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배터리 충전형 포터블 비디오카메라가 출시되었다. 전선을 연결해야 하는 기존의 비디오카메라와는 달리 사진용 카메라처럼 언제든 들고 다니며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는 튜브 물감의 발명으로 인상주의자들이 야외에서 언제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유명한 사건을 연상시킨다. 자신이 서 있는 현실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현장성과 기록성이 비디오 아트에 가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록은 오래전부터 미술의 사명이었다. 그것은 제의적, 선전적, 그리고 개인적 목적을 위해 모방하여 남긴 회화와 조각들이다. 물론 1960년대는 사진가 함께 미술의 이런 기능이 종식된 지 100여 년이 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영상이 미술의 중요한 미디엄이 되면서, 바깥 세계에서 일어난 현실을 실시간으로 카메라에 기록하는 일은 퇴색된 기록의 사명을 다시 한 번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술 속에 다큐멘터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미술관 혹은 상영관

 1964년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은 <엠파이어Empire>라는 8시간 5분짜리 영화를 찍었다. 저녁 8시 6분부터 다음날 새벽 2시 42분까지 한 자리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건너편 건물에서 고정된 카메라를 놓고 8시간 동안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담은 이 흑백필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것은 현실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실시간 현실 그 자체의 냉담한 기록에 가깝다. 편집도, 스토리도, 해설도 없다. 그저 대상의 당연한 변화를 카메라의 눈으로 목지할 뿐 명확한 영상의 목적이 감지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기이함이 기존의 영화에 대해 미술이 갖는 독특한 위치를 재고하게 만든다. 미술의 영화는 영화의 구성요소를 부정한다. 영화이되 영화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찍었다는 점에서 이것은 다큐멘터리일까? 그것이 단순히 현실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의도적인 건조함이든 현실 속에 담긴 진실을 숙고하게 만들고, 현실에 다가가게 만드는 보편적 다큐멘터리든 미술관 속 다큐멘터리가 보편화되고 있다.

 페트리샤 오프더게드(Patricia Aufdergeide)는 『다큐멘터리 필름Documentary Film』이라는 가이드북에서 다큐멘터리를 “현실에 관한 영화”라고 정의한다. 즉 다큐멘터리는 현실이 아닌 현실에 ‘관한(about)’ 영화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현실을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를 미술관 안에서 쉽게 볼 수 있다. 2012년 2월 일민미술관에서는 <다큐멘터리, 사회적이거나 사적이거나>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 아카이브 상영회가 있었다. 미술관이 수집한 다큐멘터리들은 육아와 같은 개인적인 일상에서 죽음을 다룬 시대사적인 작품까지 사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슈들로 만들어진 것이다. 요일에 따라 전시장 모니터에서 볼 수 있는 이 다큐멘터리들은 극장 상영이 거의 불가능한 1인칭 비디오들로서 분방한 독립영화의 성격을 가진다. 여기서 전시실은 상영관으로 탈바꿈되며, 우리는 어두운 전시장에서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 앞에 앉아 시간에 따라 영화를 감상한다. 미술관에서 영화를 보는 일, 즉 현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이 너무나 관대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작가와 관객이 동일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대상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방식은 미술의 범주에 대한 모종의 합일을 제공한다. 캔버스나 브론즈 등의 ‘미술적’ 매체들이 예술 장르의 안에 닫혀 있다면 필름 카메라 이후의 도구들은 장르를 벗어난 열린 도구들로 일반화된 기술적 생산물과 맞물려 있다. 이미 1964년에 출판된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에서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 1911~1980)은 미디어의 내용이 아닌 미디어 자체가 함의하는 사회적/시대적 메시지를 언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영상 미디어의 보편화는 미술이 영상을 다루는 일을 일반적인 방법론으로 만들었고, 관객은 미술관 안에서 그것을 미술과 영화의 어느 중간 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는 현실에 대한 시각을 그대로 담아낸다는 면에서 과거 리얼리즘의 역할을 부활시킨다.

