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져 있듯, 디지털 음원의 합리적인 가격과 공정한 수익 배분 문제는 대중음악계를 달구고 있는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이다. 인디 뮤지션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대응하며 여러 방식으로 실천하는 중이다. 최근의 예만 든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은 지난달 29일 신곡 <좋다 말았네>의 음원 가격을 아예 소비자가 직접 결정하게 하는 시도(말하자면 음원 자율정가제)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이러한 음악 산업이나 시장의 현황, 또는 이에 대응하는 실천의 구체적인 양상에 대해 살펴 보려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음악의 내용이나 형식 자체와는 크게 관련이 없을 수도 있는 산업을 둘러싼 문제가 어떻게 음악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심을 둔다. 다시 말해 나의 관심은 음악인들의 실천이 자신들의 음악을 어떻게 지켜내고 또 이를 변화시키는가에 있다. 얼마 전 신보를 발표한 김태춘 및 시와의 경우가 이 글의 대상이다.

지금 이곳의 블루스 :
김태춘  《가축병원블루스》

 이삼년 전부터 인디 음악계의‘핫한’ 흐름에 블루스가 있었다. 작년 붕가붕가레이블에서 발매한 블루스 컴필레이션  《블루스 더, Blues》는 그러한 흐름을 반영하는 한 결과물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1930년대 델타 블루스(delta blues)에 근간을 둔 하헌진, 김태춘, 강산에 등의 노래부터, 1950년대 시카고 블루스(로다운 30), 록 블루스(조이엄), 카바레풍 블루스(김마스타) 등까지 다양한 형태의 노래들이 실렸는데, 이들의 블루스가‘원본’에 가까우면서도 또 한국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목격하게 만든 작은 증거물이었다.

 저 앨범에 <개>를 실었던 김태춘이 얼마 전 솔로 앨범  《가축병원블루스》(일렉트릭 뮤즈 발매)를 발표했다. 그는 예의 힐빌리/ 컨트리, 블루스, 가스펠 등 영미권 대중음악의 초석이라 말할 수 있는 스타일을 기반으로 생생한 음악을 탑재했다. 붐챙(boom-chang)이라 불리는 기타 기법을 중심으로 투박하지만 맛깔스런 연주와, 거칠고 구성진 목소리가 이 음반의 핵심이다.

 단촐한 사운드에 흥미를 더하는 연주들도 살짝 곁들여진다. 가령 <가축병원블루스>에서 조스 하프(jaw’s harp 또는 jew’s harp)와 톱 연주는 구슬프면서도 숭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일요일의 패배자들>과 <내 사랑은 롯데캐슬 위에> 등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카주(kazoo) 역시 신랄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풍자적인 분위기에 일조한다. <개들의 세상>에서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이 조력하는 피아노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역설적인 경쾌함을 주는 기재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음반을 관통하는 거침없는 가사는 강렬하기 그지없다. 때때로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직설적이고 원초적이며 또 남성적이다.  《블루스 더, Blues》에서‘개’에 빗댄 것과 마찬가지로  “끝없이 뜯고 또 죽이고 또 죽는 세상”(<개들의 세상>)을 묘사한다. 한국 사회에 대한 조롱과 비판은 곳곳에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조우한다.  “이제 당신들의 천국은 무너져버렸고…예수는 똥통에 처박히고 십자가는 부서지고 은총의 방송국도 불타고 있어”(<악마와 나>)처럼. 김태춘 스스로 밝힌 대로  “내용적으로는 승리자와 패배자의 대결 혹은 승리자(혹은 메이저리티)에 대한 조롱과 패배자(마이너리티)에 대한 동정 및 항변”( 「김태춘의 ≪가축병원블루스≫ 작업기」)이 이렇게 구현된다.

