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움직인다. 스크롤이 내려가면 그림이 올라간다. 상승과 하강의 기묘한 맞물림 속에 이미지가 있다. 도르래에 연결된 두레박을 끌어올리듯이 이미지를 길어 올린다. 그림은 사각형 안에 있다. 사각형은 컷이고 프레임이며,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디지털 단말기 자체이다. 단절과 완결의 존재형식이며, 연상과 연속, 네트워크라는 관계의 양상이다. 이미지가 점유하는 곳은 연속과 불연속의 간극이다. 그러므로 사각은 웹툰의 실존이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이 흐르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어폰은 단지 벽일 뿐이다. 빠르게 지나는 발걸음은 사라지고 소음은 지워진다. 끊임없이 위로 솟구치는 사각형들의 틈새에 끼어서 이미지들의 서사에 매료된다. 동공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림이 스스로 자리를 바꾸므로, 시선은 고정된다. 움직이는 것은 손가락뿐이다.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을 대는 순간, 접촉은 접속이 된다. 마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의 <천지창조Genesis> 속 인간과 신처럼, 영화 <이티The Extra-Terrestrial>의 소년과 이티처럼, 손가락은 손가락과 대화한다. 손가락이 이미지를 불러오고 손가락이 소통한다. 다시 손가락을 움직인다. 인트로 장면들이 지나가면 “3단합체 김창남”이라는 타이틀이 뜬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 스크롤을 내린다. 그러나 나는 독자가 아니다. 사각이 웹툰의 실존이듯이, 외부로 난 창을 닫은 채 사각의 모나드 안에 웅크린 나는, ‘유저(user)’이다.

 <3단합체 김창남>(이하 <김창남>)은 ‘합체’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김창남’에 대한 얘기도 아니다. 거대 로봇물에나 나올법한 3단 합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일어나지 않으며, 김창남은 서사의 주변을 맴돌 뿐이다. 로봇이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SF의 화려함이나 사이버 펑크(cyberfunk)^{대체로 인공지능, 독재자, 기업국가, 로봇 등을 소재로 암울한 미래상을 묘사하는 장르}의 급진성은 없다. 현실의 모순을 지적하고 삶의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래픽 노블만큼 리얼리즘의 본질에 다가가지 않는다. 오히려 <초비츠(ちょびっツ)>나 <최종병기 그녀(最終兵器彼女)> 같은, 가벼운 일본 SF멜로를 닮아 있다. 거대로봇 ‘김창남’의 외양은 여성형 컴퓨터 ‘초비츠’를 떠올리게 하며,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학생이 저항할 수 없는 권력집단에 의해 관리된다는 점은 <최종병기 그녀>의 ‘치세(ちせ)’와 유사하다. 주제 역시 인간과 기계, 혹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하기 어려운 어떤 존재와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런데 김창남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망가도 아니고 그래픽 노블도 아니다. <김창남>은 ‘웹툰’이다.

 하일권은 스토리가 탄탄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채도가 낮은 파스텔 톤의 색채가 특징이지만 <안나라수마나라>(2009)처럼 무채색의 수려한 작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2012년 초 <김창남>이 영국의 영화제작사인 페브러리 필름과 계약을 맺고 영화화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새삼 화제가 됐다. 알고 보면 그의 작품 대부분이 영화화 제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이목을 끈 것은 한국 웹툰의 글로벌화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김창남>이 웹툰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매체와 메시지에 대한 어떤 은유 혹은 웹툰의 자의식을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만화와 스토리보드, 사이 혹은 너머

 대중문화가 확산되면서 ‘팬덤’이라 불리는 적극적 향유층의 활동 역시 활성화되었다. 프로슈머로서의 성격이 강한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원작의 설정이나 캐릭터를 차용해 소위 ‘2차 창작물’이라 부르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2차 창작은 단순 일러스트에서부터 팬아트, 팬픽, 스핀오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때로는 상당한 인력과 자본이 투입되어 원 소스 멀티 유즈라고 할만한 뛰어난 작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2009년 제3회 ‘대한민국 동영상 UCC 대상’은 웹툰 애니메이션이라는 흥미로운 장르의 작품이 수상했다. ‘쇼킹보이스’라는 제작팀이 출품한 이 작품은 원작 웹툰을 동영상으로 편집하여 정지된 그림이 연속해서 이어지는 파노라마 웹툰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효과음과 배경음악, 말소리까지 더빙해 현실감을 높였다. 관심 있는 일반 대중에 공개되면서 신선한 충격을 던져 준 이 작품의 제목은 “3단합체 김창남-1화”였다.

