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인천 연안부두에서 백령도로 가는 배를 탔다. 승객은 열 명 남짓이었을 뿐 배는 텅 비어 있었다. 키리졸브 훈련이 끝나고 남북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때였다.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하여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나는 올 한 해 백령도를 주제로 미술작업을 하기 위해 떠나는 길이었다. 영국에서 온 미술작가 엠마 벨(Emma Bell)과 함께였다. 엠마는 백령도에 있는 평화레지던시에서 봄 한철을 머무르며 작업을 하기로 되어 있다. 배 객실에 있는 커다란 텔레비전은 계속 다급한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북한 미사일 발사 징후 감시’,‘북 매체 B52 격추 애니메이션 공개’, 연평도 포격사건과 백령도 초계함 침몰 사건을 겪은지라 백령도로 향하는 물길이 불안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별 걱정이 없었다. 한국 사람인 나는 이런 긴장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엠마는 한미 키리졸브 훈련 때부터 백령도 행을 불안해하고 있었다.

 뭍을 떠나면서 황해는 녹색으로 변해 갔다. 작은 섬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둥근 수평선만 보이는 먼 바다로 배는 나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물과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은 둥근 원이었다. 왜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네모지다고 생각했을까. 저렇게 동그란데. 얼마 전에 본 아름답고 신비로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e)>도 생각났다. 배를 타고 네 시간이 넘게 바다로 여행을 하는 일이 즐거울 수도 있었겠지만,‘B-2 스피리트 위력, 평양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북한의 미사일 전력은 어느 정도’와 같은 무서운 자막이 계속 텔레비전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섬에 도착했다. 우리가 머물 곳은 백령 성당 관사였다. 인천아트플랫폼은 그 집을 무상 임대하여 작년 6월부터 평화레지던시라 이름 짓고 예술가들이 그곳에 머무르며 예술 창작을 하도록 하고 있다. 문화예술 활동으로 남북 긴장 상황을 완화하고 평화지역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취지이다. 작년에는 한국 작가 2명이 이곳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올해는 영국 작가 엠마가 봄 한 철을 지내고 여름 한 철에는 한국계 일본 작가가, 가을 한 철에는 다른 영국 작가가 올 예정이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우리는 먼저 동네 가까운 파출소에 갔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엠마가 너무 불안해 해서 파출소에 우리가 머무는 레지던시 전화번호를 등록하고 긴급사태 시 대피 요령을 숙지 받았다. 다음 면사무소에 가서 가까운 대피소의 위치를 확인했다. 면사무소 직원 한 분이 직접 가까운 대피소로 우리를 데리고 가 문을 열고 안까지 들어가 확인시켜 주었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어두운 계단을 밟고 지하로 내려갔다. 새로 지은 대피소는 의외로 시설이 좋았다. 샤워 시설과 수세식 화장실, 커다란 부엌도 있었다. 섬에 싸이렌이 울리면 우리는 이곳으로 뛰어와야 한다.

 그 면사무소 직원 분은 우리를 차에 태우고 섬 한 바퀴를 돌며 여기저기 구경시켜 주었다. 한 포구에 내리자 마을 어부들이 그물 손질을 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로 북한이 보였다. 아직 잎이 돋지 않은 나무와 산이 보이는 북한 땅은, 당연하지만, 남한과 똑같아 보였다. 저쪽 마을에서도 사람들은 그물을 손질하고 물고기를 잡을 터였다. 북한 땅이 보이는 바다 중간쯤에 배 한 척이 떠 있다. 면사무소 직원은 그 배가 중국어선이라 했다. 나는 멀리서 배 그림자만 보고 어떻게 중국어선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물 위치를 보고 안다고 한다. 남한과 북한 물 중간이 NLL인데 중국어선은 물에 그어 놓은 그 선 위에서 고기를 잡는다. 북한도 남한도 다가올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남북이 군사적 긴장상태라 중국어선 한 척만 떠 있지만 보통 때는 수십 척이 NLL을 따라 길게 줄지어 서 있다고 한다. 흐르는 물 위에 그어진 금, 넘을 수 없는 선, 보이지 않는 경계를 제3국 고기잡이 어부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북한 바다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를 중국어선이 잡아 남한으로 수출하면 그 물고기는 중국산일까 북한산일까. 물고기도 국적이 있을까. 물고기들은 물과 땅에 금을 긋고 서로를 증오하는 우리가 우스울 것이다.

 심청이가 물에 빠진 인당수가 보이는 해안선을 따라 조개무지가 있는 해변으로 갔다. 긴 철책이 해안선을 따라 이어졌는데 그 위에‘지뢰 주의’라고 쓰여 있다. 철책이 잠시 끊긴 곳에 철문이 열려 있다. 철문 안으로 들어가니 새 하얀 조개의 뼈들이 백사장처럼 해안을 덮고 있다. 물이 들어오는 곳에 오래 전에 세운 듯한‘용의 이빨’이 해안선을 온통 덮고 있다.‘용의 이빨’은 적의 군함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시멘트로 밑을 고정한 긴 철근 구조물이다. 조개 뼈 해안 양쪽에 높은 감시탑이 있고 그곳에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이 보였다. 감시탑 아래 물에 반쯤 잠긴 바위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굴을 따고 있었다. 지뢰, 하얀 뼈, 용의 이빨, 총을 든 군인, 굴 따는 할머니. 기이하고 신비로운 풍경이다.

