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총서(The Collected Works of Korean Buddhism) 13권이 올해 7월 미국에서 영역으로 완간되었다. 한국불교전서 가운데 한국의 대표적인 고승의 문집 90여 종을 선별한 한국전통사상총서가 지난해 7월 13권 분량으로 한글로 먼저 완간됐고, 이번에 처음으로 그에 대한 영역이 마무리된 것이다. 한국 불교의 문헌이 동시에 한글과 영역으로 완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양의 한국 불교 연구에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이다.

한국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1700여 년 전이다. 372년 중국과 인접한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위치했던 고구려에 중국의 왕조 전진의 숭불군주 부견( 堅, 재위 357~385)이 순도(順道)라는 승려를 보낸 것이 불교와 한국의 공식적인 첫 만남이었다. 삼국의 다른 두 왕국인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에 이어 차례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불교는 명실공히 한국의 공식종교가 되었다. 한반도의 세 왕국은 곧 중국에 버금가는 찬란한 불교문화를 발전시켰고, 그것을 이웃했던 섬나라인 일본에 전해주기도 했다. 이어지는 시대에도 한국의 불교문화는 계속해서 꽃을 피웠다. 한국의 불교인들은 석가탑과 다보탑을 비롯한 석탑들, 그리고 그 석탑들을 담고 있는 여러 아름다운 사찰들, 또한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성덕대왕 신종, 그리고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돼 있는 석굴암과 같은 아름다운 불교 건축물 및 예술품들을 만들어냈다. 고려 시대도 또한 동아시아 유일의 완전한 목판 불전으로서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는 팔만대장경을 조판해냈다.

한국 불교의 우수성은 이런 유형적인 유산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1700여 년의 역사 동안 한국 불교는 뛰어난 학승들과 선승들을 배출했다. 이들 가운데에는 한국 불교뿐 아니라 이웃하는 중국과 일본 불교의 사상적 심화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던 승려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신라 왕실의 요석공주와 함께 설총(薛聰, 655~?)이라는 아들을 두었던 것으로 유명한 원효(元曉, 617~686)는 통일신라 시대 동아시아 불교 문헌의 탁월한 주석가로서 알려져 있었다. 특히, 그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대한 주석서는 해동소라는 이름으로 동아시아에서 널리 읽혀졌다. 또한 그의 법우였던 의상(義湘, 625~702)은 원효와 달리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당시 유행했던 화엄 철학을 공부했고, 그의 스승인 지엄(智儼, 602~668)을 이어서 화엄종의 종주가 되었지만, 당나라의 신라 공격 계획을 알려주기 위해 급히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화엄 철학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는 잘 알려져 있어서, 지엄 밑에서 함께 공부했고 의상에 이어서 중국 화엄종의 종주가 된 법장(法藏, 643~712)은 자신의 저술과 함께 편지를 보내어 그 저술에 대한 의상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 나아가 현재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통일신라 시대의 정중무상(淨衆無相, 684~762)이라는 선승은 중국에 들어가서 초기 선종의 사상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정중종(淨衆宗)을 개창하기도 했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한국의 승려들이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서 동아시아 불교 전통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데 공헌을 했다. 그들은 불교 사상과 명상 그리고 의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한국의 승려들이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지식층의 언어인 한자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근대 시기까지 한자는 마치 중세 시대 라틴어와 마찬가지로 국경의 구분 없이 지식층의 언어로서 사용되었다. 한국 불교의 승려들이 한자로 쓴 적지 않은 불교 저술들이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 퍼졌고 중국과 일본의 불교 전통 발전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의 승려들은 한반도에 불교를 확고히 뿌리내리게 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과 일본 토착불교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서 그 나라 승려들의 협력자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물론 이번에 번역된 한국불교총서 영역본 13권은 이들 대표적인 승려들의 저술들을 담고 있다.