 한국 판타지 소설 중 2차 창작물이 가장 많다고 평가되는 홍정훈 작가의 『월야환담: 채월야』의 경우,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비주얼 노블 등도 생산되었지만, 대부분 원작과 거의 무관하게 캐릭터만 빌려 온 동인물 수준이었다. 물론 총 6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스토리를 플래시 애니메이션이나 비주얼 노블로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스토리를 변형·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웹툰 애니메이션 <김창남>은, 그것이 만화라는 이미지를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전제하고라도, 특별한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웹툰 애니메이션은 기존에 웹툰이 사용하던 영상연출 기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시보레’ 때문에 놀란 ‘호구’가 투덜대는 장면에서, 시보레가 말하는 부분은 그림의 반을 까맣게 처리해 호구는 보이지 않는다. 호구가 말하는 순간이 되어서야 암전 처리를 지워 둘이 마주보고 있는 전체 그림을 보여준다.(10화) 물론 이미 웹툰이라는 장르가 기존 출판만화와 달리 페이드인/아웃(fade in/out), 패닝(panning), 틸팅(tilting), 줌인(zoomin) 등 영상 연출 기법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프레임의 상하 이동이라는 웹툰의 한계를 벗어나 가로 이동을 하면서, 또한 이미지가 등·퇴장하는 시간과 방법을 자유롭게 조절하면서 좀 더 연출의 영역이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수상 당시 1화였던 웹툰 애니메이션 <김창남>은 지속적으로 제작되어 총 25화 중 현재 12화까지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다. 웹툰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정착될 수 있을지, 아니면 열혈 팬덤의 2차 창작물로 남게 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웹툰의 특수한 성격을 말해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영상물과의 친연성, 즉 영상화하기 편리하다는 점이다. 거칠게 말하면 영상물 제작의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필요로 하는 스토리보드와 상당히 유사하다. 웹툰이 영상물로 제작되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 웹툰의 약진-영상화를 포함한-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스토리의 다양화와 리얼리티의 확보, 그리고 웹툰 자체의 성격이 그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애들이나 읽는 것’으로 치부되던 한국 만화가 성인 오락물로 자리 잡으며 보다 보편적 가치를 획득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1960년대 일본의 대학생들이 사실적인 그림체의 <카무이(カムイ)>나 <내일의 조(あしたのジョ一)>를 내놓으면서 명랑만화에서 벗어난 것처럼, 서구의 만화가 마블코믹스류의 히어로물에서 탈피해 그래픽 노블로 진화한 것처럼 말이다.

 예컨대, <김창남>은 왕따를 당하는 주인공 호구와 인간형 로봇 시보레의 만남을 통해 학교폭력, 외면, 탐욕 등 인간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사회의 모순을 노정한다. 그런데 예전에 인간에 가까운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가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로봇 찌빠>가 그렇다. 2010년에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로봇 찌빠>에서 ‘찌빠’는 단순히 선행을 하기 위해 좌충우돌하거나 말썽을 부려 혼이 나기는 하지만 시보레처럼 그 존재 자체가 어떠한 사회·윤리적 문제를 불러일으킨다거나 갈등요소를 지니지 않는다. 유·아동을 위한 명랑 소년물의 틀에 충실하며,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통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한국 웹툰은 이전과 달리 리얼리티와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나름의 발전을 해온 것이다. 그런데 웹툰이라는 신종 장르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웹툰은 웹(web)과 툰(toon)이 합성된 조어이다. 웹은 디지털 매체이며 툰은 도상기호인 그림과 대사나 의태어·의성어를 표시한 텍스트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만화이다. 볼터와 그루신(Bolter & Grusin)은 새로운 매체가 기존의 매체들과 경쟁하거나 그것들을 인정·개조하면서 문화적 의미를 획득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과정을 ‘재매개(remediation)’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사진은 회화를, 영화는 연극과 사진을, 텔레비전은 영화와 보드빌, 라디오를 재매개한 것이다. 그렇다면 웹과 툰으로 이루어진 웹툰은 기본적으로 두루마리와 출판만화의 재매개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두 매체의 재매개로 형성된 웹툰은 기존 만화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스크롤이라는 말 자체가 두루마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디지털 디스플레이 방식인 웹은 두루마리의 연속성을 지닌다. 반면에 페이지가 넘어가야 하는 출판만화는 단절성과 자족성을 지니게 된다.