자연과 친밀한 자연스러운 목소리 :
시와  《시와, 커피》

 대표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시와의 경우는 아예 물리적 매체 자체에 대한 고민을 담는다. 올 2월  《시와, 커피》(시와의 레이블‘나무가 필요해’ 발표)라는 네 곡이 담긴 신보를 발표했는데, CD 형태의 음반을 발매하지 않았다. 디지털 음원만 발표하는 사례는 요즘이야 흔하디흔해서 거론할 필요가 없겠지만 시와의 경우는 그 의도부터 남다르다. 합성물질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재료를 쓰지 않기 위한 생태학적 접근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홍보물의 경우도 재생지에 콩기름 잉크로 인쇄하여 만들었다. 이번에 미처 만들지 못한 CD는 생분해성 소재로 제조하는 방법을 간구하면 발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와의 음악은 본인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자연 친화적이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흐른다. 무엇보다 시와의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목소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녀가 관객들과 친밀하게 소통하고자 열고 있는 본인의 공연명을 이 음반명으로 채택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청자에게 더 가깝게 들린다. 시와의 가사가 변천하는 과정을 살펴보아도 이번 음반의 의미를 채득할 수 있다. 예전에 주로 1인칭 시점으로 고백적인 내용을 많이 들려주었다면,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까지 실어 나르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적재적소의 공작(共作)도 낮고 그윽한 시와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만든다. <그대의 우물에서>에서 정현서(투명의 멤버)의 베이스는 시와의 목소리와 동행하며 더블링(doubling)하는 효과를 수행하고, <마시의 노래>에서 박혜리(바드의 멤버)의 어코디언 연주는 우수 어린 정서를 더해준다. <인사>의 서두에서 잠시 일별하는 봄눈별의 인디언 플루트 연주는  “너른 들판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바스락대는 기억을 불러오는 소리”를 재현한다. <나는 당신이>는 산뜻하고 낭만적인 선율을 강조하면서 시와의‘여러’ 목소리들을 살랑이도록 중첩시킨다. 전반적으로 심심한 듯도 하지만, 합성조미료를 더하지 않고 원 재료의 미감을 살린 음식에 비견할 수도 있을까.

 이전에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위한 작품집으로 기획된  《이야기해주세요》(2012) 컴필레이션 음반에서 시와가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네>를 통해 노래했듯, (이 글의 맥락에 이 노래 가사를 적용하면)   “나의 꿈이 뭐인지 묻지 않고서 어깨를 두드리며 앞으로만 가라고” 하는 비정한 세상의 독촉과 종용에 대해 반성하며 더 나은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그의‘진심’이 음악적 맥락과 좋은 자기장을 형성한 듯하다.

음악의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어떤 실천들

 이들의 시도는, 넓게 보자면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다른 단어로 표현한다면 일종의 원형(原形)에 대한 노스탤지어이다. 예컨대 김태춘은 가령  “진정한 자유”가 있는 세상을, 시와는 자연과 조화로운 세상을 노래한다. 시와라는 이름조차 이미 사라져버린 또는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향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를, 전자 음향보다는 어쿠스틱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세간의 일반적인 태도와 이들의 시도가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나는 후자가 더 가치 있다는 등식이 종종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둘 다 어쿠스틱 기반의 음악들을 기반으로 하는데, 시와는 포크를, 김태춘은 블루스를 근간으로 한다. 포크나 컨트리 또는 블루스 음악은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이 되는 음악 장르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향수가 단순하게 과거로 돌아가자는 복고적 태도에 기반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둘을 포함해 여러 인디 뮤지션들은 기존의 음악 유통과 분배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몇몇 실천을 수행하면서, 디지털과 인터넷 테크놀러지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보편적인 방식으로, 온라인 음악 사이트들에서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결합 상품을 통해 음원을 스트리밍하는 접근법(정액제) 대신 건당 다운로드를 받게 하는 선택(종량제)을 하곤 한다. 김태춘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도 이런 절차를 따라야 한다.

 ‘밴드캠프’,‘사운드클라우드’ 같은 음악 웹사이트들은, 시와나 김태춘의 경우는 물론 많은 인디 음악인들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아지트가 되기도 한다. 또 기존의 온라인 음악 사이트가 아니라 특정한 곳을 선택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현대카드뮤직의 경우가 있는데,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첨병 중 하나인 금융자본의 투여에 대해 달갑지 않은 생색내기라는 비판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기존과는 다른 합리적인 수익 배분이나 신선한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 뮤지션들이 새로운 유통의 장으로 이용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시도에도 암암리에 어떤 전제가 작동하기도 한다. 시와의 경우 뮤지션과의 직거래를 하거나 밴드캠프 같은 곳에서 구매할 때 자동적으로 네 곡을 모두 선택하게 된다. 싱글 위주로 음악 시장이 재편된 지 오래인 지금, 음원의 종량적 소비에 대한 권고는 이렇게‘앨범’의 존재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인디 뮤지션들의 어떤 시도들은 단순히 현실에 대한 비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길을 모색하고 실험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음악의 형식과 내용 자체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