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향유하는 방식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주관적 판단만으로  그것을 향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문화라는 단어 너머의 실제를 찾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소수라고 할 수는 없다. 세상은 이분법으로 표현하기에는 지나칠 만큼 거대하니까. 일반적으로 문화에 대한 욕구를 품은 이들이 그것을 체험하는 방식은 주로 관찰자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공연장, 전시장을 찾아 관람하고, 마음에 드는 영화를 감상하는 등의 문화적 경험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때로는 그러한 일반적인 문화적 체험 이상의 것을 원하게 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들은 스스로 예술적 행위에 가담하기를 원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다른 이들과 그러한 체험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인천’(이하‘글래스톤베리’)을 운영하는 이진우 대표가 바로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인천의 지난 백 년간의 과거가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촘촘히 들어서 있는 신포동 구시가지. 그의‘글래스톤베리’는 오래된 도시 인천에서 오늘 이러한 욕망이 표출되는 하나의 방식을 대표하고 있다. 비록 그 대표성에 맞닿는 현실이 바람만큼 아름답고 멋진 것만은 아니지만.

 ‘글래스톤베리’라는 명칭은 락(rock)에 빠져 본 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명칭이 상징하는 바 그대로, 이진우 대표가 자신의 공간에서 이루고 싶어 하는 꿈의 중심에는 공연이, 페스티발이 있다. 지하철로 한 시간 남짓이면 다다를 수 있는 홍대. 그 동네에서는 당연한 듯 매주 벌어지고 있는 그 체험의 한 부분을 이곳 인천으로 옮겨오는 작업은, 그러나 단 한 순간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 스스로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영위했던 추억을 소중히 품고 살아오고 있는 그다. 그래서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 무모해 보이는 그러한 꿈의 위험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꿈을 현실에 옮기고자 하는 바람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매달렸다. 생면부지의 뮤지션들을 찾아가 자신의 공간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한 그는 그저 우직하게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제 그는 어쩌면 홍대 인디씬(indie-scene)에서 알려진 밴드들이 서고 싶어 하는 인천의 유일한 무대를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조차 홍대, 이태원 그리고 강남 일부를 벗어나서 사적인 공연 공간을 꾸린다는 것이 극히 위험천만한 대한민국 인디 문화의 오늘이다. 특히 그처럼 갖고 있는 것이 별로 없는 몽상가의 경우는 더더욱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인천이라는 독립적이고, 인-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당당히 좋은 공연공간을 꾸려 온 그에겐 스스로를 대견해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글래스톤베리’가 자리 잡고 있는 신포동 지역이 인천에서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개항 이래 식민지 시대, 개발독재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거의 모든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구시가지에는 인천이라는 한 거대한 도시가 거쳐 온 부침의 역사가 화석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층아파트가 동경의 대상이 되는 21세기의 주거환경에 비추어 보면 이 동네의 수명은 어쩌면 다 된 듯 보일지도 모른다. 낡아 보이니까. 하지만 홍대 골목에서 인디 문화가 시작될 수 있었던 원인이 쾌적하고 현대적인 환경 덕분이 아니었듯, 이전혀 트렌디하지 않은 이 쇠락하고 오래된 골목길 역시 그러하다. 올 초‘글래스톤베리’에서 공연을 한‘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멤버들은 미국 공연 후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공연 시작 전 신포동의 골목, 골목을 모험하듯 돌아다닌 후 그들은 이 거리와 사랑에 빠졌다고 이진우 대표에게 말했다. 이 오래된 도시의 중심에 자리 잡은‘글래스톤베리’에서 가진 그들의 공연이 있던 밤, 그 시절 홍대 무대에서 느꼈던 바로 그 뜨거움과 열정이 그 작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글래스톤베리’는 백 년이 넘는 이 도시의 과거를 인천의 오늘 속에서 되살리고 새로운 현재성을 부여했다. 새로운 배를 맞이하는 오래된 항구처럼 푸근한 방식으로. 현실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녹록치 않은 법이다. 특히나 이진우 대표와 같이 거의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 가능성을 꿈으로 품고 사는 이에게 성취는 이에 상응하는 대가와 함께 몰아친다. 현재 인천에서 지역을 초월하여 괜찮은 밴드를 섭외해 무대에 세울 수 있는 클럽은 사실상‘글래스톤베리’가 유일하다. 그러나 이는 비단 인천만의 현상은 아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만 문화적 자원이 몰려 있는 비정상적인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서울이 아닌 어느 대도시를 가 보아도 홍대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한 문화적 체험과 자유로움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치우쳤다는 사람들의 비난과 상관없이 여전히 홍대는 그 희소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고, 이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이솝우화 속에 나오는, 설익은 포도를 올려다보던 여우를 연상시킨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문화를 향유하는 것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공유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홍대는 홍대고, 신포동은 신포동이다. 그뿐이다.‘글래스톤베리’에선 현재 인천의 인디씬을 만날 수 있다. 또한 홍대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인디씬의 현재 역시 경험할 수 있다. 이 두 현재는 신포동 좁은 골목 한편에 자리한‘글레스톤베리’의 소박한 무대 위에서 서로 교차하고 뒤섞인다. 그 결과 차이나타운 옆의 일본식 가옥들과 자유공원 위에 끈질기게 버티고 선 맥아더 동상이 내려다보는 신포동에선 또 다른 인천의 오늘이 겁 없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인천은 조금 더 문화적으로 커지고 열려 간다.

 ‘글래스톤베리’의 현 상황은 꽤나 험난하다. 어쩌면 이 공간은 충분히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개인이 운영하는 상업적 공간이 처한 생존의 조건은 무척이나 가혹하다. 명분을 인정받아 예산을 확보하면 생존을 보장받는 대부분의 지역 문화공간들과 달리 이 공간은 술과 안주를 팔아야 유지될 수 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클럽이란 애시당초 그러기 위해 여는 것이니까. 락도, 재즈도, 블루스도, 포크도 모두 그런 공간에서 예술이 되었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지쳐 가는‘글래스톤베리’의 주인장 이진우 대표는 그래서 안쓰럽다. 하지만 음악 얘기를 할 때면 여전히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즐거움으로 차오른다. 그래, 이래서 진정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지 않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글래스톤베리’의 음향 상태는 정말로 좋다. 기계가 고가라서가 아니다. 이 공간에 딱 어울리는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싶어 한 이진우 대표가 쏟아 부은 정성의 결과물이다. 요즘처럼 상업화가 점입가경인 홍대에서 웬만한 클럽들을 찾아다녀 봐도 이렇게 공간에 딱 어울리는 사운드를 만들어 놓고 있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멋진 클럽이 인천에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던, 이제 백 살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 같은 신포동이 이 인천의 오늘을 품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