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현대미술과 관련하여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의 적극적인 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과 춤, 미술과 연극, 미술과 음악 등 시각예술과 공연예술 사이의 여러 조합이 오늘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실험되고 있다. 이런 추세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지난 몇 년 동안 세계 이곳저곳의 미술관과 갤러리는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의 마주침의 역사를 폭넓은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여러 기획전을 마련했다.

 몇 가지 사례만 꼽자면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2007년 10월 24일부터 2008년 1월 1일까지 열린 전시 <무대로서의 세계>는 연극의 개념을 작업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동시대 미술가 16명을 한자리에 모았으며, 프랑스 조르주퐁피두센터에서 2004년 9월 22일부터 2005년 1월 3일까지 개최된 전시 <음향과 빛>은 20세기를 수놓은 음악/음향과 시각예술 사이의 관계를 광범위하게 드러냈다.

 미술과 무용의 상호작용을 다룬 전시로는 런던의 헤이워드갤러리에서 2010년 10월 13일부터 2011년 1월 9일까지 열린 <무브(Move): 당신을 안무하기>라는 전시와 퐁피두센터에서 2011년 11월 23일부터 2012년 4월 2일까지 <삶을 추다>라는 이름으로 열린 전시를 들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2012년 한국에서는 미술과 춤의 관계를 다루는 두 개의 주목할 만한 전시가 열렸다. 위에서 언급한 헤이워드갤러리의 <무브>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6월 6일부터 8월 12일까지 순회전 형식으로 선보였고, 서울대미술관은 춤의 미술사적 의의를 고찰하는 기획전 <나우 댄스(Now Dance)>를 7월 19일부터 9월 16일까지 개최했다.

 또한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을 아우르는 예술행사 <페스티벌 봄>이 2007년부터 매년 꾸준히 열리고 있으며, 아트센터나비는 2012년 4월부터 사운드아트의 동시대적 실험정신을 조망하는 <소리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런 활발한 예술적 실천에 반응하여 미술저널들도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의 활발한 교류를 주제로 삼은 특집기사들을 쏟아 내었는데, 미술잡지 <아트인컬처>만 예로 들어보면 2011년 5월호의 "'Shall We Dance?' ART on STAGE", 2012년 4월호의 "SOUND/ART", 2012년 5월호의 "Performance into Museum" 등 여러 특집기사들을 기획했다.

 이처럼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을 아우르려는 담론과 실천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과 관련해서 국내의 담론을 살펴볼 때 우리는 금세 어떤 문제적인 명칭과 마주치게 된다. 그것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들이 통합된 형태를 가리키는 ‘다원예술’이라는 신조어이다. 이 명칭이 급속도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계기는 예술 현장이나 학계가 아니라 오히려 정책집단에서 발견된다.

 2005년 출범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다원예술위원회를 산하기관으로 유치하면서부터 이 명칭은 예술 관련 종사자들의 입에 곧잘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후 다원예술이라는 말은 예술계 전반에 빠르게 확산되어 지금은 매우 빈번히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다. <페스티벌 봄>은 스스로 국제다원예술축제라고 내세우며, 그 외에도 다수의 다원예술공간, 다원예술공연, 다원예술단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처럼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신조어가 다수의 예술활동, 예술공간, 예술정책을 지칭하는 개념으로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현상은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다원예술'은 문제적인 단어이다. 왜 문제적인가? 개념의 외연과 내포가 몹시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미술계(와 공연계) 전체에 널리 퍼진 현상이 보여주듯이 이 개념은 가공할 만한 확장성을 과시하지만, 외연의 무한한 확장은 내포의 무한한 축소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원예술이라는 현상이 환절기의 열병과 같은 한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형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현상에 대한 적절한 제한과 정의가 내려져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의 질문은 정확히 다음과 같다. 다원예술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혹시 다원예술이라는 개념은 정의할 수 없는 군더더기 같은 것이 아닐까?

