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것은 더럽고, 더러운 것은 깨끗하다(Fair is foul, and foul is fair).”

 <맥베스(Macbeth)> 1막 1장 중 세 마녀는 맥베스를 만나러 가, 그 모든 비극을 불러온 예언을 하기 전에 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국에서는 판본마다 번역이 조금씩 달라서,“선한 것은 악한 것, 악한 것은 선한 것” 또는“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이요,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등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넌센스 같은 문장은 극 전체를 구성하는 패러독스의 구조를 잘 표현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서 세타가야 퍼블릭씨어터 작(作) <맥베스>의 리메이크 방향이 결정된 게 아닌가 싶다. 극 초반부의 이 간결하면서도 밀도 높은 선언은 모든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거의 극과 극으로 통하는 캐릭터들의 내적 심리와 외적 상황을 변화무쌍한 삼라만상-“순환과 재생의 이미지”로 풀어 나가도록 하는 촉발제가 되었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를 이국적으로, 탈 시대적으로, 다른 인물의 관점으로, 그 밖에 여러 각도로 재해석하여 변주하고자 하는 욕망은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쏟아진 수많은 리메이크 버전의 작품들의 수로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지난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에 걸쳐 4회 공연된 세타가야 퍼블릭씨어터의 <맥베스> 역시 그 흐름의 한 줄기로, 일본 전통연희예술인‘노(能)’와‘교겐(狂言)’의 형식을 이 유명한 고전에 성공적으로 적용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맥베스>의 각색과 연출, 주연을 담당한 노무라 만사이(野村萬?)는 전통 깊은 교겐 배우 집안 출신으로 영화, 드라마, 공연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영화 <음양사>(2001)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그가 밝힌 연출의 변은, 이 연극의 형식적 지향점을 설명하고 있다:“교겐이나 노가 갖고 있는 성격이 깊고 넓어 많은 이들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¹⁾ 이 낯선 전통예술은 비단 형식이라는 수단으로 뿐만이 아니라 <맥베스>를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에도 영향을 끼쳐, 우리가 익숙하게 여겼던 텍스트를 새롭게 보도록 했다. 동시에 소수의 마니아층에 의해 선호되어 온‘노가쿠(能樂)’²⁾는 이 실험적인 접목의 결과로 뉴욕, 오사카, 도쿄, 서울 4개 도시 투어를 통해 좀 더 대중과 가까워지는 길을 모색했으니, 이 또한“낯익은 것은 낯선 것이고, 낯선 것은 낯익은 것”이 아닐는지.

 공연은 음산한 황야를 묘사하는 듯한 불길한 음악과 어두운 조명,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의 섬뜩한 목소리로 시작된다.“우주의 먼지 / 별똥별, 똥 같은 별 / 문명의 응어리 쓰레기, 쓰레기 같은 문명 / 사회의 뒤틀림, 뒤틀린 사회 / 인간의 일그러짐, 일그러진 인간/ 인간 쓰레기, 쓰레기 같은 인간.” 이는 원작에는 없는 구절로, 극 중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쓰레기”처럼 자체 도입한 재해석의 흔적이다. 반대의 극성을 띠고 있는 자석의 N극과 S극이 언제나 붙어 한 몸인 것처럼 인간은 운명적으로 모순을 체화하면서도 때로 그를 감당하지 못해 파멸하는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곧이어 천정에서 커다란 검은 쓰레기자루들이 무대 위로 쿵쿵 떨어진다. 쓰레기.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쓰레기자루 세 개를 찢고 안에서 나온 세 마녀는 몸을 비틀어대며 기괴하게 웃는다. 이 세 마녀를 맡은 남자 배우들은 맥베스와 그의 아내를 제외한 모든 배역을 맡았다. 총 다섯 명의 배우가 모든 배역을 맡아 공연하는데, 세 명이 맡은 일인다역의 연기는 운명이 인간을 얼마나 철저하게 조롱하는지 오싹하게 잘 보여주었다. 대립 요소들이 조화와 충돌을 거듭하며 공존하고 있는 <맥베스> 자체의 특징에 더하여, 일인다역의 방식은 새로운 해석의 층위를 한층 더 겹쳐놓았다.

 이 공연은 무대장치가 극도로 간소화된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는 데다 다섯 명의 배우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관객의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할 여지가 많고, 이것이 노·교겐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일인다역의 세 배우가 한 역할에서 다른 역할로 전환될 때, 그 과정은 마치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몰입하고 동참해서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히죽거리며 맥베스를 관찰하던 등이 굽은 마녀 하나가 전혀 서두름 없이 넝마를 벗어 던지고 왕관을 쓰면서 즉시 풍채 당당한 던컨 왕이 된다. 마찬가지로 던컨 왕이‘용맹스러운 겁쟁이’이자‘충성스러운 모반자’인 맥베스에게 잠든 사이 살해당하고, 그가 가장 신뢰했던 신하이자 사촌인 암살범의 침대에 시신으로 누워 있다 벌떡 일어나 예의 기분 나쁜 웃음을 지을 때, 관객들은 그가 마녀로 미끄러져 들어갔음을 곧바로 눈치 챌 수 있다.“맥베스보다 못하지만, 더 위대하”고,“운이 썩 좋지는 않지만, 훨씬 더 운이 있”으며,“왕이 되지는 못하지만, 대대로 왕을 낳을” 뱅코우 역시 맥베스에 의해 암살되었지만, 다시 키득거리며 나타나 동료 마녀들과 맥베스의 미래를 예언할 마법의 큰 솥을 젓고 있는 것이다. 이 배우들은 맥베스의 주군, 친구, 신하, 그밖에 모든 주변인물이 되었다가 수시로 마녀로 변신한다.

