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중의 추락은 아름답다. “무대 위는 저주받을 상승의 공간이고, 무대 아래는 황홀한 추락의 공간” ¹⁾이라던 한 평론가의 문구대로다. 추락은, 인물에게는 지난한 삶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단절이며, 관객에게는 단시에 가장 깊은 상흔을 남기는 파토스다. 그래서 무대는 로베르토 쥬코나 자베르, 토스카의 뒷모습을 흠모해왔고, 보이체크와 오필리어에게 삶의 탈출구로 투신을 선사했다. 삶이 팍팍하게 목을 졸라올수록 낙하의 쾌감은 가속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쯤 해서 “예술은 오직 예술이 대항하는 것과 동화됨으로써만 대항할 수 있다” ²⁾는 아도르노의 말을 떠올려보는 것이 좋겠다. 연극은 떨어지는 자의 속도를 말함으로써, 떨어지는 자가 올라야만 했던 위치를 말한다. 말하려는 것은 세계로부터의 탈주 자체가 아닌, 탈주자의 세계다. 즉, ‘황홀한 추락’은 무대라는 현실 위에 존재하지 못함에 대한 비감의 징후이며 (더욱이 자발성을 결여한 뒷걸음질의 낙하라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하강의 순간이 아닌 그 ‘저주받을 상승’의 높이다. 그 높이로부터 인물들이 “왜 떨어지게 됐는지”, 조금 비껴 말하면 “왜 올라가게 됐는지”를 읽는 것이 관객의 몫이 된다.

 근래 우리는 두 차례의 추락 사고를 목격했다. 2012년 상반기 무대에 오른 연극 <전명출 평전> (남산예술센터, 2012.7.10~7.29)과 <칠수와 만수>(대학로 문화공간 필링1, 2012.5.4~2012.7.8)의 결말이 그것이다. 작품의 서로 다른 맥락에도 불구하고, ‘철골 구조물로부터의 곤두질’이라는 서로 닮은 모티프를 비교하는 것은 흥미롭다.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다룬 두 작품이, 무대 위에 철근을 쌓고 이를 중심축으로 삼아 인물의 심경, 상황 변화를 그린 것은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축 자재의 골조는 현대 도시의 등가물로 적합하고, 그것을 되는대로 쌓아올린 앙상함은 오늘날의 위태로운 인간상을 위치시키기에 알맞으며, 무엇보다 수직 개념의 어떤 상징성은 적확하게 현 사회를 내포한다. 이 글은 대한민국의 현대를 산 인물들이 올라가게 된 어떤 ‘높이’와 그로부터의 ‘추락’에 관한 것이다.

 본래 ‘높이’란 무엇인가. 처음에는 일단의 삶의 조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인류는 높은 곳에 올라 홍수를 피하고, 천적으로부터의 시야를 확보해왔다. 이를 시작으로 높이는 물질과 권력의 가장 원시적이고 기초적인 상징 속성이 됐다. 고층 빌딩으로 대표되는 물질 축적의 높이,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의 파놉티콘과 같은 감시의 높이가 모두 맥락을 같이 한다. 연극에서도 수직으로 부피를 쌓는 것은 아주 분명한 무대 언어인데, 이 높이는 물질권력과 규율권력의 압박을 가리키는 선명한 시각화인 것이다.³⁾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은 이러한 수직적 이미지를 공유한다.

 먼저 <전명출 평전>을 보자. 내레이터 역의 딸 광옥이 “아버지는 왜 저기에 매달려 계실까요?”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 극 초반은 (기억해두자. 그가 ‘어떤 높이에 매달려있다’, 즉 ‘낙하 직전에 있다’는 것은 극 전반에 걸쳐 아주 중요한 언급이다.) 한 사건을 기점으로, 합천 시골에서 도시 울산으로 공간을 빠르게 전환한다. 전명출이 가난을 못 이겨 마늘 50접을 훔치고 마을 사람들에게 멍석말이를 당한 것. 맹물로 바꿔놓은 농약통 덕분에 자살 기도에 실패한 전명출 내외는 도시로 가게 되는데, 무대 전체를 높게 채우는 골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시점이 바로 여기, “돈 벌어 오마”는 전명출의 개심 직후부터다. 즉, 철골 구조물은 1차적으로는 그가 새 삶을 배우는 배경인 막노동판이지만, 동시에 이 구조물의 높이는 산업화와 자본화로 탄생한 도시권력과, 일꾼들을 통제하는 사회권력, 경제 개발을 주도하는 정치권력의 물화다. 이 뼈대는 시대의 전명출들이 ‘쌓아 올림’을 목표로 삼은 부와 권력의 가능성이며, 건조하고 앙상한 삶의 내부 골격인 것이다.

