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태박물관이 위치한 곳은 한라산의 중턱인 제주에서는 중산간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제주도민들은 중산간을 개발하는 것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산 중턱으로서의 중산간의 의미와 함께 제주의 지형적 특성상 한라산에 내린 빗물이 지하수가 되어 거쳐 가는 곳으로 이 빗물이 결국 해안가에서 솟아오르게 되고 이 용천수가 제주도민의 생활이 가능하게 만드는 젖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산간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 나올 때마다 격렬한 반응을 보이게 되고, 친환경적이면서 지하수를 적게 사용하겠다는 제안이 아니고서는 개발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발이 그렇듯이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그 중에서 가장 친환경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졌다고 알려진 곳이 비오토피아다. 비오토피아 인근에는 이타미 준^{伊丹潤, 1937~2011} 건축가가 설계한 수풍석미술관, 두손갤러리, 방주교회 등이 있고 본태박물관은 그들에 둘러싸여 있어 결국 이타미 준 건축가와의 한판 멋진 경쟁이 불가피한 장소에 위치해 있다. 그런 면이 본태박물관을 보러 가는 입장에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본태박물관의 첫 인상은 모호함이었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1941~}의 노출 콘크리트를 통해 보여주는 현대적 경외감이 아니었다. 마치 이것저것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 본태박물관과의 첫 만남이었다. 물론 이런 인상은 박물관을 다 둘러보고 난 후에 이해는 되었지만 그것이 면죄부를 줄 수는 없었다. 여전히 나는 안도 다다오의 재료적 물성을 통한 시대의 반영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미 그의 건축에 익숙해져 있는 것일까? 제주에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여럿 있다. 성산 일출봉 근처의 섭지코지에 위치한 피닉스 아일랜드의 지니어스 로사이와 글래스 하우스는 이미 여러 번 보았고, 일본의 오사카, 고베, 동경 등에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경험하였기에 이번에는 어떤 특별함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기대에 부풀었지만 본태박물관에서는 안도 다다오 특유의 색깔이 나타나지 않는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그렇듯 본태박물관은 한눈에 전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각 방향의 입면에서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전체를 볼 수 없으니 늘 답답하다.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찬 도시 안에서는 주변의 건물 때문에 입면과 내부 공간을 통해 건축적이고 공간적인 이야기를 멋있게 보여줄 수 있지만 제주처럼 사방이 드러난 곳에서 접근하는 방식으로는 뭔가 아쉬움이 있다. 피닉스 아일랜드의 글래스하우스도 섭지코지라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충만한 곳이 아닌 집으로 가득 찬 도시의 언덕 위라면 훨씬 감동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것을 만회한 것이 지니어스 로사이라고 할 수 있다. 빽빽한 건물들로 둘러싸여야 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땅속에 묻어 버렸다. 결국 땅은 도시이며 도시 안의 빽빽한 건축물이다. 땅속에 묻힌 지니어스 로사이는 안도 다다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준다. 마치 절벽 속을 걷는 듯한 길과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동굴 같은 공간은 공간과 빛과 길을 경외롭게 풀어내는 안도 다다오답다. 그런데 본태박물관은 지니어스 로사이가 아닌 글래스하우스의 전철을 걷고 있다. 자신의 건축철학을 보여주는 지니어스 로사이와 다를 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이타미 준 건축가의 방주교회나 수풍석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건축이다. 이타미 준 건축가의 건축은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면서 덩어리가 주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지만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건축적 요소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전체를 이루게 된다는 점에서 본태박물관은 안도 다다오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건축가가 만들어 준 시나리오를 따라 가다보면 짜인 각본 속에서 건축가가 원하는 지점에서 감동을 느끼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건축으로서 말이다.

 안도 다다오가 자신의 건축에서 말하고자 하는 시나리오는 결국 길이라 할 수 있는데 제주에서는 길의 이미지를 올래에서 따온 것은 아닐까? 섭지코지에 있는 지니어스 로사이에서도 길을 콘크리트 벽으로 세워 제주의 돌담을 형상화하더니 본태박물관에서도 콘크리트 벽으로 길을 만들고 있다. 안도 다다오가 콘크리트로 만든 올래길을 걷다가 눈에 들어온 인상적인 장면은 바닥의 제주석이었다. 제주석을 바닥판으로 쓰는 것은 제주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한 판 한 판을 일일이 둥글게 만들어 독특한 모양을 만드는 것은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내릴 때 하늘에서 보이는 돌담과 산담들이 만들어낸 제주의 땅이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이다.

 본태박물관은 다양한 요소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진입 부분에서는 늘 보아왔던 안도 다다오의 느낌이 보이고, 한국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한국식 담장이 나오고, 일본의 느낌이 넘치는 옥상조경과 마당이 있고, 전시물 일부에서는 중국의 느낌이 있다. 한 마디로 동아시아 국가들인 한·중·일 삼국의 문화가 건축물과 전시물을 통해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본태박물관은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의 모습보다는 한·중·일 삼국의 문화가 보인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안도 다다오는 자기 개성이 강하기로 소문난 건축가이다. 도시를 거닐다가 노출 콘크리트와 벽체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모습, 날카로운 선과 광활하게 느껴지는 면을 보면 안도 다다오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기 스타일을 굳건하게 지켜가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위대한 건축가라는 칭호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본태박물관은 안도 다다오의 본편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다르다. 안도 다다오가 늘 우리에게 안겨주었던 그 느낌이 아닌 외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본편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내용을 외전이 담는 경우가 많아 외전은 나름대로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다. 제주에서 지니어스 로사이라는 본편과 함께 글래스하우스도 볼 수 있고, 이제 본태박물관이라는 또 다른 외전을 제주에서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건축을 이야기할 때 디테일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많은 고민을 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가지려고 노력했더라도 건축물을 부분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어설픈 부분이 나타난다면 건축물 전체에 대한 인상이 나빠질 수 있다. 안도 다다오는 일본이 아닌 타국에서 건축물이 지어질 때 시공의 완성도를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추구하는 날카로운 선과 면을 강조하기 위해서일까? 눈에 잘 띄는 지붕선의 마무리를 위해 철을 덧붙여 가까이에서 보면 이중으로 보이면서 세밀한 느낌이 보이고, 멀리서 보면 콘크리트와 철이 하나로 보이면서 모서리의 날카로움을 보여주는 이중의 효과를 얻고 있다.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건축적인 행위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제주는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의 건축물을 볼 수 있는 경연장이 되었다. 건축을 전공한 필자에게는 누구보다도 반가운 현상이다. 그저 제주도 한 바퀴만 돌아도 제주의  건축가들과 김중업(1922~1988), 정기용(1945~2011), 승효상(1952~), 김석철(1943~) 등의 국내 건축가 그리고 안도 다다오, 이타미 준, 마리오 보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 1953~}, 쿠마 켄고^{隈 研吾, 1954~} 등을 보며 여행을 할 수 있으니 세계 여행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마냥 즐거운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리카르도 레고레타^{Ricardo Legorreta, 1931~2011}가 설계한 카사 델 아구아 더 갤러리^{The Gallery Casa del Agua jeju}의 사건처럼 지역과 호흡하지 못하고 건축물만이 우뚝 솟아 있을 때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건축은 건축가와 건축주만의 소유물이 아닌 지역과 호흡하는 공공재의 성격을 지닌다. 지역성은 건축의 방법론으로서만 필요한 것이 아닌 지역과 어울리며 사랑받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축물인 본태박물관이 제주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지만, 유명 화가가 붓을 놀렸다고 모든 작품이 명작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본태박물관이 안도 다다오의 최고 건축물이 아니라는 것은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