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각을 넘어서는 경험은 존재의 안녕을 위협하면서도 동시에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많은 사상가들에게 다뤄져왔다. 가령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지각을 넘어서는 숭고를 통해 이성의 고양을 설명한다. 그런가하면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포르트-다(fort-da)’를 중얼거리며 실패를 가지고 노는 손자의 모습 속에서 어머니라는 존재적 기반의 상실, 이른바 존재를 위협하는 순간을 예비하기 위한 반복학습을 읽는다.

 지각을 넘어서는 경험이 존재를 위협하는 것으로 설명될 때, 그것이 갖는 가공할 폭력성은 ‘테러’나 ‘재난’으로 명명되곤 한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일련의 폭력적인 사건들이 인식되기 위해서는 언어의 의미망에 여과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재난을 ‘재난’으로 기술하려면 언설 불가능한 사건의 지점으로부터 재난을 인식하고 번역하기 위한 ‘거리’가, 재난으로부터 취약한 주체의 불완전함과 취약함을 인식하고 그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고양된 이성의 주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재난은 어떻게 재현되는가? 재난을 둘러싼 다종다양한 논의들 속에서도 재난을 주제로 하는 이번 전시는 우연과 폭력에 노출된 현대사회에서 일상화된 재난의 위협을 ‘재난학(Catastrophology)’이라는 신조어로 제시함으로써 재난을 대하는 예술의 임무를 고찰한다. 특히 전시는 특정한 사건에 주목하기보다 ‘세계 전체의 붕괴’의 조짐 속에서 유동성과 불안에 잠식된 주체의 ‘감각’에 주목한다. 하지만 수용자의 감각이 재난에 어떻게 감응하는가의 문제에 천착하기 위해서는 감각에 자극을 주는 재난이 어떻게 표상되고 있으며, 감각기관들로부터 어떤 통로로 지각되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재난의 소재는 인간 의식 너머의 영역을 시각화하는 시도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인간의 지각범주를 넘어서는 사건을 재난의 조건이라고 한다면, 재난을 표상하고 연출하는 데 있어 감각과 지각을 확장시키는 매체기술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전시에서도 재난은 매체를 통해 시각화된다. 가령 컴퓨터그래픽이나 현미경이 벌레의 근접한 모습과 관객의 시청각을 조우시키고(허먼 콜겐), 신체와 풍경의 틈사이로 검은 균사체들을 퍼뜨리면서(미하이 그레쿠)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지각할 수 없는 풍경들을 만들어낸다. 그런가하면 인간흉상이 반점과 타액으로 오염된 채 펜촉으로 찍어낸 점들의 군집으로 분해되어 있거나(박자현), 초점 없는 화면 속에 인물들이 몸부림치고, 부지불식으로 검은 오염물들이 일상의 풍경을 더럽히는가 하면(송진희) 복제된 두상들이 절단된 채 이리저리 촛농(정액?) 덩어리들과 엉켜 쌓여있는 풍경의 연출(손정은)은, 파괴와 사라짐의 위협에 노출된 인간 신체를 형상화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감각능력을 확장하고 무한정 복제 가능한 매체는 오늘날 일상을 스펙터클화할 뿐 아니라 유동적인 사회 환경 속에서 인간 존재의 기반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재난의 조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반대로 매체의 사용은 재난을 재현함으로써 재난을 운용 가능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인류에게 위협으로 작동하는 재난은 이상화된 체제가 은폐하고 있는 증상들을 노출시키고 균열을 일으킬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오랫동안 재난을 주술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재난에 대비해왔고, 재난을 막기 위해 재난에 버금가는 폭력적인 제한과 배제를 수행해오면서 재난을 지배자들의 권력적 장치로 도구화해온 것이다. 이는 재난과 재난에 무력한 주체의 주종 관계가 이미 내재적으로 역전된 채 존재함을 시사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재난은 재난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시선의 권력에 종속되어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재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난이 사회적 역학관계 아래서 재앙, 테러, 범죄로 명명되는 사회적 맥락을 무시할 수 없다.

 재난을 호명하는 사회적 맥락들은 전시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작품들은 재난을 외부로서, 우연성으로서, 위협이고 오물이며 잔여이자 타자로서 재현한다. 가령 미하이 그레쿠의 영상 <이리듐IRIDIUM>(2006)에서 신체와 건물의 구멍,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입자들의 덩어리는 유기체적 사회를 침투하는 세균, 바이러스 단위로 표상되는 병리학의 은유와 비교할 여지를 남긴다. 작가의 다른 작업 <위일 비커밍 오일We'll Becoming Oil>(2011)에서 사막 위를 활공하는 헬기편대가 자폭하여 검은 연기기둥을 만드는 장면은 중동·아프리카의 석유자원을 둘러싼 지정학적 전시상황을 알레고리화함으로써 재난을 일으키는 대상이 오히려 재난을 호명하는 주체집단의 구성원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박자현이 점묘로 재현한 타액과 반점으로 오염된 여성들에 <일상인>, <비정규직 노동자>라 제목 붙인 지점에서 관객들은 사회 속에서 불안정한 구성원들의 위상이 표시되는 지점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재난이 호명을 통해 우발적이고 자연적인 사건으로 의미 부여되는 순간은 사회적 위계 아래 사회구성원이 타자로 호명되고, 그의 존재적인 위상 자체가 테러로, 재난으로 명명되는 과정으로 반복되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기획은 “재난의 대책을 제시하거나 정치적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이 아님”을 밝히며 재난이 발생하는 지형을 추적하는 데 조심스런 거리를 유지한다. 그렇지만 일련의 선긋기는 은연중 드러나는 작품의 사회적 맥락을 방관한 채 (이미 너무나도 익숙해진) 충격효과(shock effect)만을 강화하는 결과로 도출될 혐의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기획문은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다. “예술은 일상에 도래한 균열과 심연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환상 없이 우리의 리얼리티를 이해하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의 ‘리얼리티’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재난의 호명과 재현과정을 살펴보지 않는다면 재난에 대한 학적 논의는 고립된 개인단위의 감각경험을 관찰하는 데 할애될 뿐이다.

 <카타스트로폴로지>展이 의도하는 ‘재난학’의 예술적 논의는 재난을 통해 주체와 사회의 안녕을 연출하는 의미의 균열지점을 피하지 말고 마주할 것을 요청한다고 정리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재난에 대한 예술가들의 역할은 재난에 대한 개개인의 감각을 성찰하는 것에만 한정시킬 수 없다. 이들은 재난이 재현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재난을 호명하는 주체의 존재적 위상을 회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재난을 호명하는 현대의 주체야말로 재난의 생산자이거나, 타자로 분리되어 재난적인 존재로 낙인찍힐 수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체와 타자, 안정과 붕괴의 이분법을 가로지르며 재난적인 존재들이 사회적 역학관계에 의문을 던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야말로 재난을 안고 살아야 하는 주체의 또 다른 모습이자 재난의 리얼리티를 대하는 예술가의 또 다른 역할은 아닐까. 이때 ‘재난학’의 범주는 ‘재난의 정치학’, 혹은 ‘재난의 윤리학’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