 <칠수와 만수>에서 칠수와 만수가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빌딩 역시 이와 같다. 앞서 앙상한 골격으로 오른 이 고층 빌딩은 오늘날, 우아미의 누드화로 대표되는 천박한 외피를 둘러쓰고, 부단한 노동의 복종을 요구한다. 극은 급박한 기일 내 대업무를 맡은 뉴서울예술공사의 아침 조회로 시작한다. 익숙한 ‘빨간 점퍼’를 입고 회장과 총무가 부르는 사가(社歌)의 끝 “Just Do It”은 13층 높이에 설 우리의 인물들에게 사회가 무엇을 종용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불가능은 없어, 일단 하면 된다(Just Do It)”, 그러나 더 정확히는, “생각하지 마, 닥치고 일이나 해(Just Do It).” 곤돌라 위에 오른 칠수와 만수의 동선이 전명출의 그것보다 훨씬 제한된다는 것을 주목해 보자. 십 수 년을 경계로, 혹은 인물의 상황이나 태도에 따라, 자본주의 권력의 타의적 압박은 더욱 강화된 듯하다. 한 번 이 거대한 물신의 부품이 된 인물들은, 고층의 높이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다. 가능한 경우는 오직 두 사람의 수다를 통해 형성되는 회상과 환상의 순간뿐이다. 극은 부단하게 곤돌라 외부로 장면을 전환시켜 페인트 냄새로부터 인물들의 숨을 틔운다. 어머니와 형, 누이에 대한 염려, 그들과 함께하는 어떤 미래의 소망들, 노래 경연 프로그램 출연에 대한 흥분 섞인 상상과, 2인조 은행털이 행각의 우스개 계획까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흥에 겨워 “발라버려”(드렁큰 타이거, <몬스터>)를 떠들어도 인물들이 페인트를 발라야 할 빌딩은 고스란하게 눈앞에 놓여 있다는 현실이다. 그들이 페인트칠을 하는 정면은 바로 객석을 향해 있어, 우리 역시 그 높이를 면대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극 중 높이의 이미지가 어느 순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 같다. <칠수와 만수>의 한 전환점이 이를 잘 드러낸다. 기구한 가족사와 암담한 현실을 토로하는 것을 마치고, 인물들은 13층에서 옥상으로 오른다. 이유는 아주 단순명쾌하다. “세상에 오줌을 갈겨보자”는 것. 이 사유는 기실 <전명출 평전>의 아주 짧은 순간과 궤를 같이 하는데, “왜 노동판에 올랐냐”는 물음에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⁴⁾라고 답한 전명출의 대사를 떠올릴 수 있겠다. 이러한 움직임은 인물들이 어떤 압박-공통적으로는 가난이지만, 알고 보면 사회·정치·문화가 복잡하게 교합된-에 비록 부박하게나마 최초로 보여주는 저항의 몸짓이다. 말하자면 이 순간의 위치는, 높이에 항거하기 위한 높이, 존재하는 권력을 전복하려는 권력의 높이이며, 누군가를 등쳐서 살아남거나 혹은 간신히 살아남는 한갓 잔거(殘居)의 오름이 아닌, 진짜 삶을 지향하는 오름인 것이다.

