 않아도 되고,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삶에 관한 대화와 공동 작업장을 형성할 수 있으며, 특히 그런 ‘엄마’들의 삶의 시간들이 담겨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저도 내 삶에 대해 생각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이지요.

조합을 하고자 했던 바람

나와 이웃들은 불편합니다. 제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꿈은, 먹고 사는 걱정을 덜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이웃들과 공존하는 시간을 맞이하는 것인데 현실 속에서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먹고 사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중요하지요. 먹고 살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아침부터 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마을의 장년실업자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문화노동자들에게도, 정규직 직장을 다니는 부모들의 자녀에게도 엄습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과 정당한 노동으로 자아정체성과 생계의 문제를 성취하는 삶의 방식보다는 금융자본과 대기업의 가족들로 집중되는 경제체제를 지탱하는 노예노동의 일반화를 겪고 있어 스스로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고 책임지며 이웃과의 공존을 이해하고 수행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자본의 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소비쾌락을 보장받기 위해 협력하는 이웃들을 이용하고 선배들의 노고를 도용하고 철학적 학습과 사유를 무용한 것으로 치부합니다.

이 신자유주의 시대는 지금 가난을 키웠고 고독과 노예노동을 확대해왔고, 이 사회의 모든 이들의 영혼을 파괴했습니다. 매일 언론들에서는 이런 환경과 사회폭력의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이들의 일부가 일으키는 반사회적 범죄들의 모든 책임을 그의 것으로 돌리는 다수의 목소리에 동승하며 자신은 올바른 정신과 삶의 태도를 지녔다고 신념하고 있는 상태는 스스로의 파괴를 인식하지 못하고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갑니다.

지난 퍼포먼스 반지하의 지역문화운동의 철학은 여기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지금의 생활문화협동조합 구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조직성이 강한 문화운동 단체에서 생활조합의 형태로의 변화는 단체와 사업의 시스템이 강조되어 각각의 사람들이 조명하지 않았던 대안운동의 형태적 문제를 수정하고자 하였습니다. 이곳의 엄마들처럼 스스로 살아가고 있음과 그것을 이웃들과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살아나야 합니다. 각자가 단독된 존재임을 확인하는 과정을 형성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아닌 거대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존재적 가치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야할 길

“자동차는 운전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야 잘 달리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가 한 연극에서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비싼 차가 선호되고 자신의 삶의 성찰보다 타인의 삶을 쫓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에 전하는 단독된 사람으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본질은 자유다.” 박경리의 말입니다. 저에게도 부인이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문화운동을 진행하고 있어 좋습니다. 저에게 두 딸이 있습니다. 난 이 아이들이 이 사회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타인들이 그들의 삶을 살아가도록 조력하길 바랍니다. 저는 조합원이자 저의 삶을 살아낼 것입니다. 그리고 타인들도 그렇게 삶을 살아내길 바랄 것이고 우린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런 사회를 이루는 꿈을 지역문화운동으로 실천하여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