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느낌 좋은 집에 대한 이야기다. 120년이 넘었다는 집의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새로이 리모델링한 집의 표면은 반짝반짝 윤기가 흐른다. 사람이나 집이나 손보기 나름이란 생각이 끼어든다. 보수 전까지 보아왔던 빛바랜 집의 몰골은 이내 기억해내려는 자의 공간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본의 아니게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는 이 집의 근 과거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아카이브가 되었다.

개항장 인천을 품었던 근대의 낯선 풍경이 오늘날엔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간다. 상식적으론 날선 풍경이라야 맞을 터인데 말이다. 이 집이 그렇다. 개항기로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인천항을 주 무대로 하역업을 했던 전형적인 일본의 점포(사무소)형 주택의 공간구조가 남아 있는 희귀성이 이 집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이유로 등장한다.

비화는 언제나처럼 발굴의 형식을 빌릴 때 보다 흥미롭다. 이 집이 지금의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과정이 극적이고, 이 새로운 주인이 마치 오래전부터 이 집과 인연이 닿으려고 했던 것인 양 동네 문화재 지킴이 교육 시민단체의 주역이었다는 점이 유쾌하다. 백영임[카페 팟알(Cafe pot.R) 공동대표] 이야기다.

더욱이 인천의 근대건축을 독자적 사관에 입각하여 연구해오고 있는 지역 소장학자는 여러 물증을 대조하여 이 집의 최초 건립 시점을 종전의 기록에서 대략 40년 앞당긴 1880년대 말~1890년대 초에 위치시킨다. 학자이기 때문에 새로 발견한 집의 연대기에서 기쁨이 배가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손장원(재능대 교수) 이야기다.

이전 집주인과 백영임의 중매역할을 하며 이 집의 내력을 추적해 내려가던 손 교수는 이 집의 가치를 고증하며 복원의 잣대로 설계의 방향을 몰아갔는데 그 의지를 떠맡아줄 마땅한 임자를 만나기까지 애로가 컸던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숨은 보석과 같은 인테리어 건축가와 만나게 되고 오래된 집을 다룰 줄 아는 그와의 교감을 통해 작금의 집을 완성했다. 그의 블로그(http://blog.naver.com/goodhaus2002)에 담긴 공사일지는 너무도 정치하다. 오장연(굿하우스 대표)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하역회사의 사무소(1충)와 주택(2, 3층)으로 사용되었던 집은 해방공간과 이후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일부 고쳐서 쓰게 되지만 인근의 유사 점포주택들이 한국전쟁 당시 화마에 희생당할 때조차 거뜬히 자리를 지켜 옴으로써 당시의 공간적 특징을 비교적 고스란히 유지해온 정가(町家, 마치야)로 점포 주택사를 연구하기에 맞춤하다고 손장원은 평가한다. 이는 이 집이 전격적인 리모델링을 피하고 원형에 가까운 재현의 수법을 도입하게 되는 까닭이 된다.

