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현상

런던올림픽 개막식 약 2주 전인 2012년 7월 15일, YG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채널에 싸이의 신곡 <강남 스타일>의 뮤직비디오가 올라왔다. 곡을 접한 사람들의 대략적인 반응은 ‘후렴이 인상적이고 비디오가 재미있는, 올 여름을 책임질 전형적인 싸이 스타일의 신곡’이었다. 입에 잘 달라붙는 후렴구인 “오빤 강남 스타일”이 한동안 유행할 거라고 내다본 이들도 있었다. 물론 여기서 언급된 ‘책임’과 ‘유행’은 전적으로 ‘국내 한정’이었다. 2001년 <새>로 ‘엽기가수’란 별명을 얻으며 데뷔한 뒤 12년 동안 싸이가 늘 그래왔듯.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다. 런던올림픽은 추억의 일부가 됐으며, 가을바람이 서늘하게 분다. 하지만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10월 현재 이 곡의 비디오는 유튜브에서 약 4억 7천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아마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다.

빌보드 핫100차트에서는 4주째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아이튠즈 차트와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1위를 기록했다. 유럽 각국의 차트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요약하면 <강남 스타일>은 한국어로 부른 노래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는 중이다.

<강남 스타일>의 히트에 대한 분석이나 설명은 이미 충분히 나왔다. 노래를 둘러싼 ‘심각한’ 분석들, 예를 들면 한국 사회에서 ‘강남’이 갖는 상징성에 비추어 싸이의 노래를 생각한다거나 “<강남 스타일>이야말로 ‘무의미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등의 해석도 가끔씩 눈에 띈다. 여기서 그런 이야기에 뭔가를 보태는 건 무의미해 보인다. ‘눈에 뻔히 보이는’ 점들 두어 가지만 언급하려 한다.

공유의 기회

<강남 스타일>의 히트는 ‘음악’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유튜브 채널에 비디오가 하나 올라갔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비디오 링크를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 걸었으며, 페이스북의 친구들과 트위터의 팔로어들이 그것을 자기 계정으로 다시 가져왔다. 어떤 이들은 비디오를 감상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찍어 올렸고, 어떤 사람들은 비디오에 나오는 춤을 따라 추는 모습을 올렸다.

인터넷의 화젯거리가 대개 그렇듯 링크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이 과정에서 두 번의 티핑 포인트가 있었는데, 하나는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매니저, 다른 하나는 미국의 랩 스타 티페인(T-Pain)의 트위터였다. 수많은 팔로어뿐 아니라 음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트위터 계정에 <강남 스타일>이 소개되면서 곡의 인기에 불이 붙었다. 사람들은 거리, 학교, 클럽, 심지어 교도소에서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현상을 ‘공유’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말의 엄격한 의미에서 ‘공유’는 ‘더불어 소유한다’는 뜻이지만, 이 단어는 종종 ‘공감’이나 ‘동참’, ‘나눔’ 등의 의미와 혼용되어 사용되곤 한다. ‘싸이 현상’을 이 맥락에서 본다면 싸이가 많은 인터넷 스타가 그렇듯 공유를 통해 유명해졌다는 데 별 이견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에게 각종 매체와 기기를 사용하여 그의 존재를 전달하거나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 올린다. 비디오가, 노래가, 춤이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온라인에서의 인기가 오프라인으로 들불처럼 번진다. 스타가 되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이런 행운이 모두에게 찾아오지는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누구에게든 인터넷에서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지만 공유와 전파의 수준은 사실 정보 접근성과 마찬가지로 비대칭적이다. 그리고 그 비대칭적 상황에서 유리한 지점에 오르는 건 단지 콘텐츠의 질에 달린 문제만도 아니다.