 우리는 어두운 조명 너머 그려진 칠수와 만수의 실루엣을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앞서 말했듯 힘은 애초부터 하늘에 있어서, 사람은 연기를 올려 피워 기우제를 지내고, 신에게 묻기 위해 산을 올랐다. 오직 그러한 시도만이 선취된 힘에 가닿았다. 오늘날 거대권력 앞에 선 우리의 현실은 조금 더 팍팍하다. 누군가는 우리가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평등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가령 발언의 문제를 들어보자. 각종 인터넷과 언론 등 소통 방법을 통한 당신의 의사표현은 자유로운가. 천만에, 말이 자위가 아닌 불합리에 저항하는 행위가 되기 위해서라면, 권력의 눈높이로 올라야만 한다.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말마따나 공론장의 붕괴경향이 분명한, 여론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개인의 담화는 쉽게 담론이 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아무도 칠수와 만수들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⁵⁾ 그래서 누군가는 도심 한복판 건물 위로 컨테이너 탑을 쌓았고, 더러는 1년여를 크레인에 올랐으며, 교각에, 교문에, 옥상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들이 “왜 올라가게 됐는지”에 대한 답은 이제 하나로 추려진다. 전명출의 대사를 빌린다. 바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다.

 앞서 두 가지 높이에 대해 말했다. 하나는 ‘권력으로서의 높이’이며, 다른 하나는 ‘생존으로서의 높이’다. <전명출 평전>이 삭막해 가는 합천을 떠나 생존하려던 인물의 권력으로의 변질이라면, <칠수와 만수>는 권력에서 벗어나 생존으로 오르려던 인물들의 탈주다. 그러나 이 중 어떤 것도 나름의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추락하고야 만다. 그들의 추락은 극을 통해 드러난 우리 현실의 위험 신호로 읽혀진다. 그들을 불운의 사고로, 혹은 외압으로 추락사하게 만든 배후는 무엇일까. 남은 장면들을 더듬어가며 인물들의 추락 원인을 밝히는 것은, 각기 어떤 높이에 처해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개인들에게 삶의 실마리를 주지 않을까.

 우리는 <전명출 평전>의 한 장면에서 극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 조짐을 발견한다. 그 장면은 극의 대사 중 가장 경쾌한 것, “고마 이래 하자”로 시작한다.

  “뭐 하자는 긴데?”
  “아, 고마 이래 하자고.”
  “뭐라꼬?”
  “하, 참 이래 하자고.”
 

 사투리의 맛이 잘 드러난 이 희극적인 대화에는, 중구난방으로 정립된 정의(正義)에 대한 미묘한 난감함이 배어있다. 권위를 세우고 싶은 마을 이장 길식은 새마을 정신을 들먹이면서 친구를 강력히 벌하려 하지만, 어떤 일말의 인정에서 오는 민망함 때문에 “좀 맞자”고 직접 말하지 못한다. 합천 마을 인물들이 가지는 문제는 행동의 동기들이 어떤 대단한 신념이 아닌, 부재한 문제의식을 통해 건설됐다는 데 있다. 악인도 선인도 되지 못하는 전형적 속물주의의 얼기설기한 내골격은 다양한 감정의 찌꺼기들과 얽어져, 그들의 목적-아마도 물질 권력일-에 제대로 도달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 주저앉는다.⁶⁾ 그리고 이들의 머리 위로 평전의 주인공이 있다. 외피를 입지 못한, 아마도 영원히 제대로 된 외장은 갖지 못할 그들의 ‘정의로움’이 전명출에 이르면, 내면이 부재한 상태 그대로 위태롭게 높이만을 키운다.

 그런데 그가 이 위태로운 높이에 오르게 된 원인은 다분히 세태에 달려있던 듯하다. 남을 등쳐먹고, 바람을 피우면서 외치는 전명출의 변(辨)을 들어보자.
 

  "시대가 금수잖아. 이 시대가 그러라고 하잖아."
 

