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회와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던 기존 방식에 새로운 향유 환경과 현상들이 도래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멀티플렉스 영화관 메가박스에서 상영하고 있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이하 <브레겐츠>) 시리즈는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브레겐츠>는 지난 1945년부터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브레겐츠의 보덴제 호수에서 시작된 대규모 야외 오페라 축제이다. 영화관에서의 오페라를 상영한다는 것이 생소하거나 선뜻 머리에 떠오르지 않지만 알고 보면 간단하다. 오페라 실황을 담은 필름을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것. 일단 이 유서 깊은 페스티벌에 올린 오페라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든’ 접한다는 점에 있어서 영화관에서 오페라를 접하는 것은 큰 의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보았던 것은 2009년에 올린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아이다(AIDA)>(그레임엄 빅 연출)와 2013년에 올린 움베르토 조르다노(Umberto Giordano, 1867~1948)의 <안드레아 세니에(Andrea Chenier)>(키스 워너 연출)였다. 두 필름 모두 고화질 블루레이 DVD로 출시되어 국내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것들이었다. 필자는 <브레겐츠>에 올라간 두 작품에 대한 평보다 영화관에서 오페라를 관람한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이 글을 진행하려 한다.

공연장의 예절과 영화관에서의 자유
공연장이 아닌 영화관에서 오페라를 관람한다는 것은 어떤 독특한 체험을 수반한다. 공연장에서는 공연 전 핸드폰 전원을 꺼달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설정한 진동모드도, 희미하게 조절한 불빛도 모두 ‘민폐’가 된다. 만약 열(列)의 중간 좌석에 앉게 된다면? 입장을 늦게 하거나 공연 중간에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큰 맘 먹지 않으면 자리를 뜰 수도 없다. 휴식도 몸의 컨디션보다는 러닝타임에 주어진 인터미션에서만 가능하다(물론 <브레겐츠>는 야외 오페라인 만큼 앞서 말한 점들과는 다른 분위기일 것이다). 하지만 음악사를 훑어보면 전설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란츠 리스트((Franz von Liszt, 1811~1886)가 자신이 연주하는 동안 청중이 조용히 할 것을 고집했었다고 나와 있으니, 지금과 같은 관람환경이 조성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페라를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환경은 달랐다. 팝콘을 먹을 때 나는 소리는 스피커를 통한 큰 음향에 가려진다.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셔도 된다. 핸드폰의 불빛과 진동도 조심한다면 실례되지 않는다. <아이다>나 <안드레아 세니에> 두 작품 모두 약 2시간 20분 동안 진행되었는데, 인터미션은 각자의 몫이었다. 또한 극장마다 관람환경 또한 다르게 구축하고 있었다. <안드레아 세니에>는 메가박스 센트럴(서울)에서, <아이다>는 메가박스 킨텍스(일산)에서 관람했는데, 전자가 다른 극장과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극장이었다면 후자는 비행기의 퍼스트클래스와 같이 180도로 넘어가는 의자와 VIP 라운지, 간단한 음식이 별도로 제공된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물론 화려한 물량공세와 무대미학의 접점을 넘나드는 <브레겐츠>의 무대가 스크린에 장대한 스펙터클로 전시된다는 점은 어디나 같았다.