불교 신자나 불교에 관심이 없더라도 많은 한국인이 학창시절 역사책을 통해서 상당 부분 알고 있을 이런 자랑스러운 한국의 불교문화 그리고 사상적 업적들은 그러나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안타깝게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나라들에서는 더욱 그렇다. 불교는 19세기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서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를 한 예로 간단히 살펴보겠다. 미국은 청교도의 이주에서 시작한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인구의 약 2/3 정도가 기독교인인 기독교 국가이다. 불교가 미국의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에드윈 아놀드(Edwin Arnold, 1832~1904)가 1878년 석가모니 부처의 일대기와 가르침에 대해 저술한 『아시아의 빛The Light of Asia』이 출간되면서 불교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촉발되었다. 이 책은 100만 권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당시 불교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았고, 우상의 종교 또는 허무주의의 종교라고 여겨졌다. 1893년 기독교와 불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 다양한 종파의 지도자들이 시카고에서 모였던 세계 종교 의회(World’s Parliament of Religions)가 미국 불교 역사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의회는 스리랑카와 일본의 승려들이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을 시작으로 일본과 티베트의 승려들, 나아가 중국과 베트남, 미얀마, 태국, 그리고 한국의 승려들이 차례로 미국에 진출해서 활동하게 되었다. 1930년 미국에서 일본 선(禪)의 성장에 기여했던 승려 사사키 시게츠(佐 木指月, 1882~1945)는 미국에 불교를 전하는 것의 어려움을 “바위에 연꽃을 심어 뿌리 내리는” 것에 비유했다. 그러나 1960년대 기존의 종교였던 기독교의 한계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불교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이제 미국은 불자 수 250만 그리고 불교 명상자 수 1,000만을 웃도는 국가가 되었다. 미국은 정치, 경제, 문화 영역에서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불교 강국으로 떠올랐다. 현재 미국에는 마치 그 옛날 중국에 불교가 소개될 때, 다양한 종류의 불교들이 그 시대적, 지리적 발전의 구분 없이 거의 동시에 전해졌던 것처럼, 다양한 종류의 불교들이 전해져 함께 공존하고 있다. 심지어 티베트 불교의 예에서 보듯이 미국은 정치 군사적 분쟁으로 인해 존재가 위협받는 다른 지역의 불교가 안전하게 보존될 뿐 아니라 부흥하는 곳이 되었다. 나아가 학문적인 면에서도 미국은 많은 뛰어난 불교학자들을 보유하면서 이제 불교학을 선도하는 위치에까지 올라 있다. 불교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의 수, 불교 연구에 투자되는 연구비, 불교 관련 연구 논문 실적 및 인용빈도 등 불교학 분야에서 경쟁국들을 제치고 이제는 불교학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이런 미국에서 티베트 불교와 ‘젠’으로 알려진 일본의 선불교는 미국 불교의 주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Dalai Lama)와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는 리처드 기어(Richard Gere)나 일본 선에 심취했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와 같은 유명인들이 미국에서 이 두 지역 불교의 종교적 문화적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물론, 중국 불교에 관한 관심도 중국에 관한 정치 경제적 관심 때문에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과 이웃하는 두 국가의 불교에 관한 관심에 비례해서 이 두 국가의 많은 불교 저술들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영역되었고, 또한 꾸준히 영역되어서 대중과 학자들 모두가 접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불교에 대한 관심은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일반 미국인들의 관심뿐 아니라 불교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는 많은 학교 가운데서 한국 불교를 가르치고 있는 학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 불교는 거의 언급되지 않거나 언급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동아시아 불교, 즉 중국이나 일본 불교 수업 시간에 간단하게 이뤄질 뿐이다. 그런 경우에도 한국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해서 중국 또는 일본 불교의 입장에서 설명된다. 즉, 한국 불교를 중국 불교의 아류 또는 중국의 불교문화를 일본에 단순히 전파하는 ‘교량’의 역할을 한 것으로만 묘사한다. 이런 사정은 안타깝게도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구권에서는 일반적인 일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 한국 불교가 그 불교문화와 사상에 있어서 본래의 위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한국 불교에 관한 관심의 부족, 나아가 그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한국 불교 저술의 서구권 언어 번역물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영어로 완간된 한국불교총서는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중대한 업적인 것이다.