기존의 장르와 대결을 수행하는 다원예술
 먼저 예술 관련 정책주체가 시도하는 다원예술의 정의를 살펴보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행한 한 논문에 의하면, 다원예술이란 “장르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다양한 예술적 가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창작활동으로서, 탈장르예술, 복합장르예술, 새로운 장르의 예술, 비주류예술, 문화다원주의적 예술, 독립예술 등을 중심적 대상으로 하는 개념”이다.¹⁾

 여기서 다원예술을 정의하기 위해서 동원된 기준은 그 예술이 기존의 장르와 특정한 방식으로 대결을 수행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대결의 결과는 기존의 장르를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고(탈장르예술), 여러 장르들을 결합하는 것일 수도 있고(복합장르예술), 어떤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새로운 장르의 예술), 어떤 결과로 이어지든 상관없이 기존의 장르를 뒤흔든다는 공통점 때문에 그 예술은 “비주류예술, 문화다원주의적 예술, 독립예술”의 성격을 띨 것이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다원예술이라는 명목 아래 특히 주목받는 장르 간 횡단의 경우는 시각예술과 공연예술 사이의 협업 내지는 이종교배의 양상들이다.²⁾

 일 이런 정의를 따른다면 다원예술의 시대적 범위는 적어도 20세기 전체를 아우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에 확립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란하는 작업들은 20세기 전체에 걸쳐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열거한 전시들이 선보인 작업들이 그 좋은 예들이다. 20세기 초반 소피 토이버-아르프(Sophie Taeuber-Arp, 1889~1943)는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을 횡단하면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한 작가이다.

 그녀가 천착한 ‘추상적 리듬’은 때로는 캔버스 위에 색채와 형태를 통해 나타났고, 때로는 카바레 볼테르에서 가면을 쓰고 춤추는 작가 자신의 신체를 통해 구현되었다. 이런 탈장르적 활동이야말로 위에서 제시된 다원예술의 정의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가? 또한 바우하우스 작가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 1888~1943)가 1926년 선보인 <삼원적 발레Das Triadische Ballet>도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이 기하학적 추상이라는 구심점을 통해 결합된 사례로 언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삼원적 발레>는 하나의 다원예술공연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면 이런 사례들은 더욱 늘어난다. 안무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1919~2009),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白南準, 1932~2006),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의 협업은 구성원의 조합만으로도 다원예술의 정의를 그대로 반영하는 복합장르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일련의 플럭서스(Fluxus) 운동^{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 저드슨 댄스 시어터(The Judson Dance Theatre)^{1962년 개혁적인 젊은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창단한 무용단으로, 다양한 미술가와 음악가 등이 무용 공연 참여}, 앨런 캐프로(Allan Kaprow, 1927~2006)의 해프닝(Happening)^{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주로 행해졌던 비연극적, 탈장르적인 표현운동}, 1954년 요시하라 지로(吉原治良, 1905~1972)를 주축으로 형성된 일본의 구타이(具 ) 그룹^{1950~1960년대 일본의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미술작가 그룹}, 한국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등장한 김구림, 정강자, 정찬승의 실험미술 등 비슷한 사례들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20세기 전체에 걸쳐 탈장르적이고 복합장르적인 실험을 수행한 일련의 예술실천들을 모두 ‘다원예술’이라는 개념 아래 결집시켜 하나의 계보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망설이는 순간 다원예술이라는 개념은 모호한 것이 되어 버린다. 위에서 인용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논문은 “경계가 무너지고, 장르가 융합되고 있는 세계 예술(공연)의 조류에 근거해서 볼 때, 장르 간 경계를 허물어 대중에게 다가가는 시도는 20세기 들어 보편적 지속적 현상으로 정착”되었음을 인정하지만, 우리나라의 다원예술은 1990년대에 이르러 “모더니즘의 일탈”과 함께 태동했다고 규정한다.³⁾
 이것은 이중적인 태도이다. 한편으로 세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다원예술은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한 형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적 상황에 국한해 볼 때 다원예술은 1990년대부터 태동한 특수한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이중적인 주장은 어떤 망설임의 발로이다. 즉 다원예술의 발생을 20세기 초로 보느냐, 아니면 1990년대로 보느냐 하는 양자택일 앞에서 주저하고 망설이며, 세계적 관점과 한국적 관점이라는 인위적 경계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형국이다.

