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열광

12월에 있을 대선에서 안철수는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점쳐진다. 많은 여론조사에서 안철수는 다른 두 유력 후보인 박근혜와 문재인을 모두 이기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앞으로 변수들이 있겠지만, 이런 구도가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 같다. 박근혜와 문재인이 각각 보수-중도우파(새누리당)와 개혁-중도좌파(민주당) 세력을 대변한다면, 안철수는 ‘중도’ 성향의 지지자를 아우르면서 동시에 보수와 개혁 모두에게서 거부감이 적은 후보로 드러난다. 기존의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많은 ‘중간층’을 흡수하고 있다는 말이다. 어떤 이들이 안철수를 ‘하늘이 내린 후보’라고 평가하면서 ‘증오의 시대에 종언’을 고할 통합형 인물로 치켜세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안철수에 대한 ‘열광’은 통계조사로 나타난 하나의 사실이다. 이 열광은 안철수가 가진 ‘이미지’에 힘입고 있다. 안철수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대표적인 것은 그가 이명박이나 박근혜에게서 기대하기 힘든 ‘소통’의 적임자라는 것이다. 안철수를 대통령 후보로까지 만든 힘 중 하나는 그가 몇 년 전부터 했던 <청춘콘서트>이다. 대학생, 특히 지방에 있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순회강연을 통해 그는 오늘날 위기에 처한 청춘들에 ‘미안한 마음’을 가진 너그러운 어른으로,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어준 위대한 멘토로 거듭났다. 나아가 유명 TV 토크쇼인 <무릎팍 도사>와 <힐링캠프>에까지 출연함으로써 안철수는 합리적(우파)이면서도 동시에 따뜻하고 정의로운(좌파) 인물로 부각되며 단번에 셀러브리티의 지위에 올랐다.

‘동시에’

합리적이면서도 정의로운, 냉철한 판단을 내리면서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 안철수의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착한 자본가’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다. ‘착한 자본가’란 자신의 사업에서 성공했으면서도 동시에 실패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 자본주의의 법칙을 철저히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사업 성공에서 얻은 이익(의 일부)을 사회로 돌릴 줄 아는 사람, 다시 말해 따뜻한 심장을 가진 자본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같은 이미지다. 이를 좀 더 밀고 나가면, ‘사유’를 근간으로 삼는 체제 속에서 ‘공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안철수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그가 만든 ‘토종’ 백신에 대한 유명 미국 백신 소프트웨어기업의 천만 달러 인수제의를 거부했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지면서부터다. ‘애국자’이자 ‘(무료)공유’의 아이콘으로 교과서에까지 실린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개인 보유 주식의 사회환원이라든가 지식의 공유(멘토)에 있어서도 안철수는 대통령 후보군 중 단연 앞서 있다.   우리는 이런 ‘착한 자본가’의 원형을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나 빌 게이츠(Bill Gates) 등 미국의 일부 자본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소로스는 세계적인 헤지펀드의 창업자로 소위 ‘기업사냥’을 통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나, 동시에 부자들에 대한 증세를 열정적으로 옹호하고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을 지지하는 특이한 금융 자본가이다. 빌 게이츠는 윈도우즈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전 세계 개인용 컴퓨터의 운용체제를 독식하다시피 한 혁신가이자, 동시에 공익재단을 설립해 엄청난 돈을 박애주의적 사업에 기부하는 자선사업가이기도 하다. 소로스와 게이츠는 ‘금융자본’과 ‘IT’라는, 이 시대 자본주의의 최첨단 분야를 선도한 억만장자이면서, 동시에 사회를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한 것이다. 안철수는 소로스와 게이츠의 한국판, 곧 ‘착한 자본가’의 한국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시에’라는 표현이다. 오늘날 대중이 열광하는 것은 이 ‘동시성’이다. 디저트를 먹으면서도 살찌지 않는 것(다이어트 약), 커피를 마시면서도 카페인에 중독되지 않는 것(카페인 없는 커피), 담배를 피우면서도 몸에 해롭지 않은 것(전자담배), 은행에 맡기면서 투자까지 하는 것(금융상품)처럼, 이 시대의 상품들은 서로 모순되는 요소들을 ‘동시성’ 속에 담고 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은가?”하고 물으면서. 쾌락을 유지하면서 건강도 유지하고, 원하는 것을 구매하면서 기부도 하고, 성공을 이루면서 도덕적이기도 하고, 만나지 않으면서도 친구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우리 시대는 온통 이런 동시성을 구현하는 아이디어들 천지다.   동시성의 상품들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자본주의에서 성공하고 싶지만 동시에 착한 사람도 되고 싶다’는 열망일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인들이 뽑은 두 명의 대통령은 이 동시성의 열망과 반대편에 있다. 2003년의 노무현(盧武鉉, 1946~2009)은 ‘착한 사람’에 대한 정치적 열망이었다. 잘 나가는 변호사 위치를 포기하고 인권운동에 투신한 정치인, 이길 수 있는 서울 지역구를 마다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떨어진 정치인. 노무현은 ‘동시에’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투철했던 사람이었다. 2008년의 이명박은 ‘성공한 사람’에 대한 경제적 열망이었다. 착하기만 해서는 날로 위험해지는 세상에서 대중은 갖가지 부패의혹과 일천한 정치경력에도 불구하고 ‘평사원에서 CEO가 된’ 이명박을 뽑았다. 이명박 역시 ‘동시에’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투철했던 사람이었다. 이 두 번의 ‘실패’ 이후, 한국인들이 안철수에 열광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안철수는 노무현이나 이명박과는 달리 ‘동시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 즉 경제적 성공과 정치적 올바름을, 자본주의와 인간주의를, 부와 도덕을, 늑대의 현실주의와 비둘기의 박애주의를 동시에 갖춘 대표적 인물형이다. 자본주의에 문제가 많은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태되고 싶지는 않은, CEO/의사/교수로 표상되는 엘리트이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리트주의적이기는 싫은, 노무현 같은 ‘바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명박 같은 ‘속물’은 되기 싫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지만 그 중 일부는 공유하고 싶은, 그런 대중의 모순적 욕망을 체화한 인물, 그가 바로 안철수다.