한국불교총서의 영어본 완간은 6년 전에 시작되었다. 올해 초에 입적한 지관 스님(智冠,  1932~2012)의 역할이 컸다. 뛰어난 학승으로도 알려졌던 스님은 이 일을 처음으로 구상하고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있으면서 실행에 옮겼다. 2006년 한국 전통 사상서 간행위원회 준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적인 작업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일이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번역 작업을 감당할 수 있는 인력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와 한국어에 모두 능숙해야 할 뿐 아니라 불교 전통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있어야 하며 또한 원문의 언어인 한자도 읽을 수 있어야 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UCLA)의 불교학연구소 소장이자 아시아 문화 언어학부의 석좌교수로 재임 중인 로버트 버스웰(Robert Buswell) 교수가 이 6년간의 작업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버스웰 교수는 1974년 구산 스님(九山, 1909~1983)을 은사로 출가해 5년 동안 한국 불교의 철학과 수행을 공부했다. 무엇보다도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 1158~1210) 전서를 한글 번역본보다 앞서 영어로 번역하는가 하면 『중국과 한국의 선 사상 형성The Formation of Ch’an Ideology in China and Korea』이라는 책을 통해서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의 한국적 기원을 밝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저술들을 통해서 한국 불교가 동아시아 불교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서구권에서 한국 불교학뿐 아니라 불교학 분야의 석학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버스웰 교수는 이 총서의 영어본 발행 편집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고, 많은 부분의 번역을 직접 담당했다. 버스웰 교수 이외에도 리처드 맥브라이드(Richard McBride), 패트릭 울만(Patrick Uhlmann), 마이클 필치(Michael Finch), 찰스 뮬러(Charles Muller), 존 요르겐센(John Jorgensen), 안준영, 박진영, 김중근, 박영의 교수 등이 영어 번역에 참여했다. 또한 해주 스님, 고옥 스님, 원철 스님, 미산 스님, 정덕 스님, 정병삼, 이진오 교수와 김영욱 박사가 참여했다. 이들 이외에도 많은 미국과 한국의 불교 학자들이 이 작업에 힘을 보탰다. 지관 스님의 말에 따르면, 이 번역본은 옛날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을 한자로 번역하던 과정을 따라서 명확하고 보기 좋은 번역이 되도록 했다. 중국에서는 역경원과 같은 중국 경전을 번역하는 기관을 따로 만들어서 최소한 9명의 인원이 경전을 함께 번역했었다. 역주(譯主), 증의(證義), 증문(證文), 서자(書字), 필수(筆受), 철문(綴文), 참역(參譯), 간정(刊定), 윤문(潤文) 등의 직책을 가진 인원이 원문 낭독, 원문 이해와 검토, 번역에서의 올바른 단어 선택, 그리고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는 일까지 세부적으로 역할을 담당해서 경전과 논서 하나 하나를 번역했던 것이다. 한국불교총서의 영어 번역도 이와 같은 과정의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특히, 이번 번역은 ‘다자간 번역 체계’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번역자 한 두 사람이 많은 양의 번역을 단독으로 책임지는 기존의 관행을 탈피해서 공동으로 번역, 교정 작업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체계를 통해서 한글 번역자들과 영어 번역자들이 함께 교차 검토를 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번역에서의 실수를 최대한 줄인 것이다.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서 국제회의를 열어 번역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조율해서 영어 번역을 완성했다.

번역서는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 한국 불교의 대표적 저술들을 포함하고 있다. 원효, 의상, 지눌, 휴정(休靜, 1520~1604)과 같은 각 시대의 대표적인 승려들과 한국 불교 사상사에 있어서 다른 중요한 승려들의 저술들로 구성돼 있는데, 특히, 화엄과 유식에 관한 철학적 논서들, 선공안집과 선불교 관련 저서들, 계율서들, 순례 기록들, 그리고 비문 등을 포함한 90여 종의 저술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총서는 한글본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13권으로 이뤄져 있다. 『원효』, 『지눌』, 『휴정』, 『화엄1』, 『화엄2』, 『제교학』, 『공안집1』, 『공안집2』, 『선어록』, 『시선집』, 『문화』, 『계율』, 『비문집』.

이 총서의 번역으로 이제 우리는 영어로 된 한국 불교 저술들의 부족을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총서는 현재 국내의 불교학 연구기관과 대학도서관은 물론 해외 주요대학과 한국학 관련 연구소에 배포되고 있다. 이 총서를 통해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 한국 불교의 연구가 촉진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연구를 통해서 한국 불교가 불교라는 거대한 사상적 문화적 흐름에서 차지하고 있는 정당한 위상과 기여가 제대로 인식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 총서의 소개를 통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구권의 불교에 대한 인식이 한층 더 심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