YG, 또는 케이팝이라는 플랫폼

<강남 스타일>이 뜻밖의 히트를 기록했을 때 사람들은 농반진반으로 그동안 해외 진출을 위해 애쓰던 특정 기획사에 대해 풍자적으로 얘기하곤 했다. 어떤 이들은 싸이가 ‘강제 해외진출’을 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런 풍자에는 일정 부분 진실이 담겨 있는데, 한국에서 ‘케이팝(K-POP) 열풍’은 실제 해외에서의 반응과는 동떨어진 찬양 일색의 기사를 통해 재생산되곤 했으며, 심지어는 외국 언론의 다소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인 논조를 정 반대로 해석한 뒤 케이팝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애써 부각하려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더불어 이런 비판적인 시선에는 정부가 예술이나 문화라는 관점보다는 수출 산업을 대하는 것과 더 비슷한 태도로 케이팝의 홍보에 열을 올린 반작용도 없잖아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싸이가 주목을 받게 된 배경에 케이팝 열풍이라는 맥락이 없었거나 혹은 미미했다고 간단히 결론내릴 수는 없다. 앞서 언급했듯 <강남 스타일>의 비디오는 유튜브의 YG 채널을 통해 공개되었으며, 이 채널을 구독하는 약 62만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 화제를 모았다. 이 채널의 구독자 중에 상당수의 해외 팬들이 있음은 물론이다. 소셜 음악 서비스 업체인 뮤즈얼라이브의 분석에 따르면 <강남 스타일>이 처음 인지도가 치솟았던 순간은 약 3만 명의 팔로어를 가진 트위터 계정에 비디오가 공개되면서부터였는데, 이 트위터 사용자는 YG의 걸 그룹인 2NE1의 멤버 산다라박의 팬이었다.¹⁾ 싸이의 성공이 이례적인 경우임을 감안하더라도, 또한 그렇기 때문에 향후 케이팝의 해외 시장 진출에 큰 참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 성공이 이미 일정 수준 이상으로 구축되어 있던 케이팝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여 시작되었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가 아무 것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글로벌’ 케이팝, 그리고 원 히트 원더로서의 팝

최근 몇 년 동안 케이팝은 ‘글로벌’한 맥락과 시장을 염두에 둔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를테면 대형 기획사 소속 가수들의 신보 크레딧을 보면 북유럽의 작곡 팀을 비롯한 외국 작곡가의 이름이 심심찮게 보인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인디 신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표방하는 스타일의 밴드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한국어보다는 영어에 더 어울리는 곡을 쓰는 뮤지션들도 자주 눈에 띈다. 한국인들이 부르지만 외국 작곡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케이팝이 아니라거나, 혹은 외국어로 된 노래지만 한국인들이 만드는 음악이므로 케이팝의 경계 안에 포함된다고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다. 이렇게 케이팝이 ‘글로벌’을 본격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시점에 한국 작곡가가 만든 한국어 노래가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글로벌’한 히트를 기록했다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이 ‘어째서 하필 싸이인가?’에 대한 대답이 되지는 못한다는 점과 관련하여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로서의 싸이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의 ‘유동하는 근대’2)라는 개념이 송곳니처럼 뾰족한 파고가 되어 출렁이는 것 같은 네트워크의 세계에서 싸이와 같은 원 히트 원더는 팝 음악의 ‘보편적’인 히트 양식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설명 불가능한 최면적인 열기, 놀랍도록 빠른 전파, 등장할 때만큼이나 순식간에 휘발하는 인기 등 원 히트 원더가 갖는 특징은 지금의 시대에 잘 어울린다. 반면 그러한 만큼이나 그 반짝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산, 타이밍에 대한 감각, 예리한 전략이 더욱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깨닫고 있듯, 엄청나게 화려한 텐트를 차린 뒤 집중적으로 홍보하여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삽시간에 돈을 긁어모아 재빨리 텐트를 걷는 것이야말로 최근 대중문화계에서 ‘물량 공세’라는 이름하에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속한다. 싸이의 성공이 놀라운 점은 그가 차린 텐트가 꽤나 작은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텐트가 아닌 건 아니다. 우연의 신도 보일 만하고 잡을만한 크기의 텐트에 손을 뻗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