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교 다이얼로그(朝鮮學校ダイアロ一グ)>는 오카야마(岡山)현 오카야마시 교외에 위치한 구 오카야마 조선초중급학교 건물을 이용한 아트 프로젝트로, 재일코리안 젊은이들,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 현 내외의 예술가 및 사회학자들이 다이얼로그=대화를 통해서 또 하나의 ‘우리 동네’를 그려내는 시도이다.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와 학자들의 자료 전시, 심포지엄 등으로 구성된 이 프로젝트는 2010년에 시작되어 올 가을 3회째 개최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조선학교와 일본 사회와의 문화적인 교류로서 조선학교 학생들이 주최하는 회화전 등이 열려 왔지만, 조선학교 교사를 이용하여 현대 미술을 시도한 것은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도쿄나 오사카 등의 대도시가 아닌 오카야마라는 지방도시에서, 그것도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닌 조선학교라는 (많은 일본인들에) 특수한 장소에서 현대 미술을 중심으로 한 아트 프로젝트를 개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른다. 지금도 외국인이 다수 모여 거주하는 지역이 존재하는 대도시와는 달리 재개발 및 도시의 교외화에 따라 이러한 지역이 거의 소멸된 오카야마에서는, 재일코리안에 관한 인식이 희박하며 또 조선학교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행사라고 하면 먼저 몸이 움츠러드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대도시권과 같이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서 현대 미술을 뒷받침하는 문화적 기반 역시 부족하다.

물론 이러한 어려움들은, 뒤집어서 말하면 지금까지는 재일코리안에 관심이 없었던 일본인들이 조선학교의 문틈을 통과하는 경험 자체가 큰 의의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술가의 감성을 접함으로써 일본인과 재일코리안이 함께 사는 동네의 모습을 다시금 그려낼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필자는 기획 스태프 중 한 사람으로서, 이 행사를 운영하면서 느낀 가능성과 어려움을 소개하고자 한다.

또 하나의 우리 동네를 상상한다는 것

구 오카야마 조선초중급학교는 1974년 오카야마시 중심가에 위치했던 목조 교사가 협소해진 관계로 교외 후지타(藤田)로 이전하면서 설립되었다. 그 후 2000년 학생 수가 감소하는 등의 문제로 인해 초중급부를 구라사키(倉數) 조선초중급학교(현 오카야마 조선초중급학교)와 통합하여, 현재는 유치원만 운영되고 있다. 옛 교사에서 아트 프로젝트가 열리게 된 경위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에 호주에서의 연구 생활을 마치고 고향 오카야마의 대학에 취직한 사회학자 가와바타 고헤이(川端浩平)와 현장에서 조사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재일코리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다이얼로그 오카야마라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월 1회 정도의 정기 모임과 함께 매년 1회의 문화 행사, 축구 시합 등이 기획되어 왔는데, 평소 좋은 관계였다고는 말할 수 없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총련), 그리고 각각에 속한 젊은이들(과 일본인들)이 모이게 된 데에는 남북회담 및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 등으로 인해 조성된 융화적인 분위기가 배경으로 작용한 듯 보인다.

3년 전, 다른 현의 대학원에서의 연구를 끝내고 오카야마로 돌아온 필자는 동기의 권유로 이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재일코리안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모임에 깊이 관여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먼저, 필자를 포함한 멤버의 다수가 오카야마 출신이기는 하나 대학 및 취직 등을 다른 현이나 해외에서 보낸 ‘U턴 귀향’이라는 점이다. 이 점이 출신 지역에 대한 애착을 가지면서도 ‘외부의 시각’으로 거리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이전에 지역 신문기자였던 한 멤버는 미즈시마(水島)^{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 중남부에 위치한 중심 지역}의 조선학교를 취재했을 때 서로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것 같은 ‘보이지 않는 벽’을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일본계 이민 신문의 기자로 일하면서 왜 재일코리안들이 강한 동포의식을 갖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곧, 한번 이국땅에서 자신이 소수자의 처지에 놓이는 것을 계기로 지역의 다양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모임의 매력은 동질성을 암암리에 전제로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방도시에서, 고이기 쉬운 방에 창문을 열어 신선한 외부의 공기를 불어넣는다는 점에 있다.

그 후, 에치고츠마리아트트리엔날레(越後妻有ア一トトリエンナ一レ)일본 최대의 예술제를 관람한 멤버 중 하나가 ‘조선학교의 빈 교실을 이용해서 전시회를 할 수 없을까?’라고 제안하여, <조선학교 다이얼로그>를 개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프로젝트에 붙은 부제, “또 하나의 우리 동네를 위한 ‘기억’과 ‘풍경’의 아트 프로젝트”는 예술가들의 감성을 통해서 가까이 있는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기르고, 지역=동네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계기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다.