손장원의 ‘의견서’ 지문은 각별하다. 건물의 전체적인 외형은 사진엽서를 근거로 건축 당시인 19세기 일본식 건축물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했는데, 대표적으로 건물 정면의 베란다를 철거하고 일본식 기와지붕을 올린 눈썹지붕을 설치하였고, 건물 전면의 계단과 현관 지붕을 그대로 유지하며, 마치야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좁고 긴 통로(通り)와 점포(みせ)의 형태를 고수했다. 특히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던 2, 3층은 다다미방을 계속 유지하며, 2층에 설치되었던 도코노마(床の間, 방 한쪽을 높게 하고 벽에는 서화, 바닥에는 꽃병 등으로 장식한 곳)를 재현하여 일본 주택의 특징을 살리고자 의도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집은 재래 일식 도시형 상가주택의 유형을 띤 근린생활시설 겸 주택으로 재생되었다. 수년 전 중구청이 인근에 조성하여 비판의 표적이 되었던 ‘일본풍 가로’ 풍경의 종결자인 양 재현의 가치를 앞세운 이 집이 이 동네를 경험하고자 모여드는 수많은 건축동선의 쉼터이자 핵심공간으로 급부상하고 있음은 근대풍경을 상품화하여 관광 자원화하려는 행정당국의 구성원들에게 이례적 사건으로 자극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1층의 옛 점포와 부엌을 하나의 연속공간으로 개조하여 현대 감각에 조화되게 만든 카페의 공간구성과 인테리어 요소로 드러낸 속살은 그 자체로 오랜 시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내벽 한 장을 경계로 좁고 긴 통로 벽면에 설치된 전시물은 무척 소담스럽게 이 집의 이력을 전달해주는 안내판으로도 제격이다. 집이 통째로 말하고, 말을 걸어온다. 졸지에 이 집의 손님들은 근대의 건축공간을 공부한다. 발상이 좋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일본조계지 점포형 주택의 원형을 이 시대에 맞이하게 됨은 특별한 경험이다. 적어도 근대건축 연구자와 답사자들에게는 그 느낌이 더할 것이다. 근래 일본인 관광객들까지 이 집의 내러티브 건축공간을 찾아 방문하는 횟수가 부쩍 증가했다고 하는 걸 보면 괜찮은 도시재생의 건축기획임이 틀림없다. 그 안에 수집, 전시, 판매되는 일본 생활문화의 파편들까지 온전히 ‘일식 집 되기’ 혐의를 물을 수 있는 물건들이 더해지면서 이 집, 카페 팟알은 내용적으로 나날이 탄탄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좋은 면만 보이는 건 아니다. 2~3층 주택으로의 기능회복에도 불구하고 다다미방으로의 활용은 현재적이지 못하다. 당시의 재래 일식 주택이 가족 본위의 공간이기 보다 접객 공간으로서의 방의 구성이라는 특징을 염두에 두건대 현재 2층 이상에 구현된 다다미방 대부분이 구경하는 방 이상(갤러리 등)이 되기까지에는 상당 시간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애당초 주거 기능으로의 전용이 불가한 리모델링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구경하는 방으로서의 다다미방 재현’ 프로그램은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오장연의 노트에서 적고 있듯이 그곳이 갤러리 등으로의 활용 가능성이 점쳐졌다면 건축 계획적으로는 과감히 1층에서 2, 3층으로 접근할 수 있는 원형계단(이는 오늘날 일본의 협소주택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등을 현재의 카운터 부근 적당한 위치에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모색으로 윗방의 기능성을 극대화 시킬 필요가 있었다. 집 뒤편의 기존 계단을 통해서만 2, 3층으로 연결시키는 작금의 방식은 시대변화에 따른 ‘공적/사적 공간’의 접근방식에 대한 치밀한 이해와 전략이 결여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다다미방과 도코노마는 한 곳에서만 상징 공간화하면 되었을 일이다. 그리고 남은 여타의 다다미방은 갤러리 또는 대여형 회의실 등 독립적 공간으로 쓰게끔 했으면 관리, 운영 면에서도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개항장 도시 인천을 증거하는 근대기의 건축 공간 중 특히 일본의 점포주택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손 교수의 고증과 복원 의지는 충분히 설득력 있고, 학자가 취할 역할로서도 진정성이 돋보였다. 그러나 일식 점포형 주택이 이 땅에서 변용되어간 내력, 즉 1층에 적용된 온돌의 건축학적 가치, 우리 기후에 맞지 않는 다다미방의 방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주자들이 했을 법한 고민, 2층 베란다의 도입 배경 등등 시간과 공간의 변이에 따른 주택 변천의 현장성을 추적하는 유연한 자세도 가능했을 터인데 결과적으로 특정 시간대에 묶여버린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팟알은 카페다. 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종전까지의 대부분의 근대건축물 활용의 주체가 공공기관이었을 때 지금처럼 커피숍이나 음식점으로 전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규모의 적정성을 무시하고 박물관, 전시장 일색이었다. 각급 지자체가 조례에서 규정하고 있는 문화지구 관리 및 육성의 권장 업종이 문화예술진흥법상의 문화 및 영업시설, 예술단체 활동 관련 업종, 장인•수공예 업종으로 제한되다 보니, 근대기 생활문화를 토대로 한 근대건축물 활용의 한계를 노정시켰고, 그 바람에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조차 근대건축물은 애물단지 이상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집은 그런 점에서도 이야기하는 바가 많은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