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공감할 수 없는 ‘헬조선’의 우리들

배선애

연일 국제 뉴스에 다양한 난민의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 터키 국경을 넘어 독일로 가려는 난민들이 기차를 점령하고 있어 운행이 안 된다는 소식,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들어가려는 난민들이 대거 붙잡혀 다시 시리아로 보내진다는 소식, 그런 피난의 과정에서 배가 뒤집혀 어린 아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수장 당했다는 소식, 이렇게 유입되는 난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로 유럽연합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 등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의 대륙은 난민이 당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라는 뉴스이다. 우리 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난민이기에 이것은 머나먼 곳의 다른 나라 이야기라고 무심하게 흘려버리는 우리에게 던진 광주대학교 욤비 토나 교수의 일갈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콩고 왕족이지만 자국의 비리를 고발하려다 한국에 정착한 난민 욤비 교수는 ‘세계 민주주의의 날’ 기념식에서 한국도 난민의 경험이 있으면서 정작 난민을 모르고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며 한국의 이기적인 태도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개화 이후 제국 열강의 세력 다툼 속에 던져진 우리의 역사는 난민의 역사였다. 식민지가 되면서 살 길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만주와 중국, 러시아로 떠나갔고, 조선에 남은 사람들도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을 우리 땅에서 치르면서 난민의 일상을 살았다. 강제징용과 강제이주 등으로 억지로 난민이 되기도 했으며, 해방이 된 후 떠난 사람들이 돌아왔으나 곧 남과 북으로 분단이 고착화되어 또다시 고향을 등지는 난민들이 속출했고, 1950년의 한국전쟁이라는 물리적 폭력은 전쟁을 피하려는 피난민들로 한반도를 가득 채웠다. 가난한 나라를 벗어나고 싶었던 1960~70년대의 이민자들과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어 조국을 등지는 현재의 이민자들도 스스로 선택한 난민인 셈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국제 난민’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았을 뿐 우리의 역사도 난민의 역사인 것이다.

연극계에서도 1921년에 공연된 윤백남의 <운명>은 하와이로 떠나는 결혼이주자를 다루고 있고, 유치진의 <토막>(1931년)에서는 삶의 터전을 잃고 야반도주하는 경선네 식구로 난민을 형상화하였다. 김자림의 <이민선>(1965년)은 브라질로 이민 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이강백의 <다섯>(1971년)은 신탐라국으로 알레고리화된 이상향을 향한 밀항을 기본 모티프로 삼고 있다. 이렇게 우리 땅을 떠나가는 이야기 외에도 난민이 되어 정착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극화하는 작가들도 있는데, 일본에서 일명 자이니치(在日)로 살아가는 정의신의 작업, 신주쿠양산박이라는 극단을 이끌고 있는 김수진, 그리고 조박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구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떠밀려가 정착한 이들 중에서는 연성용 작가가 지속적 연극 활동을 하였다.

이렇게 난민의 역사를 증거하는 작품들이 있음에도 지금의 우리는 왜 난민에 무심한 것일까? 비단 배타적이고 국수적인 우리의 민족성(그런 것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이 이유일까? 보편적 상식으로 접근해 보자.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그 간절함에 대한 공감을 전제한다. 터키 해변에 떠밀려온 세 살배기 꼬마의 시신이 세계적인 공명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 절박함과 비극성을 인지하고 충분히 공감하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가 체감하는 일상이 아니라는 것도 난민을 외면하는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난민에 대한 공감이 부재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출구와 희망이 없는 지금의 우리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단어 ‘헬조선’은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심리적, 정신적으로 매우 위축되어 있고 무력감과 패배감의 조소로 가득 차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끝도 없는 무한경쟁과 불통이 만연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공감을 잃었고 연대를 잊었다. 풍족하게, 별 탈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 내면을 열어보면 우리 모두 정신적 난민인 셈이다.

올해 연극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정신적 난민의 상태와 그것을 주조하는 시스템이 보다 명확해진다. 작년 말,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서울연극제를 대관 심사에서 탈락시켰다. 1977년 대한민국연극제를 시작으로 35년 동안 이어진 연극제의 대관을 탈락시킨 것이다. 연극인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 사태에 대한 의견수렴과 문제 해결을 위한 포럼을 개최하였다. 연극에 대한 관의 개입을 공론화하는 사건이었다. 두 번째는 창작산실 지원 선정작의 자진 철회 압박이다. 국내 예술지원사업 중 가장 큰 금액을 지원하는 창작산실은 그 소관이 명동예술극장에서 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로 이관되었다. 1차 심사를 통과한 작품의 낭독공연을 통해 총 10편을 지원하기로 한 창작산실은 그 심사 결과를 두 달 이상을 미루더니 8편만을 선정하였는데, 그 중 한 편에 대해 문예위 직원이 작가를 찾아가 제작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였고 결국 자진 철회의 방식으로 공표되었다. 그 작가가 2013년에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개구리>라는 작품 속에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을 풍자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을 문제 삼았고, 그런 작품을 쓴 작가에게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심사위원들에게 탈락으로 심사결과를 번복할 것을 요구하는 직원들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정치적 검열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2,000여 명의 연극인들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으며, 각종 연극조직과 단체들의 성명이 발표되었다. 세 번째는 10월에 진행된 국제공연예술제의 ‘팝업씨어터’ 공연에서 세월호를 암시하는 대사가 있다는 이유로 문예위 공연예술센터 센터장과 직원들이 공연을 방해한 사건이다. 뒤늦은 대본검열을 자행하고, 문제의 발단에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을 하며, 이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센터장 개인으로 돌리는 행태를 취하고 있어 예정된 ‘팝업씨어터’의 나머지 공연 연출자들이 공연을 철회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검열,’ 1987년 제9차 개정헌법(제21조 제2항)에 삽입된 검열금지 조항이 무색한 현실이다. 가장 자유롭고 가장 다양한 색채를 보장받아야 하는 예술창작 영역에서 자행되는 이러한 검열은 연극인들의 뇌를 옥죄이고 창작열을 상실하게 만들고 지속적으로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공감하려는 의지가 없는 정부와 기관이 예술가들의 역동적 생산성과 공감 능력을 거세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공연된 연극 <백석우화>(이윤택 각색, 연출)는 예술과 제도의 관계를 시의 적절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향토어를 사용하여 토속적 정서가 풍부한 시를 써 온 시인 백석이 분단 이후 북한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모습을 연대기적으로 건조하게 제시하는 것이 작품 전체의 내용이다. 몇 편의 산문을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27년간 절필한 백석의 삶은 강요된 제도와 사상이 자유로운 창작의 영혼을 어떤 방식으로 구속하는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더 이상 시를 창작하지 못한 백석의 상황이 암암리에 진행되는 검열 속에서 점점 위축되는 현재의 예술인들과 겹쳐진다. 예술의 자유, 창작의 자유는 무엇으로도 강제하거나 구속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보장해 주는 것이 민주주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연극계 검열은 이슈에서 사라지고 있다. 예측하거나 상상하지 못한 비상식적, 비민주적 일들이 거듭 발생하는 현실을 견뎌내는 것도 이젠 지치고 힘들다. ‘헬조선’은 이런 자조와 절망, 자기비하에서 만들어졌고, ‘헬조선’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시리아의 난민을 걱정하기엔 정신적, 심리적으로 너덜너덜해지고 황폐해졌다. 정신적 난민은 어느 보호소에서 구제를 받아야 하는가? 머리가 아프다.