 따라서 관객들은 바로 직전까지 몰입했던 인물의 잔상에서 벗어날 시간도 없이 곧장 다음 인물로 급격히 인식 전환을 해야 하는데, 그 중첩의 순간동안 일어나는 정반대 이미지의 충돌(운명의 희생자↔희롱자, 나약한 인간↔절대적 운명 등)은 잠시간의 혼란을 일으킨다. 대표적인 반응은 웃음이었다. 한국 관객들은 마녀들이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왕으로, 뱅코우로, 귀족들로 변신할 때 객석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이에 대하여 예술감독 노무라 만사이는 한국공연이 이렇게 성공적일 줄 예상 못했고 관객반응이 너무나 좋았다며,“특히 세 명의 마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여러 번 웃음이 터졌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았죠. 제가 시도한 교겐식의 유머를 한국 관객들이 오히려 더 잘 이해하고 매번 웃어주는 것이 놀라웠습니다”라고 밝혔다.³⁾ 그러나 이 관객의 웃음은 마녀들의 웃음이 점점 그로테스크해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잦아든다. 이는 무대 한가운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몰락해 가는 맥베스와 그의 부인을 보고 바닥에서 배를 쥐고 구르며 웃는 마녀들의 모습에서, 잔인할 정도로 운명에 조롱당하는 인간의 무력함과 비애를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돋보였던 또 하나의 영리한 연출은 미니멀한 무대 세트와 소도구의 활용이다. 이 공연에서 사용된 세트는 두 가지로, 사람이 드나들 만한 크기의 거대한 원형 틀과 천으로 덮인 입방체의 구조물이 전부이다. 처음에 맥베스는 원형 틀에 발라진 종이를 찢고 나와 객석을 향해 한바탕 칼사위를 벌이며 등장한다. 그는 반역자들의 모반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맹장이자 충성스러운 신하였고, 앞길을 방해하는 운명 따위는 베어버리고 전진하겠다는 영웅의 풍모를 갖춘 인물이었다. 그러나 후반부‘국왕 시해자 국왕’ 맥베스가 불안에 떨며 다시 세 마녀를 찾아 새로운 예언을 요구할 때, 그가 거침없이 뛰쳐나왔던‘문’(원형 틀)은 온갖 불길한 재료들이 섞여 펄펄 끓는 가마솥이 된다. 이 악마적 주술에서 불려나온 세 가지의 환영이 결국 맥베스의 파멸을 점지하게 되었으니, 그는 끝까지‘정직한’ 예언에‘속은’ 셈이다.

 또 다른 구조물인 입방체형 틀은 더욱 다양하게 활용되는 세트이다. 이것의 가장 강렬한 용례는 암살당한 던컨 왕의 피로 젖은 침상이 바로 맥베스의 왕좌로 연결되는 부분일 것이다. 두려움과 죄책감에 사로잡힌 맥베스가 피 묻은 단검을 들고 비틀거리며 나와 넋이 나가 있을 때 그의 손은 피를 나타내는 붉은 실타래가 빽빽이 감겨 있다. 이는 평생 그를 옭죄며 지배할 업보임을 상징한다. 겁에 질린 남편 대신 살해 현장에 단검을 갖다 놓으며 국왕 시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레이디 맥베스의 손에도 같은 붉은 실이 감겨 있어 그들이 단단히 얽힌 공범관계임을 암시하는데,‘보위’(입방체 틀)에 오른 부부의 뒤편에 걸린 거미줄이 그려진 천은 이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의 덫에 걸려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의미가 중첩되어 가는 이 단순한 무대 구조물은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능을 한다.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급격히 허물어진 맥베스는 광기어린 모습으로 맬컴 왕자와 맥더프의 군대에 맞선다. 그러나‘여자에게서 태어난 자는 맥베스를 해치지 못한다’는 예언이 맥더프에 의해 무력화되며 그는 결국 패한다. 여기에 또 다른 각색이 더해지는데, 초반부에 제시되었던‘쓰레기’의 재등장이 그것이다.“나, 맥더프는 죽은 여자의 배를 가르고 나온 자이다”는 셰익스피어의 원작 그대로이나, 첨언된“죽은 여자는 인간이 아니라 쓰레기다. 난 쓰레기에서 태어났다”라는 말은 노무라 만사이가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느꼈던 자연과 인간에 대한 고민이 더해진 것이다. 이 생각이 맥베스의 시신 위로 덮인 거대한 천 위에 작은 새순이 돋는 결말을 이끌어냈을 거라 본다. 마녀들은 다시 한 번 주문처럼 말한다:“깨끗한 것은 더럽고, 더러운 것은 깨끗하다”.

 마녀들의 예언에 홀려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영예에 눈먼 맥베스, 제 발로 파멸을 향해 돌진했던 어리석은 인간. 그의 무덤 위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삼라만상은 무심히 순환하고 재생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