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내가 학위를 받고 귀국했을 때, 문화비평이라는 말은 그렇게 썩 훌륭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도 문화비평 또는 문화평론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았고, 지면이나 인터넷에서 문화비평가 또는 문화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글을 쓰는 이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이제 이 용어가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또한 지금까지도 적절하게, 문화비평가가 무엇인가, 또는 누가 문화비평가인가 물었을 때, 과연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할지 아직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1980년대라는 정치경제 과잉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형성된 선입견의 영향으로 종종 문화비평은 ‘문화좌파’나 ‘살롱좌파’ 같은 말과 동격으로 놓이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내가 즐겨 인용하는 것이지만,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문화평론가의 모습은 그렇게 썩 건전한 것은 아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문화평론가는 소비주의 문화를 비판하는 코드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선입견을 뒷받침하는 ‘유사-문화비평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예인들의 가십이나 늘어놓고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인상을 기술하는 것을 일컬어 문화비평이라고 규정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문화비평은 기원적으로 본다면, 인식의 문제에서 가치의 문제로 전환했던 철학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유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보다 진지한 장르인 셈이다.

 문화비평의 기원을 구성하는 Kulturkritik이 근대일상에서 작동하는 가치원리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었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새삼 거론하는 것도 무람한 일일 것이다. 문화비평에 내재한 정치적 기획은 최근 첨예하게 근대화의 모순과 갈등을 드러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사유의 좌표를 제시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모순과 갈등의 근본원인에 드리워져 있는 것이 가치와 인식의 생산과 분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한국에서 절실한 존재들은 변화무쌍한 문화, 그 중에서도 특히 대중의 시대에 가장 격렬하게 욕망의 변증법을 작동시키고 있는 대중문화를 읽어내고, 그 읽기에서 ‘정치적 사유’의 계기들을 찾아낼 수 있는 문화비평가들일 것이다. 모든 대중문화는 정치적인 함의들을 감춰두고 있다. 이런 전제는 단순한 ‘반영론’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치경제적 현실을 대중문화가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대중문화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대중문화야말로 정치적인 것을 관리하고 배제하기 위해 발명된 공동체적 도덕성의 구현물이기 때문이다. 소녀시대라는 대중문화의 형식은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도덕적으로 향유할 것인지에 대한 공동체적 ‘대책’이라고 볼 수가 있다. 이 대책은 자본의 운동이나 대중의 욕망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는다. 대중문화는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제거하고 배제하려고 하지만, 언제나 이렇게 지워진 것들은 그 형식의 논리에 아로새겨져 있게 마련이다. 이런 원리에서 지극히 문화적인 것에서 가장 정치적인 것이 출몰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실상이다. 세상이 이렇게 변화한 까닭으로 여러 가지를 짚어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로 지칭되는 새로운 매체환경의 출현을 거론할 수 있겠다.

 물론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자체가 ‘새로운 것’이라는 정치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원인은 아니다. 다만 이런 매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과잉의 쾌락을 투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에 구현되어 있는 무한한 복제능력은 특정한 내용을 탈맥락화해서 전혀 다른 의미로 손쉽게 만들어버린다. 해석의 과잉을 요청하는 복제의 결과물은 ‘괴담’과 ‘풍문’이 진리를 불러들이는 역설적 상황을 유발한다. 말하자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혁명을 조장할 수는 없지만, 작은 혁명을 큰 혁명으로 격발하는 촉매제 노릇은 할 수 있다. 무한하게 펼쳐지는 매끄러운 소통의 표면 위로 미끄러져서 지나가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네트는 광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의 상황에서 문화비평가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문화적 현상을 기술하고 나열하는 것이 문화비평의 본령일까? 과연 이제 누가 문화비평가일까? 어떤 이들은 문학비평에 빗대어서, 대중문화나 영화, 또는 음악을 비평하는 이들을 문화비평가라고 생각한다. 이런 정의는 말 그대로 ‘문학’비평이 문학에 대한 비평이니까, ‘문화’비평은 문화에 대한 비평일 것이라는 나이브한 생각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설득력이 없다. 결국 문화비평은 문화를 비평하는 것이라는 동어반복 이상을 도출하기 어렵다. 문화비평가가 ‘문화’를 비평하는 사람이라면, 영화비평가나 대중음악비평가는 무엇인가고 물어보면 문제점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문화비평가에 대한 정의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어판 위키피디아(Wikipedia)에 나오는 정의를 참조한다면, “문화비평가는 기존의 문화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급진적으로 비평하는 비평가”이다.¹⁾ 문화비평가는 한 마디로 ‘급진적 비평가’이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급진(radical)이라는 말은 ‘뿌리에서’ 문제를 본다는 의미이다. 그냥 과격한 언사나 독설을 늘어놓는다고 급진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사안을 뿌리에서, 발본적으로 사유하는 자가 바로 오늘날 문화비평가인 것이다. 이 말은 곧 문화비평가라는 것이 ‘당위적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비평가는 존재한다기보다,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존재하게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 존재하기가 가능한가? 바로 급진적인 비평행위가 그 대답이다. 문화비평이라는 행위는 사회비평이나 사회철학과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용어의 쓰임새는 문화에 관한 전반적인 비평행위를 모두 지칭하는 것으로 폭이 넓어졌다. 물론 이 문화라는 분류에 들어가는 것은 다양하다. 문학이라고 예외일 수 없고, 영화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문화비평이 기존의 ‘장르비평들’을 그냥 모아놓은 컬렉션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장르비평들을 그대로 모아놓는다고 문화비평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비평의 핵심은 장르비평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화비평은 장르비평과 다른 비평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화비평은 장르비평에서 다룰 수 없는 주제의식들을 다루고, 궁극적으로 문화의 비평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고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문화비평은 장르비평과 다른 새로운 비평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문화비평은 언제나 전체의 관점에서 개별 문화현상들을 바라보는 방법론을 고수한다. 그래서 문화비평의 단골메뉴는 헤겔주의이지만,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처럼 헤겔주의와 다른 관점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한 이론가도 있다. 문화비평을 수행한 문화비평가들은 다양하다. 19세기 문화비평의 선구자를 꼽자면,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 1822~1888)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토머스 카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도 영국의 빅토리아시대를 대표하던 문화비평가였다. 이외에도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이라는 걸출한 문화비평가가 있었다.