 특히 만화라는 장르는 독자 스스로가, 흔히 ‘홈통’이라 부르는 컷과 컷 사이의 빈 공간을 경험적 연상으로 채워넣는 완결성 연상 작용에 의해 작동되는데, 한국 만화의 경우 이 홈통이 넓어 독자의 개입이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에 사각의 컷이 지니는 완결성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웹툰은 이 두 가지, 연속성과 완결성이 서로 충돌하고 공존하는 존재 형식이며, 여기에서 움직이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정지해 있는 것도 아닌 웹툰 애니메이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웹툰, 아우라가 부재하는 만화

 <김창남>에서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중요한 플롯 포인트의 역할을 하는 호구의 할머니 ‘박말년’ 여사는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홀로 호구와 호수 남매를 키우는 박말년 여사는 치매로 인해 정신이 온전치 않다. 그녀는 방금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반복하는 등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다. 그러나 손자와 손녀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끔찍하다. 그녀는 급기야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리고 심지어 호수와 호구마저도 알아보지 못한다.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던 그녀는 어느 날 멀쩡한 사람처럼 계란을 부친다. 놀란 호수가 묻자 그녀는 “호수를 위해 계란을 부친다”며 “댁은 누구냐”고 호수에게 되묻는다. 정작 자신 앞의 호수는 알아보지 못하면서, 호수의 반찬 투정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자의식이 없는 박말년 여사의 이러한 행동은 뇌에 입력된 어떤 데이터가 재생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패턴화된 행동 방식이 프로그래밍 된 인간형 로봇 시보레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들은 모두 호구에게 친절하며, 그가 의지하고 기대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이 둘을 구분 짓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맥락’일 것이다. 시보레의 친절은 프로그래밍된 명령어에 의한 것이며, 그렇기에 당위이고 명령이다. 반면에 박말년 여사의 계란 부침은 시간을 두고 조금씩 삶의 궤적 속에서 켜켜이 쌓인 애정의 징표 같은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로직(logic)에 의해서가 아니라 추억이나 기억으로 이름 붙여질 수 있는 것에 의한 고유한 성품이다. 그 시간에는 호구와 호수 남매의 웃음과 눈물, 땀 냄새와 살 냄새, 목소리의 톤과 살결의 촉감 등이 녹아들어 있다. 한 존재의 결이 오롯이 묻어나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친절은 ‘그래야 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러고 싶기 때문에’ 행하는 친절이다. 누적된 시간의 층이 없이 프로그래밍에 의한 시보레의 친절과는 질적인 차이를 지니는 것이다. 시보레의 친절은 다른 선택지를 갖지 못한 입력된 친절이며 복제 가능한 가상의 도덕이다.

 매체가 곧 메시지라는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말은 식상하다 못해 이제 신물이 난다. 스물 네 시간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우리를 압도하는 그 무게감을 견디기도 힘들다. 그런데 우리는 맥루한이 말장난처럼 덧붙인 또 한 마디를 종종 잊곤 한다. ‘매체는 마사지(massage)’이기도 한 것이다. 호구 일상의 표면적을 고루고루 주무르던, 박말년 여사가 보여준 삶의 스킨십처럼 말이다.

 김홍준 감독의 <장미빛 인생>(1994)은 당시 만화방의 풍경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만화방으로 흘러들어온 막노동꾼, 가출 청소년, 불량배, 수배 중인 운동권 학생 등은 그곳에서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싸우거나 라면을 먹는다. 코고는 소리나 텔레비전과 말다툼의 소란스러움, 옆자리에서 먹는 라면 냄새와 땀 냄새…… 이러한 것들이 만화방의 정서와 분위기였다. 만화를 본다는 것은 여러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하는 ‘그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우라 같은 것이어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분위기이며 그 시간과 공감만이 지닌 유일한 현존성이었다. 만화방에 간다는 것은 곧 만화를 본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볼 수도 있지만 그것들은 부차적이었다. 만화의 매체가 만화책이고, 만화책의 매체가 만화방이던 시절에 만화방과 만화, 매체와 메시지 사이의 갈등이나 괴리는 없었다.

