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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오지문예창작대학 출범을 반기며
통권 : 38 / 년월 : 2013년 1,2월 / 조회수 : 1851

문학적 표현에 대한 욕구가 없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크기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표현의 욕구가 존재한다. 독특한 사물이나 자연의 섭리, 사회 현상이나 삶의 원리 등을 자신만의 관점과 언어로 담아 보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전혀 특수한 삶을 살아온 게 아닌데도, 내 삶을 글로 쓴다면 족히 책 몇 권은 되고도 남을 거라고 호언장담한 사람을 주위에서 심심찮게 접했다.

글을 쓰면 세상이 품고 있는 빛깔과 향기를 흠씬 느낄 수 있다며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글쓰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느는 추세다. 문학은 사상과 감정과 상상력을 극대화하므로 정신적•감성적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 그러므로 글을 쓰면 우리의 정신적 감성적 삶이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글쓰기를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다. 더 나아가 작가가 되어 다양한 삶을 의미 있게 재창조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삼 년 전 봄, 그러니까 재단법인이 설립되기 전, 생오지소설창작대학에서 김만성 씨를 알게 되었다. 그는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해서 이름 지어진 ‘생오지’를 찾기까지의 과정을 속속들이 털어놓았다. 사십 대 중반인 그는 학창시절 문학에 관한 관심이 남달랐다. 말하자면 문학청년이었다. 특히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가슴 깊이 묻어둔 채 생계를 위해 다른 길을 걸어야 했다. 가슴에서 꿈틀대는 꿈을 애써 짓누르며 한해 한해를 보냈다. 불혹이 넘어서자, 조급증이 일었다. 영영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더 늦기 전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작가가 되려는 방법을 스스로 찾았다. 문학 관련 강의가 있으면 백화점 문화센터가 되었건 관공서 강당이 되었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행여나 한 마디라도 놓칠까 봐 강의에 완전히 몰입했다. 대부분 수박 겉핥기식 교육이어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모교의 평생교육원을 두드렸다. 시를 지망하신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인지 시 창작 강의만 있을 뿐 소설 창작에 대한 강의는 편성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직장을 팽개치고 문예창작과에 입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다른 길을 모색해야 했다. 다각도로 알아보니 방법이 전혀 없는 게 아니었다. 서울의 연희문예창작촌이나 경주의 동리목월문학관, 강원도의 박경리문학관, 이외수 감성마을 등에서 창작교육을 하고 있었다. 수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광주광역시에서 거주하고 있는 그에게 장거리에 따르는 시간과 경비가 큰 부담이었다.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었다. 왜 우리 지역에는 그런 장소가 없단 말인가. 그는 초조하고 불안하고 안타까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인근 담양에서 소설 창작 교육을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곳은 바로 생오지소설창작대학이었다.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선착순 모집이라 생오지로 잽싸게 달렸다.
길이 구불구불했지만 가는 내내 걸음이 가벼웠다. 숲 속의 나무들이 두 팔을 높이 들고 그를 환영해 주는 것 같았다. 생오지에 도착하자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의 저자 문순태 소설가가 친히 맞이해 주었다. 소설에 대한 기본이 전혀 없었음에도 수강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음에 그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배웠다. 기본기가 없었으니 소재 잡는 법이며, 주제 뽑는 법, 문장, 플롯, 알레고리, 대화 처리 방법 등 그에게는 하나같이 어려운 내용이었다. 스펀지가 물 흡수하듯 강의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였다. 집으로 돌아와 강의를 떠올리고 습작을 하는 하루하루가 행복한 나날이었다. 드디어 첫 작품이 잉태되었다. 나름 기대를 하고 합평에 임했다. 합평 시간이 가까워지자 가슴이 심하게 떨렸다. 합평은 냉정하고 준엄했다. 문장 밀도가 낮고 맞춤법도 엉망이어서 읽기에 너무 설컹거린다, 주제가 무엇인지 도무지 찾지를 못하겠다, 구성이 단순하다, 완성도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둥 숱한 질책이 쏟아졌다. 어찌나 따가운지, 속에서 부아가 끓어오르고 눈물이 찔끔했다. 물론 처음치고는 잘 썼다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이도 있었다. 고마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따가운 지적들이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강의와 습작과 합평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나가 수강 삼 년 만인 2012년에 근로자문화예술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함께 공부한 문우들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김유정신인문학상 등 그 해 대거 등단했다.