 영국에만 문화비평가들이 있었던 건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는 시인이면서 미술평론가였지만, 또한 근대적 삶에 대한 훌륭한 문화비평들을 남겼다. 그는 근대성(modernity)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비평가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선구적 문화비평가를 꼽아보라면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목적은 대체로 비참한 물질적 조건과 불모의 삶을 극복하기 위해 문화비평에 뛰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문화비평은 주로 정치적 좌파의 전유물로 바뀌었다. 물론 우파 문화비평가가 존재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어빙 배빗(Irving Babbitt, 1865~1933)처럼 대표적인 우파문화비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acs, 1885~1971)나 벤야민, 그리고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rt School)로 이어지는 독일 좌파 문화비평의 계보는 20세기 문화비평을 주도하는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문화비평가는 객관적 학자로서 역할을 하기보다, 어떤 사물현상에 대한 가치평가나 판단을 내리는 비평가의 역할을 자임한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비평가는 일반적인 객관적 학문의 제도와 다른 측면을 갖는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문화비평은 문화라는 형식을 통해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비평이라는 장르 자체가 곧 정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좌파든 우파든 문화비평은 모두 정치적인 문제를 내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인식의 문제와 문화비평이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은 어떤 사물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것이다. 인식을 지배하면 지식생산을 주도할 수가 있다. 다른 말로 바꾼다면 담론의 주도권을 인식의 지배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처럼 문화의 형식을 분석해서 ‘판단’(judgement)을 내릴 수도 있고, 벤야민처럼 판단보다는 가치평가(evaluation)에 더 강조점을 둘 수도 있다. 나는 후자를 더 선호하지만, 때에 따라서 가치평가를 넘어서 판단으로 나아가야할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에 작동하는 것이 비평가의 윤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비평가의 윤리라는 건 뭘까? 루카치가 말년에 언급한 말 중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문화비평의 미덕은 형식을 통해 내용의 논리를 드러낸다는 데 있다. 우리는 언어나 코드라는 형식을 떠나서 리얼리티를 이해할 수가 없다. 모든 리얼리티는 형식을 갖는다. 따라서 이 형식은 내용에 따라서 논리화하기 마련이다. 문화비평은 이런 형식에 각인되어 있는 내용의 논리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마치 도기에 찍혀 있는 도공의 지문 같은 이런 논리를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비평의 목표 중 하나는 대문자 Culture를 해체하는 것이다. 이 대문자 Culture야말로 ‘고급문화’라고 불리는 형식들이다. 문화비평의 대상은 고급문화라기보다, 그 고급문화현상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비평이 관심을 갖는 건 “왜 특정한 종류의 문화생산물이 다른 것들보다 더 우월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지는가”라는 문제이다. 이를 통해 문화비평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문화비평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의 『율리시스Ulysses』와 텔레비전 시리즈 <스타트렉Star Trek>을 같은 자리에서 다루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때 문화비평은 대학제도나 정전(canon)이라고 불리는 가치체계들을 공격했지만, 요즘은 이런 ‘좋았던 시절’도 옛말이 되었다. 오히려 대학제도와 정전의 가치를 해체하고 있는 것이 자본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새로운 상황에서 문화비평의 역할은 좀 더 복잡해졌다고 할 수 있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이 말하듯이, <스타트렉>이라고 해서 『율리시스』와 완전히 다른 형식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둘은 우열의 문제라기보다 취향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치의 차이를 우열의 문제로 보는 것은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 문화비평이 오늘날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가치의 높낮이를 찾아내서 보여주는 것일 테다. 문화비평이 우리에게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