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모습으로 복원된 도쿄(東京)역 마루노우치(丸の ) 역사에 갔다. 남과 북에 있는 개찰구를 나가서 위를 보면 간지(干支) 조각으로 장식된 돔 천장이 보인다. 많은 사람이 위를 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밖에 나가서 역사를 돌아보니 붉은 벽돌 건물이 넓은 땅에 묵직하게 펼쳐지고 밝은 조명을 받아 환상적인 세계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곳 역시 그런 모습을 사진기에 담겠다는 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플랫폼 사이를 6번째로 많은 사람들(하루 평균 384,024명)이 파도처럼 흘러가는 출근길의 도쿄역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세련됨보다 묵직함, 화려함보다 장엄함.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개업 이래 항상 시대의 선두에 서있었던 도쿄역의 이 모습은 무엇을 시사하고 있을까.

메이지 초기의 철도건설 붐

 1872년 10월 일본에서 처음으로 신바시(新橋)-요코하마(橫浜) 간 철도가 개업했다.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관철(官鐵)’이었던 그 철도는 4개역, 23.8km의 노정은 53분이 걸렸으며, 하루에 9번 왕복했다고 한다. 17년 후인 1889년에는 “급행” 신바시-고베(神戶) 간을 개통했다. 17시간 25분이 걸렸지만, 1903년에는 13시간 40분으로 단축되었고, 침대차(1900년), 식당차(1901년)도 등장했다. 1912년에는 노선을 시모노세키(下關)까지 연장하고 부산행 연락선과 연결했다.

 한편 일본의 첫 사철(私鐵)인 닛폰테츠도(日本鐵道)가 1873년 7월에 우에노(上野)-구마가야(熊谷) 간을, 1885년에는 시나가와(品川)-아카바네(赤羽) 간을, 1890년에는 우에노-아키하바라(秋葉原) 간을, 1891년에는 우에노-아오모리(靑森） 간을 개통했다.

 이와 같이 메이지(明治, 1868~1912) 전반에 걸쳐 나라가 운영하는 관철과 가조쿠(華族)라 불린 당시 권력자들이 운영하는 사철이 각지에서 철도를 개통하여 1907년까지 그 거리는 1만km에 달했다. ‘일대 철도건설 붐’이었던 것이다.

 이런 속에서 수도 도쿄에서는 남쪽으로 뻗어 있는 노선을 갖는 신바시와 북쪽에 뻗어 있는 노선을 갖는 우에노를 접속하는 중앙정차장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제1차 중일전쟁이 끝난 1895년 메이지 정부는 신바시-우에노 간의 고가철도와 중앙정차장 건설을 결정하였다. 정부는 7개년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먼저 고가철도 건설을 시작했다. 전쟁과 공사의 지체로 완공된 것은 1907년 9월이었다.

 다츠노 긴고(辰野金吾, 1854~1919)가 도쿄역 설계를 맡은 것은 고가철도를 건설하던 1903년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50세로 도쿄제국대학교 공과대 학장직을 퇴직하고 건축사무소를 낸 직후였다. 다츠노는 고부대학교(工部大學校) 건축학과(造家學科)현 도쿄대학교 건축학과 전신를 졸업한 후 영국 유학을 다녀온, 당시 일본건축계의 거물이었다. 그는 고가철도 건설을 맡은 독일인 기사가 그린 설계도를 참고하며 8년의 세월을 도쿄역 설계에 바쳤다. 이 동안에 닛폰테츠도를 비롯한 주요노선을 소유한 17개의 사철이 국유화되었다.

근대의 상징

 이때 마루노우치에서는 육군으로부터 이 일대의 땅을 구입한 미츠비시(三菱)의 2세 총수 이와사키야타로(岩崎彌之助, 1851~1908)가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1894년에는 일본의 첫 대여사무소용 빌딩 미츠비시 제1호관을 준공하고 20년 후 도쿄역이 개업한 해에는 21호관을 준공했다. 영국식 벽돌건축인 미츠비시 제1호관은 1968년에 헐었으나 2010년에 복원되어서 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 외도 도쿄부청사(1894)와 도쿄상업회의소(1899)가 준공되고, 우편전신국이 개설, 노면전차도 개업하여 마루노우치는 비즈니스 지구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었다.

