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우리가 세계문학의 정전으로 일컫는 작품들은 서구에서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의 동시적 진행이 전개되던 시기에 형성된 국민문학 또는 민족문학의 정전이라 간주되고 있는 작품들이다. 대체로 이들 작품들은 서구적 문명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정신사적 원천을 토대로, 거기에 근대 계몽주의 운동 이후에 생성된 서구적 정치•사회사상과 민족감정을 삼투시키면서, 독특한 형식의 내셔널리즘과 유럽중심주의를 재현하는 역할을 해 왔다. 미국과 유럽이라는 지리적•문화적 특수성을 보여주는 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보편화된 계기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로 지구화되는 식민주의•제국주의적 팽창에 기인하고 있다.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이나 아리기(Giovanni Arrighi) 등의 세계체제론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나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등이 유사한 논의를 펼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일종의 정전으로 수용하고 있는 서구 중심적 세계문학이라는 관념은 비서구 지역에 대한 유럽적 헤게모니 체제가 확립되는 근대에 구성된 개념이다. 물론 서구문학의 문화적 헤게모니는 압도적인 무력과 금융자본에 근거한 물리적 패권 개념과는 달리, 서구의 문화적 우월성에 대한 비서구 지역의 반(半) 자발적인 ‘동의’에 기반해 있다. 하지만 이 동의는 비서구 지역의 문화적 불모성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거꾸로 풍부한 문학적•문화적 유산에도 불구하고, 비서구 지역이 서구의 식민지 체제에 편입되었다는 ‘식민지 근대’의 충격에서 온 것이다. 가령 한국이 포함된 동아시아 지역은 한어(漢語)에 기반한 중세공동어문의 유장한 문화적 전통을 근간으로, 또 일찍부터 성립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에 힘입어 독자적인 문학 양식과 작품을 산출해 왔다. 아시아의 또 다른 제국이었던 인도 역시 고대 산스크리트 문학의 유장한 전통을 유지해 왔으며, 과거 페르시아 제국과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 통합되어 있었던 아랍문학 역시 구비문학은 물론 고전아랍어로 쓰인 기록문학의 전통을 갖고 있어, 오히려 유럽의 헬레니즘에 강력한 문화적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유럽의 노예무역과 식민지 개척에 따라 성립된 라틴아메리카나, 영국과 프랑스 등에 의해 대륙 전체가 식민지가 된 아프리카 문학의 경우는 근대 이전까지는 대체로 종족신화와 민담과 같은 구비전승 문학에 의존했던 것이 사실일 것이지만, 이 역시 문화적 불모성의 근거로 논단되는 것은 역시 부당한 것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서구 중심적 세계문학 체제의 성립이라는 것은 결국 19세기를 기점으로 시작된 유럽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결과로 구성된 문화적 표상체계 또는 이데올로기 장치로 볼 수 있는데, 간명히 말하면 그것은 유럽문화의 우월성을 심미적으로 내면화하는 ‘문명화의 논리’였던 것이다. 근대의 충격 속에서 비서구 지역의 문인과 지식인들은 이 문화적 장치에 일면 동화되는 듯하면서도, 거꾸로 그 장치의 내부논리를 전유해 유럽적 가치의 비서구 지역에의 차별적 적용에 저항했다. 가령 유럽의 문학작품에 삼투되어 있는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혁명정신과 시민정부론에 입각한 민주주의, 압제와 인습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과 민족의식의 고양과 같은 핵심적 사상들은, 거꾸로 비서구 지역의 대항적 내셔널리즘과 근대문학으로의 이행을 위한 문자혁명 또는 근대전환기의 문학혁명을 강력하게 호출해냈다. 이로부터 비서구 지역의 근대문학은 서구의 제국주의•식민지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폭로하거나 은유적으로 비판하면서, 민족해방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자국의 문학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삼투시켰다. 20세기에 이르러 비서구지역의 문학에서 이러한 문학운동은 본격화되게 되며, 2차 대전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식민지 체제에서 순차적으로 독립된 주권국가의 지위를 복원하게 되면서, 세계문학의 판도는 급기야 지리적•문화적으로 다원화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서구 중심적(유럽 중심적) 세계문학의 프레임을 탈구축해야 하는가. 물론 지리적•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럽문학에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수용하고 계승해야 될 다양한 가치가 존재한다. 이 가치는 인류의 공동유산이라는 관점에서 당연 개방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유럽문학의 심층무의식을 이루는 ‘문명화의 논리’에는 타기해야 마땅할 편견 역시 깊이 잠복해 있다. 가령 근대 유럽문학에 재현되어 있는 비서구지역과 비서구인들은 문명과 야만이라는 왜곡된 재현의 프리즘을 반복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치밀하게 분석했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나, 반대로 비서구 지역의 문학에 나타나는 서구선망으로서의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문화의 공존이라는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문화세계의 창조는 서구적 가치의 전일적인 지구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것은 서구적 가치와 비서구적 가치의 공존과 연합(association)을 의미하는 것이어야 한다. 비서구 지역의 문화 속에는 장구한 시간 동안 축적되어 온 비서구인들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과 그것의 현대적 계승과 혁신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중층적인 모순과 고뇌의 흔적이 담겨 있다. 전통과 모더니티의 길항이라 할 수 있는 성, 인종, 민족적인 테마들이 비서구문학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학적 의제인 한편, 근대화 과정 속에서 비서구인들이 직면한 민족해방과 제국주의적 유산과의 갈등이 매우 첨예하게 작품 속에 삼투되어 있다. 문학의 보편적인 존재근거가 인간해방과 평화공존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세계문학의 개념을 구상하기 위해서라도 서구와 비서구의 이 비대칭성을 균형 잡힌 시각에서 고려해야 한다. 이와 함께, 참된 의미에서의 세계문학이란 문화 간 또는 문명 간의 커뮤니케이션(교통)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자문화나 자종족의 문화를 보편화하려는 이상은 대체로 왜곡된 자기애적 거울상을 구축할 뿐이다. 타자와의 소통이 배제된 이 의사 주체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주체성을 형성한다기보다는 자기애적 퇴행에 불과하다. 지난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문명화의 사명’으로 표상된 서구적 가치의 나르시시즘이 결론적으로는 인종주의•제국주의•식민주의로 상징되는 압제로 귀결되어 왔음을 상기한다면, 참된 의미에서의 세계문학의 구상이란 비서구 입장에서는 서구에 의해 왜곡되고 굴절된 표상체계로부터의 해방의 주체화를 의미한다. 재현의 대상이 아닌 발언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서구인들 역시 이 목소리가 갖는 중층적 함의를 음미하면서 유럽중심주의라는 자기애적 거울을 깨뜨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비서구문학에 눈길을 돌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말고도 더 있다. 우선적으로 거론될 필요가 있는 것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변혁되고 미국 중심의 헤게모니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오늘의 세계는 상호문화적 공존을 모색하는 시기로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이러한 세계사적 변동은 이전에는 전례가 없었던 방식으로 ‘정체성의 정치’를 격화시키게 되는데, 그것이 가장 내밀한 방식으로 육화되어 표출되는 장(field) 가운데 하나가 문학이고, 실제로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는 비서구문학은 이러한 문학적 의제를 통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공존의 윤리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문학의 자기애적 거울상과 비서구문학의 타자 선망의 역(逆) 거울상을 동시에 탈구축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계 문학 담론이 정교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도 서구문학과 비서구문학에 대한 불온한 응시는 불가피하다.
#저자 약력
李明元 1970년 서울생. 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저서로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시장권력과 인문정신」등. raca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