 그는 이 시대가 배출한 건축물이다. 바른말 한 번 해보려다 끌려간 삼청교육대의 경험은 그의 마지막 남은 도의를 무너뜨리는 기초공사였으며, 요령과 부정의 역사에 선두한 인물들(소장과 공무원들, 간접적으로는 전두환이 그들이다)은 그의 설계도가 됐다. 극은 인물과 역사, 허구와 실재를 아주 가까이 놓는다. 10·26사태부터 삼풍백화점 붕괴, 4대강 공사로 이어지는 실제 사건과 사건의 간격은 성큼 성큼해, 사회의 병적인 모습을 아주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그래서, 극의 무대는 권력을 시각화한 <전하의 봄>(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12.4.20~4.26)이나 <에비타>(LG아트센터, 2011.12.9~2012.1.29)의 거대한 이미지를 경유하지만 실상은 <넥스트 투 노멀>(두산아트센터 연강홀, 2011.11.18~2012.2.12)과 같은 ‘빈 높이’에 가까운데, 이 ‘공허한 내면’이라는 정신병적 현상을 구현하는 작업은, 전명출이라는 인물의 물체화인 동시에 대한민국 30여 년의 구체화가 된다. 근현대 30여 년의 굴곡이 한 인물의 파란으로 고스란히 바뀜 했다는 사실은 역사물을 주로 써온 작가의 능숙한 재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투리 등 특유한 말투나 반복적 행동을 통한 인물 군상들의 분명한 성격화, 바닥에 당시의 신문 기사를 조명으로 비추는 방식 등의 연출이 이를 돕는다. 특히 합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장면들-멍석말이와 자살기도부터, 온갖 직함들을 달고 나타난 지역 유지 전명출과 김양의 나들이, 처남댁과의 불륜 등-은 사실주의적 일상 위에 조금씩의 과장된 연기를 덧대 만든 박근형식 희극적 유머의 연장선상에 있다.⁷⁾

 극이 빈 높이의 구현이라고 했다. 그런 곳에 위치하기 위해서라면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전명출의 추락사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표면상으로는 단 세 번의 매달림이 그를 바꿔놓았다고 하지만, 전명출은 수십 년의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그의 모든 행보-길식을 벽돌로 치고 도주, 합천 출신이라는 이유로 십장 자리에 오름, 사기 행각 거절로 삼청교육대 차출, 풀려나온 뒤 철근과 시멘트를 빼먹는 데 동참해 축재, 부실 공사로 도주, 4대강 개발을 이용한 사기 성공-속에서 기실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모양으로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전명출은 ‘행위에 의한 위기’를 또 다른 ‘위기를 담지한 행위’로 해결한다. 내적 모순의 상황이다. 오름은 반드시 떨어짐을 내포하여, 그의 추락은 언제나 예견되어 있다.

 전명출은 ‘계시’를 외치며 늘 자신만만했지만, 극 중 인물들은 알지 못하는 이런 예견된 추락의 반복은, 인물을 쾌감과 안타까움 어딘가에 위치시킨다. 전명출이 매달려 죽기 직전 장면의 분위기는 특히나 이 어리석은 합천 남자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순간이다. 우사(牛舍)를 보고 전명출이 가까스로 기억해 낸 것은, 소 20마리를 벌겠다 했던 처음의 다짐이다. 그가 “걱정하덜 마, 돌아올 거여”라고 말했던가. 롤렉스에 화려한 셔츠의 그가 일견 금의환향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단 한 번도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전명출로서 돌아온 적이 없다. 그에게 고향 합천은 돈을 변통하고, 사기를 치고, 또 다시 야반도주하기 위한 경유지일 뿐이다.

  "까짓 소 20마리, 철이 없구나. 철이 없구나."

 그가 극의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내뱉는 목소리의 묘한 공허함은, 삶을 으르렁대며 살아온 명출을 잊어버린 옛 나날과 아주 매끄럽게 연결시킨다.

 그 옛 나날의 중심에 전명출의 부인 순님이 있다. 순님은 <전명출 평전>에서 가장 이질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속물성에서 비껴난 채 끊임없이 고향을 그리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도드라진다. 특히 전명출이 야반도주 했을 때나 바람을 피우고 매달려 있을 때, 명을 달리 했을 때 중앙 철골 무대를 앞으로 빼내어 순님을 혼자 놓는 연출은 그녀의 외로운 위치를 강조한다. 세상이라는 적(antagonist) 앞에 대응점으로 서 있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녀는,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전명출보다 더 분명한 주역,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관객이 동화되고 감정이입하는 극적 작품의 중심 인물}인데, 때문에 그녀의 바람은 이 문제 상황에 건네는 어떤 해방구의 열쇠가 되는 것 같다. 그녀가 무대 중앙에 올라 수몰된 고향을 바라본다. 이 응시점이 바로 그 해방구, 그녀의 말을 빌리면 “이루어지지 않은 먼 미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미래를 <칠수와 만수>에서 역시 ‘꿈을 향한 소박한 바람’의 형태로 발견하게 된다. 순님의 것과 고스란히 닮은, “사노라면 언젠가는 찾아올 좋은 날”을 그리는 칠수와 만수의 눈빛은 객석 아래로 짙은 인상을 남긴다.

