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당연히 주목받고 축하받을 일이다. 대전이 어떤 도시인가. 대전이 경부 철도 개통과 함께 건설되고 발전되어온 도시라는 사실은 대전과 관련된 삶의 제반 양상들이 주로 근대적인 것에 뿌리를 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전문학관이 이 지역의 문학적 출발을 조선시대에서 찾고는 있지만, 그 본격적인 면모를 1940년대 후반의 광복 이후로 잡고 있는 것은 그러므로 다른 어떤 지역의 면모보다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대전은 근대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근대라는 것이 식민주의의 유산과 불가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보면, 광복 이후 근대독립국가의 실제적 건설기를 문학적 출발지점으로 삼으려는 시각은 대전의 바로 그 근대적 면모가 지닌 사정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는 태도의 무의식적 소산이기도 할 것이다. 더구나 대전은 오랜 삶의 역사적 뿌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도시라기보다는―근대 이전에 대전은 공주나 옥천보다 현저히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근대 이후의 상업적 유통망에 힘입어 발전한 도시이다. 요컨대 대전은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식민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전문학관은 근대 이후에 표상된 그 복합적 역사의 내용들이 새롭게 구체화된 지역의 삶을 언어화하려 했던 문인들의 미학적 집적물인 셈이다.

그 대전문학의 여러 상징적 자산 중에서 대전문학관이 내세우고 있는 문인들이 있다. 상설 전시되고 있는 권선근, 박용래, 정훈, 최상규, 한성기가 그들이다. 풍부한 자료는 아니지만, 이들의 유품 몇 점이 전시되어 있어서 관람객들에게 대전문학의 형성기 면모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이 외에 대전문학관은 이미 작고한 지역 문단의 선배들을 만나볼 수 있는 모니터관도 운영하고 있고, 문학사랑방과 회의실을 갖추고 일반 시민들의 행사도 유치하려 하고 있다. 또 대전문학관의 가장 중요한 목표에 대해 초대 관장인 박헌호 시인은 “시민의 문학생활을 풍요롭고 향기롭게 가꾸기 위한 역할”을 꼽는다. 이를 위해 대전문학사를 정리하고 예술 활동을 북돋우기 위한 여러 계획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대전문학관이 대전문학의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예감하는 중요한 기반으로 자리 잡히리라는 사실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문화적 풍토의 불모지대라고 여겨지던 대전에 이만한 문학관이 생겼다는 점이야말로 무엇보다 상찬되어야 할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 상찬을 상찬대로 남겨두고 대전문학관이 대전문학의 진정한 면모에 이바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몇 가지 사항을 짚어 보기로 하겠다.
우선 대전의 문학사와 관련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식민지시대 대전문학의 양상이 그것이다. 대전이 근대적 변화의 산물이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전의 근대문학이 어떤 면모를 지니고 있었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근대 초기에 문학이 어떻게 유통되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다. 일본인들의 영향이 있었으리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외면하려는 태도는 정확한 문학사적 재구성을 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주요한이 「불놀이」 등의 근대시를 쓰면서 그것이 모두 일본 시인들을 흉내 낸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마당에 일본문인들이 대전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근대의 도시 대전문학과 관련해서는 불가피한 역사적 작업이다. 그런데 대전문학관은 그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의 한 양상임을 이해할 수는 있겠으나, 그 태도가 객관적 사실을 아예 무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것이 상처라면 그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미래를 예감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더구나 식민지시대 대전문학과 관련해서는 자료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미 대전시청 종무문화재과에서는 한 학예사의 노력을 통해 『경인 (耕人)』이라는 잡지가 발굴되어 소개된 바도 있는 것이다. 통권 45호까지 나왔던 이 잡지가 대전문학사와 관련하여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나쁜 의미에서의 민족주의가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다. 더구나 그 잡지의 발행인이었던 우치노 겐지(內野健兒)는 일제의 조선 지배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하여 총독부에 의해 추방된 시인이기도 하다. 대전이 자신의 문학관에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경인』과 우치노 겐지의 문학사적 의미를 수렴하는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다음 해방공간의 대전문단과 관련하여 추가될 사항도 있다. 문학관의 전시 벽면에 기록되어 있는 대전문학 약사에서 단 한 번 그 제목만 언급되고 있는 『신성』과 관련된 문제가 그것이다. 이 역시 이미 대전시청 종무문화재과 학예사의 노력에 의해 밝혀진 것인데, 그 자료에 비추어 보면 해방공간에서는 ‘동백시회’ 못지않거나, 아니면 잡지의 출판 양상으로 보건대 더 활발했을 수도 있는 참여파 진보문인들의 행적이 뚜렷하다. 