 그러나 웹툰의 매체인 스마트폰에는 만화방의 아우라가 없다. 지하철에서, 혹은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이어폰을 낀 채 부드러운 화면 위를 손가락이 움직일 때, 거기에는 소음도, 땀 냄새도, 라면도 없다. 그들은 현실과 괴리된 채 LED화면이 쏟아내는 가상의 이미지와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고립된 존재이다. 다만 스크린을 터치하는 손가락만이 떠돌아다니는 전파 속에서 또 다른 손가락을 만날 것이다. 그들의 현존성은 유일한 통로이자 매체인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확보된다.

 시보레에 매료되는 호구는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원본도, 아우라도 없는 시보레의 친절은, 친절의 시뮬라크르이다. 현실적 소통에 실패한 호구가 기대는 것은 가상의 교감이며, 가상의 소통이다. 시보레와 같은 인간형 로봇은 대량생산되어 매춘용으로, 혹은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팔려나간다. 고객들은 호구의 고통을 외면한 반 친구들처럼, 실존하는 타인들과의 소통을 포기한 채 가상의 친절을 구매하고 소비하며 스스로 고립의 성을 높이 쌓아간다. 성벽은 사각의 벽돌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각은 컷이 아니라 1과 0으로 조합된 스마트폰이며 연속성의 프레임이다.

 웹툰을 출판만화와 구분 짓는 차이들은 이러한 고립성을 증대시킨다. 그림이 고정되어 있는 출판만화에서 컷과 컷 사이를 자유롭게 뛰어넘으며 누리던 ‘홈통’의 자유는 웹툰에서는 더 이상 누릴 수가 없다. Z자 형태로 움직이던 시선은 상하로 이동하는 경직된 틀 위에서 고정된다. 사각의 컷은 프레임의 연속으로 인지되고, 자연스럽게 연속성이 강화된다. 그 결과로 다양한 영상 연출 기법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컷과 컷 사이의 빈 공간인 홈통의 폭은 좁아지고 완결성의 연상 작용은 미약해진다. 다양한 영상 연출 효과로 작가의 영역은 확대된 반면에 독자는 적극적 태도를 버리고 수동적이고 무의식적인 감상태도에 익숙해지게 된다. 어둠 속에 앉아 영화를 보듯이 웹툰의 연속적인 이미지에 매몰된다. 두루마리의 연속성이 사각 컷의 완결성을 잠식해 들어간 것이다. 웹툰을 디지털 매체에 탑재된 만화라고 봤을 때, 분명 웹은 매체이고 툰은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혹시 그 반대는 아닐까?

 어릴 적 만화방의 풍경과 만화책의 종이 냄새는 세세하게 기억나지만 만화의 제목이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온가족이 둘러앉아 드라마를 본 기억은 나는데, 정작 무슨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메시지는 사라지고 매체만 남는다. 여기서 ‘매체가 메시지’라는 명제는 과감하고 비약적으로 의미의 폭이 확장되고, 매체와 메시지의 관계는 모호하게 뒤틀린다.

지워지는 매체

 호구의 친구인 ‘안나’의 아버지 이 박사는 자신의 이상형을 로봇으로 만들어 애정을 쏟는다. 마치 피그말리온처럼 말이다. 피그말리온의 지극한 정성은 신을 감동시켜 조각상은 사람이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로봇은 사람이 될 수 없다. 로봇의 뼈대 위에 씌워놓은 실리콘 피부와 사랑하는 것이다. 이 박사는 자신의 이상형을 덧씌워놓은 로봇의 겉모습에 현혹되어 로봇은 보지 못하고 사람만 보는 우를 범했다. 그로 인해 그의 아내는 죽고 딸 안나는 로봇은 결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호구를 죽음으로 내몬다.

 새로운 매체가 앞선 매체 형식들을 개조하는 과정으로서의 재매개는 ‘비매개(immediacy)’와 ‘하이퍼매개(hypermediacy)’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비매개는 투명성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마치 매우 크고 투명한 창을 통해 창 너머의 풍경을 보는 것처럼, 보는 이가 매체 자체를 보지 못하거나 매체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 채 매체가 표상한 대상에 주목하거나 빠져들도록 만드는 표상 양식이다. 반면 하이퍼매개는 비매개와는 달리 매개하고 있는 매체 그 자체를 드러내거나 복수의 이질적인 화면 또는 공간을 만들어, 보는 이가 매체 자체에 주목하게 만들고 매체를 환기시키는 표상 양식이다.