 이런 망설임은 두 가지 문제를 노출한다. 첫째, 세계적 관점과 한국적 관점이라는 이중적 잣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 이전까지 한국미술이 다원예술적 흐름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되었던 것으로 가정해야 한다.

 즉 국제적으로는 20세기 초부터 다원예술이 있어 왔지만 한국에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서서히 상륙(또는 탄생)할 수 있었다는 무리한 주장을 펼 수밖에 없다. 마치 한국이 20세기 대부분의 시간을 쇄국정책하에서 보내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둘째, 국내에서 1960년대 말부터 김구림, 정강자, 정찬승 등의 작가들을 위시하여 1970년대 내내 꾸준히 계승된 한국 실험미술의 흐름을 (고의적으로) 간과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해프닝과 퍼포먼스, 타장르 예술가들과의 교류와 협업이 빚어낸 실험정신이 위에서 제시된 다원예술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⁴⁾ 결국 한국의 다원예술이 1990년대부터 태동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을 거두지 않는 한, 기존의 장르들 사이의 경계를 뒤흔드는 실험적인 예술활동을 다원예술로 정의하는 입장은 스스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정의에 충실히 따를 경우 20세기 초반부터 시도된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의 결합된 형태들(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포함한)이 모두 다원예술에 등재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원예술의 기원이라는 가상

 그런데 왜 한국의 다원예술과 관련하여 1990년대를 기원으로 삼으려 안간힘을 써야 하는가? 도대체 1990년대에 일어났다는 “모더니즘의 일탈”이란 무엇이며, 왜 그것이 다원예술의 기원과 맞물려야만 하는가? 그리고 왜 다원예술은 1990년대에 태동하여 2000년대에 만개한 ‘고유하게’ 현대적인 현상이어야만 하는가? 왜 다원예술은 반드시 새롭고 동시대적인 것이어야만 하는가? 왜 이런 ‘새로움에 대한 욕망’이 생겨나는가? 다원예술을 문제적인 개념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집요한 욕망의 정체는 무엇인가?

 1990년대 들어서 일탈의 대상이 된 모더니즘이란 정확히 말하자면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가 주창한 미국의 모더니즘을 가리킨다. 그린버그 모더니즘의 본질은 각각의 예술장르를 각각의 고유한 권한영역에 위치시켜 장르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회화는 오로지 회화여야 하며 조각은 오로지 조각이어야 한다. 각 장르의 순수성은 그것의 고유한 매체가 보장해주는데, 예컨대 회화의 매체는 이차원적 평면성이며 조각의 매체는 삼차원적 물질성이다.

 이처럼 그린버그는 매체의 특수성에 기반을 두고 각각의 예술장르에 독립성과 순수성을 부여하기 위해 애썼다. 이런 관점에서 모든 탈장르적, 복합장르적 예술실천은 모더니즘에 어긋나는 활동으로 낙인찍혀 배격되었다.

