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거울, 외모보다 마음을 비추는 미디어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져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 『카톨릭 청년』(1934년 10월호)

 이상의 <거울>은 고교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 중의 하나다. 한참 거울 보는 시간이 길어지곤 했던 사춘기 시절. 거울은 외모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 미디어였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 세상을 등 뒤에 가득 짊어지고, 사춘기 소녀들은 거울 속의 자신에 탐닉하며 속으로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문학 시간에 만난 이상의 시는 충격 자체였다. 나는 그저 ‘못난이 얼굴’을 발견할 뿐인 거울 속에서, 이 시인은 거대한 한 세상을 발견하다니. 거울 속의 자신에게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를 발견하고, 좌우가 바뀐 거울의 이미지 속에서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의 자아를 발견하다니.

 만질 수 없는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그는 거울이 아니라면 만날 수도 없었던 자아의 존재를 깨닫는다. 게다가 거울을 지니지 않은 순간에도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현실 속의 자아’를 넘어 ‘자아라는 이름의 또 다른 분신’의 존재를 감지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지금 살아 움직이는 나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나,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이미지로 구축된 자아의 형상을 구축하는 것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보다 ‘나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진정으로 ‘사유의 대상’으로 삼을 때, 우리 삶에서 진정한 ‘철학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철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작가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바로 그 ‘나의 눈에 비친 나’를 생각하는 또 하나의 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 2. <백설공주>의 거울 : 불행의 기원

 같은 거울이라도, 이야기의 주인공에 따라 거울의 이미지는 전혀 다르게 변주된다. 우리가 아는 거울 이야기 중의 가장 ‘나쁜 사례’는 바로 「백설공주」일 것이다. 어떤 거울은 살인까지 저지르게 만드는 죄악의 미디어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자기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사물, 그것은 거울의 ‘정직함’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울의 정직함 덕분에, 마녀는 거울만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누구도 믿지 않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지만, 거울만은 믿고 아낀다. 그녀가 믿는 것은 ‘믿음직한 사람’이 아니라 ‘냉철한 거울’이다. 사람의 인정에서 자신의 의미를 구하지 않고, 사물의 합리성에서 생의 의미를 찾는 마녀. 그녀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데 실패한 반사회적 인격장애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주인공 백설공주보다 마녀에게 더욱 이끌린다. 남의 것을 탐하다가 내가 원래 가진 것조차 모두 잃어버리는 끔찍한 비극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원래 가진 것이 많았다. 뛰어난 미모도, 왕비라는 지위도, 국왕의 사랑도, 원래 모두 그녀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진 것 이상을 탐했다. 영원히 자기 것일 수 없는 것을 탐했다. 그것은 바로 ‘영원히 변치 않는 최고의 미모’와 ‘백설공주의 몫으로 할당된 신의 사랑’이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했기에 그녀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를 만약 현대적인 이야기로 각색한다면, 나는 마녀의 ‘외로움’에 주목했을 것 같다. 마녀는 자존심이 세다. 자존심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자신이 최고가 아닌 세상에서는 도무지 살아갈 의욕이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숨겨진 탁월함에 대한 순수한 갈망을 너무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생생하고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마녀가 거울과의 대화에 집착한 이유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민을 진심으로 털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빨강머리 앤」이 마릴라 남매를 만나기 전까지, 대화할 상대가 없어 책장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이름을 붙여 대화할 수밖에 없었듯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미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저마다 자신과 대화할 또 하나의 자신이 필요하다.

 왕비에게는 누구보다도 친구가 필요했지만, 오만하고 냉정하고 이기적인 왕비 스스로가 친구를 만드는 평범한 길을 차단했다.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웃고, 마음을 열어 자신의 결점을 보여주고, 그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친구를 만들기 위한 모든 평범하지만 소중한 몸짓들. 그런 살갑고 곰살궂은 행위란 도무지 왕비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팜므 파탈의 전형을 보여준다. 남성에게 인정받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자신에게서 인정받길 갈구하는 것이다. 왕비는 걸핏하면 식었다 끓어올랐다를 반복하는 불완전한 사랑 따위에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기 싫었던 것이 아닐까. 그녀에게 남자의 사랑 따위는 중요치 않다. 서로를 아끼고 위하며 소소한 만족을 얻는 인간들의 따스한 온정 따위도 중요치 않다. 그녀는 오직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갈망으로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소중한 자산들까지도 기꺼이 버릴 수 있다. 왕비는 모든 ‘인간적인 범속함’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절대왕국에서 최고의 미모를 누리며 유아독존의 이상향을 꿈꾸는 고독한 영혼의 소유자다.

 왕비가 거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거울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따뜻하고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혹은 주변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하얀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거울은 전적으로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 사람들과 섞이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사실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라는 기준 또한 ‘누구의 기준’인지 객관화할 수 없는,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마녀의 거울은 뻔뻔하게도, ‘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곧 진리요, 절대다’라는 가치판단을 함축하고 있다. 어쩌면 거울은 ‘나는 언젠가 최고가 아니게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는 왕비의 공포가 만들어낸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내가 최고인 세상’만을 꿈꾸는 한, 왕비는 영원히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투명한 영혼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 3. 윤동주의 거울 : 윤리의 기원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는데, 그저 잘 모르면서도 이 뼈아픈 고백의 영롱한 메시지가 그저 좋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 이 시는 매우 충격적인 메시지로 다가온다. 그는 자신의 ‘쾌락’을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라니. 행복하기 위해, 즐겁기 위해, 신명나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 자체를 뼈아프게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나쁜 짓을 한 것에 대해서만 참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쾌락을 향한 여정이고, 그 살아있음 자체를 반성하는 것이다. 즐겁고, 행복하고, 신명나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열망 자체를 반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윤리의 시작이 아닐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누가 벌을 주어서가 아니라, 내가 누리고 이는 당연한 가치들, 내가 욕망하고 있는 당연한 대상들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고, 회의하는 것. 그 순간이야말로 철학이 필요한 시간, 문학에 눈을 뜨는 시간이 아닐까.

 이 거울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거울이다. 사람들은 바쁜 세상사에 치어, 자신에 대한 연민에 빠져, 가장 윤리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성찰의 눈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윤동주가 ‘뭔가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할 수 없는 심각한 죄악’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의심해 보기도 했다. 왜 이 아름다운 시들 속에서 그는 항상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있는 것일까.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겪은 민족적 모순’이라는 가르침은 이 시를 이해하는 데 방해만 될 뿐이었다. 어른이 되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아무리 ‘더 좋은 인간’이 되려고 몸부림쳐도, 살아있는 한 다른 생명을 향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뼈아픈 진실을 깨달은 지금에야, 윤동주의 뼈아픈 원죄의식은 ‘바로 나의 문제’로 다가온다.

 그는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우주에 폐를 끼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든 죄를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것이다. 모두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자기를 돌봐야 한다고 외치는 세상에서, ‘그래도 나는 살아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속삭이는 윤동주의 쓸쓸한 미소가 더욱 가슴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내 마음에도 어느 새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이 자리 잡아,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의 참담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은 아닐까. 이 거울은 끝없이 ‘나쁜 짓’에 유혹을 느끼는 우리를 감시하고, 때로는 우리를 끝도 없이 부끄럽게 하지만,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아름다운 성찰의 미디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