 스마트폰은 출시 당시에는 매체 그 자체를 강조했다. 새로운 매체로서 스마트폰의 존재를 알리고 각인시키는 일은 중요했다. 즉 하이퍼매개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실제로 그다지 뛰어나거나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스마트폰의 중요한 특징은 인터페이스의 편리함과 어플리케이션의 다양성에 있다. 쉽게 익숙해지고 여러 가지 동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익숙해져 수많은 어플리케이션을 즐기는 사용자는 그 매체를 망각하고 만다. 하이퍼매개에서 비매개로 이동하는 것이다.

 예컨대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유학생은 몹시도 설레겠지만 귀국 후  어느새 한국생활에 익숙해져 특별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유학지의 친구가 전화를 걸어오면 자신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득 새삼스러워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는 아들에게 엄마는 또 스마트폰이냐며 야단을 칠지 모른다. 게임을 하는지, 웹툰을 보는지, 혹은 소설을 읽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들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이 명백한 사실은 자주 망각되거나 무시된다. 웹툰을 보고 있던 아들은 엄마의 잔소리에 인상을 구기며 속으로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아, 만화 보는데 짜증나게!”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표상으로서의 웹툰을 보고 있을 뿐,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매체는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조피부로 만든 자신의 이상형만 볼 뿐, 그 속의 금속 뼈대는 보지 못하는 이 박사처럼.

 주인공 호구가 시보레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이 박사의 경우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왕따였던 호구는 시보레의 친절과 다정함에 위로를 받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외면했던 이 박사와는 달리, 호구는 시보레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녀의 친절이 프로그램된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시보레에게 점차 애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겉모습이 인간인 것처럼 행동도 진짜 인간처럼 할 수 없냐고”(9화) 절규한다. 그리고 ‘인간다움=윤리/도덕’이라는 상당히 도식적인 치환과정을 거쳐, 시보레가 비록 로봇이라고 해도 ‘인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에 도달한다. 시보레에 프로그래밍된 도덕적 행위패턴은 언뜻 정언명령처럼 보이기 때문에 칸트적 윤리관에 기초하여 옳은 판단처럼 보이지만 사실 선험적 순수이성과 자율성을 갖지 못한 시보레에게 정언명령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단지 입력된 코드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구의 선택은 이 박사와는 분명 다른 지점에 있다.

 이 박사가 로봇의 사람됨을 겉모습에서 끌어왔다고 한다면 호구는 시보레의 내면이라고 해도 좋을 로봇의 어떤 속성에서 가져온다. 이러한 차이는 ‘그러므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서로 상이한 접속어를 통해 결론에 이른다. 이 박사는 자신이 꿈꾸던 이상형의 모습을 한 로봇은 ‘그러므로’ 사랑할만하며, ‘그러므로’ 그녀가 로봇이라는 사실은 외면한다. 반면에 호구는 시보레는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인간다움을 발견한다. 호구는 자신이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보레를 사랑한다. 이처럼 <김창남>은 매체와 메시지를 인식하는 두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즉 보이는 표상만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매개하는 매체의 존재를 인식하느냐 하는 것이다.

 <김창남>에는 시보레 말고도 한 대의 로봇이 더 등장한다. 거대로봇 김창남이다. 김창남은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비를 가려주기도 하지만 영 어색하고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높이 59층 새서울 청사 꼭대기에 황금으로 만든 원형 구조물을 올려놓다가 기계이상을 일으켜 구조물을 떨어뜨리는 사고를 낸다. 이 시퀀스에서 조종실을 보여줌으로써 김창남의 작동방식이 밝혀지는데, 기내에 들어가 계기판을 조작하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로그래밍되어 그대로 움직이는 시보레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마치 거의 스캔본이나 다름없었던 1세대 웹툰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웹툰은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마우스를 클릭해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었다. 독자들은 분명하게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으며, 아무도 거대로봇 김창남과 사랑에 빠지지 않듯이,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혼동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은 ‘독자’였다. 그러나 지금 스마트폰을 통해 웹툰을 볼 때, 우리는 더 이상 독자일 수 있는 것일까? 그보다는 ‘유저’에 더 가깝지 않을까?