 이 미래를 향한 눈빛에서부터 이제 다시, 생존으로서의 높이에 올랐던 칠수와 만수의 추락을 얘기해보자. 그들의 추락은 이렇게 현존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본래 있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앞서 말했던 전명출의 높이가 ‘떨어짐을 내포한’ 것이었다면, 이들의 높이는 목표를 달성한 뒤에는 반드시 ‘내려옴을 계획한’ 것이다. 순님이 언제나 고향에서의 삶(혹은 아이스케키를 사주던 순박한 전명출과의 삶)을 꿈꿨고, 칠수와 만수가 오줌을 갈긴 뒤에 내려와 또 내일을 살아가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전자의 추락이 예정된 것이었다면, 후자의 추락은 불가해한 사고다. 그 사고의 책임에 칠수와 만수가 외치는 소리를 듣지 않았던, 회장과 경찰·언론으로 그려진 외부의 권력들이 있다.

 이 위압적이고 소통 불능인 상황에 내몰린 그들은 어쩌면 무력해 보인다. 전명출 뒤에서 늘 나름의 삶을 살아가던 순님은 항상 뒤늦게 안타까워할 뿐이며, 칠수와 만수는 자살을 막겠다고 몰려든 경찰과 기자들의 주목에 당황하고만 있다. 이 와중 극 <칠수와 만수>의 후반은 소극적으로나마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시사하는 것 같다. 물병이 휘발유로, 페인트통에 싼 소변이 시너와 암모니아라는 기폭장치로 오인 받으며, 칠수와 만수가 시위대의 선봉이 돼버리는 상황이 그것인데, 이 서사를 덧대 원작과 차이를 둔 극⁸⁾은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제 목소리를 낸다. 두 사람이 명곡 <사노라면>을 부르는 부분은 극의 백미다. 혹시 이 착한 인물들이 먼 미래를 너무 안이하게 포기하거나, 내일의 해가 뜰 것을 너무 쉽게 말해버리지는 않았나. 연출은 시위대의 함성과 극의 마지막을 오버랩시키는 것으로 이에 대해 답하는 것 같다. 권력에 대항하는 높이, 그 위에서의 추락은 오늘날 시위 현장의 모습으로 전이되면서 그제야 완성된다. 그들은 분명 무력하다. 그러나 그곳에 오름으로써 사회의 많은 시선들이 그들을 주목하게 만드는 것에 성공한다. 목소리를 한 데 모으는 이 공간에서만 칠수와 만수의 높이는 의미를 갖는다.

 앞서, 글이 어떤 ‘높이’와 그로부터의 ‘추락’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이제 정정하자면, (혹은 보충하자면) 중요한 것이 높이와 추락 그 자체는 아니다. “연극의 공간은 언어의 시가 아닌 공간의 시로 재정립돼야” 한다던 아르토(Antonin Artaud, 1896~1948)의 말은 연극이 텍스트가 아닌 시간과 공간, 몸과 행위의 예술인 이상 언제나 유효한 것이다. 우리가 극을 통해 읽는 것은 높이와 추락의 ‘공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말하자면, 그 높이가 어떠한 공간을 만들었고(상징했고), 그 추락이 어떠한 공간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것만이, 오늘날 극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 강렬한 파토스의 순간을 관객의 삶에서 재정립하여 지속하게 만든다.

 이 두 작품의 공간이 바로 이 곳, 대한민국이다. 극 <전명출 평전>과 <칠수와 만수>는 대한민국의 척박한 현대사와 정치의 화제를 돌려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삼당합당을 지적하고, MB가면을 쓰는 등의 직접적 인용과 묘사가 아슬아슬할 정도다. 두 극의 저력은 무엇보다도 현실과의 이러한 연계에 있다. 30여 년 전부터 현 정권까지의 누군가들을 겨냥한 수다한 패러디들은 매 순간 살아있는 장르로서의 연극을 새삼 기억하게 한다. 두 작품의 철골 구조물들은 멀리 있지 않다.