생오지소설창작대학은 2007년 개설한 이후 지금까지 열다섯 명의 작가를 배출했다. 이처럼 생오지소설창작대학 출신들이 매년 등단을 이어가자 작가 지망생들이 생오지로 더욱 몰려들었다. 여수, 목포, 김제, 전주, 부산, 안산, 서울 등은 물론 멀리 호주와 뉴질랜드에서까지 찾아왔다. 대부분 나이 사십이 넘었다. 생활 여건 때문에 등단의 꿈을 접었다가 뒤늦게 꿈을 찾아 몰려드는 지망생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더욱 체계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를 도맡아 오신 문순태 소설가의 나이 칠순이 넘어가자 자녀들이 서울로 올라오라고 성화였지만, 신춘문예나 각종 문학상의 본심이나 최종심에 오른 지망생들의 뜨거운 눈길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문순태 소설가는 사재를 출연하여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왕 하는 거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수준 높은 강의를 제공하고자 함이었다. 재단법인 설립을 위해 문순태 소설가는 아파트와 퇴직금 등 6억 원의 사재를 털어야 했다. 자녀들보다는 제자와 주민에게 비중을 주고 이사진과 실무진을 구성했다. 명칭도 바꿨다. 재단법인 생오지문예창작촌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 동안 소설 창작에만 전념했지만 시와 수필까지 강의했으면 좋겠다는 건의를 전폭 수용하여 과목을 추가했다. 장차 아동문학과 시나리오까지 장르를 넓혀갈 것이다. 이를 위해 건물을 신축할 계획이다. 
문예창작대학에서는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을 위해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문인을 강사로 초빙했다. 시는 송수권 시인과 강회진 시인. 수필은 오덕력 수필가. 소설은 차노휘 소설가와 문순태 소설가가 맡는다.
2년 과정으로 첫해는 전학기 입문반, 후학기 심화반으로 편성한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강의가 있으며 올해 개강일은 3월 16일이다. 개강 후에는 주민들이 문학의 향연을 느낄 수 있도록 문학제도 개최한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매년 성황리에 행사가 열렸다. 학기 중간에는 문학기행도 예정되어 있다.
재단법인 생오지문예창작촌은 앞으로 창작 공간을 확보하여 강의는 물론 숙식까지도 제공하여 문인들이 실질적으로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지역 문인들에게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제공하고자 문예지를 발간하고, 지역 문인들의 자존감과 위상을 높이기 위해 국내•외 문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추진할 계획이다.
개강을 한 달여 앞둔 현재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인근 광주는 물론 서울, 인천 등지에서도 문의하거나 직접 방문하기까지 했다. 문학을 꿈꾸는 이가 이토록 많다는 사실에 반갑기도 하고 이 오지까지 와야 한다는 사실에 착잡하기도 했다. 그들은 체계적인 문학 강의에 심한 갈증을 느꼈을 것이다.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지금 이 시간에도 직접 발품을 팔거나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려는 이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재단법인 생오지문예창작촌에서는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음에 가슴 아프다. 문학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시간과 경비를 최소화하여 수강할 수 있는 공간이 대폭 늘어나기를 바란다. 생오지문예창작촌이 성공하여 제2, 제3의 문예창작촌이 전국에 넘쳐나길 바란다.




#저자 약력
姜成五 1968년 전남 완도생. 2012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최근 글로는 「오라 해서 갔더니」등. greenlight123@hanmail.net

#주석
이미지 제공_필자
글쓴이 : 강성오
작성일 : 201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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