 메이지 정부는 1903년 러시아와의 전쟁에 승리하자 “대국 러시아를 이긴 일본의 현관(玄關)으로서 부끄럽지 않는 역을 건설해야 한다”면서 예산을 늘리고 규모를 확대하는 등 역 건설에 한층 힘을 쏟았다.

 1914년 12월 드디어 도쿄역이 완공되었다. 토지면적 약 6만 7,000평, 3층의 철근구조물인 거대한 붉은 벽돌 건물에는 황실전용 공간이 125평, 입구와 대합실(남쪽)이 823평, 출구가(북쪽) 644평, 플랫폼, 기관고, 검차소 등이 있었고, 2, 3층의 남쪽 절반에 고급호텔을 세웠다. 돔형의 천장을 가진 남측 입구와 북측 출구의 폭은 약 32m이고 높이는 37m였다. 총 공사비는 당시 금액으로 380만 8,905엔이었다.

 개업식이 열린 12월 18일, 도쿄역 앞 광장에는 소나무로 된 높이 20m의 문이 설치되었다. 이 문은 에도(江戶, 1603~1867) 말기에 일본에 체류한 서양 사람들이 환영식이나 축하모임을 위하여 준비한 토피어리를 본뜬 것인데 ‘축하’와 아울러 ‘서양화’를 상징한 것이었다.

 이날 개업식을 마친 뒤 하나의 이벤트가 있었다. 5개월 전 시작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국 칭다오(靑島)를 근거지로 하던 독일동양함대를 공격하고 승리한 제18사단 단장인 가미오 미츠오미(神尾光臣, 1855~1927） 중장의 개선축하모임이었다. 오전10시30분, 도쿄역 제1홈에 도착한 첫 전차에서 가미오 중장이 내려오자 오쿠마(大 重信, 1838~1922) 수상이 마중하고 수많은 군중들의 히노마루 깃발이 환영했다. 그 후 가미오 중장 일행은 마차를 타고 역 앞의 황궁을 향했고 물려든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고 환송했다고 한다. “도쿄역의 개업은 청일, 러일의 전쟁을 이기고 근대화를 달성한 ‘메이지닛폰’을 바로 총결산하는 이벤트”(즈지 사토시)였던 것이다.

미군공습 피해 복구로부터 60년

 1923년의 간토(關東)대지진을 무사히 넘긴 도쿄역이었으나, 그곳은 1945년 5월 미군의 공습으로 벽돌로 된 벽과 콘크리트 마루만 남기고 모두 타버렸다. 1947년 수리복구공사를 실시하고 3층을 2층으로, 반원형이었던 남북의 출입구 돔을사다리꼴으로 변경했으나, 중앙돔이나 벽면, 기둥의 모양, 창틀은 충실히 복원했다. 본격적으로 건설할 때까지 “4~5년만 견디면 되겠다”고 생각한 공사였다. 이후 60년을 사용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안했다.

 다음해인 1948년에는 남측을 승차전용 입구, 북측을 하차전용 출구로 하고 있었던 구별을 없애고 남북 어느쪽 개찰구에서도 출입할 수 있게 했고, 플랫폼을 사이에 끼고 더 하나의 역사 야에스구（八重洲口） 역사를 준공(11월)하였다. 패전으로 어려운 시기에 2,000만 엔이란 거액을 들인 새 역사였지만 다음해 4월 식당증축공사를 하고 있던 노동자의 담배로 인한 화재로 소실했다. 1952년에는 재건이 결정되었으나 어려운 재정 때문에 민간의 자본을 끌어드리는 “민중역 （民衆 ）” 형식으로 1954년 6층 건물로 준공(1968년에 12층으로 증축), 백화점과 여러 상점들이 들어섰다.