『현대』라는 제명으로 창간되고 모종의 정치적 필화 이후에 『신성』으로 개제된 잡지가 그 증거이다. 이 잡지에는 박용래 시인도 시를 발표하고 있고 김남천 등 문학가동맹의 주요 문인들도 글을 발표하고 있다. 당시 대전 문화 인사들의 면면이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대전문학관은 그 잡지 및 동인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거의 외면하다시피 하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요컨대 관공서 대전시청이 발굴하여 대전시민에게 공개한 역사적 사실조차도 대전문학인들은 돌아보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이것을 지금 우 편향의 문학적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대전문학관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들이 객관적 자료와 함께 지적되고 있는데도 자구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대전문학관은 이데올로기적 편향성 때문에도 대전 시민들에게 비판될 것이다. 일본의 지역문학관인 ‘홋카이도 문학관’이 왜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의 『게 가공선』을 전면에 내세워 전시하고 있는지, 중국 북경의 ‘중국현대문학관’이 왜 중국의 친일문학인 ‘윤함구문학’ 부스를 별도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는지에 대해 대전문학관 측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근대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대외적 면모와 결합될 수밖에 없고, 또 근대적 생산관계의 격정적 표현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의 도시 대전 또한 그 세계사적 흔적들을 고스란히 자료로써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전문학의 미래와 관련하여 이른바 돈줄을 쥐고 흔들 시청 권력과 관련하여 지적해둘 것이 있다. 문학이 삶을 끌어안는 것이라면 그 문학이 뿌리 내릴 토양에 대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그 토양을 만들어낼 사회적 분위기가 그래서 중요하다. 대전시에는 그러나 아직 문학이 진정으로 뿌리 내릴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이 말은 대전의 문학을 일구어 갈 문인들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두루 알다시피, 전국 어디에나 문인들은 차고 넘친다. 할머니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도 문학이고 공원에 서 있는 작고문인들의 시비도 문학이다. 계제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살아 있는 문인의 문학비는 문학이 아니다. 그것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당할 자기조롱의 공덕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문학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 그 문학이 문학일 수 없도록 하는 제도가 있고 권력이 있다. 대전에서는 여전히 그 제도와 권력 아래 문학이 있는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다. 역사적 뿌리가 희미한 대전에서, 그 대전 시민들의 가장 오래된 정서적 공간이었던 건축물을, 정서적 뿌리를 파헤쳐 버릴 수 없다는 시민예술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뜬금없는 원도심 살리기 명분으로 철거해 버리는 행정 권력은 문학관을 짓고 번듯한 기념식을 치를 자격이 없는 권력이다. 이 행정권력의 수장이 시집을 낸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래서 나에게는 더 슬프고 해학적이다. 이 대전시청 권력은 오랜 역사적 유적들을 사람이 찾는 관광지나 생활터전으로 바꿔 문화적 생명을 불어넣는 인천시나 대구시의 태도를 도대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급속한 근대화가 많은 화를 불러왔듯이 경제적 명분에 기대어 저지른 그 일은 고스란히 경제적 손실을 입히는 역사적 상처가 되어 보복을 받는다. 삶이라는 역사의 정서적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아예 그곳을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왜 그 새 건물을 찾겠는가. 그 건축물보다도 더 세련되고 멋있고 재미있는 문화행사로 가득한 건축물이 전국 어디에나 널리 퍼져 있는데 말이다. 나도 이미 마음속으로 수많은 대전시민들의 정서적 고향을 파괴한 채 세워진 건물에 발길을 돌리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는 터인데, 대전문학관이 시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의 반대 행동을 대전시청이 저지르고 있다면, 대전문학관은 그 권력에 맞서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두 배, 네 배 더 많은 일을 수행해야 하는 셈이다. 더구나 문학은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는 것이며, 지난 시대의 영광뿐만 아니라 그것의 또 한 몸일 상처마저도 끌어안고서야 저 미래의 시간으로 자신을 투신할 자격이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것을 외면하는 권력으로부터 문학은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아니다, 벗어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날을 세우고 다른 길을 보여주어야 한다. 문학은 그 모든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것이 배를 곯아 가며 글자 한 자 한 자를 원고지에 새겨 넣었던 우리 선배 문인들의 정신이라면 더더욱이나 그렇다. 대전문학관이 관 주도의 시청권력으로부터 하루 속히 벗어나서 시민 중심의 자율적 문학기관으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