복제품이 선사하는 감동
물론 실제 공연에서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실제 공연에서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생생함’과 감동에 대한 개념의 축을 조금만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면 영화관에서의 오페라도 실제 공연에 준하는 ‘어떤 감동’이 있다. 이에 대해 지난 2011년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때 필자의 체험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최근 베를린필하모닉은 현지 공연을 녹화중계가 아닌 생중계하는 ‘디지털콘서트홀’을 운영하고 있는데, 국내에도 많은 유저가 생겨나고 있다. 독일 현지 시각으로는 8시 베를린필하모닉 홀에 있는 관객과 새벽 4시에 컴퓨터나 TV 앞에 있는 국내 관객과의 ‘동시성’이 형성되고 있으니, 이 또한 음악문화에 있어서 새롭게 도래한 현상으로 주목할 만하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 필자는 베를린필하모닉 내한공연 당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중간열을 기준으로 약간 뒤쪽에 앉아 있었다. 베를린필하모닉이 연주하는 말러의 교향곡에서 오는 감동도 있었지만 또 다른 원인은 그들을 ‘생(生)’으로 접한다는 점, 즉 내 눈앞에 존재가 있다는 것에서 오는 감동이 나를 또 한 번 막막하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로비에 있던 중 ‘디지털콘서트홀’과 베를린필하모닉 실황이 담긴 DVD를 홍보하는 초고화질 대형 평면TV 앞에 서게 된 순간이었다. 방금 전 공연장에서 체험했던 ‘생생함’과는 다른 ‘생생함’이 화면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클로즈업된 화면 속 지휘자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 자신의 테마가 나올 때마다 부지런히 연주자의 얼굴과 손가락을 비추는 카메라 워킹. 나는 90분 동안 연주회장에서 ‘진품’을 보고 나온 사람 같지 않게 오랫동안 그 ‘복제품’(?) 앞에 매료되어 서 있었다. 콘서트홀 무대의 베를린필하모닉이 눈앞에 있던 신비한 음향을 내뿜는 거대한 존재 혹은 덩어리처럼 느껴졌다면, TV 속의 베를린필하모닉은, 마치 다각도의 카메라 워킹을 따라 관람자인 내가 오케스트라와 음악의 구조 속으로 파고든다는 느낌을 제공했던 것이다.

<아이다>와 <안드레아 세니에>도 어떻게 본다면 현장을 ‘복제’한 ‘복제품’이다. 화면은 클로즈업으로 배우의 미세한 표정과 숨결을 관객의 눈앞으로 끌어온다. 스크린을 직조하는 8~9대의 카메라는 공연장에서 우아한 손에 들린 오페라글라스를 대신한다. 이는 감상에 있어서 중요하다. 희극 오페라나 희극적인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와 가사보다도 얼굴의 표정과 미세한 몸짓이다. 가사는 대부분 외국어라서 번역되어 자막으로 제공되어 그 안에 담긴 웃음의 농도는 감소된다. 이를 대리보충하는 것이 배우의 표정과 미세한 몸짓이다. 오페라극장은 대부분 대형무대이기에 객석 또한 다른 공연장에 비해 큰 편이다. 그래서 1층의 뒷열이나 2층, 혹은 3층으로 가게 되면 배우의 표정과 몸짓을 보고 웃을 수가 없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이런 때를 위해 공연 전에 오페라글라스를 대여하기도 한다). 이때 관객의 웃음이 발생하는 포인트가 달라진다. 무대 앞의 관객, 즉 비싼 좌석의 관객은 무대를 보고 웃고, 비교적 뒤나 위층에 앉은 관객은 앞좌석 관객의 웃음소리를 듣고 ‘그때서야’ 웃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3만원의 영화관 입장권은, ‘잘 보이는 것’과 ‘잘 들리는 것’을 고려하여 객석을 15만원부터 1만원까지 서열화한 공연장 좌석의 배치를 무효화시킨다. 이는 오페라 감상의 ‘평등’, 관람과 향유의 ‘민주화’라고 볼 수 있다.

한국오페라를 향한 건강한 긴장감
영화 티켓 값을 기준으로 영화관에서의 오페라 감상은 비싼 편이다. 대신 공연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 우후죽순 생겨난 오페라단은 ‘일단 올리고 보자’라는 마음으로 준비되지 않은 무대와 터무니없는 티켓 값이 대부분인 현실을 만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오페라를 추천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관객이다. 오페라의 발전은 관객의 취향에 맞춰서 진행되어 온 역사다. 클래식 음악은 고상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대박’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척하지만, 현재 올라가는 오페라는 역사 속에서 ‘대박’의 신화를 빚어낸 작품들이다. 관객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공연장을 떠나 오페라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일이 늘어난다면, 이는 한국의 오페라와 환경에 대한 암묵의 비평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생각이 든다. 20~30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하여 3시간 동안 진행되는 오페라 관람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입문용•교육용으로 좋을 듯싶다. 앞으로도 메가박스는 <브레겐츠> 외에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 실황> 등 다양한 현지 공연을 담은 필름을 상영하여 좋은 호응을 받았기 때문에 향후에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 이로 인해 현지 공연에 대한 판타지와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차츰 많아질 것이다. 아무튼 긍정과 부정의 효과는 각각의 관객에게 달려 있다. 필자는 일단 이런 새로운 향유문화가 활성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