 더 나아가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는 회화나 조각 같은 시각예술이 멀리해야 할 적으로서 연극, 즉 공연예술을 지목한다. 프리드는 시각예술의 성공은 공연예술을 실패하게 만드는 능력에 점점 더 의존하며, 시각예술은 공연예술의 상황에 접근하면 할수록 타락한다고 말한다.⁵⁾ 이런 미국적 모더니즘의 군림하에서는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은 엄격히 분리되어 있어야 했고, 양자 간의 어떠한 접촉이나 교섭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1990년대를 한국 다원예술의 기원으로 보는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비로소 미국적인 모더니즘이 약화되어 시각예술과 공연예술 사이의 철책이 허물어지고 두 예술 사이의 간섭과 융합이 다원예술의 태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다원예술이 뒤흔드는 장르 간의 경계는 사실 이 모더니즘이 쌓아올린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다원예술을 동시대의 ‘새로운’ 경향으로 파악하는 이유는 다원예술을 오로지 모더니즘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만 상정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모더니즘 시대에는 여러 예술장르들 사이의 어떠한 접촉도 결코 허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원예술의 탈모더니즘적 성격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도 모더니즘을 과거의 ‘절대적’ 담론으로 승격시켜야만 한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모더니즘은 절대적으로 순수한 시대여야 하며 그 이후에야 비로소 다원예술로 대변되는 복합성의 시대가 가능해졌다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린버그식의 모더니즘이 ‘절대적’ 담론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담론일 뿐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 모더니즘은 한때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했던 주류적 담론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이 지배적 담론의 외부에는 그것에 포섭되지 않는 이질적 담론과 실천이 있었던 것이다. 태양이 작열하는 정오에도 별들은 다만 창공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지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모더니즘을 상대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더니즘의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그 외부의 모든 비주류적 예술실천들까지도 한꺼번에 무화시켜 버리는 과오를 범할 수 있으며, 이런 과오는 1990년대 이후의 탈장르적 예술실천들을 무조건적으로 ‘새로운’ 것으로 추켜세우는 착시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으로는 다원예술의 비주류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의 광명에 감춰져 있던 그런 성격의 실천들을 도외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태도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더니즘과 무조건적으로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즘에 가려져 있던 이질적인 것들을 세심하게 발굴해내는 푸코적인 의미의 고고학적 방법론이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어떤 역사적 시기를 다각도로 인식하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알기 위한” 목적을 지닌 방법론이다.⁶⁾

 이런 의미에서 퐁피두센터의 기획전 <삶을 추다>는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의 상호작용이 남긴 단층과 습곡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발굴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린버그적인 모더니즘을 상대화하는 한 발굴 현장을 들여다보자. 미국에서 모더니즘의 환원적 성격이 절정에 다다르던 1960년, 프랑스 파리의 한 갤러리에서 이브 클랭(Yves Klein, 1928~1962)은 그 유명한 ‘인체측정’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여러 벌거벗은 여자들이 몸에 파란색 안료를 묻혀 캔버스에 신체의 자국을 남기고 있으며 한쪽 구석에는 연주자들이 바이올린과 첼로를 켜고 있고 청중들은 좌석에 앉아서 퍼포먼스를 지켜보고 있다.

 미국에서 장르 간 소통이 봉쇄당했던 그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회화, 음악, 연극이 뒤섞인 퍼포먼스가 공공연히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2004년 벨기에 예술가 얀 파브르(Jan Fabre)는 이브 클랭의 이 퍼포먼스에 오마주를 바치는 작업 <주인공이 여자일 때Quando l'uomo principale  una donna>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1900년 이래로 모더니즘과 전혀 다른 맥락 속에서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은 계속 뒤섞여 왔으며 그 기억은 현대적인 재해석의 대상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원예술이라는 개념은 온전히 현대적인 현상만을 지칭하려는 과도한 욕망으로 인해 모더니즘을 반성 없이 절대화하고 20세기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의 역동적인 만남을 자발적으로 망각하는 큰 대가를 치른다. 설사 모더니즘에 대한 과대평가를 철회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여전히 다원예술을 “장르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다양한 예술적 가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창작활동”으로 정의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20세기 전체를 포괄하는 다원예술의 계보를 새로 작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계보에는 다다이스트, 바우하우스, 이브 클랭, 플럭서스 등 무수한 이름들이 등재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헐거운 계보를 만드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왜 이들을 범주화하고 동질화시켜야 하는가? 이처럼 다원예술이라는 개념의 정당성과 필요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태도로서의 다원예술

 지금까지 다룬 다원예술에 대한 정의가 정책집단의 판본이었다면 다원예술에 직접 참여하는 창작주체와 비평주체의 입장은 어떠한가? 이런 질문과 관련하여 웹진 <아르코> 203호(2012년 2월)는 “경계 없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다원예술에 대한 특집을 다루었다.⁷⁾

 이 중에서 특히 김남수와 홍성민의 글이 현대적인 현상으로서 다원예술을 정의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이 둘은 모두 다원예술을 어떤 ‘태도’의 문제와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두 필자 사이의 차이는 생각보다 큰데, 그 이유는 이들이 다원예술의 정의 가능성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먼저 홍성민의 글을 보면, 그는 다원예술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감한 명제를 던진다. 오늘날 문학, 미술, 공연 등 기존의 장르에 포섭되지 않는 예술가들이 허다하게 많은데 이들은 그 누구도 자신을 다원예술가라고 자처하지 않을뿐더러 이들을 모두 다원예술가라고 지칭해봐야 무슨 효과가 있느냐는 얘기다.