 1964년 10월 1일에는 도카이도신칸센(東海道新幹線)이 개업하였다. 이 때문에 도쿄와 신오사카 간의 소요시간이 4시간으로 대폭 단축되었다. 많은 특급열차의 등장으로 증기기관차는 1970년 10월 작별행사를 마지막으로 수도권에서 소멸하였다. 1980년 이후는 도호쿠(東北, 1982), 조에츠(上越, 1982), 야마가타(山形, 1992), 아키타(秋田, 1997), 나가노(長野, 1997)의 각 신칸센이 연이어 개업했다. 현재 도쿄역에서는 위의 6개 노선의 신칸센과 야마테(山手)선, 주오(中央)선, 도카이도(東海道)선 등 7개 노선의 재래선이 출발한다.

 1987년에는 각지의 주된 노선을 통일적으로 관리, 운영해온 일본국유철도(국철)가 없어지고 JR홋가이도(北海道), JR히가시니혼(東日本), JR도카이(東海), JR니시니혼(西日本), JR시코쿠(四國), JR규슈(九州)의 6개 민간회사가 여객철도를 분리 운영하게 되었다. 도쿄역은 JR하가시니혼과 JR도카이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그동안 마루노우치 역사를 고층건물로 개축하자는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6년 국철총재에 취임한 다카기(高木)는 도쿄도지사였던 미노베(美濃部)에 역사의 개축을 제기했으나 여론의 강한 반대로 좌절했고 1981년 정월초하루 신문에 도쿄역을 35층 고층건물로 개축하자는 꿈같은 이야기가 실린 적도 있었다. 1987년의 민영화 이행 때에도 고층화할 것인가 보존할 것인가를 두고 본격적인 논쟁이 벌어졌고, “붉은 벽돌 역사를 사랑하는 시민의 모임” 등 시민단체가 보존운동을 전개하였다.

Tokyo Station City

 공습 피해를 복구하던 때부터 60년이 지난 2007년 5월 역사복원공사가 시작하였다. 그동안 다행히 사고는 없었으나 노후화는 심각하였다.

 이번 공사에서는 철골철근 콘크리트 벽으로 골격을 증축해서 건설 당시의 3층을 복원하고, 외벽과 첨탑, 남북의 돔도 재현하였다. 또한 새롭게 지하 1, 2층을 증축함으로써 지진에 대비했다. 치장용 벽돌 등 여러 부분의 섬세한 작업은 기계가 아니라 수작업으로 100년 전 기술을 계승하였다. 1947년 복구 공사 이래 사용했던 천연 슬레이트와 유리, 화강석은 다시 사용했다. 역 기능을 중단하지 않고 통로를 이용가능하게 하면서 모든 작업을 밤에 진행한 것도 이번 공사의 특징이다. 북측 입구 옆에 “도쿄역 갤러리(Tokyo Station Gallery)”가, 남측 2, 3층에 호텔이 개업하였다.

 이와사키 야노스케가 추진하던 개발부터 100년. 마루노우치는 마루노우치빌딩, 신마루노우치빌딩, 미츠비시도쿄UFJ은행본사빌딩, 우선빌딩 등 최신 고층건물이 밀집한 금융,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층건물들 가운데 버젓이 펼쳐진 도쿄역 역사는 어떤 현대적인 고층건물보다 차분한 의용을 떨치고 있다. “더 서구적으로”, “더 새롭게”, “더 빨리”, “더 높이”를 지향해온 일본은 이제 인구감소와 급속한 고령화의 시대에 들어섰다. 그 속에서 새로 복원된 됴쿄역은 “호텔과 사무실, 상업시설 등이 집약된 다채로운 매력과 선진적인 기능을 갖춘 ‘Tokyo Station City’”를 지향한다. 호황보다는 안정을, 속도보다 안전을 우선시하는 시대에 철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역은 지역의 어떤 존재가 되는지, 기대를 갖고 지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