 3월의 마지막 일요일은 부활절이었다. 나는 불교신자이지만 백령 성당에 갔다. 모든 종교제의를 나는 좋아한다. 신과 만나고자 하는 절실한 인간의 염원, 그 정제된 의식이 좋다. 부활절은 천주교의 큰 명절이라 마을 신자들이 모두 모였다. 성당 뒷마당에서는 큰 솥을 걸고 벌써 소머리국을 끓이고 있었다. 엠마와 나는 신부님과 수녀님께 인사를 드리고 미사에 참석했다. 부활절 날 예수의 무덤은 텅 비어 있었고, 그분의 목적지는 무덤이 아니라 생명이었다고 신부님은 말했다. 신자들은 세계평화와 죽음의 고통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안락사나 존엄사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예수와 그 신자들의 목적지는 무덤이 아니라 생명이고, 안락사를 포함한 모든 죽음의 유혹과 고통을 막기 위해 기도하는 그때에, 남한과 북한과 미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은 죽음의 공포를 유포하고 있었다. 섬사람들은 죽음이 아닌 생명의 축제 부활절을 맞아 큰 솥 걸어 푸짐한 김을 올리고 밥을 나눠 먹으며 명절을 즐기는데, 신문과 TV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저 공포와 증오는 도대체 무엇일까. 섬사람들의 목숨을 섬사람들 당사자가 아니라 저 뭍에 사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대신 결정하다는 게 기이하다. 증오와 죽음의 공포를 거래하고 있는 그 사람들은 마치 우리의 안전을 위해 자신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듯 행동한다.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면서, 걱정 말라고, 내가 너희를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너희들의 생명과 안전한 일상을 대신 결정해 주겠다고 말한다. 기이하고 신비롭다.

 미사가 끝나고 따끈한 소머리국밥을 나눠 먹고 수녀님, 성당유치원 선생님들, 백령병원 간호사 그리고 엠마와 나는 콩돌해안으로 놀러 나갔다. 딱 콩만 한 크기의 콩알 같이 동그란 자갈들이 해안에 깔려 있어 콩돌해안이라 부른다. 앳돼 보이는 한 군인이 엄마 아빠와 함께 해변에서 사진 찍으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아드님 면회 오신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 한다. 해변 식당에는 일요일이라 놀러 나온 군인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백령도에 거주하고 있는 군인은 섬 주민보다 그 수가 많다. 젊은 군인 부부들은 어린 아기들을 안고 파전에 동동주를 마시고 있었다. 옆 해변에서도 군인들이 편을 갈라 축구를 하고 있었다. 백령도가 곧 불바다라도 될 듯 긴장시켜 놓고 정작 군인들은 평화로운 일요일 나들이를 즐기는 것을 보니 한편 비상상황은 아니구나 싶어 안심이 되면서도 억울했다.

 다음 날 엠마와 나는 시내를 걷다가 한 서양 남자를 만났다. 우리는 요즘 같이 국지전 위험이 높은 때 엠마가 백령도에 있는 유일한 외국인일 것이라고 말했었는데 다른 외국인을 만나니 궁금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스페인 기자였다.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을 취재하러 왔다 한다. 기자는 엠마에게 이 섬에 왜 왔냐고 물었다. 예술하러 왔다고 답했다. 우리는 왜 왔을까.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기자는 우리를 불난 집 베란다 화초에 물 주러 온 사람쯤으로 생각했을까?

 불은 누가 냈을까. 증오와 전쟁의 공포를 조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증오와 공포에 기대어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권력을 연장한다. 그 공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기이하다. 언제 이 섬에 미사일이 떨어질지 모른다며 공포를 생산해내는 저들 앞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적들에 대한 증오를 생산해내는 저들 앞에서, 정작 백령도에 있는 우리들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의 일상과 생명이 위태롭다는데 정작 왜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단지 저들에게 우리의 삶과 안전을 대리하게 하는가. 공포를 담보로 하는 이 시나리오가 본질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은 대신 삶을 지켜주는‘전문가’ 대리인들의 탄생과 재생산이다. 공포와 증오를 거부하고 내 삶의 결정권을 위임하지 않을 수는 있을까. 주어진 것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상하고 욕망하는 그 삶을 스스로 살 수는 없을까. 그것이 바로 자유이고 평화이지 않을까. 예술은 억압되고 금지된 욕망을 해방시켜 다른 삶을 상상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벼랑처럼 긴장하고 있는 이 바다와 섬에서 총으로는 없앨 수 없는 공포와 증오에 예술이 맞설 수 있다면, 그것은 상상하는 삶에 대한 욕망을 자유롭게 생산해내는 일이 예술의 업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