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LA)의 밤도 홍콩의 밤처럼 맛있을까?”

나의 대답은 ‘아니요.’ 엘에이의 밤은 바람 든 무처럼 서걱서걱 ‘맛대가리’가 없다. 홍콩의 밤은 항상 맛있었다. 서울의 밤도, 방콕의 밤도, 타이베이의 밤도 늘 맛있었다. 왜냐하면, 현지 야시장에 가면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양한 길거리 음식들을 밤에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엘에이의 밤도 맛있어지고 있다.

아시아 야시장을 테마로한 ‘626 나이트 마켓(Night Market)’은 올해 4월, 패사디나(Pasadena, Greater LA area)에서 처음 그 문을 열었다. 타이완계 미국인인 주최자 조니 황(Jonny Hwang)은 그가 살고 있는 산 가브리엘 밸리(San Gabriel Vally)의 밤 문화와 아시아의 정서를 앤젤리노(Angelino,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사람은 그들 스스로를 엔젤리노라 부른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타이베이, 베이징, 방콕 등 큰 도시의 명소인 야시장을 엘에이에 세운다면 지역 문화와 상권을 발전시키면서 이와 동시에 이민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조니 황은 애초에 이 마켓을 단발성 행사로 계획하였지만 이후 긍정적인 피드백과 첫 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정비하여 7월, 두 번째 626 나이트 마켓을 주최하였다.

이 날 행사에서는 베트남식 비빔국수, 튀긴 돼지 귀, 용수염 캔디, 타이완식 덤플링, 양꼬치, 오징어 구이, 처우더우푸(臭豆腐, 썩은 두부), 닭 모래집 타코, 인도네시아식 볶음면, 보바티(버블티), 만화 캐릭터 티셔츠, 액세서리, 힙합 배틀, 댄스 공연 등 먹거리, 볼거리가 패사디나 시청 앞 거리를 가득 메웠다. 4천 명 이상이 몰리면서 일대 교통이 마비되었고, 예상치 못한 인파로 주최 측과 마켓 행사에 참여한 상점들은 준비한 음식과 물건들이 일찍이 동나는 바람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626 나이트 마켓은 성공적이었다.

더불어 마켓과 관련된 내용이 <로스앤젤레스 타임즈Los Angeles Times> 문화면에 실리고,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에서 이 날의 사진과 동영상이 퍼지면서 행사 이후 더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그리고 숫자 ‘626’은 엘에이에서 가장 뜨거운 숫자가 되었다.

미국의 지역번호는 한국의 지역번호와는 달리, 대단위 행정구역에 따라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인구의 밀집도와 위치에 따라 정해진다. 또한 통신사의 구별 없이 유선과 무선 모두 지역번호를 갖는다. 미국에서는 누군가를 만나 통성명하고, 연락처를 교환해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되면 어렵지 않게 그 상대방이 사는 지역과 출신 배경을 예상할 수 있다. 더불어 만약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더라도 그의 인종(ethnicity)까지도 예상할 수 있다. 특히 다인종•다문화의 대표적인 미국 도시인 엘에이에서 지역번호는 단순하게 전화번호 앞자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출신 배경, 인종까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세 자리 숫자이다.

626는 엘에이의 동쪽에 위치한 산 가브리엘 밸리의 지역번호이다. 가장 최근 미국 인구조서 결과(2010)에 따르면 엘에이 카운티에 살고 있는 아시아인의 숫자는 약 113만 명이 넘으며, 그 중 중국계 미국인은 약 47만 명이 넘는다. 카운티 중에서도 산 가브리엘 밸리에는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중국계 미국인이 살고 있으며,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홍콩계, 타이완계, 한국계, 베트남계 미국인이 분포해 있다. 또한 도심과 할리우드에서 불과 2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 주요 지점과 주류 문화의 접근이 쉬워 이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도시와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산 가브리엘 밸리에 사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대부분 이민 1세대를 거쳐 현재 3세대를 이어 오고 있으며, 그들만의 독특한 이민자 문화를 이 지역 내에서 유지해 나가고 있다. 수많은 음식점과 상점, 은행, 여행사, 학교들은 그곳이 마치 중국, 타이완, 홍콩인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본토의 모습의 담고 있다. 이 지역에 사는 이민자 2, 3세대들은 이민 1세대들이 짊어졌던 치열한 삶의 무게와 압박으로부터는 한결 가벼워진 듯 보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주류에 귀속되기는 어려운 정체성의 문제, 언어로 인한 1세대와의 소통 부재, 국적은 미국인이나 때로는 이방인, 비주류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 등의 이유로 ‘그들만의 리그’처럼 자신들의 공간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626이 엘에이에서 가장 ‘핫’한 지역번호가 되면서 산 가브리엘 밸리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 행사 이후로, 산 가브리엘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앞으로 진행될 행사에 참여하고, 홍보에 열의를 올리며 626 나이트 마켓이 지속될 수 있도록 바탕을 마련하였다. 또한 그들 스스로에 사회적 네트워크 체계의 힘을 부여하면서 ‘아시안(Asian)’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오히려 타 지역민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와 상품 그리고 열정을 선보이려 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수익까지 생기고 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산 가브리엘 밸리는 ‘차이나타운’의 구닥다리 이미지를 벗고, 힙(hip)하고 젊고 뜨거운 ‘뉴 아시안타운’으로 거듭나고 있다. 마켓의 주최자뿐만 아니라 많은 엘에이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이 행사가 그들을 대표할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0월 20일과 21일, 626 나이트 마켓의 세 번째 시장이 열렸다. 150개가 넘는 상점이 자리를 잡고 이틀간 팔 음식과 물건들을 준비하였다. 이 행사가 단순한 지역행사를 넘어서 하나의 큰 문화행사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영향이 컸다. 행사 전에 이미 626 나이트 마켓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당일에 팔릴 음식 사진, 코멘트 그리고 10,000개가 넘는 ‘좋아요’로 들썩들썩 거렸다. 이날 마켓에는 마치 ‘너희는 이런 거 없지?’라고 약 올리듯이 독특하고 흥미로운 음식과 물건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엘에이는 626 나이트 마켓을 통해 어느 아시아 현지의 유명한 야시장보다 힙하고, 뜨겁고, 맛있어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