 대신 그는 “다원적 태도”에 집중한다. 즉 그는 지금 한국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다원예술’이라는 명사를 포기하고 형용사형으로만 활용하자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원적 태도란 무엇인가? 그는 다원적 태도의 키워드를 “DIWO(Do It With Others) 즉 타자와 함께 하기”라고 말한다.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디자이너, 인문학자 등 다른 업종의 종사자들, 그리고 관객과도 소통하여 진정한 이종교배를 실현하는 태도가 곧 타자와 함께 하는 자세이다.

 이 타자와의 관계는 어떤 권력주체로부터 시작되는 수직적 관계여서는 안 되고 민주주의적이고 수평적인 관계여야 할 것이다. 홍성민은 이런 다원적 태도를 보여준 대표적 작가들로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스터(Dominique Gonzalez-Foerster),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등을 언급하는데, 이들은 니콜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가 관계적 미학의 예술가들로 내세웠던 작가들이다.

 다른 한편 김남수는 홍성민과 마찬가지로 태도의 문제를 중요하게 부각시키지만 끝내 ‘다원예술’이라는 명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는 탈장르적 실험으로 다원예술을 정의하는 방식이 불충분하다고 지적하며 특정한 태도에 대한 고려가 다원예술의 정의에 수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때 그가 내세우는 태도는 현실참여적인 태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탈장르적 실험이 무의미한 형식적 유희에 그치지 않고 현실참여적인 태도를 견지할 때 비로소 다원예술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태도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김남수가 제출한 다원예술의 정의는 사실 니콜라 부리요가 2001년에 발표한 저작 『관계적 미학』에서 내세운 관계적 예술의 정의와 동일해 보인다. 부리요에 따르면 관계적 예술이란 “인간관계 전체와 그 관계의 사회적 맥락을 이론적, 실천적 출발점으로 삼는 모든 예술실천”이다.⁸⁾

 부리요의 관계적 예술은 인간관계와 그 사회적 맥락을 다룬다는 점에서 현실참여적인 성격을 지니며, 타장르의 예술가들이 서로 협업하는 경우가 많고 관객들의 참여도 유도하는 등 연극적이고 공연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런 특징은 김남수가 생각하는 다원예술의 특징과 그대로 겹치는 것이다.

 김남수가 다원예술의 예로 제시한 김황의 <모두를 위한 피자>를 보자. 김황은 피자 만드는 법이 담긴 DVD 500장을 북한에 뿌리고 북한 주민들의 피드백을 모으는 전 과정을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했다. 이 작업은 음식을 매개로 삼아 남북한의 인식차이, 북한의 폐쇄적 상황 등을 드러내는 현실참여적 예술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관계적 미학의 대표적 예술가 리크릿 티라바니자는 갤러리에서 관객들에게 태국음식을 나눠 먹을 것을 권하면서 자연스러운 소통과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 티라바니자의 작업도 역시 음식을 매개로 타자와의 만남을 주선하며 태국음식이 환기하는 탈식민주의적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이 두 작가의 유사성에서 볼 수 있듯이 다원예술은 많은 부분 부리요의 관계적 예술과 다르지 않다. 다원예술의 정의 가능성을 부정한 홍성민은 관계적 예술이 다원적 태도를 지닌 대표적 사례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다원예술의 고유한 정의를 시도하는 김남수는 그가 내세운 다원예술의 정의가 관계적 예술의 정의와 어떻게 구별되는지 해명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김남수는 니콜라 부리요를 짧게 언급하면서도 양자 간의 차이를 해명하지 않는다. 이런 회피는 다원예술을 정의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원예술이라는 신조어는 여전히 그 정당성과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홍성민처럼 다원예술의 정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다원적 태도에 집중하는 유연한 자세가 훨씬 더 솔직하고 효과적인 모습이지 않겠는가?