 이렇게 극 속의 공간이 우리의 것과 다르지 않으니, 전명출 혹은 칠수와 만수 역시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누군가는 잘못 경도된 채 맹목으로 높이를 쌓고 있을 수도 있고, 또 어느 누군가는 절박한 얼굴로 어떤 철탑에 올라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구성해놓은 높이를 무대로 나타낸다면 어떤 구조물이 될까. 또한 그 속에 살고 있는 하루하루의 삶들을 추락과 오름으로 드러낸다면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속도를 느끼고 있을까. 무수한 생존 경쟁 위로 스스로를 내던져야만 하는, 그래서 약아지거나 팍팍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 높이 권력의 지형도가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권력을 공유하거나 분배에 영향을 미치려는 경쟁과정이 정치”라던 베버(Max Weber, 1864~1920)의 말에 “약자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정치여야 한다”는 한 정치가의 최근 말을 덧대본다. 공유되지도 분배되지도 않은 이 거대 권력의 높이가 육중하게 존재하는 한, 그래서 그것에 대항키 위해 올라야 하는 높이가 있는 한 눈물은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흐를 것이다. 그리고 그 울음의 공간을 말하는 연극 역시 끊임없이 존재할 것도 자명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위태로운 높이는 너무 높아서, 연극이 그려낸 전명출이나 칠수와 만수가 우리에게는 조금도 낯설지 않다.
 

공연비평상 당선소감
연극 평론으로 극을 풍부하게 하고,

동시대 연극의 연극사를 기록할 수 있도록
백수향

 올해 초, 다이어리 가장 앞쪽에 끼적여놓은 문장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자문하며 적은 조각들입니다. 좋은 소식을 듣고 난 뒤, 언젠가의 들썩거림과 진지함이 묻어있는 그 장을 다시 열어봤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 특유의 거창함이 조금 부끄럽지만 짧게 옮깁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연극 평론으로 극을 풍부하게 하고, 동시대 연극의 연극사를 기록할 수 있도록. 극 비평이 단순한 지식 전달체가 아닌 글로서의 가치를 갖도록. … 공연과 글과 생각과 삶으로, 우리가 어떤 담론을 지녔으며 어떤 역할을 할 세대인지 사유하고 밝혀낼 것.”

 사실 이것은 보무당당한 포부라기보다는, 절박하게 찾아낸 처방전에 가깝습니다. 객석은 종종 앓는 사람을 만들어냅니다. 달아오른 감정을 어쩌지도 못한 채 앉아있을 도리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공연장 밖으로 얼결에 쏟아져 나와 어수선한 걸음을 할 때면, ‘무대에 말을 걸고 싶다, 연극에 소용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글은, 좋아하는 것을 곁눈질하느라 앓고 있었던 제 나름의 출구입니다.

 그러나 출발점에서부터 겁먹고 주저앉아있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혼자 쓰는 글은 늘 갈피를 못 잡았고, 혼자 하는 생각은 길을 잃어 허둥대곤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아무에게도 확인받을 수 없다는 것은 꽤 두렵고 외로운 것이었습니다. 원고를 투고하게 된 것은 그런 이유였는데, 아직 설익은 글을 읽어주시고 과분한 결과를 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할 계기로 삼겠습니다.

 기회를 빌려 가족들에게 사랑을 보냅니다. 대학 올라와서 중구난방이었던 막내를 변함없이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생각을 넓혀준 <대학신문>에서의 인연들과 오랜 벗들에게도 애정을 보냅니다. 당신들의 “괜찮아, 할 수 있어”란 말을 저는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늘 부족한 사람이지만, 다이어리의 마지막 한 줄만은 잘해나가고 있다고 보고하려 합니다. “절대로, 하고 있는 일을 끊임없이 사랑할 것.” 사랑하는 연극으로부터, 글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썼습니다. 제가 내뱉은 글에 일말의 미덕이 있다면 모든 것은 거기서 왔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감사를 건넵니다.