시대정신

안철수에 대한 대중의 이러한 욕망은 아마도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 세계적 경제 불황과 항상적 위기 상태에서 빚어진 산물일 것이다. 서민들의 꿈을 이용해먹다 도산한 거대한 금융자본의 실체,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낸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운동, ‘함께 살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 등 최근의 사회경제적 사건들이 만들어낸 풍경들은 공히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인간주의적 접근을 연동시키고 있다.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라든가 공유의 가치를 강조하는 시민운동•문화운동의 성장, 멘토와 청춘콘서트와 힐링의 유행 등은 그 한 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안철수라는 개인은 이런 사회적인 것, 혹은 개인적 가치를 공유하는 움직임을 표상하는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재탄생한다.  성공과 공익, 자본주의와 박애주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는 이러한 믿음과 열망이 대개 구조적 차원이 아닌 개인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차원이 아닌 표면적인 차원에서 작동한다는 점은 놀랍지 않다. 자본주의가 문제이긴 하나 자본주의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게 문제이긴 하나 그 극심한 격차를 만들어낸 체제를 뒤엎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태도, 즉 현실의 구조는 그대로 둔 채 현실의 문제들을 제거하는 게 최선이라는 태도, 공유가 좋긴 하나 사유를 제한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태도가 이 안에 담겨 있다. 전 세계적 경제위기와 더불어 사회 내의 경쟁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오늘날 자본주의는 이런 태도를 두려워할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자본주의의 질서를 그대로 둔 채 자본가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 경쟁은 그대로 둔 채 실패자에게 따뜻한 멘토링을 제공하는 것, 제도는 그대로 둔 채 가난한 이들에게 약간의 구호를 펼치는 것, 이런 것이 두려울 이유는 없다. 이러한 착한 자본주의야말로 이 시대 자본의 구조적 모순을 감출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기에 그렇다.  대중이 이를 모르는 것일까? 대중은 너무 순진하고 순수해서 지배적 자본의 헤게모니에 이처럼 휘둘리는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대중은 이 모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가끔씩 등장하는 불평등의 뉴스에 분개하지만 자신만은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은, 자신은 반드시 성공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은, 그러기 위해서는 내일 또 다시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틈틈이 자기계발을 할 수밖에 없는 대중은 이 모든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근본적 변혁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에 대중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의 급진성이다. 안철수-2012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이 새로운 이름은 단순히 한 대선 후보의 이름이 아니다. CEO로서 최고의 성공을 거두고 그 성공을 바탕으로 따뜻한 멘토의 진심을 강조하며 인기를 얻은 안철수는 자본주의의 달콤함과 동시에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사회적 갈등을 온 몸으로 겪어온, 겪을 수밖에 없는 대중이 자본주의라는 컴퓨터에 바라는 가장 최신 버전의 ‘보안’ 프로그램이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컴퓨터를 버리는 대신, 대중은 새로 나온 무료 보안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 열광과 이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내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으니, 강도 높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 컴퓨터에 어떠한 보안 프로그램도 듣지 않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