다원예술에 대한 침묵의 전략
 결국 탈장르나 복합장르의 관점에서 접근하든, 아니면 여기에 태도의 문제를 추가하든 상관없이 다원예술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떤 입장을 따르든 다원예술 개념은 문제적인 개념으로 남는다.

 무엇을 지칭하는지 불분명한 군더더기 같은 개념이 한국 미술계(와 공연계)에 활발히 유통되는 이 현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우리는 이 개념이 창작집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정책집단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즉 이 개념은 애초부터 제도화와 범주화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유통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그러나 탈장르예술, 복합장르예술, 새로운 장르의 예술, 비주류예술, 실험예술 등 정책집단이 언급하는 예술실천들은 본질상 제도화나 범주화가 불가능한 대상이 아닐까? 이것들은 언제나 역동적인 실천으로 존재할 뿐 규정 가능한 정태적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파괴와 창조의 에너지는 다원예술이라는 ‘또 다른’ 장르로 묶이게 되는 순간 방전될 운명에 처하고 만다. 더 나아가 다원예술을 모더니즘 이후의 전무후무한 ‘새로운’ 예술형태로 내세우는 것은 과거의 예술실천들이 지녔던 에너지의 기억상실을 부추길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원예술이란 개념을 나름의 방식으로 정교하게 손보는 데 힘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불가능한 개념에 대해 침묵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침묵은 어떻게 터져 나올지 예상할 수 없는 예술의 에너지를 머금은 침묵일 것이며, 비모더니즘적이고 비주류적이고 비가시적인 과거의 예술실천들을 발굴하여 더 많은 현재의 얘깃거리를 쏟아낼 침묵일 것이다.

미술비평상 당선소감
미술비평은 동시대를 규정하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서로 교섭하고 경합하는 장소
김홍기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학에 진학해 미술사를 전공하면서부터 저는 비로소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얼떨결에 선택한 전공이었지만 색과 선으로 표현된 인간의 감정과 사상은 언제나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미지의 세계 앞에서 넋을 잃고 단순히 경탄만을 내뱉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미술사학도에게 미술이란 경탄의 대상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학문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를 어떻게 텍스트로 기술하고 설명하고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질문이 한 명의 미술사학도였던 제게 주어진 화두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미술비평의 화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술비평은 동시대를 규정하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서로 교섭하고 경합하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당선을 계기로 미술비평의 장소에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비평의 권위가 사라진 지 오래라는 흉흉한 소문이 파다하지만 저는 비평의 당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이 사라지게 되면 남는 것은 오로지 단편적인 인상과 언어의 빈곤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동시대 미술을 위해 더 풍부한 어휘와 사유를 만들어내려 노력하겠습니다.

 제게 이런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신 주최 측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좋은 평가를 내려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대학과 대학원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해외에 머물면서 응모작을 썼던 까닭에 여러 자료들을 참고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여러 지인에게 불쑥불쑥 전화해서 뜬금없이 질문하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부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모두 거명할 수 없는 그분들께도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끝으로 당선의 영광은 저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돌리겠습니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절실한 문제로 여겨지지도 않는 글을 붙들고 씨름하는 자식을 묵묵히 인내하고 격려해주시는 부모님께서는 언제나 제게 큰 용기와 힘을 주셨습니다. 이번 당선이 부모님의 은혜에 작게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길 간절히 바랍니다.

