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많은 독립영화가 그러하듯이 오멸 감독의 <지슬>은 스스로 발견되기보다는 외부로부터 들어온 또 하나의 경우다. 이 말이 비판적인 어조로 들리지 않기를 원하는데, 한국에서 독립영화가 평가되는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일을 하는 동안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2008),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2010),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2011) 등을 소개하면서 이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한국의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들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었고, 이후 로테르담을 비롯한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일으키며 호평을 받았다. 해외에서의 수상 소식과 일정한 평가가 끝난 후 한국의 독립 영화들은 국내에 개봉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때마다 영화의 카피 문구로 활용된 것은 우리 안의 평가가 아니라 해외에서의 평가와 관심이었다.

 바깥에서의 평가와 수상경력이 관심을 모으는 중요한 촉매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제영화제의 중요한 기능이 일정 정도 홍보와 관심을 모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슬>의 흥행을 바라보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독립영화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가 된 것 역시‘예외’적 평가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독립영화는 언제나 바깥과 예외 속에서 형성되는‘무엇’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슬>의 최근 개봉 과정도 아주 다르지는 않다. 이 작품은 지난해 부산에서 처음으로 소개가 된 영화였고, 그에 부합할 만한 수상의 영예를 안아 갔다.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관심을 일으킨 것은 올해 초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면서이다. 유수한 서구의 영화제에서 화제를 일으킨 작품이 그러하듯이, <지슬> 역시 선댄스 혹은 영화제 프리미엄을 얻고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양익준의 <똥파리>가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젊은 감독의 성장담이었고, <파수꾼> 역시 윤성현 감독이 써낸 성장영화였고, <무산일기>는 친구였던 전승철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통과의례였다고 요약할 수 있다. <지슬>은 제주도 출신의 오멸 감독이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에서 다뤄진 배경은 현재의 체험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다. 이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도대체 해외에서 이 영화를 어떻게 읽어내었을까 하는 점이다. 선댄스에서 날아온 평가는 이러하다.“제주에서 온 완전히 새로운 영화”,“모든 영역에 걸친 탁월한 재능이 압도적이다.” 좀 관성적인 표현들이기는 해도 새로움과 압도하는 영화적 스타일에 대한 예찬이 앞선다. 또 다른 평가도 비슷하다.“깊이 있는 서사와 더불어 시적인 이미지까지 <지슬>은 우리 모두를 강렬하게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 대한 공통된 평가는 역사에 대한 평가나 역사의 사실성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소재를 어떻게 표현해내는가 하는 것이고, 한국의 정서와는 다른 제주도라는 것의 독특한 분위기에 대한 예찬이었다. 이 점이야말로 한 편의 예술작품이 공명할 수 있는 보편성의 토대를 만들어낸다. 제주 4.3 사건을 아는가, 모르는가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역사를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는가 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평가를 통해 바깥사람들은 공감을 표현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슬>은 국내에서 개봉을 한 후 흥미로운 상황을 연출해냈다. 역사의 사실에 관한 판단 여부를 두고 게시판이 뜨겁게 달궈지기도 했다. 이 논쟁은 <지슬>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슬>이 이룬 것은 역사에 대한 객관적 설명이 아니다. 정부의 발표에 의해 마을 사람들이 폭도로 몰리는 상황 속에서 제주도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숲과 동굴 속으로 피난을 간다. 군인들의 총과 칼에 죽어 나가는 상황들, 불타오르는 집의 모습 등 이것은 학살의 풍경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어째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않다. 학살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견디며 살아가는 민중이 있을 따름이다. 그 속에서 오멸 감독의 <지슬>은 냉정한 유머감각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것이야말로, 역사보다 더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의 토대를 이룬다.

 <지슬>은 제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은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번째 장은 신위(神位)다. 그것은 영혼을 모셔 앉힌다는 뜻이다. 두 번째 장은 영혼이 머무는 곳이란 뜻의 신묘(神廟)이고, 세 번째는 귀신이 남긴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음복(飮福)이다. 마지막으로 지방을 태우며 염원들 드리는 소지(燒紙)로 마무리된다. 제사의 형식을 지닌 이 영화의 정서는 객관성으로부터 모든 것을 떨쳐버린다. 오멸 감독은 4.3 사건이라는 역사를 다루면서도, 사실적인 강박이나 목적을 떨쳐버림으로써 오히려 자유로운 역사 서술 방식을 만들어냈다. 일종의 씻김굿으로서의 <지슬>은 역사의 강박이나 공포를 떨쳐버리고, 오래 전 제주도에서 일어난 한 편의 동화처럼 독특한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에 대해 비판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진지함이 부족하다든지, 사실성이 부족하다든지, 억울한 민중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한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비판을 넘어서 <지슬>이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실성 자체에 매몰되기보다는 판타지와 다양한 서술 방식을 통해 관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흡사 유령처럼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여성들, 맥락이 뚝뚝 끊겼다가 이어지는 독특한 서술방식, 흑백의 농익은 화면은 역사에 심취하게 하기보다는 역사 속에서 견디는‘인간의 얼굴’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그것은 제주도라는 땅 위에서 제시될 수 있는 상상력이다. 민간의 신들만 1,800여 신이 있다고 하는 제주도는 특유의 무속적 기운이 넘치는 땅이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이성을 지니지 못한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 채 미군의 소개령을 듣고 피신했거나 미처 피신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제주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가는 것이 영화의 전부이다. 그러나 동굴 속에서 지슬(감자)을 나눠 먹으며 소탈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은, 역사의 아이러니와 더불어 살아있음의 증거를 표현해 낸다. 역사를 바라보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대신하여 세속적인 무질서 속에서 미약한 희망을 가지고, 마치 기도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야말로 <지슬>이라는 영화가 새롭게 다가간 지점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입장들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이나 <화엄경>(1993)에서 조금은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지슬>은 이보다 더 현실적이고, 이보다 덜 지적이면서, 제주도라는 역사적 공간을 영화의 무대로 내세운다.

 이 작품은 전문 배우들이 출연한 산업의 영화가 아니라 비전문 배우들이 다수 포함된 독립적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오멸 감독은 독립영화의 모양에 어울리게 제주도에서 먼저 영화를 개봉하는 형식을 취하였고, 제주도 사람들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집단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했다. 스마트폰을 휴대하면서 어디서든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된 시대에 <지슬>은 아날로그한 방식으로 결속력을 다져 나가고 있다. 그것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제주도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평소 일상대로 그들끼리 티격태격하고 보살피며 동굴에 숨어 지슬을 나눠 먹었다. 이 장면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관람태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오멸 감독이 원하는 것은 역사의 정확한 전달이나 파악이 아니라 그 시절 무력감 속에서 견디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느끼는 것이었다. 두세 번 영화를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분명 남을 것이다. 하지만, 온전한 이해를 하기보다는 그 시절의 정서를 온전히 호흡할 수 있다면 이 영화의 이상에 다가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부분을 관객에게 던져주는 <지슬>은 감정의 공유를 통해 사건과 역사의 공유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한국의 새로운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