예술가들은 무엇을 표현했는가?

2010년(제1회)에 열린 심포지엄에서 다큐멘터리 작가인 혼다 다카요시(本田孝義)가 던진 질문 ‘후지타 지역 사람들은 조선학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는 이후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질문에 충분히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에 행사가 끝난 뒤 조선학교의 전 교장선생님 및 지역 주민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조선학교와 주위의 초/중학교, 지역 주민과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교류는 수많은 에피소드 중 하나이며, 그 지역 전체가 우호적인 분위기였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필자의 인상에 남은 것은 교류를 중심적으로 이끈 일본인이 2차 대전 이전에 한반도에 이주해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귀환자였다는 사실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분이 이미 타계하신 관계로 직접 생각을 여쭈어 보지는 못했지만, 언뜻 보면 거대한 역사와는 분리되어 있는 듯 보이는 교외의 풍경 안에도 그곳에서 사는 개개인의 기억에는 역사의 잔향이 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묻혀가고 있는 실낱같은 기억을 되짚어 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다.

2011년에는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이전에 교류가 있었던 일본인 초등학교의 전 교장선생님과 조선학교의 전 교장선생님과의 대담이 이루어졌다. 또한, 전 해에 객석에서 질문을 던졌던 혼다 다카요시는 인터뷰에 응답해 준 지역 주민과 졸업생 양 측이 조선학교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교실 안으로 투영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일상에서 서로 포개진 적이 없었던 두 줄기의 기억을 교차시켰다. 또한 조선학교 마지막 졸업생인 릉미(るんみ, 林綾美)는 재일코리안 및 조선학교 등에 관한 영상 작품을 출품했으며, 성준남(Song Jun-Nam)은 여학생의 교복인 치마저고리와, 옥상에 있는 녹슨 책상을 색동 무늬로 색칠한 두 개의 작품을 출품했다. 한반도의 전통 색이 논에 비친 초록과 대비를 이루는 탁 트인 느낌을 가진 후자의 작품은 일본 사회에서 민족의상을 걸친 여학생들에게 쏟아지는 시선의 날카로움을 느끼게 하는 전자의 작품과 대조를 이루어,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심상 풍경의 양의성을 인상 깊게 표현하고 있다. 또 마나베 고이치(眞部剛一)는 재일코리안 2세와 3세의 대화를 물의 파문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올해는 제3회째 행사(2012.11.3~ 11.11)가 열리게 된다. 작년에 이어서 참가하는 시미즈 나오토(淸水直人)의 작품은 일본의 국조인 꿩이 모티브이다. 국조로서 지폐에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림책 등에 묘사된 일본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꿩은 목에 하얀 줄이 들어간, 즉 한반도에 서식하고 있는 꿩이다. 원래 이 기획과는 별도로 민족주의를 주제로 한 꿩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던 시미즈는 개인적으로 입수한 꿩 박제가 실은 조선 꿩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작품 제작의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학교의 교사로 잘못 들어온 일본 꿩이 조선 꿩과 뒤섞이는 이 작품은, 다수자와 소수자 간의 입장을 반전시키는 동시에 고정된 이미지가 가지는 경계가 얼마나 애매한 것인지 유머를 담아 고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성준남은 자기 작품과 함께 현 조선초중급학교 학생과의 워크숍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의 학교를 연결할 것이다. 마나베 고이치는 2차 대전 후 재일코리안의 수입원이었던 밀조주인 도부로쿠(どぶろく)의 기억을 바탕으로 작업할 예정이다. 또한, 이번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무용가 구민화(具民和)는 신체미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이러한 시도가 가지는 가능성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대해서도 언급해야겠다. 작년에 열린 심포지엄 중에 총련 소속인 초기 멤버 한 명은 조선학교를 개최지로 이용하고 있으면서 “조선학교를 둘러싼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은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다이얼로그란 타이틀에서 화자는 누구인가, 대화를 구성하는 조건부터 성립되어 있지 않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또한 밀조주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한 일본인 멤버가 ‘안 좋은 기억을 들추어내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라는 의문을 제기해 논쟁이 되었다. 이처럼 멤버 내부에서도 예술이라는 표현 방식에 대해 공통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고는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이해가 하나의 형태가 아니라는 것은, 아무도 표현한 일이 없는 영역에 도전한다고 할 때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야 한다. 확실히 예술가가 재일코리안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안이한 작업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학교 다이얼로그>에 의한 많은 작업들이 기존의 이미지나 말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틀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라면, 예술가의 표현은 정치적인 문제를 회피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존의 정치적인 담론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접근 및 상상력의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길이 될 것이다. 예술가 개인의 표현과 있는 그대로 맞닥뜨려, 끈질기게 응답해 가는 것. 이러한 다이얼로그를 오랫동안 계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