미술비평상 심의평
주관의 개입을 허용하는 치열한 해석과
진실에 대한 가열한 열정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제5회 플랫폼 미술비평상에 응모한 15편의 비평문을 읽으면서 들었던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우선, 주제의 설정에 있어 보다 근원적인 문제, 전제에 대한 질문, 우리 코앞의 진실을 정확하게 보고, 코앞을 넘어서는 것을 예상하고 상상하는 것과 관련된 주제가 눈에 띄지 않았다. 몇몇 주제는 작가론에 미치지 못하는 평이한 수준의 작가 관련 기술에 그쳤다. 아직 공유할만한 가치에 대한 주체적 소화나 그것의 독창적인 표현에 이르렀다고 말하기 어렵거나 때 이른 작가들이 주제가 된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비평적 논의의 심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론 글쓰기에 관한 것으로, 다수 응모작의 경우가 학술논문과 비평문 사이에서 혼돈을 겪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평문을 학술논문과 다른 것으로 만드는 것은 학술적인 엄격성의 완화가 아니라, 주관의 개입을 허용하는 치열한 해석과 진실에 대한 가열한 열정이다. 주관의 개입은 일단의 편견과는 달리 학구적인 성실성에 더 우호적이며, 출처불명의 논의에 자의적으로 기대거나 치기어린 분기탱천에 스스로를 맡기는 것과는 엄연히 구분된다.

 이런 맥락에서 당선작으로 결정된 김홍기의 「다원예술에 대해 온전히 침묵하기」가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중 좋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김윤서의 「무거운 , 너무 무거운」을 진지한 흥미를 가지고 읽었지만, 자신의 논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구조적 글쓰기의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최지혜의 「‘10큐레이터 & 10퓨처’를 중심으로 바라본 국내신진 큐레이터 지원시스템의 현주소」는 비평의 범주를 현실 환경이나 조건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지만, 그 논의를 환경이나 조건에 대한 제도적 제안 이상으로 만드는 방식에 관해 더 깊이 생각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미술비평상 심의평

한 시대의 담론을 검토하고 논의하는
비평 장의 결여를 궁극적으로 드러냄
전영백(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교수)
 이번 플랫폼 미술비평상 응모작들은 오늘날 국내 미술계의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된다. 우선 다양한 관심사를 보였는데, 미술작품 및 작가에 관한 비평 뿐 아니라, 전시기획자 지원정책, 문화 정책상 담론 용어의 문제, 관객과의 소통, 일상의 삶과 문화에 관한 단상, 그리고 전반적인 미학비평 등을 살펴볼 수 있었다. 수준의 편차가 꽤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나름의 문제의식과 고유한 어법으로 다채로운 비평을 제시하였다고 하겠다. 아쉬운 점은 글의 논리적 전개나 체계적인 구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심 끝에 선정한 당선작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당선작인 김홍기의 「다원예술에 대해 온전히 침묵하기 위하여」는 시각예술의 담론에 대한 ‘명명(naming)’을 화두로 삼아, 그것의 정당성과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이는 최근, 시각예술의 양태를 아우르는 담론으로 ‘다원예술’이라는 명칭이 빈번히 사용되는 것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면서, 국내 미술비평의 취약점을 핵심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다원예술이란 신조어가 학계나 비평계, 혹은 예술현장에서 부상된 것이 아니라, 정책집단(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프로젝트성으로 발안하여 확산하게 된 점을 적절히 지적하였다. 그는 이렇듯 미술용어의 공허함을 지적하면서 국내 비평계가 갖고 있는 근본 문제를 부각시켰다고 할 수 있다. 비평계의 논의가 정책으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 편의로 생성된 용어가 역으로 비평담론에 편승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제의 시의성과 그 중요성이 이 글을 당선작으로 선정한 이유이다. ‘다원예술’이라는 근거 없는 명칭이 갖는 무의미성을 비판하며, 한 시대의 담론을 검토하고 논의하는 비평 장(site)의 결여를 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다만, 글의 마무리에서 침묵이 과연 ‘전략’이 될 수 있는가는 재고해야 할 부분이다. 더 나아가, 이에 대한 대안이나 방향의 모색을 제시할 수 있었다면 보다 강력한 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강한 어조로 시작된 문제제기는 결론부에 가서 싱겁게 마무리되어 글의 균형이 맞지 않고 방향 제시가 없으니 논의의 빈약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이 점이 보완된다면 보다 좋은 비평글로 완성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