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 컨벤션홀에서는 아시아문화전당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회의의 주제는“지식의 야생 정원-새로운 사회를 위한 아시아 문화의 가능성”이었다. 섹션은 크게 두 영역으로, 작게는 세 영역으로 구분되어 진행되었다.‘창의적인 문화기관의 탄생’이 일종의 총괄적인 섹션으로 문화 기관의 역할에 대해 전반적으로 토론하는 자리였다면, 나머지 한 섹션은‘예술적 사고와 지식 생산’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전시 영역의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할을,‘공연예술 큐레이팅과 아시아의 가능성’이라는 주제 아래에서는 주로 공연 예술의 문제를 토론하는 세부 영역으로 구분되어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러니까 섹션 1은 오전에 별도로 진행되었고 섹션 2는 오후 같은 시간에 장소를 나누어 토론이 진행되었다. 섹션 2는 관심 분야에 따라 선택적 참여를 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컨퍼런스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2014년 준공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전당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배어 있는 기획이었다. 창의적인 문화기관에 대한 발표와 토론, 전시와 공연을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사례와 흐름을 점검하는 내용에 비추어 보면 주최 측의 의도나 문제의식이 충분히 이해되고 또 공감도 갔다.

 개별 발표들은 흥미로웠고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족한 것들이었다. 베른트 쉐러(Bernd Scherer)의 베를린의 세계 문화의 집에 대한 사례 발표, 엔서니 샐턴(Anthony Shelton)의 비판적 박물관학에 대한 발표( 「전지구적으로 흐르면서 넘나드는 뫼비우스 박물관학」)가 특히 인상 깊었다. 서구의 입장에서 어떻게 세계와 만나고 아시아를 상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깊게 배어 있는 발표였다. 탈식민주의 이론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그동안 서구 중심주의를 반성하고 대중적 지식이 형성되는 장으로서 박물관에 대한 성찰적 사유가 묻어나는 발표가 내게는 매우 참신하게 다가왔다. 베를린의 세계 문화의 집이 서구적 입장이 아닌 말 그대로 세계 그 자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얘기들도 아시아문화전당 측 관계자는 물론이고 아시아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참조점이 될 것 같았다.

 오프닝 공연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공식 순서에는 Lecture Performance로 표기되어 있었다) 안은미 교수가 기획한 공연 역시 나로 하여금 무용에 대한 선입관을 일거에 바꾸도록 만든 것이었는데, 사람의 몸과 일상이 어떻게 무용이라는 형식으로 재현될 수 있고 그것이 탈일상의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에 비해 아시아문화전당이 준비한 발표는 그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공감이 갔지만 아직도 추상적이어서 구체적 내용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여전히 고민이 진행 중이기에 그럴 것이라고 이해하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너무 많은 내용과 콘텐츠를 아시아문화전당에 담으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그런 내용이 국내외의 다른 어느 곳과도 구별되는 아시아문화전당만의 것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떨어졌다. 물론 이런 기회를 통해 내용이 지속적으로 보완될 터이고 아직 시간은 더 남아 있으므로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갖고 있다.

 한편 이런 컨퍼런스에 참여할 때마다 느끼는 문제점인 동시에 또 가끔 그런 회의를 기획하고 조직해 본 입장에서 스스로 반성되는 점이기도 하지만, 컨퍼런스가 어떤 문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의 장이 되기보다는 청중들을 대상화하여 일방적인 연설조로 진행되는 전시적 행사로 흘렀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어도 지정 토론자들의 질의 일부는 알맹이가 없는 당위만을 주장하거나 발표자의 핵심적 문제의식에서 한참 빗나가는 것이어서 실망스러웠다. 주최 측이 행사 진행의 시간 관리를 못해서 발표자는 시간에 쫓겨야 했으며 청중 토론도 이루어지기 힘든 구조였다. 오히려 이런 토론회는 발표자 수를 줄이거나 아니면 시간을 늘려서 주어진 문제가 충분히 논의되도록 만드는 토론의 장이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개회식의 많은 축사들이나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청중들은 여느 행사에서도 지적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지식의 야생정원’에서는 추방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남에게 보여줄 행사였다면 이런 컨퍼런스 형식은 이제 피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핵심 쟁점을 놓고 격의 없이 토론하는 자리로 기획되었다면 외국 참가자들과 국내 참가자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데에도 기여하고 아시아문화전당의 운영 콘텐츠를 고민하는 데에도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 점에서 전당 측에서는 앞으로 유사한 행사를 기획할 것이라면 전문가 워크숍의 방식을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또 하나 행사 기획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점은 명색이 아시아문화전당인데 정작 아시아는 없고 서구인들의 반성적 아시아관(觀)만 넘쳤다는 것이다. 물론 국적이나 인종을 기준으로 재단해서 말하는 것이 폐쇄적 태도로 비춰질 수도 있을 터이나, 발표자로 초청된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서구에서 온 분들이어서 아시아의 정체성에 기반한 논의는 찾기 어려웠다. 아울러 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와 아시아가 만나는 자리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광주도 발견할 수 없었다. 광주가 아시아를 고민하고 광주 시민들이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을 터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과 기획은 부족했다. 적어도 광주 지역 섹션 하나를 더 설정해서라도 광주가 아시아문화전당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가가 드러나도록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한다.

 4월 초인데도 광주에는 벌써 벚꽃이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할 때 청중으로 참여했던 한 평범한 아저씨와 우연히 자리를 함께 했다. 자원봉사센터에서 오셨다는 그분은 이런 행사에 인천에서까지 오느냐고 의아해 하시면서도 광주의 음식 자랑을 한참 하셨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오랜만에 찾은 광주에서 광주의 냄새를 그 아저씨로부터 비로소 맡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