 비극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여전히 호구와 시보레의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는 웅변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웹툰이 그 자체로 고유한 만화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디지털’이라는 메시지를 담는 매체로서 기능할지 모른다는 웹툰의 쓸쓸한 자의식 같기도 하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햄릿 온 더 홀로덱¹⁾Hamlet on the holodeck』이라는 자넷 머레이(Janet Muray)의 저서명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제목은 사이버 시대의 상징물과 같은 홀로덱 위에서 고민하는 햄릿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지금, 웹툰 역시 스마트폰 위에서 선택지를 잃어버린 채 홀로 쓸쓸한 독백을 읊조리고 있을지 모른다.

 마지막회인 <26화-바다의 끝>의 엔딩 크레딧이 다 지나간 후 잔잔하게 파도가 치는 해변의 이미지 컷이 등장한다. 그 위로 서로 맞잡은 손이 클로즈업된다. 호구와 시보레의 손이다. 반투명의 손은 흐릿하게 바다를 비춘다. 그리고 행복한 표정으로 해변을 산책하는 그들의 모습으로 <김창남>은 막을 내린다. 그것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장면이다. <엔드 오브 에반겔리온(The end of evangelion)>(1997)의 엔딩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장면은 마치 태초의 아담과 하와 같은 이미지를 준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 디지털 혁명이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인간과 디지털이 호의적으로 손을 잡고 있는 지금을 살고 잇는 우리는 아마도 새로운 아담과 하와인지도 모르겠다.

 <김창남>은 왕따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가 하면, 이에 대해 ‘손 내밀기’ 혹은 ‘손 잡아주기’ 같은 윤리적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과 질투, 외면-아마 이 세 가지가 합체하면 김창남이 될 것이다-을 통렬히 고발하기도 하며, 로봇을 통해 인간다움이라는 존재론적 문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외계인이라도 사랑하겠다’(<커피프린스 1호점>, 2007)는 식의 사랑 지상주의로 현실의 모순을 슬쩍 피해가는 가벼움을 노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웹툰이라는 장르적 정체성을 통해 읽어 내려가면, 현실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웹툰의 불안정한 지위에 대한 불안감과 자의식이 드러나기도 한다. 아마도 그것은 격변하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며 디스토피아에 대한 불안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모든 현대인들의 자의식이기도 할 것이다.
 

미디어비평상 당선소감
미디어 환경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정도는 짐작해야 내 마음 속의 공포심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
이대연

 스마트폰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을 대고 움직이는 게 영 어색했던 건 물론이고, 화면을 기울이자 사진이 제 스스로 돌아갔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건 오래 전 마우스를 처음 봤을 때나 기괴한 연결음을 내던 ‘통신’이란 것을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전화기라기보다는 작은 컴퓨터였고, 그것도 내가 아는 컴퓨터가 아니었다. 손가락 하나로 게임을 하고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만화나 소설을 볼 수도 있었다. 손가락의 마법 같았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에 따른 유토피아 같은 것은 그려지지 않았다. 반대로 어떤 공포가 밀려왔다. 손가락 때문이었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마우스를 사용하게 되기까지 십 수 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마우스를 버리고 손가락을 이용하기까지 십 수 년이 걸렸다. 기계와 인간이 직접적인 ‘접촉’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든 의문은 이것이었다. 다시 십 수 년이 흐르고 나면 <공각기동대>의 구사나기 소령이나 <메트릭스>의 네오처럼 목 뒤에 구멍을 뚫고 컴퓨터와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날 저녁 친구와 술을 마시며 비탄조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제발 기술이 이제 그만 발전했으면 좋겠어!”

 내 바람이야 어떻든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미디어의 진화는 더욱 가속화 될 것이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혹은 우리는 그 편리함에 익숙해져갈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세계의 미디어 환경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정도는 짐작해야 내 마음 속의 공포심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끼적이기 시작한 글이 평론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올지는 생각지 못했다. 부끄럽고 어깨가 무겁다. 건강한 평론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

미디어비평상 심의평
3단 합체에 성공한 미디어 비평의 글을 뽑으며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인천문화재단의 2012년 플랫폼 미디어비평상 심사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응모한 좋은 글들을 읽어보고, 미디어비평계 최근의 관심사도 덩달아 따라잡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비평이라는 게 대상에 대한 예리한 풀이의 시도이고, 그 자체 세계에 개입해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입장을 표출하며, 그럼으로써 타자의 지적 관여까지도 격려하는 선한 동작이자 사소하지만 중대한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개개 응모작을 꼼꼼하게 읽고 평가하고 선택하는 것은 심사자의 의무가 된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또한 재미난 경험이었다.

