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학교> 시리즈가 시작된 것은 1999년으로, 그로부터 2002년까지 <학교>는 네 개의 시리즈를 통해 장혁, 조인성, 하지원 등 많은 신인 배우들을 배출했다. 이제 당시의 햇병아리 배우들이 당대의 내로라하는 스타로 자리 매김하는 10여년이 흘러 <학교>는 ‘2013’이라는 부제를 달고 다시 되돌아왔다(총 16부작, 2012.12.03~2013.01.28 종영).

흔들리는 학생, 흔들리는 선생님
예전 <학교> 시리즈도 그랬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2학년 교실을 배경으로 우직한 선생님(<학교 1>의 이창훈)이 중심을 잡고 학교 폭력, 가출, 성적 등 당시 청소년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다시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돌아온 <학교 2013>도 현실의 반사판으로 화제를 몰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학교 1>과 <학교 2013>의 배경이 된 학교 현실은 별 차이가 없다. 어쩌겠는가? 드라마 밖 현실이 그대로인데. 여전히 아이들은 ‘교육이 경쟁이 되어 버린 학교라는 공장에서’^{박명섭, 『교육의 배신, 내몰리는 아이들』} 가공되어지는 생산품처럼 규격 처리되거나 버려지고 있는데 드라마라고 다를 재간이 있겠는가 말이다. 다시 돌아온 <학교 2013>도 누군가는 너무 현실적이라 보기 불편하다고 할 만큼 학력 부진아에서 일진, 일류대 지망생까지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죽겠다는 녀석을 잡아 놓으면, 저쪽에서 불쑥 또 다른 녀석이 뛰쳐나가고, 또 거기에 달려들면 다시 요쪽에서 불쑥 쌈박질을 하는 등, 문제투성이인 21세기의 학교 현실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3년의 학교에서는 이제는 흔들리며 꽃망울을 맺어야 하는 아이들을 든든하게 잡아주어야 할 토양이 될 선생님들까지 언제든지 교장의 말 한 마디면 잘릴 수 있는 이른바 기간제 교사라는, 흔들리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들이 불안정하건 말건 그 교실의 문제는 온전히 선생님들의 몫이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까지 져야 하는 이율배반의 존재가 2013년판 <학교>의 선생님이다. 그러기에 뿌리박히지 못한 선생님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혹은 ‘아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깊게 자리를 잡은 것이 무서워’ 자꾸 사표를 쓴다.

'그래도 학교'라는 낭만적 결론
물론 2학년 2반의 공동 담임이었던 정인재(장나라 분), 강세찬(최다니엘 분) 선생님은 잘리지도, 스스로 학교에서 도망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옥상 위에 섰던, 혹은 서려 했던 아이들은 차분히 교실로 돌아오고, 자신을 옥죄었던 성적과 가족 그리고 친구에게서 이해를 얻어 간다. 망가진 다리처럼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던 박흥수(김우빈 분), 고남순(이종석 분)의 관계도, 그들이 마지막까지 학교에서 버텨냈던 것처럼 우정이란 이름으로 기록을 다시 써나갈 수 있었다. 2학년의 마지막 날, 앙금을 떨어버린 아이들은 사이좋게 교실을 나선다. 그리고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단 한 사람, 오정호(곽정욱 분)를 기다리며 끝내지 않은 종례처럼, <학교 2013>은 ‘그래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버티어 보자고 말한다.
학교라는 것이 시스템으로는 그저 할 수 있는 것이 ‘학교폭력위원회’를 열고, 스펙을 쌓아주는 것 밖에 없어도, 공부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잠만 자더라도, 그저 상처를 덮어 주기만 하는 일회용 밴드 같은 선생님들의 사랑과 관심이더라도, 기껏해야 대신 맞아주고, 짐을 덜어주는 식의 요령 부족 우정이더라도, ‘밥도 먹지 않냐’는 고남순의 자조적인 말을 흘려들을 수 없는 것처럼, 저 차가운 세상 밖보다는 ‘학교’가 흔들리는 청춘들에게는 그나마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학교 2013>의 입장은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의 현실에 빗대어 보면, 마치 현실의 88만원 세대들이 돈을 주고 사야 얻을 수 있는 위로의 ‘힐링’ 서(書)들처럼 겉치레 힐링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더구나, 그나마 드라마 속 학교 교실 안에서는 두 명의 선생님이 고군분투를 해도 학생들은 저마다의 짐을 지고 비명을 지르는데, 하물며 잡무에 시달리는 한 명의 선생님이 책임지는 현실에서야 당연히 역부족 아니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옥상까지 올라선 민기를 결국은 이해해 주려고 애쓰는 엄마가 없다면, 축구 선수의 꿈을 잃고 이 학교 저 학교 전전하는 흥수에게 자신을 버려서라도 그에게 용서를 구하는 남순이 같은 친구가 없다면, 그저 꽃봉오리를 흔드는 바람만 있을 뿐, 함께 흔들려 주거나, 관심을 가져 줄 누군가를 얻지 못한다면, 이라는 의문에 이르면 ‘그래도 학교에서’라는 주문은 허공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런데도, <학교 2013>은 달라지는 게 없더라도 놓치지는 말자고 다시 말을 건넨다. 16부 내내 주구장창 말썽만 피우다가 결국에도 학교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이젠 ‘나쁘게 살지 않을게요’ 라고 말하는 오정호의 한 마디를 16부 마지막에라도 겨우 얻어 들을 수 있는 게 어디냐며, 선생님이 학생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내민 손을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최악은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나직이 읍소한다.
그리고 이는 <학교 2013>의 작가 이현주가 전작 <보통의 연애>를 통해서도 말하고자 했던 ‘인간적 온기’의 연장선상에 놓인 주제의식이다. 살인자의 딸과 그 살인자로 인해 죽음을 당한 형을 가진 남자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트라우마조차도 서로의 인간적 온기를 거두지 않는다면 여느 사내와 여인처럼 다시 사랑이란 말로 이어붙일 수 있다고 했듯이, 비록 으스러져 버린 다리는 돌아오지 않지만, 남순이의 진심을 다한 노력이라면 박흥수의 상처받은 마음만은 어루만질 수 있다고. 그게 어디냐고. 마치 도종환의 시, ‘담쟁이’처럼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함께 노력해 보자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드라마를 통해,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퍼 주는 일방적이고 호혜적인 사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선생님을 믿어요’ 라는 한 마디의 말로 학교 밖으로 도망가려던 선생님을 붙잡고, 몸을 던진 우정이 친구를 나락에서 건지는, 그게 선생이든, 모범생이든, 양아치이든 그 누구라도 본원적으로 지니는 ‘선함’이요, 그 선함이야말로 자신의 상처를, 서로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자생적 힘이라 <학교 2013>은 믿는다. 세상은, 사회는 여전히 변함없이 우리를 배신한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그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찾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결국 우리가 학교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긍정적이고 최선인 희망 찾기가 바로 서로의 손을 잡는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선거 후의 절망을 <레미제라블>의 굴하지 않는 휴머니즘에게서, <7번 방의 선물>의 인간애에게서 위로를 받듯이 우리는 또 그렇게, 그것이 환타지라 할지라도 <학교 2013>의 메시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