 요컨대 보이는 현실과 미술이 갖는 역사적 밀착도를 상기하면, 기술이 변화시킨 시각 매체의 환경에서 다큐멘터리가 미술의 장르 언어가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붓보다 더 쉽게 손에 쥔 카메라 혹은 스마트폰이 지금 나에게 보이는 현실을 그 어느 때보다 쉽게 기록한다. 이는 훨씬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묘사하고 언급하도록 부추기는 환경에서 자생된 메시지인 것이다. 미술관은 캔버스 대신 모니터를 벽에 걸어 놓는 것을 통해 소규모의 긴밀한 상영관으로 변이한다. 그리고 매체의 보편화에 따른 완성도의 문제를 차치한다면, 적어도 거대 상영관 상영을 목적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아닌 소규모의 독립 다큐멘터리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장소로서 미술관이 부각되고 있다.

기록 혹은 시선

 앤디 워홀은 <엠파이어>를 찍기 1년 전, 당시 그의 애인이던 존 지오르노(John Giorno)의 자는 모습을 5시간 20분 동안 롱테이크로 촬영했다. <슬립Sleep>(1963)이란 제목의 이 영화는 <엠파이어>와 마찬가지로 어떤 내러티브도 갖지 않고 오로지 카메라가 대신한 워홀의 시선을 기록하고 있다. 특정 시간에 일어난 평범한 사건을 편집 없이 그대로 재생하는 것 속에는 살아 있는 눈과 호흡의 긴장감이 깃든다. 여기에는 신체의 확장으로서의 카메라가  재현한 무언의 감정적 곡선이 드러난다. 이는 2012년 10월 일맥아트프라이즈 수상자인 여다함이 보안여관에 전시한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자신의 이삿짐을 싣고 달리는 트럭을 조용히 따라가다 목적지에서 끝나는 이 영상은 조촐한 짐, 작은 트럭이라는 대상, 그리고 ‘이사’라는 작은 사건에서 한 개인의 삶을 에워싼 침묵의 발화를 짐작케 한다. 아무런 해석이나 설명이 없음에도 실제 경험하고 있는 어느 시간을 추체험함으로써 감정이 전달되는 이러한 관계는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현실에 대한 메시지를 모호하지만 강렬한 것으로 만든다. 카메라를 통해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적 장면이 매우 특별한 시간의 파편으로 기록되고,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정은영의 <여성 국극 시리즈>(<언바운드 아카이브>展, 2012.10.11~11.2)는 작가의 편집을 이용해 ‘말’하는 다큐멘터리라고 볼 수 있다. 원로 국극 배우들의 인터뷰와 공연 영상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업은 남성이 되기 위해 화장을 하는 여성, 남성처럼 보이기 위해 남성성이 가진 기호들을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여성을 통해 고정된 젠더라는 통념에 질문을 던진다. 분할 화면의 유연한 사용과 인터뷰, 그리고 줌 인/아웃 포커스 등을 통해 다큐멘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내레이션 없이도 화면의 움직임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통적 다큐멘터리를 위해 그것을 풍자화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2012년 9월부터 시작된 <제7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2: 너에게 주문을 건다>(2012.9.11~11.4)에서는 나타니엘 멜로스(Nathaniel Mellors)의 <영국사의 일곱 시대 티저>라는 비디오 작업이 전시되었다. BBC TV 다큐를 위해 제작된 이 예고편 영상은 전통적 TV 다큐멘터리가 가진 어휘들을 비틀어 방송에서 언급될 주제들에 흥미를 가지도록 만든다. 기괴한 가면을 쓰고 초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황극을 통해 하나의 모순된 의문 덩어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다큐 시리즈를 진행할 저널리스트 데이빗 딤블비(David Dimbleby)이 ‘던지는’ 것으로 역사와 현실에 다가갈 해석들에 접근하는 것이다.

 미술관 속 다큐멘터리는 올드 미디어 아트에서 고착되어 가는 리얼리즘의 새로운 형식이다. 이들은 기존의 다큐멘터리에 비해 보다 독립적이며, 보다 기이하고, 보다 새로운 형식을 지향한다. 무엇보다 미술관 속 다큐멘터리 역시 현실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 그것은 작가가 ‘본’ 현실이고, 작가가 ‘느낀’ 현실이며, 작가가 ‘말’할 필요가 있는 현실이다. 그것은 사회를 함축하는 개인의 시선이 되기도 하고, 개인을 드러내는 시대의 시선이 되기도 한다. 다만 미술관 안이냐 밖이냐로 그 성격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전시’되는 예술로서의 다큐멘터리를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규정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 자신이 어떠한 메시지를 환기시키기 위해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는가에 관한 판단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뛰어나가 다큐멘터리라고 불릴 무엇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