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냉장고의 은밀한 속사정 -JTBC, <냉장고를 부탁해>

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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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냉장고를 부탁해> (사진출처 : JTBC 홈페이지)

현대인의 생활에서 냉장고는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가정집이 아닌 사무실과 같은 공간에서도 냉장고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본디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또한 음식을 더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발명품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오늘날 비단 음식과 같이 먹는 것뿐 아니라, 화장품과 같이 바르는 것을 보관하기도 하는 냉장고는 개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포괄한다. 침실이나 옷장이 개인의 사적인 영역인 만큼 냉장고 또한 그러한 성격을 지닌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어떤 생활을 구가하는지, 그 말간 속살을 가감 없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냉장고이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에 첫 방송을 시작한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는 매회 2명의 유명인 게스트와 그들이 직접 사용하는 냉장고를 스튜디오로 초대한다. 프로그램의 MC들은 마치 과학수사를 진행하는 것 마냥 하얀 위생장갑을 끼고 게스트의 냉장고 속의 ‘은밀한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초대되는 게스트의 면모만큼이나 냉장고 속사정은 각양각색이다. 각종 술 종류를 넣어놓은 애주가나 진귀한 식재료를 한가득 구비하고 있는 미식가뿐 아니라, 인스턴트식품으로 연명하는 자취생이나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식품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기러기아빠도 있다. 여기서 냉장고는 음식 저장고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시청자들이 목도하게 되는 것은 유명인들이 먹는 식품 그 자체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그 식품을 선택하고 조리하는 이면의 과정, 즉 유명인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포함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냉장고를 부탁해>는 시청자에게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을 일으킨다. 하나는 유명인에 대한 선망이고, 다른 하나는 유명인에 대한 동일시다. 전자는 유명인의 냉장고를 통해 시청자 자신과 유명인 간에 어쩔 수 없는 경제적·문화적 간극이 존재함을 확인하는 데서 비롯된다. 유명인의 냉장고 속에서 발견하는 푸아그라나 송로버섯 등은 일반 시청자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식재료라고 하기 어렵다. 여기에 패널로 참석하는 요리사들의 전문적인 설명이 더해질수록 유명인과 그가 영위하는 삶에 대한 선망은 한층 커지게 될 수밖에 없다. 이와는 반대로 후자의 경우에는 유명인의 냉장고를 통해 유명인 또한 시청자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확인한다. 유명인 또한 각종 장류와 김치와 같은 일상적인 품목과 인스턴트식품과 같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시청자에게 묘한 안도감을 준다. 실로 일반인과는 다른 화려한 삶만을 구가할 것 같은 유명인에게도 시청자 자신과 공통분모가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와 같이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유명인의 냉장고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시청자들이 가지는 복합적인 감정은 자연스럽게 냉장고라는 매개가 가지는 진정성과 연결된다. 이제껏 유명인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는 많았지만, 유명인의 냉장고를 열어보는 것 이상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유명인들 간의 가상연애나 결혼생활을 비추고, 유명인을 일반 시청자의 집에서 살게 만들거나 유명인의 집과 생활을 쫓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강력한 기제 중 하나는 시청자들이 재현된 ‘리얼리티’를 통해 느끼는 진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각자의 진정성을 외치는 동안 시청자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의 ‘리얼리티’ 또한 카메라가 없는 상황에서의 유명인의 ‘리얼리티’와 다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유명인의 ‘리얼리티’를 정교하게 가공한 ‘하이퍼리얼리티’가 ‘리얼리티’를 대체하는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유명인의 ‘리얼리티’는 진정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사진 출처 : JTBC 홈페이지)

이런 상황 가운데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시청자들이 경험하는 ‘리얼리티’는 여타의 리얼리티 프로그램과는 구별되는 진정성을 선사한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제공하는 진정성의 출발은 우선 음식이라는 현물이 가지는 힘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유명인의 삶이 비춰지는 방식이 시청자의 입장에서 비가시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인기와 명예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유명인이 직접 먹고 마시는 구체적인 무엇, 바로 음식이라는 실질적인 대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큰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냉장고를 통해 확인하는 유명인의 음식에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시청자들이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품목도 있지만,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 시청자들은 음식이라는 대상에 대해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제공하는 진정성은 한편, 요리라는 보편적 경험에서도 발견된다. 프로그램에 초대된 유명인 게스트의 냉장고를 살펴본 이후, 유명인 게스트는 고정패널인 요리사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요리를 주문한다. 그리고 요리사들은 냉장고 속의 재료만을 이용해 요리를 한다. 요리사들은 짝을 이루어 서바이벌 형식으로 요리를 하게 되는데, 이들은 모두 제한된 시간 안에 음식을 완성해야 하는 미션을 가진다. 비록 프로그램 내에서 요리를 하는 이들이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요리사지만, 시청자들이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은 요리가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데 있다. 요리를 잘 하고 못하고의 문제를 떠나 요리라는 것은 시청자, 아니 인류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냉장고 속 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시청자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냉장고를 부탁해>가 시청자에게 주는 진정성은 냉장고로부터 시작되는 상상의 가능성에 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은 실제 냉장고 속 내용물을 둘러보다가 유명인 게스트에게 사생활과 관련된 짓궂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먹다 남은 술이나 누군가 남긴 메모 또는 특정 물건 등을 발견하는 경우, 유명인 게스트에게 덧입혀지는 농담조의 추측은 그 수위가 한층 세어진다. 비단 이와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시청자들은 유명인들의 냉장고라는 매우 사적인 공간을 공유하면서 유명인의 생활을 상상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냉장고 속의 내용물은 유명인의 사인이나 애장품보다 훨씬 강한 실재감을 안겨준다. 이것을 유명인의 일상적이고 사적인 영역이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냉장고 문을 함부로 여는 것은 실례’라는 것이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아직까지 냉장고가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누군가에게 선뜻 보여주지 않았던 ‘공간’을 공개한다는 어려운 결정을, 냉장고라는 친숙한 매개를 통해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먹고 요리하는 장면들로 가득했던 2015년의 텔레비전을 반추했을 때, 이 프로그램이 먹고 요리하는 행위의 시작이 음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에게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