공연비평상 심의평
비평은 아름다움 점들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매혹
안치운(호서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최종 심의에 오른 비평문은 손옥주의 「춤추면  복이 와요!-안은미무용단,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와 백수향의 「높이와 추락의 공간, 대한민국 사회를 말하다」였다. 앞의 글은 공연을 앞에 놓고, 눈에 보이듯, 눈으로 읽어가듯 글을 써내려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비평문이지만, 글을 읽을수록 과거의 공연이 지금 여기의 공연으로 환원되는 듯하게 글이 섬세하고, 대상인 공연을 글 쓰는 이의 사유와 접목하는 쉽지 않은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더러 글 가운데, 가벼운 표현들이 전체 글의 비중을 앗아가는 바가 있어 매우 아쉽다. 반면에 후자의 글은 탄탄한 이론으로 연극을 통하여 사회를 읽어내는 능력이 출중하다. 무엇보다도 공연이 삶을 반영하는 것을 전제로, 약자의 아픔을 읽어내는 바가 탁월하다.

그것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추락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약자가 흘리는 눈물로 환치시켜 놓은 해석은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약자가 더 높은 곳에서 흘릴 수밖에 없는 눈물은 더 낮은 곳으로 한꺼번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으로서, 이 두 작품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정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앞의 글은 좀 더 다듬고, 정진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뒤의 글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뒤의 글 필자 백수향 씨는 이제부터 비평의 길로 들어서면서 글로 제 자신을 성찰하고, 공연과 사회를 두루 읽어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비평이라는 글쓰기는 언제나, 나타내지 않고 글로만, 공연과 사회 앞에서 치르는 백병전과 같을 것이다. 공연비평이란 그렇게 공연을 거울처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사회의 모습을 쳐다보고, 읽어주는, 그렇게 하는 자신의 모습을 글로 남기는 일이다. 비평은 특이한 글쓰기가 아니라 아름다움 점들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매혹이다. 두 필자의 정진을 기원한다.

공연비평상 심의평

밀도 있고 안정적인 글쓰기
김명화(연극평론가, 극작가)
 2012년 플랫폼 공연비평상 응모작으로 15편의 비평이 접수되었다. 지원자들의 관심도 다양해서 연극과 무용, 또 판소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공연 장르에 대한 비평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미학이나 내러티브 분석에 치중해서 공연비평으로 다소 미흡한 글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글들의 수준이 고르고 필자들의 주관이 뚜렷하여 흥미 있게 읽었다.

 최종심사에서 주목한 후보작은 손옥주의 「춤추면 복이 와요!-안은미무용단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백수향의 「높이와 추락의 공간, 대한민국 사회를 말하다-연극 <전명출 평전>과 <칠수와 만수>」로 모아졌다. 두 편 모두 서로 다른 개성과 장단점을 가진 글이었다.

 「춤추면 복이 와요!」는 일종의 공감적 비평이다. 평자가 공연 자체를 즐기고 공연의 순간들에 매혹되고 그 매혹이 춤과 생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는 유연함과 생동감이 있는 글쓰기였다. 그런 점에서 비평가로서의 감수성과 자질을 보여준 글쓰기였지만,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나 인상평에 가까운 과도한 주관성은 개선되어야 할 지점으로 보인다.

 당선작인 「높이와 추락의 공간, 대한민국 사회를 말하다」는 밀도 있고 안정적인 글쓰기였다. 공부의 수준도 단단했고 연극의 사회적 함의를 읽어내는 분석력과 표현하는 문장력도 우수했다. 그러나 공연 자체를 보고 공명하기보다는 평자의 콘셉트에 집착해서 작품을 읽고 사유하는 경향이 있어 공연을 보는 시선이 다소 강박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당선을 축하드리고, 앞으로 많은 공연을 경험하면서 보다 넓게 공명하고 사유할 수 있는 계기들을 갖기 바란다.

 그 외 연극의 사회적 함의를 진중하게 읽어준 「벚꽃에 새긴 역사와 기억-연극 <순이야 사랑해>」, 기획에서 공연에 이르는 제반 과정을 꼼꼼하게 분석한 「상식을 파괴한 마케팅, 발레 지젤의 추락」도 후보작으로 함께 언급된 글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