 좋은 글들이 많았다. 물론 전문 비평가 수준에 이르지 못한 글들도 있었다. 학술논문식으로 구성된 글, 형식적으로 고루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글, 좀 더 다듬고 가꾸었어야 할 미완의 글, 혹은 상투적인 소재와 진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글들이 눈에 띄었다. 이런 글들은 당연하게 1차 심의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볼 때 글의 수준이 높다는 생각이다. 아마추어 글쓰기에서 전문적인 비평으로 나아가기에 손색이 없어 보이는 글, 이미 빼어난 완성도를 갖춘 글들이 다수 발견된 것은 참으로 반갑고 기쁜 일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이들을 거의 비슷하게 우수작으로 뽑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최함이의 「스머프 마을의 어마어마한 음모론」, 이대연의 「웹툰 온 더 홀로덱-하일권, <3단 합체 김창남>」, 남세희의 「작은 괴물 '골방 극우파'에 대한 보고서」, 윤광은의 「<추적자> 억압받는 실존, 아버지의 귀환」이 그러했다. 최근 큰 인기를 끈 드라마를 ‘아버지의 귀환’이라는 모티브를 중심으로 흥미롭게 풀어 낸 시도에서, 인터넷 SNS의 우익 담론 생산자들을 비평 대상으로 설정해 그 뿌리를 탐구해간 시도, 어린이 만화영화를 현실과 과학을 오가며 깊이 있게 사유하고 재치 있게 정리한 시도가 돋보였다. 그중에서도 심사위원들은 실험적 소재를 발굴코자 하는 노력, 진지한 문제의식과 대화적인 태도,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 글쓰기 실력과 구성의 완성도를 고려해, 「웹톤 온 더 홀로덱」을 올해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비평의 3단 합체에 성공한 좋은 글이다. 진심으로 축하하며, 앞으로의 활동 기대하겠다.

미디어비평상 심의평
웹툰을 비평의 전면에 끌어들였다는 것
이택광(문화평론가, 경희대학교 교수)

 2012년 플랫폼 미디어비평상 응모작들은 예년에 비해 일취월장한 수준을 보여주었다. 플랫폼 문화비평상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신호처럼 보여서 흐뭇했다. 미디어비평상 응모작도 33편이나 되었는데,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꼼꼼한 분석과 유려한 글쓰기를 보여주었다. 응모작 중에서 한 편을 추려내어서 시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당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응모작들을 검토해본 결과, 대체로 텔레비전 드라마, 인터넷 문화,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 그리고 웹툰에 관한 것으로 나눌 수 있었다. 물론 「매춘을 권하는 사회」나 「현대 한국에서의 남성성에 대한 성 상품화와 성 담론의 부재」, 그리고 「장애인의 방송접근권과 장애인 방송」처럼 특정한 미디어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미디어비평상이라는 취지에 부합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서 아쉽지만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눈에 띈 변화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웹툰, 그리고 인터넷 문화와 관련한 응모작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특히 <나는 가수다>에 대한 논평들이 많아서, 이 프로그램이 미친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외에 특이한 소재로 ‘인터넷 악플러’나 ‘인터넷 우파’에 대한 분석을 개진한 응모작들도 있었다. 인터넷 문화가 실생활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좋은 비평들이었다. 심사자들이 가장 망설인 작품은 최함이의 「스머프 마을의 어마어마한 음모론」이라는 작품이었다. 독특한 문체와 전개방식으로 ‘스머프’에 대해 분석한 이 응모작은 일단 독창성이라는 측면에서 높이 사줄 만했지만, 분석적이라기보다 기술적(descriptive)인 차원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판단이 들어서 수상권에 넣을 수가 없었다. 아쉽게 탈락했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좀 더 발전된 모습으로 다시 투고해주면 감사하겠다. 쟁쟁한 응모작들을 검토한 뒤에 심사자들은 이견 없이 이대연의 「웹툰 온 더 홀로덱-하일권, <3단합체 김창남>」을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작은 소재나 관점 면에서 플랫폼 미디어비평상 취지에 부합했고, 비평에 걸맞은 글쓰기 솜씨를 선보였다.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웹툰을 비평의 전면에 끌어들였다는 것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만든 이유였다. 아무쪼록 이 상을 통해 문화비평의 새 장을 여는 비평가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